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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뻘짓)/Against the day

Against the day p570-574

by 어정버정 2026. 5. 16.

이솔라 델리 스페키는 어떤 지도에는 등장하고 어떤 지도에는 없었다. 날마다 석호의 수위가 얼마인지에 달린 일인 것 같았다. 어쩌면 일종의 믿음에 달린 일일지도 모른다. 다른 면에는 박학다식한 베네치아 사람들 중에서도 섬의 존재를 단호히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카와 브리아가 방문했던 날, 섬은 평범한 수상버스로 갈 수 있고, 평범한 거울 공장, 유리주조실, 가마 도가니, 연마 작업장이 있는 아주 평범한 섬처럼 보였고, 유일하게 특이한 데가 건물 한쪽 전체, 방문객이 출입할 마음을 쏙 빼놓는, ‘테라피아(치료)’라고 적혀 있는 문이 있는 곳이었다.

스베글리 교수는 고풍스러운 종이와 양피지에 쓰인 문서들에 둘러싸여 공장 기록 보관소에서 있었다. “당신들 조상의 기록은 그 남자만큼이나 찾아내기 힘듭니다,”라는 인사말로 그가 그들을 맞았다.

찾을 수 있는 기록들을 전부 없애버리지 않은 게 그저 놀랍네요.“

그들에게는 그런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을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체성을 그저 관계 서류의 내용 정도로만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죠. 당시 과거에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질 수도 있었고, ‘서류는 위조도 쉬웠고 허구일 수도 있었습니다. 니콜로 데이 좀비니에게는 특히 더 곤란했습니다. 어느 순간에 그도, 완벽주의자 거울 제작자들에게 흔한 일로, 미쳐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산 세르볼로 성당의 정신병원에 결국 갇힐 처지였지만, 어떤 불가사의한 이유로탈출 계획의 일환으로 정신 이상을 가장했던 걸까요? 아니면 두칼레 궁전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걸까요?다른 사람이라면 마니코미오(정신병원)에 보내졌을 만한 행동을 하고도 모면을 하고 계속 일을 하게 두었어요. 두루 사정을 고려하면 그가 아마 왜 그런지 알고 있을 유일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교수는 거의 투명한 피지(vellum) 한 장을 조심스럽게 집어 흰색 셀룰로이드 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은 소위 파라모르피코(다형가상경)의 원본 도안으로 짐작되는데, 매우 희귀하고 값비싼 -궁 피지에 그려져 있으니, 원래도 세상 햇빛을 많이 볼 처지는 아니었던 물건입니다. 더 저렴한 등급의 양피지에 잉크로 배낀 작업용 형판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대부분 사용 과정에서 손상되었고, 또한 연마재, 역청, 금속 닦는 철단(鐵丹) 등으로 인해 훼손되었습니다. 니콜로는 필경 1660년경 이곳에서 탈출하면서 파라모르피코 하나를 가지고 갔는데, 그 후로 그나 그 물건 둘 다 들려오는 소식은 없었습니다.”

이게 어떤 작용을 하나요?” 루카가 빈첸초 미세레레에게 물었다. “아직도 만드는 사람이 있나요? 제 공연에 써도 될까요?”

미세레레는 코안경 너머로 루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작년에 비슷한 걸 주문하셨죠.” 그는 송장 사본들을 훑어보고, “유리, 방해석, 맞춤형 은도금. 저희는 이걸 라 도피아트리체(doubler, 곱절로 만드는 기구)’라고 부릅니다.”

, 맞아요. 맞아요. 마침 그 주제가 나와서 말인데, 당신네 현장 지원팀과 얘기 좀 해야겠어요.” 이어서 루카는 미세레레에게 설명이 안 되는 오작동으로 광학적으로 반으로 잘린 사람들이 작으나마 여럿 만들어 뉴욕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숙지시켰고. 브리아는 너무 티 나게 눈을 굴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담당자는 책상 위의 전화를 집어 들고 베네치아 방언으로 짧게 통화를 했다. 몇 분 후, 실제로 그 장치를 설계한 에토레 사난졸로가 팔 아래 엔지니어링 도면 뭉치를 끼고 들어왔다.

이건 40년 전의 고전적인 마스켈린 캐비닛 마술의 변형일 뿐입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캐비닛에 거울을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가를 따라 뒷면 한쪽 모서리를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지게 넣는데요. 질 좋은 거울에 벨벳 안감으로 관객은 여전히 ​​빈 캐비닛의 뒷벽을 똑바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측면 벽의 반사상을 보고 있는 거죠. 사라지기 위해, 피사체는 캐비닛 안으로 들어가 거울 뒤 45도 각도에 숨으면 ​​됩니다.

“4차원 공간에서 이와 유사한 마술을 하려면, 2차원 거울에서 3차원 거울로 넘어가야 했는데, 바로 여기서 파라모르피코가 등장합니다. 3차원에서 한 평면이 다른 평면에 대응할 때 단순히 90도 회전하는 대신, 이제 4차원 공간에서 캐비닛 내부라는 하나의 부피를 다른 부피로 대체해야 합니다. 순전히 공간적인 세 축으로 이루어진 체계에서 공간과 시간을 더한 네 축으로 이루어진 체계로 넘어가는 거죠. 이런 식으로 시간이 효과에 적용됩니다. 당신이 만들어냈다고 보고한 복제인간들은 실제로 시간적으로 약간 어긋나 등장한 원래 대상들입니다.”

예일대 밴더주스 교수도 얼추 비슷하게 보고 있던데. , 이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안타깝게도, 우선 각 쌍을 찾아내서 어떻게든 다시 캐비닛 안으로 들어가도록 설득해야 할 겁니다.”

루카는 곁눈으로, 브리아가 머리를 감싸 쥐고 한마디 하려는 마음을 꾹 누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제 막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에토레가 요구한 해결법은 분명 불가능했다. 이제 그들 마술 대상은 너무 오랫동안 각자의 삶을 계속 살았고, 더 이상 쌍둥이라기보다는 서로 갈라졌다고 할 수 있었다. 뉴욕처럼 거대한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매력적인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일로 넘어가, 마음을 얻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바꾸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을 것이라, 마치 담배에 다시 연기를 불어넣으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인 데다가, 하물며 그들 중 누구도 자발적으로 라 도피아트리체에 다시 들어올 거라고 기대하는 일은 고사하고 더 이상 찾을 수나 있을지. 마치 수많은 실제 아이들을, 그러니까 쌍둥이들의 아버지 노릇을 하는 것과 비슷하긴 한데, 다만 이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 세상에 태어났고, 그들 중 누구도 찾아올 가망은 없다고 루카는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이 사실에 위안을 느끼지는 않겠지만, 루카는 애써 위안을 얻으려 했다.

에토레는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도면들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과 새로 설치해야 할 부품들을 지적했다.

덕분에 마음이 놓이네요.” 루카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돈으로?” 에토레가 제안했다. 빈첸초 미세레레는 고품질의 돌처럼 단단한 검은 시가 하나에 불을 붙이고 윙크했다. 브리아는 아버지가 미쳐버리기도 한 것처럼 유심히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수상버스를 타고 베네치아로 덜커덩거리며 돌아갔다. 주변으로 미친 거울 세공인들의 모든 불안한 유령들이 석호에서 바다로, 다시 바다에서 석호로, 도시 안팎으로 살소 강을 타고 드나들고, 스스로 밤낚시 배, 증기선, 산돌리(소형 어선)에 들려붙어, 잃어버린 기회,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 나서고표면 밑으로 스며들어 오래된 작업실들을 둘러보고, 때로는 고대 거울 조각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섬뜩하게 찾아내기도 하였다. 이 아래의 은도금은 바다와 시간의 부식을 견뎌내, 언제나 오랫동안 집을 잃은 죽은 자들에게 특별히 동조(同調)하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말리브란 극장에서 실황 공연 사이에 상영되는 영화 화면 가장자리에서도 그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과거 뉴욕에서 좀비니 아이들은 몰래 시내로 나가 니켈로디언 푼돈 영화관을 곧잘 보곤 했고, 자신들이 머리깨나 난 축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어쩐지 집단적인 꿈에 빠져들어 산타 루시아 역에 들어오는 기차를 피해 비명을 지르며 통로를 뛰어 달아나지 않기 위해서 아니면 짧은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끔찍한 악당들에게 물건을 던지지 않도록, 혹은 좌석에 제대로 앉은 것인지 그래서 대운하위 나가는 배에 올라탄 게 아니라고 확인하기 위해서 서로를 와락 움켜잡았다.

그날 밤 극장에서 공연이 끝난 후, 댈리는 갑작스럽게 치민 공허함과 메아리에 뒤에 남아서 소품과 장비를 집어넣고 다음 날 공연을 위한 특수 효과를 설치하는 일을 도왔다. 최근 들어 독심술을 전문으로 삼고 조사하며 평소보다 직관력이 더 커졌을 지도 모른다고 느끼던 얼리스는 브리아의 단칼처럼 사려 깊은 눈빛을 아예 대놓고 계속 댈리에게 던졌다. 어느 순간, 둘은 비둘기 새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무슨 일이야?” 두 사람은 동시에 말했다. 댈리가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우물쭈물거리는 동안, 얼리스는 됐어, 뭔지 알아.”라고 덧붙였다.

제가 설명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 댈리가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어. 있잖아, 수많은 곳들을 줄줄이 거치며 사는 것은 고사하고 아니, 남들은 왜 거기 살고 싶은지 이해는 고사하고 절대 들르고 싶지도 않은 곳을 거친 후에 어느 장소를 거쳐가게 되는데, 어쩌면 지금 그럴 시간일 수도 있고, 날씨나, 방금 먹은 음식 때문일 수도 있고, 알 수 없지만, 그냥 그곳으로 타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곳이 나와서 나를 감싸안아요, 그러면 그때 비로소 내가 속한 곳인 걸 알아요. 세상 어디에도 이곳 같은 곳은 없어요, 그래서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걸 알아요.”

열 몇 가지의 반대 의견들이 얼리스의 머릿속에서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밀치닥거렸다. 그녀는 댈리가 이미 그 모든 의견들을 검토하고 일축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내가 루카와 얘기해 볼게.”

 

 

이제 나는 댈리를 놔줘야 하는데,” 얼리스가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들은 산 폴로 외곽의 호텔에서 운하 건너편의 카나레지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뒤편의 태양은 저절로 뒤틀리며 가라앉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빛과 성운같이 흐릿하게 뒤섞인 구슬픈 풍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됐어. 찾았다가 다시 잃어버리는 일로.”

그건 절대 네 잘못이 아니었어.” 루카가 말했다. “내 잘못이야. 내가 미쳤지.”

나도 마찬가지로 더 머리가 난 것도 아니었지. 그때는 어렸고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그게 변명이 될 순 없잖아? 난 그녀를 두고 떠났어. 두고 떠났다고. 돌아가서 되돌리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클리블랜드에 있는 스니델 자매들은 항상 내 속을 꿰고 있었어. 아직도 꿈속에서 날 찾아서 내가 살 자격이 없다고 말해. 나는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었을까?”

잠깐. 당신이 그 아이를 내팽개치고 떠난 건 아니잖아.” 그가 반박했다. “가장 안전하게 그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는 데가 메를에게 맡기는 일이라고 알았어. 그 아이가 따뜻하게 지내고 사랑받고 배고프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어.”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았어. 그래서 떠나는 게 한결 쉬웠지.”

우리는 그들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했어. 몇 년이나 찾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엄청 노력하다고 할 수는 없지.”

우리도 일을 계속해야 했어. 그냥 하던 일 모두 멈추고 메를을 쫓아 지도 위 온 세상을 찾아다닐 수는 없었어. 그리고 그도 우리를 찾으려고 할 수도 있었는데, 안 그래?”

분명 그가 엄청 배신감을 느꼈을 거야. 나를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내가 그 아이 근처에 있는 것도 원하지 않았겠지.”

모를 일이지.”

우리 싸우는 거야?”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나는 무서웠어. 불쑥 당신이 혼자서 아이를 찾아 떠나버리고, 난 평범한 일상과 더불어, 당신 없이 남겨질 거라고 생각했지. 너무 절박해서 자물쇠랑 쇠사슬을 걸 생각까지 했지만, 당신이 그런 류의 탈출법들을 모조리 배우지 않았다면 그랬겠지.”

난 절대 당신 두고 사라지려고 한 적 없었어, 루카. 내가 사랑한 건 메를이 아니라 당신이었지.”

두 사람은 실제보다 서른 살은 더 늙은 듯한 기분을 느끼며 침대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방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날 ​​아파트에 돌아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뭐라고 해야 하나, 그 아이가 마치 별에서 흘러들어온 것 같았어.” 루카가 말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내 기분이 그랬지.”

그는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지만, 난데없이 원하는 색깔은 뭐든 실크 스카프를 꺼내는 재주가 있었다. 이번에는 보라색이었다. 그는 화려한 동작으로 그녀에게 스카프를 건넸다. “다 쓰면 나도 쓰게 돌려줘

그녀가 스카프로 눈 주위를 두드리고 다시 건네 주자 스카프의 색깔이 청동오리 청록색으로 변해 있었다. “스트론조(망할 놈). 당신도 나만큼이나 걔가 가는 걸 원하지 않지.”

하지만 우린 더는 발언권이 없어. 합의의 일부라.”

그냥 걔를 베니스에 두고 우리가 갈 수 있을까? 이번엔 가 안전할 거라고 어떻게 장담해?”

들어봐, 만약 걔가 속수무책에 머리가 어리석다면, 걱정도 일리가 가지만, 이 애는 통(갱단) 싸움의 틈바구니에서 상처 하나 없이 유유자적 살아남았어. 바워리에서도 공연했고. 우리 둘 다 걔가 활동하는 것도 봤고, 우리를 만나기 전에도 뉴욕을 제어할 수 있다면, 베네치아는 눈 감고도 쥐락펴락할 수 있지. 혹시 모르니까 방카 베네타에 걔 이름으로 몇 프랑 정도 넣어두는 것도 나쁠 것 없지. 그리고 여기 몇몇 지인들에게 조심스럽게 걔를 잘 지켜봐달라고 부탁을 넣을 수도 있어.”

그렇게 해서 댈리는 베네치아에서 혼자 있게 되었다. 어느 날 바포레토가 산 마르코 정류장을 떠나는데, 너무 많은 좀비니들이 난간에 모여 작별인사를 외치는 통에 배가 기우뚱 기울어졌다. 나중에 무슨 이유인지 댈리 기억에 브리아가 오래 남게 되리라. 갸날픈 브리아가 꾸준히, 팔을 쭉 뻗고 크게 모자를 흔들며, 머리카락은 바람에 헝클어진 채 소리쳤다. “쇼가 올랐어, 아가씨. 인 보크 알 루포(In bocc’ al lupo/행운을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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