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에서 군대들이 수천 명의 비무장 시위대가 공손하게 존경과 순수한 마음으로 행진해 오던 비무장 파업 시위대에게 발포했다. 수백 명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었다. 모스크바에서는 세르게이 대공이 암살당했다. 더 많은 파업과 전투가 잇따랐고, 농민과 군인들의 봉기와 폭동이 여름까지 계속되었다. 크론슈타트와 세바스토폴에서는 해군이 반란을 일으켰다. 모스크바에서는 시가전이 벌어졌다. 검은 백인百人단은 유대인들의 집단학살을 저질렀다. 일본은 동아시아 전선에서, 뤼순의 포위를 풀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항해해 오던 발트해 함대를 전멸시켜 승리하였다. 가을에 발생한 총파업으로 나라는 몇 주 동안 외부와 단절되었고, 서서히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역사의 흐름을 멈추었다. 12월에는 육군이 또 다른 대규모 반란을 진압했다. 동아시아 쪽에서는 온통 철도를 따라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산적들의 약탈, 결국 중앙아시아에서는 무슬림 반란이 일어났다. 만약 신이 러시아를 잊지 않았더라해도,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나 보았다.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에게 그 이듬해는 러시아인들이 곳곳에서 대규모 망명길에 오른 해로 기억될 것이다. 혁명이 그들의 발밑에서 무너져 내렸고, 남아 있으면 표트르-파벨 정치범감옥 그리고 조만간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차르에게 그렇게 많은 적이 있을 줄 알았겠는가?
베엔더슈트라세에서 러시아인들이 키트의 눈에 들기 시작했다. 야슈민은 그들이 자신을 감시하러 여기 머무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주변에 섞여 들려고 애썼지만, 빼도 박도 못할 미묘한 차이—털모자, 엄청 덥수룩하고 지저분한 수염, 툭하면 길거리에 주저앉아 자신들만 들을 수 있는 음악에 맞춰 카자츠키 춤을 추는 등-로 눈에 띄어 그들 정체가 드러냈다.
“저기, 야슈, 저 러시아인들은 대체 왜 저래?”
“마음에 깊이 담아두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야. 우리 부모님은 러시아인이셨지. 국경 변방에 살던 시절, 어느 날 습격을 당해 우리 가족과 나는 잡혀서 노예로 팔려 갔어. 얼마 후, 하프코트 소령이 와지리스탄(파키스탄 서북부의 산악 지대)의 시장에서 날 발견하고는 내 두 번째 아버지가 되어주셨지.”
예상했던 것만큼 놀랍지 않은 키트, “그럼 그분은 아직 어딘가 싸움터에 계시는 거야?”
“그분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시든, 남들이 나를 이용하려고 들만큼 정치적으로 묵직한 일에 매달려 있어.”
“너는 연락하고 지내?”
“우리는 거리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우리만의 수단이 있어.”
“텔레파시 같은 거?”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 너는 내가 머릿속에 에테르를 지닌 우둔한 여자라, T.W.I.T.의 믿음에 쉽게 휘둘린다고 생각하나 보네.”
“젠장, 야쉬, 너 정말 내 마음을 읽었구나,” 이 말이 그는 그녀가 기분 나빠하지 않기를 바라며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경고 없는 흉포함은, 아무리 장난스럽더라도 여전히 당혹스러운 곤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걸출하게 초월적으로 흥미로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이는 언제나 장차 무슨 야단이 일어날 징조였다. “혁명이 일어나도 소식은 돌아오지. 수천 마일, 수많은 언어, 믿을 수 없는 목격담들, 고의적인 허위 정보 등 어떻게든 거쳐서 그 소식은 청스턴 크레센트에 있는 T.W.I.T. 사람들에게 도달해. 그리고 그들을 통해 나오는 정보는 놀랍도록 신뢰성이 높아 — 심지어 전쟁부조차도 그들 첩보가 자기네보다 전반적으로 더 낫다고 인정해.”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뭐든지 말만 해.”
그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이곳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자유롭게 ‘나 자신으로서’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언제나… 그에게 속한 사람이야. 다른 가족들은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했어. 꿈속에서만 그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는데, 너무나 잠시라, 너무나 하찮은 순간들이라 그 후에 가슴속에 불완전함의 아픔이 잔혹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어. 나의 진정한 기억은 그가 시장에서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시작돼 — 나는 마치 소녀와 젊은 여자의 그 첨점에 꽃혀있는 인물이었지. 그 첨점이 반으로 가르듯 나를 꿰뚫고 지나는 느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 — 키트, 얼굴 붉어진 건 아니겠지?"
뭐랄까, 엇비슷했다, 하지만 욕망보다는 당혹감으로 얼굴을 붉혔다. 오늘 그녀는 목에 고대 동전을 걸고 있었는데, 단순히 구멍을 뚫고 가는 은 사슬 줄로 꿰어 그 매혹적인 목에 두르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디르한, 가즈니 왕조 초기 시대의 동전이야. 그분이 행운을 빌며 내게 주셨어.” 9세기 혹은 10세기 동안 유통되면서 도둑들이 테두리 주변으로 은을 조금씩 떼어내고 깎아냈지만, 안쪽 원은 고대 문자가 빼곡히 새겨진 채 살아남았다. 그것은 침략과 이를 버티는 영속의 숨은 역사, 그 지역의 진정한 역사, 그리고 어쩌면 이 젊은 여인의, 이번 생 그리고 아마 수도 없었을 전생의 역사도 보여주는 표면적인 상징이었다. “제안 고마워, 키트.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조언을 구할게. 정말 고맙게 생각해.” 그녀는 그가 이 정도에서 자신을 눈감고 모른 척 넘기리라, 그러면서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을 거라는 가정 이상 거의 믿지 않는 드문 호사에 두 눈이 춤을 추었다. 무심한 척해야 했어도, 그는 마치 놀이공원 아이스크림콘을 먹듯 그녀의 말을 몽땅 집어삼켰다. 뉴헤이븐에서는 절대 이런 거 경험 못 했을 거야. 뉴욕에서도 이렇게 추파던지는 법은 몰랐어. 세상은 이런 가보다. 키트는 생각에 잠겼고 며칠 후 새벽 3시쯤, 추가적인 대나무 막대기가 후려치듯 탁, 든 생각이, 그녀가 바로 세상이다.
한편, 야슈민은 사소한 일에 잔소리할 처지가 못 되어, 부유한 커피 재벌 자제인 귄터 폰 콰셀과 어울려 다니고 있었다. 첫 데이트에서, 절대 보편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의 열렬한 추종자인 귄터는 통계 역학을 이용해 리만 문제를 야슈민에게 설명하려 했다.
“자, 말해 봐, n이 무한히 커질 때, n번째 소수는 무엇일까?”
야슈민은 한숨을 쉬었지만, 욕망 때문은 아니었다. “소수 정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고등학교 학생이라면 알겠지만, 그 값은 n log n에 가까워져.”
“그렇지. 시스템의 엔트로피를 살펴보면—”
“뭔가… 증기기관 관련 용어 같지 않아? 내가 보일러 기술자라도 돼, 귄터?”
“일반적인 상수들을 제외하면,” 그는 말하면서 동시에 뭔가를 적으며, “엔트로피는… 시그마 p(Ek), 곱하기 p(Eh)로 표현할 수 있어. 여기까지는 이상한 데 없지?”
“물론, 하지만 이건 통계일 뿐이고. 수학은 언제 나오는 거야?”
“아흐, 이 제타마니아… 네 소수 정리는 통계학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휘갈겨 쓴 두 개 뭐뭐-로그-뭐뭐뭐를 보고 있었다. “이 Ek는…?”
“주어진 시스템의 에너지인데, k는 시스템이 하나 이상일 경우 나타내려고 사용해. 보통은 여러 개지.”
“귄터, 네 가족 중에 정신병자가 있는 거야?”
“매우 큰 N에 대한 N번째 소수가 물리적 시스템의 혼돈을 측정하는 한 척도로 전달되기도 한다는 게 너는 이상하지 않아?”
그 어떤 것도 야슈민이 그 애착을 이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탐정 소설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조차도 종종, 이야기의 수수께끼를 제기하고 해결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경우가 많듯이, 이 도시에서의 로맨스 역시 문을 들락거리고 물론 계단 오르내리는 일까지 벌이며, 한편에 쉬지 않고 말하고 운이 좋은 날에는 소리 지르는 구실 이상으로 밀고 나가지는 않는다”고 험프리트가 지적했다.
어느 날 야슈민은 귄터가 그의 절친한 하인리히에게 “이 도시에서 내가 키스하고 싶었던 여자는 딱 한 명뿐이야”라고 고백하는 말을 우연히 엿들었다. 물론 박사학위 응시생들 사이 객담이었지만, 리만 이론에 집착하고 있던 야슈민은 괴팅겐의 전통, 수학에 성공적으로 박사학위 취득에 시청 광장 분수에 있는 거위 소녀 조각상에, 몸이 흠뻑 젖고 운이 좋으면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키스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았다.
야슈민은 갈수록 신경이 쓰였다. “그 사람 누구야?” 그녀는 하인리히에게 따져 물었고, 하인리히는 그녀가 놀리는 줄 알았다.
“내가 아는 건, 그가 그러는데 그녀가 매일 시청 근처에서 기다린다고 하더라.”
“누구를 기다려? 귄터를 기다리는 건 아니고?”
하인리히는 어깨를 으쓱했다. “거위 얘기 하던가?”
“진짜 거위야, 아니면 대학생들이야?” 말을 남기고 씩씩거리며 광장으로 뛰쳐나가더니 위협적인 태도로 서성거렸다. 며칠동안이나. 귄터가 우연히 지나가기도 하고, 우연히 지나가지도 않았지만, 그 어떤 라이벌과도 동행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당연히 그녀는 근처 분수, 아니 작은 조각상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어느 날 그녀는 그가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농담은
칸토어 수준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녀가 툭하면 체르멜로의 공리를
나지막이 중얼거리지도 않는다.
그녀는 천재들의 키스를 받아왔다.
아마추어 프로베니우스들,
하나하나씩 호화로운 배율로
푸앵카레만큼이나 빛나는 천재들.
그리고… 비록 그녀가
코시를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리만도 마찬가지 처지이겠지만,
우린 그저 계속 꿈꿔야 할 것이다…
그저
휘태커와 왓슨(당시 수학교과서)에
몇몇 지점에 일어나도록 두자—
예상치 못한 수렴,
기적의 출현,
엡실론의 춤,
사랑을 위한
작지만 유한한 기회들…
그녀의 정신 건강을 걱정한 키트까지 포함해서 모두가 각자 2페니히를 각출해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야쉬, 이 녀석은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야. 네게 맞는 사람이 아니야. 내 말은 그가 키 크고 근육질에, 기이하지만 독일 식으로 나름 풍채 좋다고 해도 어쩌겠어…”
“멋지고, 재밌고, 낭만적이란 점을 빼먹었어…”
“하지만 넌 지금 인종적 기억에 휘둘리고 있는 거야.” 훔프리트가 분개하며 토로했다. “넌 지금 훈족 놈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거라고.”
“훔프리트, 내가 압도당하고 정복당하고 싶어 한다는 말이야?”
“내가 그런 말을 했어?”
“그래… 만약 내가 그렇다고 한다면, 1, 너희 둘 어느 쪽도 상관할 바 아니고, 2, 내가 사과해야 할 일이 있다면, 2 점 1 …”
“야쉬, 네 말이 전적으로 맞아.” 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모두 주둔군이 버티는 길에서 몇 마일이나 떨어진 여기 밤중에 나이트라이더(복면기마 폭력단)여서, 성가신 해충처럼 귀찮게 굴고 다닐 뿐. 다 쏴버려야 마땅해. 아니, 적어도 겨누기라도.”
“귄터가 당신들 말마따나, 아니 그보다도 더 나쁜 사람일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여자들처럼 감정을 느껴보지 않으면 우리와의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만 안고 얻는 성과는 없을 거야.”
“어떻게 조금 훌쩍거려볼 수 있는데, 도움이 되려나?”
이미 문밖으로 반쯤 나가던 그녀가 뒤돌아보며 나무라는 시선으로 째려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 논의의 대상인 아도니스, 그렇다 귄터 폰 콰셀이 계단을 탄탄하게 껑충껑충 뛰어 올라오고 있었고, 하우스크노헨(Hausknochen) 소시지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계단 꼭대기에 다다르자 마찬가지로 더 오를 데 없이 차오른 잔혹한 분노에 휩싸였다. “귄티, 키트를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그녀가 인사말을 전했다.
“저 녀석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난 여기 살아, 특대형 브라트부르스트 소시지 놈아.”
“아, 그래. 그건 사실이군.” 그가 수긍했다. “하지만 야슈민 양은… 여기 살지 않아.”
“그러게나 귄터, 그거 참 흥미롭네.”
귄터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는데, -적으로 홀딱 반한 사람이 아니라면 너무 오래 바라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편, 키트가 좀처럼 보지 못했던 희롱조로 야슈민은 계속해서 귄터의 결투-집단 모자를 낚아채고 계단 아래로 던지는 척했다. 귄터는 매번 몇 초가 지난 후에야 반응했지만, 반응할 때는 마치 방금 일어난 일마냥 민첩했다. 사실, 민코프스키 교수의 제자인 훔프리트에 따르면, 귄터가 자신 특유의 “준거틀”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이 아주 명백하였고, 그 안에서는 이처럼 시간-불일치가 필수적이지는 아니겠지만, 매우 중요한 면모라고 했다. “그는 ‘여기’에 있지 않아,” 훔프리트가 설명했다. “완전히 있지는 않지. 그는 약간 … 다른 곳에 있는데, 그가 곁을 지키는 일을 귀히 여기는 이들에게 충분히, 조금 불편을 주고 남아.”
“그래, 하지만 그럴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
“너희 모두 정말 지긋지긋.” 야슈민이 말했다.
한편 귄터는 야슈민이 여기 있는 일이 명예를 건 결투거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우리 이제 결투를 해야지.”
“어째서?”
“당신은 나를 모욕했고, 내 약혼녀를 모욕했어—”
“오, 귄니?”
“응, 리브헨(내 사랑)?”
“난 당신 약혼녀가 아니야, 기억 안 나? 우리 그런 얘기 했던가?”
“이갈 바스, 마이네 샤츠(어찌 되었든 내 사랑)!— 그건 그렇고, 트래버스 씨, 당신은 도전받은 쪽이니 무기를 고를 수 있어. 독일의 결투 수도에서 싸움을 걸어오다니, 당신 참으로 운이 좋군. 마음껏 골라잡아 대적을 하게, 당신 것까지, 슐레거, 크룸자벨, 코르브라피어, 심지어, 분명 당신 습성에 좋을 대로, 에페까지 준비되어 있어. 에페는 독일 기준에는 못 미치지는 무기지만, 지금 영국에서는 대단히 인기가 많다고 들었는데—”
“사실,” 키트가 말했다. “내가 염두에 두고 고르고 있던 쪽은, 권총 계열이었는데? 마침 콜트 6연발 권총 두 자루가 있으니까 우리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대적하기엔, 좀…”
“권총! 오, 안 돼, 안 돼,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트래버스 씨—여기서 결투는 죽이려고 하는 게 아냐, 아니고말고! 물론 베르빈둥(소속연합)의 명예를 지키고 싶기는 하지만, 내심 상대방 얼굴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고 싶은 의도가 더 커. 그 표식은 사람이 자신의 용기를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의 용감함의 개인적 증거를 볼 수 있게 지니고 다니게 되겠지.”
“그럼 네 얼굴에 있는 저 멕시코 물결표 같은 게 그거니?”
“특이하지 않나? 나중에 우리는 아주 신사적인 방식으로 특정한 복원 모멘트와 탄성 상수 하에, 칼날이 진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상 주파수를 계산해냈지. 너희 미국 총잡이는 분명 그런 개념조차 없겠지. 아, 맞아. 우리 중에도 실제로 필사적인 미치광이들이 스멀거리기도 해. 얼굴에 총상을 가한 사건들에서 멀리 벗어난 사람들, 하지만 그럴러면 죽음에 대한 무관심한 지경에 달하는데, 우리 중 그런 복을 지닌 사람은 거의 없어.”
“권총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귄티? 내가 살던 곳에서 명예가 걸릴 때는 말이지? 권총을 쓰는 게 거의 필수 관례라고. 칼은 너무... 뭐라고 해야 할까... 조용하다? 쩨쩨하달까? ... 교활하기까지 하려나?”
귄터의 귀가 떨렸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가, 선생? 그러니까 독일인을 용맹하지 못한 변종으로 분류하려고 한다, 이 말 맞아?”
“잠깐만—내가 또 당신을 모욕했나? 댁이…불러들이고 있는 거야, 벌써 두 번짼데? 맙소사! 도가 점점 꽤 심해지는데 안 그래? 만약 네가 사소한 일에 일일이 버럭 열을 받을 거라면, 우리 각자 총에 총알을 여섯 발 다 채워 장전해 두는 게 낫지 않겠어? 어떻게 생각해?”
“이 카우보이는,” 귄터가 애처로운 호소를 하며, “문명인들은 화약 냄새를 역겨워한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네.”
“이봐, 포크배럴(Porkberrel), 이게 대체 다 무슨 법석이야? 내가 말했잖아, 절대 수렴하지 않을 거라고. 앞으로도 절대 안 모일 거고.”
“또 그러네. 이제 세 번째야.”
“마찬가지로 다를 게 없이, 중간쯤에서 너는 단계를 하나 건너뛰었어. 게다가 급수 중의 하나에 몇몇 항들을 잘못 묶었고, 부호도 두엇 반대로 썼고, 심지어 바보같이 0으로 나누기까지 했어. 귄니, 봐봐. 여기 봐. 누군가 시간을 내서 이렇게 자세히 읽어 봐 주다니 다행인 줄 알아- 기본적인 바보 같은 실수나 하고—”
“넷!”
“—그리고 이렇게 남들 칼질로 흠집 내고 다니는 대신에, 바라는 일이 고작 얼굴에 기념엽서새기는 일이라면, 이게 정말 너에게 맞는 전공인지 재고해 보는 게 어때?”
“게임하르트 힐베르트를 지금 모욕하는 거야!”
“적어도 모자는 제대로 썼잖아.”
프로이센 결투 지침서, 에렌코덱스(명예고문서)라고 불리는 작은 갈색 책을 반복 참고한 후, 키트와 귄터, 그리고 결투 보조자들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아래 강가에서 만났다. 좀 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날씨에 덜 치명적인 방법으로 축하하고 싶을, 지극히 쾌적한 봄날 아침이었다. 가죽 공장은 아직 충분한 가동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았고, 공기에는 여전히 지나온 시골의 향기가 남아 있었다. 버드나무들이 매혹적으로 나긋하게 흔들렸다. 저 멀리 연무 속에서 허물어진 망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 아침부터 멱감는 사람들이 유령처럼 눈을 깜빡이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나갔다. 잠옷 가운, 티롤 모자, 색안경, 모직 실내화, 동양풍 무늬가 있는 이국적인 잠옷을 입은 학생들이 졸린 듯 줄을 서서 이런 사건에 자주 출몰하며 보이는 도박꾼들에게 정신 나간 내깃돈을 걸었다. 가끔씩 서서히 정신이 깨는 누군가가 자신이 아직 밤에 쓰는 슈누르바르트빈데, 즉 야간 콧수염 방호대를 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주요 참가인들은 한동안 왔다갔다 허리를 굽히며 둘레에 서 있었다. 행상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소시지가 가득 담긴 통을 실은 수레를 끌고 나타났고, 통과 병에 담겨서 맥주도 또한 등장했다. 사진사는 이런 교전에 시각적 기념품으로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삼각대와 자이스 “팔모스 파노라마”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좋다, 내가 0으로 나누긴 했다. 딱 한 번뿐이었다. 메아 막시마 쿨파(다 내 잘못이다).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어. 네가 뺐다고 한 곳에 내가 단계를 생략한 적은 없어. 오히려 네가 내 논거를 따라갈 능력이 못되는 성 싶은데.”
“돼지죽 같으니 터무니없다, 귄터. 봐, 여기서 여기, 단계 사이, 시간의 함수, 당신은 그게 가환성이라고 가정하고 어물쩡 그냥 넘어가 버리는데, 사실은…”
“그래서?”
“그냥 그렇게 가정하고 넘길 수는 없어.”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있지.”
“여기에 마이너스 부호가 필요할 때는 아니지…” 이렇게 군중들이 동요를 하고, “오프 디 멘주어(auf die Mensur, 결투로)!”라고 아까부터 합창을 외쳐대어도, 결국 실제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젊은이들은 또 다른 수학적 교류에 휘말렸고, 곧 지루해진 사람들은 다들 어설렁 자리를 떠났다. 야슈민도 마찬가지로, 사실 훨씬 전에 베를린에서 온 인류학 교환 대학원생의 열렬한 부축을 받으며 그곳을 떠났는데, 대학원생은 안면 명각(銘刻)의 심오한 의미를 연구하기 위해, 여기 괴팅겐의 결투 클럽들 사이에서, 특히 안다만 제도 북부 부족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행위에 대해 “대조군”으로 삼으려고 했다—그들이 떠날 때, 사람들은 “스테파니 뒤 모텔!”이라고 오치고 무례한 휘파람으로 야유했다. 공동체 내에서도, 로맨스에 대한 모든 것을 세세히 알고 있었기에 야슈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 어떤 이들은 그녀를 코발레프스카야처럼 용감하고 현대적인 젊은 여성으로 여겼고, 다른 이들은 그녀의 삶의 목표가 1832년 악명 높은 마드모아젤 뒤 모텔처럼 군론의 대부 에바리스트 갈루아를 결투로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처럼, 유망한 수학자들을 꾀어 때 이른 죽음으로 몰아넣는 불충실한 창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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