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키트가 언젠가 눈앞에 뻔히 다가오는 일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될 바로 그날, 그는 벤더슈트라세에 있는 프로이센 은행 지점으로 불려가 국제 지점장인 슈필마허 씨의 손짓을 받아 안쪽 구역으로 들어갔다. 이제껏 친근하게 굴었지만 오늘은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 거리를 두었다. 그는 얇은 서류 뭉치를 쥐고 있었다.
“뉴욕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신의 신용장(Kreditbriefe)은…” 한참 동안 그는 옆에 붙은 책상 위에 놓인 흥미로운 황제의 사진을 응시했다.
그렇군. “더 이상 효력이 없다고요.” 키트가 말했다.
얼굴이 밝아진 은행원은 눈치껏 키트의 얼굴을 흘깃 훑어보았다. “그쪽에서 연락이 왔었나요?”
키트는 깨달았다. 내내 연락이 왔지만, 귀기울이지 않았을 뿐이지만.
“이번 분기 동안 아직 인출되지 않은 기금의 잔액을 지급하라는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부분 50마르크 지폐인 작은 뭉치로 돈을 준비해 두었다.
“헤어 방크디렉토어(은행장님),” 키트가 손을 내밀었다. “그 동안 거래 즐거웠습니다. 어색한 감회나 인사말 없이 이렇게 헤어질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는 슬며시 밖으로 나가 뒷골목 몇 개를 급회전하며 되짚어가 하노버 은행에 들어갔다. 괴팅겐에 도착하자마자, 아마도 예지력 같은 숨겨진 재능에, 오스텐드 카지노에서 딴 돈으로 작은 계좌를 개설해 두었다. 그렇게 하면 바이브가 주선한 어떤 계획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바람에서였다.
“뭔가 아주 불안해 보이네.” 그날 저녁 눈치가 난 훔프리트가 말했다. “평소엔 아주 전형적인 미국인인데, 머리에 아무 생각이 없이.”
키트는 나중에 야슈민을 만나러 가는 길에야 비로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여유가 생겼다. 이제 보니 스카스데일 바이브가 키트의 괴팅겐에 다니겠다는 계획에 너무 반색하며 쉽게 동의했던 것 같았다. 장기적인 계획이 무엇이었든 간에, 이제 그 확실히 결정적인 결실을 보게 되었다. 키트는 자신의 바람대로 완전히 명확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은행에서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총총한 시선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오디토리엔하우스 3층 열람실에서 야슈민을 발견했다. 책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환하게 집중해서 정독하는 얼굴로 수렴하고 있었다. 그는 리만의 1854년 기하학 기초들을 다룬 교수 자격 논문 제본본을 알아보았지만, 1859년 소수에 관한 논문(중간에 리만 가설이 나온다고 함)은 보이지 않았다.
“어라, 제타 함수는 없어?”
그녀는 마치 그가 들어온 순간을 알고 있었던 듯, 조금도 심란한 모습 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러길 바랐다. “이건 내게 성경과도 같았어.” 그녀가 말했다. “이제야 알겠어. 그 추측은 나를 어떤 거리까지 나를 꼬여서 ‘들이는’ 미끼에 지나지 않았어. 진정한 계시, 공간에 대한 그의 놀라운 재해석을, 보통 하는 아흐푀노멘(아하 현상) 이상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기 위해서. 마치 천사가 직접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밝게 빛을 내며, 내가 읽어야 할 페이지들을 하나하나 비춰줘. 그 덕분에 나는 아주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어.”
“그렇긴 해.”
그들은 오디토리엔하우스를 나와 저녁이 이을도록 걸었다. “오늘 전할 소식이 좀 있어.” 키트가 말을 시작하려는데, 덤불 뒤에서 정신 나간 듯한 젊은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왔다. “체트비오르토예 이즈메레니예! 체트비오르토예 이즈메레니예(4차원)!”
“욥 티비요우 마트(f--k your mother)” 야슈민은 조금 짜증이 돋아 한숨을 쉬었고, 키트가 움직이기도 전에 잡으려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젊은 남자는 길 저쪽으로 도망쳤다. “나도 이제 무기를 가지고 다녀야겠어.” 그녀가 말했다.
“그가 뭐라고 소리질렀는데?”
“‘4차원! 4차원’” 그녀가 말했다.
“아. 그럼 잘 찾아온 것 같긴 하지만. 민코프스키가 분명 만나러 갔어야지.”
“요즘 저런 사람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스스로를 ‘오트조브주의자(Otzovists)’라고 불러. 신을 건설하려는 자들. 레닌과 볼세비키주의자들에 반항하는 새로운 이단 분파인데, 반유물론자들이라고 하더군. 마흐와 우스펜스키의 독실한 독자들이며, 그 사람들이 ‘제4차원’이라고 칭하는 것에 지나치게 주력한다고 해. 민코프스키 박사님, 아니 사실 길거리 아무 대수학자라도 그 말을 그 말 그대로 알아보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런 식으로 손쉽게 제네바의 유물론자들을 아주 돌아버리게 몰아댈 수 있었지. 레닌이 직접 지금 ‘제4차원’을 논박하려고, 방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주워들은 말로는, 차르는 오직 3차원에서만 전복될 수 있다는 게 자신의 입장이라고.”
“흥미로운 생각이군… 그런데 그 사람들은 너에게 뭘 원하는 거야?”
“이런 지도 꽤 오래되었어. 말은 별로 안 하고, 보통은 그냥 저기 서서 어디 홀린듯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만 봐.”
“잠깐만, 어디 보자. 그들은 네가 4차원 여행 방법을 안다고 생각하네.”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너라면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그런데 더 나빠지고 있어. T.W.I.T.도 이 동네에 얼쩡거리며 등장한 것 같아. 날 괴팅겐에서 나와 다시 자기네들 품으로 들기를 원해. 내가 떠나고 싶든 말든지는 상관없이.”
“그들을 봤어. 저 사람들 누굴까 궁금했는데. 네 피타고라스파 친구들이었어.”
“‘친구들’이라.”
“글쎄, 야쉬.”
“어제 저녁 식사 때 에스키모프 부인이—아마 너도 만나겠지만—영혼이 걸어 다닐 때, 4차원 공간에 사는 존재들이 우리가 사는 3차원을 지나가게 되니까, 의식의 저 끝 가장자리에서 깜박 나타나는 기묘한 존재들이 바로 그 교차점의 순간에 선 영혼들이라고 말했어. 우리가 평범한 낮이라고 해도, 분명 이미 경험한 적 있다고, 심지어 모든 세부 사항까지 겪었다고 일련의 일들을 접하게 될 때, 우리는 이곳에서 일반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벗어나, 이 노예선처럼 고된 일이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초월하여 미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어렴풋이 엿보는 일도 가능하다고 했지.” —그녀는 압축하는 동작을 해보이고—“모두 한꺼번에.”
“그럼 4차원을 시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될 텐데.” 키트가 말했다.
“그들은 그걸 ‘이미 본 일’이라고 불러.”
“그게 그들이 여기 온 이유야? 너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한단 말이야?” 그는 무언가 연결고리를 찾은 것 같았다. “리만.”
“그 핵심에 그래. 하지만, 키트.” 그녀는 처음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기이하게 우쭐대듯 목을 늘이는 동작을 해보였다. “있잖아, 그게 사실인 걸 어쩌겠어.”
그들이 처음 만났던 날 밤, 단단한 벽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목격했던 일이 떠올랐다. “알았어. 그럼 네가 조절할 수 있는 그런 일이야? 원할 때 들어갔다 나왔다 해?”
“항상 그런 건 아니었어. 아주 어렸을 때, 처음으로 복소 함수에 대해 생각하는데, 별 탈 없이 시작되었어, 진짜. 벽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 날 밤, 엄청 때늦은 시간에, 평면 하나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 두 개가 필요했지. 하나는 편각(argument) 위한 평면, 하나는 함수를 위한 평면, 각각 실수축과 허수축을 가지니까, 축이 네 개야. 모두 같은 원점에서 서로 수직이어야 하고. 그걸 보려고 애쓸수록 평범한 공간은 점점 더 미쳐 돌아갔는데. 그러다 아마 너희가 i, j, k라고 부르는, 우리가 가진 공간의 단위 벡터가 그 상상도 할 수 없는 네 번째 축을 중심으로 알 수 없는 각도만큼 회전했지. 그래서 그때 난 뇌열병에 걸린 줄 알았어. 잠을 안 잤어. 너무 많이 잤어.”
“수학자의 저주에 걸렸네.”
“그럼 너는…”
“아…” 키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은 하지. 당연히, 누구나 그러잖아.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아.”
“네가 바보일 줄 알았어.”
“내 저주하고. 우리 혹시 바꿀 수 있을까?”
“키트, 넌 내 저주는 갖고 싶지 않을 걸.”
그는 그녀의 진짜 저주가 무엇인지 그녀에게 훈수를 둘까 생각했지만, 곧 생각을 바꿔먹었다.
“처음 네 방에 있을 때, 그런 비슷한 일이 일어났어. ‘슈니터(절단)’ 같은 걸 발견했다고 생각했지. 리만의 다중 연결 공간의 판들을 연결하는 그런 절단 중 하나, 다른... 뭐라고 해야 할까, '조건 집합'? '벡터 공간'? 같은 데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거. 비현실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설득력은 없었지—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결에 평범한 시공간으로 돌아와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억이 희미해졌지. 진짜 일이 일어난 건 그때였어. 론스 가르텐에서, 반 친구들과 테이블에 앉아 낯선 독일식 수프를 먹고 있었는데, 아무런 사전경고도 없이 갑자기, 바츠! 여기는 방이었어, 창밖 풍경은, 하지만 진짜 거기 있는 것처럼, 사실 더 높은 차원수의 어느 한 공간으로 3차원을 자른 단면이었어. 아마 4차원, 아니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설마 몇 번이나 그런 건지 물어보려는 건 아니겠지…?”
그들은 방해받을 가능성이 적은 카페로 들어갔다.
“야쉬, 사라지는 법 좀 가르쳐 줘.”
그의 목소리에서 심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녀는 시선을 가늘게 떴다.
“내 신용장 지급이 중단됐어.”
“오, 키트. 그리고 멋도 모르고 나는 여기서 쉴 새 없이 떠들기나 했고—”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손 위에 얹었다. “내가 빌려줄 수 있어…”
“아니, 니체보(상관없어), 지금은 돈은 일도 아니야, 살아남는 게 더 큰 걱정이지. 아버지는 늘 금으로 안 풀리면, 다음엔 납이라고 하셨지. 어쩌다 보니 내가 그들에게 위협이 됐어. 어쩌면 내가 진짜 얼마나 알고 있는지 경험상 미루어 드디어 짐작하게 된 걸지도 몰라.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 우리가 운 좋게 그들 중 한 명을 후려잡았거나, 아니면 그들이 우리 중 한 명을 더 잡았을지도….” 그는 잠시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사근사근 굴 필요가 없다는 점만 빼고. 그리고 나를 이제 줄 쳐서 지워버렸어. 추방처분해버렸어.”
“나도 같은 곤경에 처할지도 몰라. 그것도 곧. 물론 아주 약간의 조짐만 바뀌어도. 아무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아. 이 망할 암호로 대화하는 영국식 관행 때문에 모든 걸 해독해야 해. 러시아 혁명 이후로 아버지의 입지가 위태로워졌을 거라고 짐작해. 그래서 부득이 내 입지도 위태로워지고. 게다가 영러 우호조약도 있고, 4차원 문제도 있고. 어쨌든 께 요즘 초심리학 연구에서 대유행이잖아. 뭐든 골라잡아야.” 뭔가 더 있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다지 예민하지 않은 키트조차도 그걸 알아챌 수 있었지만, 그녀는 뒤숭숭한 자신의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
뭔가 가늠하는지, 눈은 다시 커졌고, 그런 후 그녀는 천천히 숨을 두어 번 쉬었다. “그럼 너는 자유야.”
“내가 뭐라고?”
“미국인들은 그 단어를 아는 줄 알았는데.”
“네가 탐색하고 있던 단어가 ‘가난하다’ 아냐?”
“바이브 측 사람들과의 합의는 취소된 거지?”
“완전히 무효.”
“그들에게 빚진 것도 없고.”
“흠, 그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하지만 다른 데서 제안이 들어온다면…”
“네 말은 그러니까 너희 T.W.I.T. 측에서?”
그녀는 예쁘게 으쓱하는데, 어깨보다는 머리카락으로 더 힘을 주었다. “물어봐 줄 수도 있고.”
“설마, 그럴 리가.”
“그럼 물어본다?”
“급료에 따라 다르겠지.”
그녀가 웃었다. 그러자 오래전 비어슈투브(작은 맥주집) 담배 연기를 뚫고 뻐기듯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던 그 자유분방한 소녀가 떠올랐다. “오, 얼마나 지불하는지 두고 보라고!”
키트는 쳐다보고, 멀리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쳐다봤다. 콧수염만 없을 뿐, 괴팅겐 한복판에 폴리 워커를 꼭 닮은꼴이 나타났다. 모자까지 그대로였다. 키트는 마치 누군가 막 자신을 저격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괴팅겐의 삶은 마치 풀이파리-반짝이듯 흘러가는 듯 보였고, 새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통제력을 잃고 질주하며 행인들을 흩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다투고 굴복을 하고, 정신 팔린 제타마니아들은 언제나 산책로 가장자리에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걷다가 동료들에게 구조되고 있는데, 그가 결코 사랑한 적 없는 이 마을은 별안간, 이제 그가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듯하고 보니, 아주 흔해 빠진 일상의 세부조차도 거의 고통스러울 정도로 쨍쨍하게 명료하게 빛나는 장소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유배자의 기억이 담긴 장소가 되어 버렸고, 여기에, 이를 공식화하려 드는지 마치 죽음의 천사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더럽게 골칫덩어리 천사가 나타났다. 폴리가 화려하고 야한 것을 좋아하는 숨길 수 없는 불치병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으며, 여기 선보이는 그 촌스러운 꼬락서니란 어느 글로도 도저히 편안한 마음으로 담을 수 없을 옷차림이라… 사실, 그건 몇 년 전에 유행했던 쓰리피스 스포츠용 앙상블이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색깔이 나도록 짠 재질로, 다는 아니지만 그 중에 갈색빛이 도는 분홍색, 강렬한 포도색, 그리고 어느 정도 괴저성 노란색까지 포함되었다.
키트가 다음 번 다시 돌아보았을 때, 더는 물론, 유령이 딱 그런 식이었겠지만, 폴리는 없었다. 틀림없이 4차원이리라. 야쉬민이 읊어주던 피타고라스의 아쿠스마톤, “집에서 멀어질 때는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복수의 여신들이 쫓아온다”(이암블리쿠스 14)라는 도움 되는 구절에도 불구하고, 키트는 곧 거리와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바싹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한두 시간이라도 잠을 청하려고 하기 전에 늘 문과 창문을 두 번씩 확인하는 일도 빠지지 않아, 이도 점점 더 귀찮은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폴리는 왜 에둘러 찾지 않았을까? 그냥 인사라도 차라도. 키트가 그를 못 봤을 거라고 생각했나?
하지만 폴리는 마치 괴팅겐 전체의 하우스크노헨 만능열쇠를 지닌 듯, 방문 행위들은 밤으로 계속하고 있었고, 그래서 아무런 이행기도 없이, 발바닥과 손바닥이 욱신거리고 심장은 쿵쿵거리며, 키트는 어둠 속에서 이 아이돌론(그림, 유령 그리스어)을 응시하며 앉아 있는 일이 일어났다. 이이돌론은 온갖 다수 공공 예절 법규를 어기고 촌스럽게 등장하여, 키트의 불면증을 침해하기 위해 훈계를 하고 나직이 속삭였다. “내 머릿속에 있는 미니에 공(라이플 총알)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하고 폴리가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편치 않던 그 긴 세월 동안 그것이 어떻게 변했는지, 화학자라면 ‘(연금술식) 변질’이라고 하겠지만, 금은 아냐, 그건 너무 큰 기대겠지. 대신 여러 모로 전자기파에 민감하다고들 하는 희금속 중 하나로 변했어. 지르코늄, 함은 방연석(은을 함유한 방연석), 그런 것들 하나로. 바이브 기업은 전 세계 곳곳의 광맥에서 그걸 캐내는데, 네 고향인 콜로라도도 그중 하나야. 내가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때문이지 — 그 정교하게 뒤틀린 작은 금속 구체를 통해서. 왜냐하면 그 목소리들은 모두 저기서, 우리 중 거의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오기 때문이야. 저 멀리서 오는 파동들은, 차갑고 어두운 에테르를 통해 영원히 이동해 다녀. 거기 자네 같은 뇌에 그 마땅한 광물이 충분히 집중되어 있지 않으면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평생을 날 수도 있어….”
“말을 끊으려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여기 들어왔어요?”
“키트, 너는 내 말을 안 듣고 있었네. 제발, 지금 이건 다 너를 위한 거야.”
“내 돈을 막는 것처럼.”
“‘네’ 돈? 언제부터?”
“우리 거래를 했잖아요. 당신네들은 거래는 도의심 갖고 지키고 않나요?”
“도의심 아는 바 없어. 그쪽으로 잔소리는 생략하지. 하지만 사고 팔리는 일,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의무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있지.”
“당신이라면 잘 알겠군요.”
“이것 봐, 우리도 너는 그런 것쯤은 알리라고 생각했지. 네가 똑똑한 애라고 짐작하고. 우리가 너무 과대평가했어.”
“바이브가 약속을 어긴다면 뭔가 달라진 것이겠죠. 뭐가 달라진 거죠, 폴리?”
“너는 정직하지 않았어. 뭔가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어.”
“내가 정직하지 않았다고요?” 상황이 점점 위태한 판국으로 다가가고 있었고, 키트는 단단히 발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담배를 집어 불을 붙였다. “뭘 알고 싶어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너무 늦었어. 저들 중 하나라 너를 귀찮게 굴려고?”
키트가 담배갑을 밀어 넘겼다. “날 협박하려고, 고생스럽게 이 먼 길을 와요, 폴리?”
“바이브 씨가 지금 유럽 여행 중이신데, 좀 들여다봐 달라고 하셨어.”
“무슨 이유로? 날 자기 삶에서 완전히 잘라내었는데, 이러면 앞으로 어울릴 기회도 한정될 텐데요.”
“사장님의 과학적 호기심 때문이야. 거꾸로 된 독지 활동에, 그러니까 자선을 베푸는 대신 빼앗겼을 때 피험자가 어떻게 반응할까? 화를 낼까? 슬퍼할까? 절망할까? 자살 충동에 굴복하게 되려나?”
“똥 만난 파리보다 더 행복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할지 모르겠는데.”
“그럼 아무거나 지어내세요. 또 뭐 남았어요?”
“그래. 이 동네에서 재밋거리로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폴리가 떠난 것이 확실해지자, 키트는 맥주 한 병을 찾아 뚜껑을 따고, 창문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어두침침한 얼굴을 향해 들어올렸다. “‘괴팅겐에서 멀어지면, 삶은 없다.’” 그는 라트스켈러(시청 지하 술집) 벽에 적힌 모토를 읊었고, 몇 분 후에는 가족의 좌우명도 읊었다. “그래. -발 아키(aquí여기) 당장 나가야 요 텡코 케(yo tengo que 한다고) 여겨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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