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트가 깨어보니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빌리 딩코프 박사의 얼굴이 보였다. 그를 두른 머리 모양은 한둘 이상의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듯했고, 푸크시아, 헬리오트로프(연보라), 청동오리 녹색이 어우러진 화려한 넥타이는 환자 중 한 명이 선물한 것이라고, 딩코프 박사는 담배를 너무 피워 쉰 목소리로 설명했다. “손으로 그린 거예요. 되폴이되는 살인 성향의 충동을 표현하기 위한 치료 일환으로, 유감스럽게도 통제하지는 못했지만.” 키트는 넥타이의 초현대적인 디자인을 응시했다, 아니 아마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속에 정서장애의 예술가가 자연계에서 마주칠 수 있는 많은 부분을 담아두지 않았다—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충분히 오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익숙한 형상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사실 조금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 단어가 뭐더라, 재미있는 위안거리라고 할—
“이봐! 뭐 하는—당신 방금 그, 그 막대기로 날 쳤어?”
“일본 선종에서 빌려온 고대의 기법입니다. 왜 내 넥타이를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제가 그랬나요? 저는 그런 적이—”
“흠…” 수첩에 무언가를 적으며 “그럼 혹시… 어떤 목소리가 들린 적 있었나요? 고전적인 3차원 공간에서 생기는 것 같긴 하지만, 만약 우리가 개념적으로는 아주 사소하게 … 한 걸음을 더 내딛는다면? 한층 더 나간, 당신들 말처럼… 차원으로 들어가면?”
“목소리요, 의사 선생? 다른 차원에서요?”
“좋아요! 추론 능력이 괜찮네요? 한결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트래버스 씨, 이런 일에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절대 아니에요! 단순히 클로랄 남용으로 인해 악화된 공재共在의식에 약간의 동요를 겪었을 뿐이에요. 이런 혼란은 급성기가 지나고 이렇게 건전한 환경에 있다 보면 금방 괜찮아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제가 환청이 들린다고 한 적은 없는데요?”
“음, 일부 기억 상실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트래버스’라, 무슨 이름이 참… 혹시 당신도 히브리계인지?”
“뭐요? 저도 모르겠어요… 다음에 신과 이야기할 때 여쭤보죠.”
“네, 뭐, 가끔 히브리적인 징후를 찾기도 하는데, 왜 그런지 충분히 비유대인(Gentile)같지 않다는 부차적 느낌과 동반되어, 당연한 귀결로 너무 유대인스러운가 불안감이 들어요 … ?”
“박사님 자신도 스스로 불안해 보이시네요.”
“오, 불안한 정도가 아니라—두려운 거죠, 내가 보기에 이상하게, 당신은 안 그렇군요. 지금 수백만 단위로 당신 나라로 줄지어 몰려들고 있는데—미국인들은 대체 얼마나 순진하길래, 이 위험을 못 알아채는가?”
“유대인이 위험하다고요?”
“유대인들은 똑똑합니다. 유대인 마르크스, 비정상적인 똑똑함에 쫓겨 사회 질서를 뒤흔들고… 유대인 프로이트, 영혼을 치유하는 척하고—물론 그게 제 생계 수단이니 저는 강력히 이의제기합니다—유대인 칸토르, 수학의 바로 그 근간을 무너뜨리려고 모색하는 할레의 야수, 그 때문에 괴팅겐 사람들은 편집증에 걸려 비명을 지르며 제 문으로 몰려들고, 당연히 저는 그 문제를 다뤄야 하다 보니—”
“잠깐만요, 헤르 독토르,” 다음번 딩코프가 이 장광설을 늘어놓을 때, 마침 집단 치료 시간에 누군가가 큰소리로 끼어들었다. “칸토르는 루터교 신자입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요? 말도 안 돼.”
“그리고 파멸은커녕, 어디라도 이끈다면 바로 낙원으로 이끌 거라고, 고명할 힐베르트 박사가 멋지게 묘사를 했지요.”
“박사… 다비드 힐베르트 박사, 이것도 보세요.”
“그분도 유대인이 아닙니다.”
“요즘 다들 참 박식하다니까.”
콜로니(Kolonie구내)는 유광 노란 벽돌 건물들로 이루어진 환기가 잘 되는 복합 단지였으며, 현대 건축 사조인 ‘투명주의Invisibilism’의 원칙에 따라 견고하게 지어졌다. 투명주의는 구조물이 “합리적으로” 설계될수록 덜 눈에 띄는 것처럼 보인다고 믿었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소위 ‘최종 직전 지점(Penultimate Term)’, 즉 보이지 않는 세계로 해방되기 직전까지, 혹은 어떤 이들이 선호하는 말로, “자신의 메타 구조”로 나아가기 직전의 단계로 수렴되어, 물리적 세계에 최소한으로 연결되어 있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이면 세상에는 흔적만 남게 됩니다. 몇 가닥의 가시철조망만 엉켜 더 이상 잘 보이는 않는 무언가의 평면의 윤곽만 드러내고 … 어쩌면 늦은 밤, 스며나오는, 바람을 거슬러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매캐한 오취의 낌새도 나겠지만, 그 바람조차도 이제는 떠나버린 구조물과 같은 굴절률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경비병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키트에게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었는데, 제복에 키트는 순진하게도 그 사람이 경비병이라고 생각했다. 제복 어깨에는 양식화된 사람 뇌에 튜턴족 도끼날 같은 것이 반쯤 박힌 견장이 달려 있었는데, 키트는 그것을 콜로니의 휘장으로 여겼다. 무기는 검정과 은색이었고, 뇌는 발랄한 아닐린 마젠타(자홍)색이었다. 그 위로 “조 구트 비 나이어(So Gut Wie Neu)”, ‘거의 새것처럼 좋다’라는 모토가 적혀 있었다.
그들은 “조종비행선장”, 개념상의 평지에 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토양 이동, 암석 굴착, 지표면 포장 등, 클랩스뮐레 활동들을 하고 있었고, 진짜처럼 보이는 측량 도구 등을 갖춘 “엔지니어” 소대의 감독, 지휘 아래 작업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콜로니 수감자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주변에서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 콜로니에는 큰 흥분이 가득했다. 진짜 비행선이 곧 ‘조종비행선장’에 와 착륙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상주자들은 조종비행선을 본 적이 없었지만, 몇몇은 아주 거리낌 없이 나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비행선에 대해 설명했다. “저 비행선은 우리를 이곳에서 구원하러 올 것입니다. 누구나 환영합니다, 정신 나간 수감자들의 조상 대대의 고향, 두프랜드(얼간이나라)로 가는 급행 비행편입니다. 거대한 보헤미안풍 데꼬르의 개가, 온갖 스펙트럼의 빛깔로 발광을 하며 내려올지니, 선상 악단은 ‘O Tempora. O Mores(오 시대여, 오 도덕이여)', '아스칼론의 검은 고래' 같은 옛 명곡들을 연주할 거고, 그 사이 기쁘게 우리는 무한 원점에 정확히 매달린 유선형 곤돌라(비행선의 승객석)에 무리지어 올라탑니다. 저 비행선의 비밀 이름은 리만 타원체이기에!”, 등등.
아주 먼 곳에서 세게 걷어찬 축구공이 머리 위로 기세좋게 날아왔고, 몇몇은 잠시나마 공을 비행선으로 착각했다. 비행선 도착이, 비행선 경기장에서 하루 종일, 특히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진행되는 축구 경기의 어느 축구공과도 충돌하지 않기를 바랐다. 사실 어둠이 내리면 경기 방식이 달라지긴 했지만, 오히려 경기하기에는 더 바람직한 조건이었다.
“이 공은 거의 요하난(세례요한)의 머리만큼 탄력을 지녔어!” 누군가 외쳤다. 이는 최근 치료 유람차 수감자들이 베를린에 가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를 관람했던 일에 대한 언급하는 것이었다. 관람 후 딩코프 박사는 “오늘날 독일에서 널리 유포된 심각한 신경병증적 정신적 위기”에 관해 중얼거리며 떠났지만, 그룹끼리는 — 슈트라우스 자신이 그 작품을 비극적인 결말을 가진 스케르초(익살극)라고 묘사한 것을 고려하면 불합리한 것도 아니라 — 계속해서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소리는 곧 1 마르크 반 짜리 좌석에서 시작되어 극장의 나머지를 차지하던 “정상” 관객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이 여행 이후로 콜로니 직원들은 하는 수 없이 축구장에서든 식당에서든 새로운 유행어(“우리 뭘 먹고 있는 거야?” “요하난의 머리처럼 생겼군.”)를 참아야 했고, 아니면 오페라에서 유일하게 모두가 음표 하나하나까지 외우고 있는 부분, ’다섯 유대인‘이 벌이는 종교적 논쟁을 들어주어야 했다. 아마도 딩코프 박사를 약올리려고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박사는 얼마 안되어 압박감을 드러내기 시작해, 호젓한 시간에 “주데아무스 이지투르, 주데네스 둠 수-후-무스(우리가 유대인인 동안, 유대인으로 살게 하소서)...” 심란한 테너로 노래부르며 경내를 서성이더라는 말이 돌았다.
야슈민은 이전 날 저녁에 갔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제대로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면도할 열의도 없었다. “가자. 같이 데르 발(Der Wall)을 걷자.” 평화로운 아침이었고, 산들바람에 보리수 잎사귀가 물결쳤다.
“샴발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키트?”
그는 고개를 돌려 한쪽 눈으로 찬찬히 내다보았다. 오늘 아침엔 다들 너무 사무적으로 구는 거 아냐? “한두 번쯤 누가 입에 올리는 걸 들어보긴 했지.”
“영적인 고대 도시, 어떤 이들은 산 사람들이 거주한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비어 있다고, 중앙아시아 사막 어딘가에 묻혀 있는 폐허라고 해. 그리고 물론 늘 그렇듯이 진정한 샴발라는 내면에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
“그래서? 어느 쪽인데?”
그녀는 재빨리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그곳이 지구상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봐. 무한원점(無限遠點, point at infinity)이 리만 구면 ‘위에’ 있는 지점이라는 의미에서 그래. 열강들이 지금까지 그곳을 ‘발견’하기 위한 원정 탐험에 투자한 돈만 봐도 분명 충분히 실재하지. 동원된 정치적 세력들… 정치적, 군사적 세력 모두…”
“하지만 딱히 네 입맛에 맞는 관심사는 아니고.”
“내—” 그녀는 점4분음표로 잠깐 말을 늦추고. “하프코트 대령이 연루되었어. 내가 이 일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곤경에 처했어?”
“아무도 확신하지 못해.” 처음 일이 아니지만, 그가 그녀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기대의 충족은커녕 그 기대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다는 느낌에 다시 기운이 빠졌다. “내가 그 외지에 그와 함께 있어야 할 이유는 백 가지도 넘는데….”
“그리고 안 그래야 할 이유는 딱 하나.” 그가 그걸 맞춰보라는 건가?
그들은 에테르적 거리랄 수 있을 거리를 두고 서로를 응시했다. “키트, 네 수준의 직감이라면,” 마침내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여기서 몇 시간이고 이러고 있을 걸.”
“매력적인 동무들과 몇 시간이고 어울려 보내는 걸 누가 마다하겠어?”
“‘그렇게 매력적인 동무와’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앗, 이런.”
“지난번에 T.W.I.T.와 일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었지.”
“그 사람들이 날 클랩스뮐레에서 구해준 사람들이야?”
“라이오넬 스웜. 곧 만나게 될 거야. 거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숨어 있었던 셈이지.” 그녀에게 폴리의 야간 방문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치 네가 꿈꿨던 것처럼 들리네.”
“큰 차이 없어. 그가 전하던 메시지가 문제지. 여기서 빨리 벗어날수록 좋아.”
“하인베르크 언덕을 좀 걸어볼까?” 두 사람 다 앞뒤를 살피고 훑으며, 그녀는 그를 평온한 마을의 담벼락들이 보이는 언덕 비탈 위 한 식당으로 데려갔다. 거기 T.W.I.T. 여행 편성가, 라이오넬 스웜이 오후 햇살을 가려 줄 파라솔 아래 테이블에, 지난해 가을에 나온 라인팔츠 와인 한 병과 잔 두 개를 놓고 앉아 있었다. 인사를 나눈 후, 야슈민은 파라솔을 과시하며,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갔다.
“좋아요.” 스웜이 말했다. “막 어디 내뺄 참이라고 들었어요.”
“놀랍군요! 불과 몇 분 전에, 여기 올라오는 길에 내린 결정인데… 당신들 독심술을 지녔다는 걸, 자꾸 까먹네요.”
“그리고 어디로 가든 제약은 없다고.”
키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멀리 갈수록 좋아요.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아요. 왜요? 당신들에게 중요한가요?”
“중앙아시아?”
“괜찮아요.”
스웜은 와인잔을 마시지는 않고, 세세히 살폈다. “호프슈튀크산보다—헤르고트자커나 그런 것들다—다이데스하이머산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해가 갈수록, 시간 잡아 먹으며 곰곰이…”
“스웜 씨.”
마치 스스로와 타협에 이른 듯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요. 하프코트 양과 엇비슷한 처지이니, 당신 둘은 서로의 어려움을 해결할 처지가 될 겁니다—함께 스위스로 도피해서.”
키트는 마치 보이지 않는 모자챙을 얼굴 위로 끌어당겼다. “그럼요. 모두가 그렇게 믿을 겁니다.”
“아마 당신이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안 믿겠죠. 하지만 우리가 속이려는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죠. 특히 우리가 충분한 증거를 들이대면요, 여행 허가증, 호텔 예약 내역, 은행 거래 내역, 등등. 당신과 숙녀분은 누가 봐도 최대한 신혼부부처럼 꾸준히 행동해 나갈 겁니다. 트래버스 씨,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죠? 좋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짠! 하는 사이, 두 분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사라지겠죠. 당신의 경우에는 동쪽으로.”
키트는 그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리고는…?”
“전-예비-신부요? 음, 잘 모르겠네요. 다른 사람 업수 소관이라 진짜. 그런데, 당신이 나가 있는 동안, 여유 되면 저희를 위해 작은 심부름 하나 해주셔야 할 수도?”
“그래서… 그게 뭐지요, 뭐하고 관련되었더라, 이름이 가물거려…”
“샴발라요. 네, 어떤 면에서는요.”
“저는 신지학자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세계 여행가도 아니라, 누군가 당신에게 그 사실을 언급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여기서 최소한 현장 경험 쌓은 사람을 바라실 텐데요.”
“바로 그게 당신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아는 바가 한 가지도 없어요. 저희는 중앙아시아에 노련한 고참들을 수도 없이 염탐질하러 보통 가는 오아시스나 시장에 심어 놓고 있지만, 그곳 사람들은 서로의 뒷이야기들을 다 알고 있어서 모두 수가 막혔어요. 지금으로서는 불상의 요원을 투입하는 게 최선입니다.”
“저요.”
“시드니 라일리 씨도 당신을 적극 추천했습니다.”
“음…”
“틀림없이 ‘총’이라는 사람을 기억하시겠죠.”
“그 사람요? 항상 터번을 쓰고 다니던 사람 말이죠? 저는 정말 시골뜨기네요. 그 사람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아, 시드니가 바로 그래요. 스탄(-stan) 나라들에 가면 그를 다시 마주칠 수도 있어요. 워낙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는 사람이니. 하지만 아마 그때도 못 알아보실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혹시라도 곤경에 처하게 되면…”
“그런 일 처리해 줄 사람은 그가 아닐 겁니다.” 날카로운 눈빛. “혹시 ‘신경’이 날카로운 편은 아니시겠죠?”
“지금 좀 불안해 보이지요? 저를 쫓는 놈들 탓일 겁니다.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지 알 수 없어서. 하지만 저기, 중앙아시아, 허허벌판 외딴곳이라면? 저는 아무 걱정거리 없을 겁니다.”
“그럼 이게 저희가 해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은 일입니다.” T.W.I.T. 요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갑에서 지도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저희는 오랫동안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식민지 사무소, 새빌 로 1번지(왕립 지리학회 본부 주소), 그리고 다른 덜 공식적인 연계 기관들과도요. 저희는 당신을”—손가락 끝으로 잠정적인 경로를 따라 그리며—“적어도 카슈가르까지는 문제없이 통과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하프코트 양의 아버지가 주둔하고 계신 데군요.”
“가끔씩요. 그분은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해요. 하지만 당신이 그와 마주칠 일은 없을 테니…”
“잠깐만요.” 키트는 손을 뻗어 테이블 위 스웜의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사람들은 그가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르잖아요.”
“연결선이 불통이에요. 일시적이긴 하지만 골칫거리죠. 러시아에서 그 정도 규모의 혁명은 전례가 없었거든요. 게다가 혁명이 그 철도를 따라 아시아까지 번져서 아직도 여파가 이어지고 있어요. 오베론 하프코트는 아프가니스탄 난국 이후로 패거리로 어울리며 나가 있었는데. 그가 알아서 벗어나지 못할 곤경은 없어서, 우리는 그의 안전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마치 키트가 나머지 남은 말을 이어주기를 바라듯이 말을 멈췄다. 하지만 키트는 도움을 주지 않았고. “...샴발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그의 보고서를 입수하는 건이 더 염려스럽습니다—분명 모든 열강이 발을 드밀고 있는데—그가 그걸 놓치고 지나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한데 다른 나라들이, 특히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들이 그들 측 입장을 내세우며 불쑥 끼어드는 일은 원치 않습니다. 역사에 대한 통제권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합니다...”
“마을에 요즘 들어 러시아인들이 많이 보여요.” 키트는 자기 일이나 신경 쓰라는 한소리들을 줄 알고 말했지만, 스웜은 오초비스트들에 대해 골똘하게 걱정하고 있었던가, 그런 듯했다.
“반레닌주의 볼셰비키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저런 저런, 맞아요. 그들은 하프코트 양과 그녀의 4차원적인 기량에만 외곬로 집착해, 모든 속인들의 위험성들을, 특히 최근의 영러 협정에 대한 위험을 아예 무시하려 드는 것 같습니다. 이론상으로는 T.W.I.T.가 국제 정치에서 초월해 야 하지만 그런 이유로 어느 정도의 기만은 불가피해졌습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겉모습이 다가 아니에요, 이들 구도자(求道者)들은. 생각보다 훨씬 덜 형이상학적인 일이 부지기수고, 오히려 현실 세계에 너무 매여 있어서 가만 따지면 오히려 당신이 신비주의자에 더 가깝다는 착각이 들 정도죠. 돌이켜보면 블라바츠키 여사도 차르 비밀경찰, 당시 과거에 옥크라나가 되기 전, 제3부서라고 불리던 기관에서 일했잖아요……그래서 다 무슨 상관입니까, 물질주의자든 영성주의자든, 결국 다 폭탄 던지는 놈들인데, 안 그래요. 물론 처리하기는 쉽습니다. 연합국의 장점 중 하나로, 한마디만 적당히 귀띔을 넣으면 나 살려라, 볼세비키 달아나게 되겠죠.”
“저더러 그쪽으로 향하라니 하는 말이지만, 그들과 문제가 생길까요?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제 생각에 그들은 카슈가르에 비해 너무 유럽적인 것 같아요. 그렇게는 미치지 못하고, 여기나 스위스에 더 편히 여겨질지도. 카슈가르는 중앙아시아의 정신적 수도인데,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내륙’이죠. 그 모래 아래에 무엇이 묻혀 있느냐, 뭐든 골라보세요. 이제껏 지구상에서 천상의 도시에 가장 가까운 샴발라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바쿠나 요하네스버그가 되어, 미답의 금, 석유, 플루토급 부의 매장지여서, 그걸 캐낼 또 다른 인간 이하 노동자 계급을 만들어낼 전망도 가능하고. 한쪽은 좋으시다면, 영적인 비전이고, 다른 한쪽은 자본주의적인 비전이죠. 물론 비교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맡을 일이—”
“오베론 하프코트를 찾아서, 긴히 보고할 내용이 있는지 보고서, 최대한 자세하게,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우리에게 돌려보내 주세요.”
“직접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당시 납작 엎드려 숨어있어야 한다는 점 십분 이해합니다. 우리가 여기와 거기 사이에 연락할 전달자들의 명단을 드리죠, 모두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 아, 그리고 당신이 한시라도 급히 빠져나가야 한다면 콘스탄티노플을 경유해서 가시는 게 좋아요. 그쪽을 통한 연락선이 좀 더 안전하거든요.”
“왜 제가 급히 빠져나가야 하는데요?”
“이유는 얼마든지 있죠. 또 다른 혁명, 부족 봉기, 자연재해, 어쩌겠어요, 모든 만일의 가능성에 다 아울러 대비해야 한다면 차라리 첩보 소설이나 쓰는 게 나을 겁니다.”
야슈민은 마을 외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키트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꾸미고—“우리 같이 도망가게 되었어.”
“화난 건 아니겠지, 키트?”
“걱정 마, 야쉬. 우리가 끝까지 잘 해낼 거야.”
“그들은 그런 정신자세로 버티긴 하지.”
“재밌을 거야.”
그녀의 재빠른 시선은 놀라움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재밌다고’”

https://mymodernmet.com/claudio-bravo/
Claudio Bravo: A Prolific Portrait Artist Who Painted the Humble Beauty of Paper Packages
How much do know about the work of Claudio Bravo?
mymodernm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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