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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짓, 헛짓/The garden of the Finzi-Continis

Il giardino dei Finzi-Contini 에필로그

by 어정버정 2023. 4. 22.

에필로그

 

미콜 핀치-콘티와 내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그러니 이 소설 역시 여기서 끝을 맺는 일이 맞다. 내가 보탤 수 있는 어떤 것도 지금은 그녀와 관련이 있지 않고, 다만 나에게만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초반에 그녀의 운명과 그녀 가족의 운명을 말했다.

알베로트는 1942년 악성 임파육아종으로, 인종법에 의해 시민들 사이에 파인 깊은 골에도 불구하고 페라라 전체가 멀리서 걱정을 하던 기나긴 고통 끝에 다른 사람보다 일찍 죽었다. 그는 숨이 막혀했다. 숨 쉬는 일을 돕기 위해 산소가 필요했고, 갈수록 그 양이 늘었다. 시에는, 전쟁 때문에, 산소용 금속 용기들이 점점 드물어져 나중 시기에는 가족들이 전 지역에 걸쳐 비축하는 일에 직접 관여하여, 가격이 어떻든, 볼로냐로, 라베나로, 리미니로, 파르마로, 피아첸차로 어디든지 사람들을 사러 보냈다.

다른 이들은 1942년에 공화당원들에게 사로잡혔다. 비아 피안지파네에 있는 감옥에 잠깐 머물다, 그해 11월에 카르피 근처 포솔리에 집단수용소에 보내졌다. 거기서부터 나중에는 독일로 이송되었다. 나 자신은 하지만 1939년 여름과 1943년 가을 사이 4년 동안 아무도 다시 보지 않았다. 미콜조차 보지 않았다. 알베르토의 장례식에 메탄으로 달리도록 개조를 한 디람다의 창문 뒤에서 걷는 속도로 가고 있던 장례 행렬 뒤를 따라 가다, 비아 몬테벨로의 끝에 있는 공동묘지의 문을 건너자마자 즉시 돌아서던 그 차 안에서 잠시 그녀의 잿빛 금발을 알아보았던 것 같다. 그 이상은 없다. 페라라처럼 소도시에서조차, 원하기만 한다면 몇 년이고 서로 사라져서, 죽은 사람이 그러듯이 같이 사는 일이 쉬웠다.

말나테는 1939 11월에 밀라노로 다시 불려갔으며 (그는 9월에 헛되이 내게 전화를 하려고 했고, 편지도 보내기까지 했다……) 나는 그를 그해 팔월 이후로 결코 보지 못했다. 불쌍한 지암피. 그는 그에게 미소로 화답을 하는, 그 당시 임박한 전쟁의 어두운 시기에 정직한 롬바르드와 공산주의자의 미래를 믿었다. 머나먼 미래에 하지만 확실히 틀리지 않을 오직 하나라고 고백했었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진짜 무엇을 확신하고 있었을까? 그를 생각하면, CSIR(이탈리아 원정대) 1941년 러시아 전방에 보내져, 다시 돌아오지 못한 그를 생각하자면, 미콜이 한 테니스 시합에서 다음 시합 사이, 그가 교리문답식으로 나를 가르치려드는 일이 시작할 때마다 어떻게 반응을 하던지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는 낮고, 조용하게 웅얼웅얼하던 목소리로 말을 하는데, 하지만 미콜은, 나와는 정반대로 결코 그가 하는 말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녀는 결코 키득거리고, 신경을 긁고 말나테 놀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럼, 너는 대체 누구 편이니? 파시스트?” 그가 하루는 그녀에게 땀에 전 커다란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묻던 일이 기억난다. 그는 이해하지를 못했다.

그러니 그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 일도 없었나? 누가 알겠는가.

그녀 자신과 그녀 가족에게 다가오는 종말의 불길한 예감으로, 미콜은 그의 민주적이고 사회적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다고 말나테에게도 대놓고 되풀이하여 계속 말을 했다. 미래에 대해, 본질적으로, 그녀는 오직 혐오를 품었으며, 미래보다 ‘le vierge, le vivace et le bel aujourd’hui(순결한, 늘 푸른, 아름다운 오늘)’을 훨씬 좋아했고, 과거는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신성한 과거라며 한층 서 좋아했었다.

그리고 이들은, 내가 알기로 오직 단어들, 오직 진정한 키스가 그녀의 하는 말을 멈출 수 있을 보통 절망적인, 기만적인 단어들일 뿐이기 때문에, 이런 단어들과 단지 이런, 심장이 기억할 수 있는 그 조금은 여기 봉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