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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위베르망4

살아남은 이미지 p43~47 바르부르크가 1902년(초상화 연구에서)과 그 이전인 1893년(보티첼리 연구)로 접어든 것처럼, 피렌체 르네상스의 '왕도'를 따라 미술사에 진입한다는 것은 부르크하르트가 그 랜드마크 책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명』 전반을 통해 구축한 바로 그 개념과 동조하는 입장을 취한다는 의미였다. 이 책의 주제와 논제는 끝없이 해설이 달렸다. 논객들은 이 책의 대담함과 방대한 범위, 그리고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에 갈채를 보냈고, 어떤 이들은 매우 풍부하고 매우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통합하는 방식에 감탄하였다. 반면에 하나같이 유명한 모티브-중세와 르네상스의 대립, 으뜸 위치의 이탈리아, '개인의 발전' 등-모두 비판 없이 지나지도 않았다. 또한 모든 비평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르네상스 개념에 .. 2024. 9. 28.
살아남은 이미지들 p39-41 르네상스와 시간의 불순물: 부르크하르트와 바르부르크 바르부르크는 나흐레븐의 개념을 매우 엄밀한 역사적 틀 안에서 정교화했으며, 이는 그가 출판한 연구들로 거의 배타적인 영역을 형성했다. 이런 출판물에 우선 이탈리아 르네상스(보티첼리, 기를란다요, 프란체스코 델 코사, 피코 델라 미란돌라)와 부차적으로 플랑드르 및 독일 르네상스(멤링, 판 데어 후스, 뒤러, 루터와 멜란히톤)이 포함되었다. 우리가 이러한 개념을 오늘날 시각으로 고려한다면, 그것은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지식에 관한 몇 가지 주요 전제를, 말하자면, ‘재설립’할 수 있는 이론적 교훈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리라. 하지만 바르부르크가 특히 르네상스 시대 전후 맥락으로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상술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 2024. 9. 21.
살아남은 이미지 p16~20 형식이 살아남다. 역사가 열리다.  여전히 확고한 점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말처럼-그러나 그가 어떻게 자신의 발언으로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바르부르크의 유산이 발휘하는 [현재의] 매혹을”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자행된 미술사에 대한 “확실한 불만의 증상으로 볼 수도 있다.”당시 바르부르크 자신도, 아직 완전히 체계가 서지 않았지만 필요성의 촉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런 종류의 불만을 드러냈다. 1888년, 겨우 스물두 살이었던 바르부르크는 자신의 개인 일기에서 이미 '교양 있는 사람들'을 위한 미술사로, 아름다움의 관점에서 구상 미술 작품을 평가하는 데 만족하는 사람들의 미술로 ‘미학화한’ 역사라고 혹평하였다. 그는 이미 “예술의 과학”, 예술학(Kunstwissens.. 2024. 8. 31.
the surviving image Georges Didi-Huberman  누군가 예술사, 혹은 그런 이름으로 통용되는 담론인, Kunstgeschichte 진짜로 어느 하루 태어났는가 물을 수도 있으리라. 최소한, 그러니까 “출생일”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혹은 연대순의 어느 특정한 지점으로 확인되는 어느 한 점, 혹은 2개의 기회들로, 아주 갑자기는 절대 태어나지 않지 않았다. 77년 그리고 대 플리니의 자연사에 보낸 헌정 서한 뒤로 거기 그리스 역사기록학 전체 역사가 위치해 있다. 비슷하게 1550년 바사리의 평전에 헌신 뒤로, 이의 잔재들이, 플로렌스 같은 도시의 우오미니 일루스트리uomimi illustri를 위해 쓰인 전체 연대기들과 칭송문들의 전통이 위치한다. 대담하게 아래 사항을 주장하자면, 역사적 담론은 결코 “태어나지” .. 2024.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