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
1.2.
양치기는 계속해서 양치기소녀의 키스를 훔쳤다. 그리고 쓰러진 나무둥치의 시계는 계속 째깍째깍 시간이 갔다.
겁에 질린 델리아는 사촌에게 꼭 안긴 채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경악과 당황으로 정신이 얼얼했다. 그녀의 핏줄이 이름 없는 업둥이, 아주 오랫동안 뉴욕이 은밀히 농담을 하고 추측을 하던 ‘백 달러짜리 아기’의 정맥 속에 흐르고 있다니. 잔잔한 사회적 표층 어디에도 접한 적 없는 처음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있다는 생각에, 그녀 델리아 랠스톤이 자신의 집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하는 것이, 그것도 희생자의 입에서 직접 듣고 있다는 것에 속이 메스꺼웠다. 채티가 물론 희생자라고 한다면, 그럼 누구의? 그녀는 어떤 이름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델리아는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다. 질문의 공포로 입술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녀의 의식은 허겁지겁 채티의 과거로 달음질했다. 하지만 조 랠스톤말고는 떠오르는 남자들의 얼굴이 없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조와 연결시키는 일은 분명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남부의 누군가, 그럼 그때? 아냐, 샬롯은 떠날 때 계속 아팠었다…불현 듯, 델리아는 그 질환의 진짜 속성이,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일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런 추측에 펄쩍 놀란 그녀는 본능적으로 여전히 이해가 되는 무언가, 채티의 극빈자에 대한 조우 랠스톤의 태도같은 데에 매달렸다. 물론 조우는 아내가 집안으로 전염병을 들여오는 위험을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집은 안전한 거주의 바탕이다. 남편 짐도 같은 식으로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그런 점에서 그에게 동의한다.
그녀의 눈이 다시 시계로 움직였다. 시계를 볼 때마다 그녀는 클렘 스펜더를 떠올렸다. 그리고 갑자기 일들이 다르게 돌아가서 샬롯이 조우에게 간청을 하듯이 그녀가 그에게 간청을 한다면 그가 뭐라고 말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의식이 재조정되는 찰나 동안, 그녀는 클렘의 아내로, 아이들은 그의 아이들로 치고, 그녀가 머서 스트리트 마구간에서 불쌍하게 비쩍 마른 아이들을 계속 해서 돌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러자 또렷하게 그가 웃는 소리, 그의 가벼운 대답소리가 들렸다. ‘앙큼한 멍청이가 대체 왜 그런 질문을 할고? 당신은 나를 그 따위 바리새인으로 여기는 건가?’ 그랬겠지. 정말 클렘 스펜더다운 말이다. 관대하고 무모하고, 결과에 괘념치 않고, 항상 그 순간의 다정한 일을 하고서는 다른 이들이 대신 치르는 상처들이 너무 많았다. ‘클렘한테는 경박한 데가 있어.’ 짐은 진중하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델리아 랠스톤은 정신을 차리고 사촌을 더욱 가까이 껴안았다. ‘채티, 이야기 해봐.’ 그녀가 속삭였다.
‘더 이상은 없어.’
‘내 말은, 너에 관해서…이런 일이…이런….’ 클렘 스펜더의 목소리가 여전히 귀를 맴돌았다. ‘넌 누군가 사랑을 했었어.’라고 말을 내뱉었다.
‘그래, 그건 끝난 일이야.…지금은 아이만 남았어…. 그리고 난 조우를 사랑할 수 있는데, 다른 식이지만.’ 채티 로벨은 파리한 얼굴을 찌푸리고 몸을 바로 세웠다.
‘나는 돈이 필요해. 내 아이를 위해서 돈이 꼭 있어야 돼. 아니면 그 사람들이 그 돈을 단체에 보내겠지.’ 채티는 말을 멈췄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냐. 나는 결혼을 하고 싶어, 아내가 되고 싶어, 너희 모두처럼. 나는 조의 아이들…우리 아이들도 사랑했겠지. 삶은 멈추지 않아….’
‘그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하지만 너는, 마치…마치 그 사람이 너를 이용했다는 듯이 말하고….’
‘아무도 날 이용한 사람 없어. 나는 외롭고 불행했어. 나처럼 외롭고 불행한 누군가를 만났지. 사람들은 너 같은 행운을 다 가지는 건 아냐. 우리 둘은 결혼하기에 서로 너무들 가난했고…어머니는 아마 허락을 하지 않았겠지. 그래서 어느 날…어느 날 그가 이별을 말하기 전에….’
‘그 남자가 작별을 고해?’
‘그래, 그 사람은 이 나라를 떠날 작정이었어.’
‘그가 여길 떠났다고.…알고서?’
‘어떻게 그 사람이 알겠니? 그는 여기 살지 않아. 그는 잠깐 여기 왔던 거야, 그냥 가족들을 만나려고…몇 주 동안 잠깐….’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그녀의 얇은 입술이 비밀을 안은 채 굳게 닫혔다.
침묵이 흘렀다. 저도 모르게 델리아는 대담한 양치기를 쳐다보았다.
‘어디서 돌아왔는데?’ 그녀는 긴 침묵 끝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문제야? 넌 이해도 못할 텐데.’ 샬롯은 결혼한 그녀의 사촌이 그녀의 처녀성을 동정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바로 그런 함축이라도 하듯 말을 끊었다.
화끈거림이 천천히 델리아의 얼굴에 번졌다. 그녀는 그런 경멸 섞인 대꾸에 흐르는 힐책에 기이하게 수치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이 주춤거리고 무능하며, 샬롯이 그녀에게 떠안긴 혐오스런 일을 다루는 데는 무지한 만큼 무력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 강력한 여성적 본능이 꿈틀대며 그녀 속에 깨어났다. 그녀는 강건하게 그녀 사촌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너 그 사람이 누군지 말 안할 거지?’
‘무슨 소용이 있어서?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어.’
‘그러면 왜 내게 온 건데?’
샬롯의 바윗장 같은 얼굴이 울음으로 일그러졌다. ‘내 아이를 위해서…내 아이를 위해서야.’
델리아는 그런 그녀에게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면 어떻게 돕겠니?’ 그녀는 냉혹하게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을 강요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은 손을 들어 목을 조르라 종용이라도 하는 듯이 격렬하게 날뛰었다.
샬롯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어디서 돌아왔는데?’ 델리아는 끈덕지게 반복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기나긴 통곡을 터뜨리며 손을 번쩍 치켜 올리고는 두 눈을 가렸다. ‘그는 항상 네가 그 사람을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어.’ 그녀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네가 그렇지 않았다는 걸…네가 짐하고 결혼할 거라는 걸 알게 되자…그 사람은 막 뱃길을 떠나려던 참에 그 이야기를 들었대.… 민코트 부인이 그 사람에게 네 결혼식에 저 시계를 가져다달란 부탁을 받을 때까지도 몰랐어….’
‘그만…그만해.’ 델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이런 자백을 부추긴 게 그녀였다. 그러나 지금은 공연히 그리고 추잡하게 억지로 떠밀렸다는 느낌이 돌았다. 이 뉴욕이, 그녀의 뉴욕이, 그녀의 안전하고 친근하게 위선적인 뉴욕이 그러는가, 이 제임스 랠스톤의 집에서, 바로 그의 아내가 그런 오욕의 폭로를 듣고 있는 것인가?
이번에는 샬롯 로벨이 일어섰다. ‘난 알고 있었어…알고 있었다고! 너 지금 내 아기를 더 낫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더 안 좋게 생각하지, …왜 날더러 말하라 시킨 거니? 넌 절대 이해 못 할 줄 알았어. 난 항상 그 사람 사모했어, 사교계 나온 뒤로 죽. 내가 다른 사람하고 결혼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그거야. 하지만 내게는 전혀 희망이 없다는 걸 알았어.…그 사람은 너 말고 누구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어. 그런데 그가 4년 전에 돌아오고 보니, 그 사람에게 너란 없었어. 그는 내게 주목을 하기 시작했어, 친절하게 대하고 내게 그의 삶과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그게 끝이야. …모두 끝났어. 내가 그를 미워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지금은 아이만 남았어. 그는 이 일은 알지도 못해. 알아야 할 이유가 어딨어? 그 사람 상관할 일이 아냐.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문제야. 그러니 내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겠지.’
델리아 랠스톤은 점차 커지는 공포감에 사촌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말없이 서 있었다. 그녀의 모든 현실감은 사라졌다, 모든 안전과 자신 의지의 감각이 멀어졌다. 충동적으로 아이들이 한밤의 악몽에 머리를 파묻듯이 다른 이의 호소에 귀를 막고만 싶었다. 마침내 마음을 단단히 추스르고 마른 입술 사이로 말을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하는 의도가 무어니? 왜 내게 온 건데?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거니?’
‘그 사람이 너를 사랑했으니까!’ 샬롯 로벨이 더듬거리며 외쳤다. 두 여인은 얼굴을 마주 보고 가만히 섰다.
천천히 눈물이 델리아의 눈에서 솟아 뺨을 타고 내리고는 바싹 타들어간 입술을 적셨다. 흘러내리는 눈물 사이로 그녀는 사촌의 초췌한 낯빛이 물 아래 빠진 얼굴처럼 흔들리고 축 처지는 것을 보았다. 반쯤 추측하던 일이, 어렴풋이 느꼈던 일이 예상치 못한 그녀의 깊숙한 속에서 샘솟았다. 그건 거의 잠시 동안, 이 다른 쪽 여인이 그녀 자신의 과거의 비밀을 말하는 듯하였다. 자신의 마음속의 부들부들 흔들거리는 침묵을 통해 꾸며 두르지 않은 단어로 온통 표현하는 것 같았다.
가장 나쁜 일은 뭐냐면, 샬롯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지금 취해야 하는 행동이었다. 하루라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채티의 말이 맞다. 아이를 포기해야 하는 일을 의미한다면 그녀는 조와 결혼을 하기는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어떻게 그 사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고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일을 듣고 나서, 그가 물리치지 않을 거라는 상상 가능이나 한가? 이 모든 의문들이 델리아의 머리에 괴로울 정도로 빙빙 돌았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아이의 모습이, 클렘 스펜더의 아이가 가축우리 같은 깜둥이 자선단체에서 자란다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정신병수용소라고 부르는 전염병 숙소 같은데 떼 지어 있는 모습이 끊임없이 가물거렸다. 안 된다. 아이가 먼저다. 그녀는 마음 구석구석 온통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나, 클레멘트(1세기 영성신학, 지성을 강조한 성인을 일컫는 듯)의 이름 아래 그녀를 찾아온 이 가련한 중생에게 어떤 충고를 하나? 델리아는 절망적으로 여기저기 눈을 굴리다가 사촌에게로 돌아섰다.
‘나한테 시간을 좀 줘. 생각을 해봐야겠어. 넌 그 사람하고 결혼해선 안 돼.…그래도 모든 준비가 다 되었는데. 결혼 선물들은…. 말들이 많겠지… 로벨 할머니 놀라 쓰러지실 지도 몰라.’
샬롯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간 없어. 난 지금 결정해야 해.’
델리아는 손을 가슴팍에 대고 눌렀다. ‘내가 말했잖아. 생각 좀 해야 된다고. 너는 집으로 갔으면 해. 아니면, 아냐. 여기 머물러. 아주머니께서 네 눈을 봐서는 안 돼. 짐은 늦은 시간까지 집에 오지 않을 거야. 내가 올 때까지 여기 머물러도 좋아.’ 그녀는 옷장의 문을 열고 평범한 보넷과 두꺼운 베일로 손을 뻗었다.
‘여기서 머물러? 그런데 너는 어디 가는 거니?’
‘나도 몰라. 걷고 싶어. 바람 좀 쐬러. 혼자 있고 싶어.’ 허둥지둥 서두르며 그녀는 페이즐리 쇼올을 풀고, 보넷과 베일을 묶은 뒤, 방한토시(머프)에 손을 찔러넣었다. 샬롯은 미동도 없이 소파에서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너 기다려.’ 델리아가 문지방에서 확인하듯 다시 말했다.
‘그래, 기다릴게.’
델리아는 문을 닫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