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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짓, 헛짓/산 미켈레 이야기

산 미켈레 이야기 1

by 어정버정 2023. 5. 5.

2012-8-15

 

산 미켈레 이야기.

 

 

I 젊은 시절.

 

나는 작은 해안 쪽으로 향하고 있는 소렌토 돛단배에서 발딱 일어섰다. 소년들이 떼 지어 뒤집어 놓은 보트 사이에서 놀거나 파도 사이로 구릿빛 몸을 반짝이며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프리지어 모자(스머프 모자 같은 모자)를 쓴 늙은 어부들이 보트 창고 밖에 앉아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승선장 맞은 편에는 등에 안장을 얹은 대여섯 마리 당나귀들이 굴레에 꽃이 다발로 둘려져 서있었고 그 주위로 땋은 머리와 어깨에 두른 붉은 손수건 사이에 은색 스파델라(spadella?)가 뾰족 내밀고 있는 그만큼의 소녀들이 시끄럽게 재잘대고 노래를 부부르고 있었다. 나를 카프리까지 데려다 줄 당나귀 이름은 로지나였고 당나귀를 끄는 소녀의 이름은 조야였다. 그녀의 윤기가 흐르는 검정 눈동자는 이글거리는 젊음으로 반짝거렸고, 그녀의 입술은 아이 목 주위의 산호 목걸이처럼 붉었으며 즐거운 웃음소리가 터질 때마다 튼튼한 흰 이빨은 가지런한 진주처럼 반짝였다. 그녀는 열다섯 살이라고 했고 나는 보기보다는 젊다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로지나는 나이가 많았다. ‘에 안티카(e antica, 늙었다)’라고 조야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안장에서 내려서 마을까지 가는 굽은 길을 한가로이 걸어올라갔다. 내 앞에서 벗은 발로 머리 주위로 화관을 두른 채, 젊은 바칸테처럼(Baccahnte, 바커스 신의 여사제)처럼 조야가 춤을 추었고 내 뒤로는 앙증맞은 검정 편자를 신고 머리를 수그리고, 귀를 늘어뜨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 늙은 로지나가 휘청거리며 걸었다. 나는 생각에 잠길 시간 같은 건 없었다. 내 머리는 온통 황홀한 경탄으로 가득하고, 내 심장은 삶의 환희로 가득 찼으며 세상은 더없이 아름다웠고 나는 열일곱이었다. 우리는 금작화와 도금양이 만개한 덤불을 둘러 구불구불 발을 떼었고 린네우스(Linnnaeus, 스웨덴 분류 식물학자. 린네의 라틴명)의 나라에서는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달콤한 향내의 풀들이 여기저기에 작은 꽃이 달려서, 덤불 사이사이 피어 우리가 지나갈 때 우아한 머리를 치켜들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 꽃 이름이 무엇인고?’ 나는 조야에게 물었다. 그녀는 내 손에서 꽃을 빼앗아 사랑스러운 듯 쳐다보고는 말했다. ‘피오레(Fiore, )!’

그럼 이것의 이름은 무엇이냐?’ 그녀는 애정으로 살펴보더니 말했다. ‘피오레!’

그럼 이건 어떻게 부르는데?’

피오레! 벨로! 벨로! (bello-beautiful, pretty)

그녀는 향기 가득한 도금양을 한 아름 꺾어 들었지만 나에게 주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꽃은 산 코스탄조를 위한 꽃이라고 하였다. 그는 모두 순은으로 된 카프리의 수호성인이며 수많은 기적을 행한 성인이다. 산 코스칸조, 벨로! 벨로!

석회화 돌(tufa stone, 구멍이 숭숭한 탄산석회 침전물)을 머리에 이고서는 길게 늘어선 여자아이들의 줄이 에텍테이온(아테네 이오니아식 신전)의 노대의 여인 기둥 상처럼 위엄 있게 행진을 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중의 한명이 친근하게 내게 미소를 띠고 오렌지를 한 알 손에 올려 쥐어주었다. 그녀는 조야의 자매였으며 더욱 이쁘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랬다. 조야에게는 모두 여덟 명의 자매 형제들이 있었으며 두 명은 파라디조(천국)에 있었다. 그들 아버지는 산호초를 캐러 멀리 바바리아에 있었다. 그가 얼마 전에 보냈다는 아름다운 산호 목걸이를 쳐다보았다. ‘케 벨라 콜라나! 벨라! 벨라!’ (이 아름다운 목걸이!~~)

그리고 너 또한 벨라, 조야, 벨라, 벨라!’

예스.’ 그녀가 말했다.

발이 부서진 대리석 기둥에 휘청거렸다. ‘로바 디 팀베리오!(팀베리오의 물건들)라고 조야가 설명했다. ‘팀베리오 까티보(나빠), 팀베리오 말오키오(재수 없어), 팀베리오 까모리스따(카모라 당원, 부정비밀 결사원)!’ 그리고 그녀는 대리석에 침을 뱉었다. (원본 주석 : 카프리의 섬에 남은 11년 생애를 산 늙는 황제는 거주자들의 입 속에는 아직도 살아있으며 항상 팀베리오로 오르내린다.)

그래.’ 타키투스(Tacitus)와 수에토니우스(Suetonius, 둘 다 로마의 역사가)를 새로이 떠올리며 내가 말했다. ‘티베리오 까띠보.’

우리는 큰 길로 들어서서 피아자(광장)에 도착하였다. 두엇의 선원들이 난간에 기대어 마리나(정박지)를 내려다보고, 몇몇 졸음 섞인 섬사람들이 돈 안토니오 여인숙 앞에 앉아있고 대여섯 사제들이 교회로 향하는 계단에 서서 거친 사위로 활기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네따! 모네따! 몰타 모네따! 니엔떼 모네따! (, , 많은 돈, 아무 돈) 조야는 달려가서 아버지의 고해신부인 돈 죠친또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운 베로 산또(진짜 성인)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으로는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한 달에 두 번씩 고해를 하러 갔다. 얼마나 나는 자주 고해를 하느냐고?

전혀!

까띠보! 까띠보!

그녀는 돈 죠친또에게 레몬 나무 아래에서 내가 그녀의 뺨에 키스를 했다고 말을 할까?

물론 아니다.

우리는 마을을 빠져나가 푼따 뜨라가라(Punta Tragara, 뜨라가라 꼭대기)에 멈췄다.

나는 저 바위산 정상에 올라갈 거야.’

라고 말하며 나는 우리 발아래 자수정처럼 반짝거리는 세 개의 파라글로네(Faragloni) 중에 가장 깎아지른 듯한 바위를 가리켰다. 하지만 조야는 내가 하지 못하리라 확신을 했다. 어부가 바다 갈매기 알을 찾아 거기에 오르려고 했는데 나쁜 정령이 바다로 다시 집어던졌다고 하였다. 정령은 블루 그로토(작은 동굴)만큼 아주 새파란 푸른 도마뱀의 모습으로 팀베리오가 직접 거기에 숨겨놓은 황금의 보물들을 지키며 살고 있다.

친숙한 작은 마을 위로 치솟아 오른 칙칙한 몬테 솔라로가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강건하고 험준한 바위와 접근이 불가능한 절벽을 안은 채 서있었다.

당장 저 산에 올라가고 싶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조야는 그 생각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 가파른 좁은 길, 7백하고도 일흔일곱 개의 계단, 팀베리오가 직접 자른 바위는 산의 옆구리로 이어지고 반쯤 가다보면 어두운 동굴에 이미 몇 명이나 크리스티아니(기독교인)을 잡아 먹은 흉포한 늑대인간이 살고 있었다. 빌라 팀베리오로 올라가는 게 훨씬 낫다. 하다못해 아르꼬 나투랄레(자연생성 아치)그도 아니면 그로따 마트로마니아로 가라!

아냐, 난 시간이 없어. 당장 저 산을 올라야겠어.’

뒤쪽 피아자에서, 오래된 캄파닐레(종탑)에서 녹슨 종들이 마카로니가 준비가 다 되었노라 알려주기라도 하듯 12시를 치고 있었다. 적어도 제일 먼저 알베르고 파가노의 커다란 야자나무 아래 점심이라도 먹지 않겠느냐? 트레 삐아띠, 비노 아 볼론타, 프레쪼 우나 리라. (세 접시에, 양껏 포도주가 1 리라로 아주 싸다). 아냐, 나는 시간이 없어. 저 산을 당장 등정해야겠어. ‘아디오, 조야 벨라, 벨라! 아디오 로지나!’ ‘아디오, 아디오 에 프레스또 리토르노!’ (안녕히 그리고 얼른 돌아오세요), 아아, 프레스토 리토르노를 위하여!

에 운 파쪼 잉글레세’ (정신 나간 영국인)이 내가 내 운명에 끌려 페네키아 계단에서 아나카프리로 튀어오를 때 조야의 붉은 입술 새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반쯤 오르자 나는 머리에 오렌지가 가득한 커다란 바구니를 인 늙은 여인을 앞질렀다. ‘부온 조르노, 시뇨리노.’ 여인은 바구니를 내리고 내게 오렌지를 내밀었다. 오렌지 무지 위로 한 묶음의 신문과 편지들이 붉은 손수건으로 묶여 놓여있었다. 이 사람이 늙은 마리아 포르타-레테레(편지 배달꾼)였다. 그녀는 일주일에 두 번씩 아나카프리로 우편물을 나르던 사람으로 나중에 내 평생지기가 되어 아흔다섯의 나이에 죽을 때 나는 그 임종자리를 지켰다. 그녀는 편지더미를 헤집고, 가장 큰 봉투를 골라내고 이게 난니나 라 크라파라(the Goat-woman 염소치기)에게 온 게 아닌지 말해달라고 청했다. 그녀는 아메리카에 있는 남편의 레테라(lettera)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혹시 이건 그럼? 아니요. 이건 시뇨라 데스데모나 바카에서 온 거네요.

시뇨라 데스데모나 바까.’ 늙은 마리아가 의심스럽기라도 한지 말을 내 말을 되뇌었다. ‘아마 그들은 묠리에 델로 스카텔루쪼(곱사등이의 아내)를 의미하는 모양입니다.’라고 머리를 굴리며 말을 했다. 그 다음 편지는 시뇨르 울리세 데시데리오에게 온 편지였다. ‘그것들은 카포리모네(lemonhead) 것이란 말 같네요. 그 사람은 딱 이 같은 편지를 한 달 전에 받았어요.’ 늙은 마리아가 말했다. 그 다음은 젠틸리시마 시뇨리나 로지나 마짜렐라의 편지였다. 이 숙녀는 추적하는데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카챠카발라라(cheese-woman 치즈쟁이)를 말하나? 조빠렐라(lame woman, 절름발이)?, 아니면 카빠토스따(hardhead, 고집불통이)? 아니면 페미나 안티카(the ancient woman)? 아니면 로지넬라 파네 아슈또(Stale Bread, 고린내나는 빵장수)? 어쩌면 페세리아(not for ears polite라고 원문 주석은 되어 있음, 하찮은 계집)? 생선을 담은 커다란 광주리을 머리에 이고 방금 우리를 따라잡은 여인이 우리의 말을 받았다. 그래, 아마 묠례 디 파네 에 치폴라(the wife of Bread and Onions) 게 아니면 페세랴 것일 게야. 하지만 거기엔 페삐넬랴 엔코포 우 캄포산토(Above the cemetery)나 마리우첼라 카파로싸(Carrots 홍당무네)이나 죠반니나 아마짜카네(Kill-Dog, 개도살자)에게 온 편지는 없나요? 다들 아메리카에서 레테라를 기다리고들 있는데? 아니요. 안됐지만 없어요. 두 개 신문은 일 레버렌도 파로코(주임 신부)인 돈 안토니오 디 쥬세페와 일 카노니코(수사 신부)인 돈 나탈레 디 톰마소에게 온 것이었는데 그녀는 이는 잘 알았다. 그들은 마을에서 유일한 신문구독자였기 때문이었다. 주임신부는 아주 많이 배운 사람이어서 항상 어느 편지가 누구에게 온 건지 알아내주었지만 하필 오늘은 대주교를 뵈러 소렌토로 나가셨다.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봉투를 읽어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늙은 마리아는 자신이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몰랐지만 그녀가 열다섯 살, 어머니가 그 일을 포기해야만 할 때부터 죽 우편을 날랐다. 물론 그녀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내가 바로 그날 아침 소렌토에서 온 우편선으로 건너왔고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말하자 그녀는 다시 오렌지 한 알을 주어 나는 게걸스럽게 껍질째 다먹어치웠고 다른 여인이 바로 광주리에서 몹시 물이 먹히는 무슨 프루타 디 마레(바다의 과일) 같은 것을 내주었다. 아나카프리에 여인숙이 있나요? 아니요. 하지만 아나렐라, 묠례 델 사그레스타노(관리인 아내)가 맛좋은 염소치즈하고 그녀의 삼촌이자 사제 돈 디오니쇼의 포도밭에서 난 훌륭한 포도주를 아마 제공할 것이다. 정말 비노 메라빌료쇼(경탄해 마지않을 포도주)이다. 그 외에도 라 벨라 마게리타가 있었다. 물론 당신도 잘 알 것이다. 그녀 아주머니뻘 친척이 무슨 운 로드 잉글레세’(영국의 귀족)과 결혼을 했으니까. 아니요.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라 벨라 마르게리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군요.

우리는 마침내 칠백일흔일곱 계단의 꼭대기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이전에는 도개교의 커다란 철제 경첩이 바위에 여전히 단단하게 매어있는 아치형 문을 지났다. 우리는 아나카프리에 들어섰다. 나폴리의 전체 만이 우리 발 아래 이스키아 섬, 프로치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포실리포로 둘러싸여 있고, 나폴리해가 하얗게 선을 이루며 반짝였고, 베수비오 산은 하얀 장밋빛 연기 구름을 내뿜고 소렌토 평야는 몬테 상땅젤로 아래 아늑하게 웅크리고 있었으며 더 멀리 여전히 눈으로 뒤덮인 아펜니노 산맥의 산들이 보였다. 우리 머리 바로 위에 독수리의 둥지처럼 가파른 바위에 딱 달라붙어 무너진 작은 예배당이 서있었다. 둥근 지붕은 내려앉았지만, 거대한 석조 덩어리들이 알 수 없는 대칭적인 망의 패턴을 이루며 허물어지고 있는 벽들을 여전히 떠받치고 있었다.

로바 디 팀베리오.’ 늙은 마리아가 설명을 했다.‘

저 작은 예배당 이름이 무엇입니까?’ 궁금증이 동해 내가 물었다.

산 미켈레.’

산 미켈레, 산 미켈레!’ 그 이름이 내 가슴 속에서 메아리쳤다. 예배당 아래 놓인 포도밭에 한 노인이 새로운 포도나무를 심기 위해 깊게 고랑을 파고 있었다. ‘부온 죠르노, 마스트로 빈센쪼!’ 포도밭은 그의 소유였고 가까이 있던 작은 집도 그랬다. 그 집은 그 자신의 손으로 대부분 정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로바 디 팀베리오의 바위와 벽돌을 가져와 직접 지었다. 마리아 포르타-레테레는 나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일을 그에게 말했고 마스트로 빈센쪼는 나를 그의 정원에 앉아 포도주 한잔하라고 청해 들였다. 나는 작은 집과 예배당을 보았다. 내 심장은 거의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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