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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짓, 헛짓/산 미켈레 이야기

산 미켈레 이야기 3

by 어정버정 2023. 5. 5.

2012-8-17 

 
2장 

 

카르티에 라텡(라틴지구) 

 

카르티에 라텡. 오텔 드 라브니르(H6tel de L’Avenir)에 있는 한 학생의 방, 온 곳에, 탁자, 의자 위에 쌓인 책 더미, 산더미 같은 마룻바닥의 책들, 벽에는 희미해져가는 카프리의 사진. 라 살페트리에르, 오텔 듀와 라피디에의 병동에서 여는 아침, 병상에서 병상으로 건너다니며 피와 눈물로 쓰인 인간 고통의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가고. 오후에는 에콜 드 메드셍의 해부용 방과 원형강의실, 혹은 인스티튀 파스테르의 실험실에서, 현미경으로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의 미스터리, 엄청 작은 존재들, 인간 삶과 죽음의 결정권자를 경의의 눈으로 관찰하고. 오텔 드 라브니에서 철야의 밤, 모든 땅의 관찰자들이 세세히 살피고 모아놓은 견고한 사실들, 한 사람의 의사가 되기에 꼭 필요하지만 그만큼 불충분한 사실들, 질병과 질환들의 고전적인 징후들을 고생스럽게 갈고 닦으며 보내는 소중한 밤들. 공부, 공부, 또 공부! 에콜 드 메드셍은 문이 닫히고, 실험실과 원형강의실은 버려지고, 클리닉들은 반은 빈 채, 불르바르 셍 미셀의 텅텅 빈 카페에서 보내는 여름 방학들, 하지만 쉬는 날이 없는 병원 병동의 고통, 노는 날이 없는 죽음. 휴가가 없는 오델 드 라브니르. 가끔씩만 뤽상부르 정원의 라임 나무 아래를 산책하고, 허겁지겁 여가 시간을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내는 한눈팔지 않고 지내는 시간. 친구 없이, 애완견 없이. 사귀는 애인도 없이. 앙리 뮈르제(Henry Murger, Scenes de la vie d bohemedml 저자. 1840년대 가난한 라틴지구 학생들의 삶을 그렸으며, 오페라 라보엠의 원작)의 ‘비 드 보엠(Vie de Bohême, 보헤미언의 삶)은 가버렸지만 그의 미미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정말 그랬다. 미미들은 아페르티프의 시간이 다가오면 거의 모든 학생들의 팔짱을 끼고 불르바르 셍미셀의 거리를 웃으면서 내려오거나 학생들이 시험을 대비해 책을 공부하고 있으면 학생들의 옷을 수선하고 다락방에서 침대보를 세탁했다. 

내게는 미미가 없었다! 그러하다. 그들은 쉬엄쉬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이들 행복한 나의 동무들은 저녁을 카페의 테이블에서 한가하게 뜬소문을 주고받으며 보내고, 웃고, 살고 사랑을 했다. 그들의 미묘한 라틴의 뇌는 나보다 훨씬 빨랐다. 그들은 다락방의 벽에 그들에게 박차를 가하는 카프리의 흐릿한 사진이 없었으며, 팔라조 알 마레(바다 속 궁전)의 모래 아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귀중한 대리석의 원주도 없었다. 잠을 자지 않고 보내는 기나긴 밤에는 종종 오델 드 라브니르에 가만히 앉아 샤르코(Charcot)의 ‘말라디 뒤 시스템므 네르뵈(신경계의 질환)’이나 트루소(Trousseaux)의 ‘클리니크 드 로텔 듀(오텔 듀 강습, hotel Dieu,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병원 중 하나임)에 머리를 박고 있다 보면 갑자기 끔찍한 생각들이 스치곤 하였다. 마스트로 빈센조는 늙었다. 상상해 보라. 내가 여기 앉은 동안에 그가 죽거나 누군가에게 내 미래의 집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절벽 위의 작은 집을 팔기라도 한다면! 얼음처럼 차가운 진땀이 앞이마에서 솟구치고 내 심장은 공포로 거의 멎을 지경이었다. 나는 벽 위에 희미한 카프리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나는 사진이 점점 더 어릿하게, 신비하게 스핑크스 비슷하게 매장된 꿈이 누워 있는 석관의 윤곽만 남긴 채 희미해질 때까지 바라보았다.…그런 뒤 아파오는 눈을 부비고, 나는 경주마에 옆구리에 피가 나도록 목표를 향해 박차를 가하듯이, 미친 듯한 맹위로 책을 파고들었다. 그렇다. 그것은 경주였다. 포상과 트로피를 향한 경주였다. 내 동료들은 내가 쉽게 우승자가 된다는데 내기를 걸기 시작했다. 시저의 머리와 매의 눈을 가진 교사도 나를 한창 떠오르는 사람으로 오해를 했다. 이는 내가 알기로는 샤르코 교수(장-마르탱 샤르코 Jean-Martin Charcot (1825-1893) 프랑스 신경학자, 해부 병리학자. 근대 신경학의 창립자. 프랑스 신경학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는 사람)가 전 세계에서 몰려든 환자들로 넘쳐나는 살테프리에르의 병동이나 불러바르 셍제르멩의 진료실에서 선보이던 한치 틀림없는 판단을 수년간의 주의 깊은 관찰하여 얻은 결과를 놓고 보면, 그가 유일하게 저지른 잘못된 진단이었다. 나는 이런 그의 잘못의 값을 단단히 치렀다. 잠을 놓쳤고 거의 시력을 잃을 뻔하였다. 이런 의문이 저런 문제를 그렇다고 단정 짓지는 않는다.  인간의 뇌에 대해 현존하는 어떤 사람들보다 많이 알고 있는 샤르코의 절대 확실성에 대한 나의 믿음은 그런 것이어서 잠깐 동안 그가 맞다고 내가 믿었다는 것이다. 그의 예언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야망의 박차가 더해져, 피곤도, 잠의 욕구도,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고 나는 무엇을 치루더라도 노력을 기울여 한계점까지 모든 마음과 신체의 신경을 죄었다. 뤽상부르 정원의 라임 나무 아래 산책도 루브르의 한가로움도 더 이상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폐는 병원과 원형강의실의 고약한 냄새로 가득하고 밤에서 아침까지 오텔 드 라브니르의 답답한 방안의 줄담배의 연기로 가득 찼다. 끊임없이 연달은 시험 또 시험, 가치를 따질 새도 없이 어찌나 빨랐던지. 성공 그리고 성공. 공부, 공부, 공부! 나는 봄에 학위를 따게 되었다. 내가 손댄 모든 것에 행운이 따랐다. 한 번도 실패 없이, 놀라운, 거의 불가사의한 행운이었다. 벌써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경이로운 기계장치의 구조를, 건강할 때 그들 톱니와 바퀴의 조화로운 작동이나, 병들었을 때의 무질서들, 죽을 때의 최종 고장을 아는 법을 배웠다니. 벌써 병동의 의자에 달아매고 있는 대부분 고통들에 익숙해지다니. 벌써 내가 날카로운 날의 수술의 무기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완강한 적과, 손에는 낫을 들고 병동을 휘휘 나름의 회진을 돌며, 언제든지 베어버릴 준비를 하고, 낮이나 밤이나 손에서 그 낫을 내려놓지 않는 적과 좀 더 대등한 관계로 싸울 수 있는 법을 배웠다니. 사실 그는 수 세기 동안에 고통과 비애가 피난처를 구하던 음울하고 낡은 병원에 영원히 그의 거처로 삼은 것 같았다. 때로는 그는 병동을 돌진해 들어와 미친 사람마냥 눈감은 분노로 오른쪽 왼쪽, 젊은이 늙은이를 치고, 손으로 한 희생자의 목을 서서히 조르고, 그리고 크게 벌어진 다른 이의 붕대를 찢어발겨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뚝뚝 떨어져 나가도록 둔다. 때로는 그는 발끝을 조심조심, 살금살금 들어와 손가락으로 고통 받는 또 다른 자의 눈을 살포시 감기고 그가 간 뒤 희생자는 입술에 미소조차 머금고 있다. 그의 접근을 저지하려고 거기 있던 나는 종종 그가 거기 이미 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어머니의 젖가슴에 매달린 아주 어린 아이들만 그의 존재를 알았고 잠자던 중에 그가 지나 라도 가면 괴로움으로 날카로운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주 잦지는 않지만 생애를 병동에서 지낸 늙은 수녀들은 그가 오는 모습을 보고 딱 시간에 맞춰 병상 머리맡에 십자가상을 걸었다. 처음에 그가 거기, 병상의 저쪽에서 의기양양하게 서 있을 때 나는 무력하게 이쪽에 서 있었지만 점점 더 그를 거의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생명은 그 당시 내게 전부였다. 나는 그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 내 사명은 끝났음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저 내 패배에 분개를 하며 내 사악한 동료로부터 얼굴을 돌리곤 하였다. 하지만 점차 그가 익숙하게 되자, 나는 그를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더 자주 그를 볼수록, 더욱 그를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어졌다. 나는 내가 내 몫을 하듯이 그가 이 작업에서 그의 몫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꼭 내 사명이 채워지는 것과 같이 그도 그의 사명을 충족하였다. 결국 우리는 동무였다, 삶을 두고 벌이는 레슬링이 끝나고, 그리고 그가 이기면 서로 두려움을 거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친구가 되는 게 훨씬 나았다. 나중에는 그가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고 생각하는, 내가 그를 갈망하고, 거의 사랑을 했지만 그는 절대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고까지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그의 침울한 얼굴을 읽는 법을 배우기만 한다면 그가 내게 가르치지 못할 일이 무엇 있겠는가? 인간 고통에 대한 나의 빈약한 지식을 빈 곳을 그가 채우지 않는다면 또 얼마나 넓은지! 의학 안내서에는 모든 것이 설명이 되고 모든 수수께끼에 해결법이 제공되고 모든 질문에 답변되어 있지만, 그 혼자만이 내 의학 안내서가 잃어버린 마지막 장을 읽어본 자이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고, 또 어떻게 그렇게 온화할 수 있는가! 한손으로 젊음과 생명을 앗아가면서 다른 손으로는 어마어마한 평화와 행복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왜 누군가의 숨통은 그렇게 천천히 그러쥐면서도 다른 이를 다룰 때는 또 날래게 강타를 하는가? 왜 그는 어린 아이의 생명은 그렇게 오랫동안 고심을 하고 고통 받는 늙은이의 생명은 물러나듯 잠 속에서 자비롭게 거두어 가는가? 죽이는 동시에 벌을 주는 게 그의 사명인가? 그는 사형집행인이자 재판관이었던가? 그가 거둬들인 생멸들로 그는 무엇을 했을까? 그들은 존재를 멈춘 걸까, 아니면 그냥 잠에 빠져드는 걸까? 그는 그들을 어디로 데려갔을까? 그는 죽음의 궁정의 패왕인가, 아니면 그냥 봉신이며, 훨씬 더 힘이 센 삶의 지배자에 손아귀에 든 단순한 하수인인가? 그는 오늘은 이겼지만 그의 승리가 최종이 될 것인가? 누가 종국에 정복자가 될까, 그 아니면 삶? 

하지만 진짜 내 사명은 그의 사명이 시작되면 끝나는 게 맞는가? 나는 마지막 불공평한 전투에서 그가 파괴의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에 무력하고 무감각하게 곁에 서있는, 아무 감정 없는 관중일 뿐인가? 나는 이미 말할 힘조차 아주 멀어져 버려, 눈빛으로만 도움을 애원하는 사람들에게서 눈을 돌려야만 하는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떨리는 손으로 내 손에 매달린 그들을 떨쳐버려야만 하는가? 나는 패배했다. 하지만 무기를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내손에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다. 그는 영원한 잠의 물약을 가지고 있지만 나 역시 자애로운 자연의 어머니가 내게 맡긴 내 물약이 있다. 그가 치료제를 나눠주는 길이 더디다면 왜 난들 비통을 평화로, 극통을 잠으로 바꿀 자비로운 힘을 빌려 내 물약을 다루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내가 살리도록 도울 수 없는 이들을 죽도록 돕는 일은 나의 사명이 아닌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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