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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짓, 헛짓/Robert Walser

헬블링 이야기 1

by 어정버정 2023. 4. 15.

2013-7-13

Helbling's Geschichte

 
 
 

헬블링 이야기

 

 

나의 이름은 헬블링이고 나는 누구 다른 사람이 아마 적어줄 것 같지가 않아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아주 지적으로 바뀌어서 나 같이, 앉아서 제 이야기나 적어나가는 한 사람에게 요즘에는 아무 것도 궁금할 만하게 없어요. 제 이야기는 짧습니다. 아직 젊어서요,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계속 살아갈 터이니, 끝도 안 날 겁니다. 나에게 놀라운 점이 있다면 그건 아주 평범한 사람이란 것이지요, 해도 너무하게 평범하답니다. 나는 뭇사람(衆人) 중의 한 명인데 그게 전 왠지 아주 낯섭니다. 나는 뭇사람이 낯설고 항상 의아합니다. “대체 저들은 다들 무얼 하고 있나, 무엇하러 저렇게 바쁠까?” 저는 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대중 속으로 사라집니다. 열두시가 딱 치고, 정오에 내가 고용되어 일하는 은행에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들은 모두 저와 별반 없이 서두릅니다. 이쪽 사람은 다른 쪽을 앞지르려고 노력을 하고요, 저쪽은 다른 이보다 더 긴 발짝을 떼고 있지요. 그래도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들은 모두 집에 다다를 거야.” 그리고 그들은 진짜 집에 닿습니다. 그들 중에 집으로 가는 집을 찾지 못하는 기이한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까요. 나는 보통 체격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눈에 띄게 작지도 않고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크지도 않아서 기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게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중간 정도입니다. 점심을 먹을 때 저는 항상 다른 데서, 더 유쾌한 데서 먹었으면 괜찮았을, 아니 훨씬 나았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더 나은 음식을 두고 더욱 활기찬 대화를 나누는 그런 데가 어디가 될까 헤아려 보지요.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아는 마을의 온 지역들과 온 곳을 샅샅이 되짚고, 어쩌면 나를 위한 곳일 지도 모를 데를 콕 집습니다. 전반적으로 나는 자신을 높이 평가합니다. 사실 나는 오직 저만 생각을 하고, 내 한 가지 심려도 상상하는 만큼이나 훌륭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일입니다. 왜냐면 저희 아버지는 지역에서 존경받는 사업가이신, 양가집 출신이니까, 내가 떠맡아야만 하고 내게 닥칠 것 같은 일에서 온갖 종류의 잘못들을 알아차리는 데 재바릅니다. 내 말 뜻은 아무 것도 나에게는 족히 품위 있지 못하다 이겁니다. 나는 간간하고, 섬세하고, 보살피고 아껴야 될 유약한 그런 면면이 있다고 지속적으로 느끼고, 다른 이들은 간간은커녕 섬세한 면은 턱도 없이 모자란다고 여깁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마치 꼭 이런 삶으로 커트되기에 충분히 굵직한 씨알이 아닌 것 같아요. 어쨌든 내가 남달리 빼어나는 일을 저해하는 장애물입니다. 내가 이뤄야 할 임무가 있다고 칩시다. 그럼 나는 반시간은, 어떤 때는 족히 한 시간은 항상 궁리를 하는데 말입니다. 나는 곱씹고 몽상에 잠깁니다. “이 일하고 씨름을 해? 아니면 씨름하는 일을 계속 미뤄야만 할까?” 그리고 그러는 도중에 나는 내 동료 중의 몇은 내가 나태하다는 말들을 하고들 있겠지, 사실 난 그냥 너무 예민한 건데, 하고 느낍니다. , 사람들은 얼마나 잘못 판단이 되는 걸까! 맡은 업무는 항상 내게 버겁습니다, 주눅 드는 업무로 나는 손바닥으로 책상 뚜껑만 쓸고 있다가, 내가 깔보는 듯한 시선이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차리거나, 볼을 만지작거리거나, 목젖을 손가락으로 더듬거리거나, 눈 위를 손으로 쓰다듬고, 코를 문지르거나, 앞이마에서 머리를 뒤로 쓸어 넘깁니다. 내 임무가 거기에 놓여있고, 내 앞에, 책상 위에, 활짝 펼쳐진 종이 위에 있지 않은 것처럼, 그러고 있습니다. 아마 나는 잘못된 직업을 택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어떤 직업에 들더라도 나는 같을 것이며, 같은 일을 할 것이며, 같은 식으로 실패하리라고 다분히 확실히 믿습니다. 나는, 추정컨대 나의 나태함의 결과로, 다른 이의 존경은 거의 사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몽상가와 게으름뱅이로 부른다. , 잘못된 딱지 붙이는 일에 어찌나 다들 한 재주 하시는지! 물론 사실은 사실입니다. 나는 딱히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은 내 지성의 아주 조금만 차지하고 나를 거의 끌어당기지 못한다는 생각에 항상 잠겨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건 다른 일이구나. 나는 내가 지성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가졌노라 생각할 건더기도 거의 없습니다. 나는 종종 이해와 혜안이 요구되는 임무가 주어질 때마다 멍청하게 굴어 왔다고 확신하고 있으니까. 이에, 사실 당혹을 금치 못하겠지만 내가 그들이 똑똑하다 자처할 때만 똑똑하지만 진짜 그렇다고 보여주어야만 하는 때가 닥치자마자 똑똑하길 그치는 기이한 사람들 중에 속하는가, 의아함도 금치 못하겠습니다. 나는 다수의 똑똑하고 아름답고 교묘한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써볼 요량을 피우기만 하면, 맴만 돌다가 내버리고 달아나니 나는 무지한 견습생처럼 거기 멀거니 서 있는 거지요. 그러므로 나는 내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게는 흡족힌 지성적이지도 않거니와 다른 한편으로 아주 조금 지능을 쥐어짤 수 있는 순간에 온 머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항상 안 그래야 하는 때에 생각을 하고 꼭 그래야만 하는 때는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이런 이중의 이유로 나는 열두 시 몇 분 전에 사무실을 떠나기도 하고 항상 다른 이들보다 몇 분 늦게 돌아옵니다. 이 일로 다소 나쁜 평판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말든, 나에게는 똑같습니다. 말 하나 마나 입만 아프다 이 말입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들이 나를 바보로 여긴다고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상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면 나는 그들이 그렇게 상정하는 일을 막을 재간이 없다고 느낍니다. 게다가 나는 실제 바보스럽게 보입니다. 얼굴이며 하는 행동이며, 걸음걸이며, 목소리하고 태도도 마뜩찮지요. 그런 점에 의문은 없어요. 예를 들어 보자면, 내 눈은 조금 모자란 듯한 눈빛을 하고 있는데, 쉽게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내 정신 수준을 얕잡아 봅니다. 내 태도도 조금은 백치 같고, 하잘 것 없기도 해요. 목소리는, 화자인 나 자신이 말을 할 때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말을 하고 있으면 이상하게 들려요. 나에게는 졸리는 듯한 무언가가, 잠이 덜 깬 듯한 무언가가 있어요. 사람들이 이런 걸 알아차리더란 말은 이미 했었지요. 나는 항상 머리카락으로 납작하게 매만지는데 나의 반항적이고 무력한 어리석음의 효과를 더욱 높이는 것 같습니다. 또 그냥 거기, 책상 자리를 지키고 섰습니다. 그리고는 방안이나 창밖을 한 30분가량 휘둥그레 두리번거리기도 합니다. 내가 가지고 쓰는 펜은 활동 않는 손에 쥐고서요. 나는 서서 더 큰 움직임은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이 발 저 발로 몸무게를 번갈아 실으며, 동료들을 쳐다봅니다. 그리고 왜, 곁눈질로 비껴보며 실팍하게 뜨고 있는 그들 눈에, 내가 불쌍하고, 무책임한 한산꾼으로 보는지, 나에게 시선을 주면 웃고 내 머릿속에 생각 없이 꿈꾸는 사람처럼 비치는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내가 그럴 수만 있다면야, 꿈이라도 꿀 수 있다면야! 아닙니다. 나는 그런 게 무언지 전혀 몰라요. 저는 항상 내가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을 테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끝이 찾아오면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어린아이처럼 기뻐합니다. 내가 벌어들이는 봉급은 내게 너무 적습니다. 내가 실제로 하는 일은 없다고 하다해도 내가 하는 일로는 그렇게 많이 벌지도 못한다고 나는 혼잣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신기하게도, 나는 나 자신을 민둥민둥 부끄러워하는 재주는 없습니다. 누군가, 예를 들어 상관이 나를 질책을 하면, 질책 받는 일에 마음이 상해서 아주 심하게 분개를 합니다. 나는 문책을 받아 마땅하다 혼자 뇌까린다 해도 이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상관과의 대화를 조금만, 아마 한 30, 더 연장하기 위해서, 그래야 다시 30분이 흘러 갈 테니까, 적어도 그 동안은 지루하지 않을 테니까, 상관의 힐난에 반대합니다. 동료들이 내가 지루해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물론 맞습니다. 아주 끔찍하게 지루합니다. 아무 흥미로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지루해져서 어떻게 이 지루함을 깰까 고심하는 일, 이 일이 진짜 내가 하고 있는 소일거리입니다. 내가 이룩한 게 아주 적어서 나는, 내가 애처로워 실제로 너는 아무 것도 이루지 않았어!”하고 생각하지요. 때로는 거의 의도치 않게, 바로 위 천정을 향해, 입을 쩌억 벌리고, 손을 올리고 뚫린 구멍을 천천히 가리고서 하품을 해야 합니다. 곧 저는 손가락 끝으로 콧수염 끝을 비틀 기회를 슬몃 부여잡고, 책상을, 저기 그러니까, 손가락 하나의 밑면으로, 마치 꿈속에서처럼 톡톡톡 칩니다. 때로는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내 자신이 불쌍해져서 와락 눈물이라도 터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꿈같은 일이 지나고 나면 나는 바닥에서 발랑 몸을 던져서, 거꾸러져서, 시간을 죽이는 고통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책상 모서리에 다쳐버렸으면 좋겠구나 생각합니다. 내 영혼은 내가 처한 상황에 완전히 고통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바싹 귀를 기울이면, 나는 그 속에서 부드럽고 애처로운, 마치 항상 내가 잘 되기만을 바라는 아직 살아계신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비난의 기미를, 어머니보다 더 강인한 원칙들을 가진 아버지의 그 반대되는 목소리의 기미를 감지하니까요. 하지만 나에게 내 영혼은 너무 어둡습니다. 영혼은 괜히 감지만 되어가지고선 귀중히 여겨야만 하는 아무 쓸모없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나는 그런 기미는 안중에 두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영혼이 조잘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 그저 지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사무실 책상 앞에 서 있으면, 다리는 천천히 나무로, 사람들이 불을 놓은 마음이 가득할 그런 나무로 바뀌는데, 어쩜 탈지도 모르지요. 책상하고 사람이, 시간하고 한꺼번에! 시간은, 항상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지요. 시간은 아주 빨리 흘러요. 허나 아주 재빠른 중에도, 갑자기 몸을 웅크리는 것 같습니다, 부서져 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고는 전혀 시간이 없는 것처럼 되어버려요. 때로는 사람들은 놀라 동당거리는 새떼처럼 시간이 부산을 떠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니면, 예를 들어, 숲속에 있는 것처럼, 거기서 나는 항상 시간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 일에 한 가지 장점이 있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상황이 반대지요. 죽음처럼 아주 꼼짝을 않습니다그려! 계속 끝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게 어디 사람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내 삶은 지금까지 상당히 비어 있었던 듯 보입니다. 추후로도 빈 채로 남아 있으리라는 확신은 무한함의 느낌을, 가서 잠이나 자라고 말하는 느낌, 오로지 가장 피할 수 없는 일들을 하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니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나는 등 뒤에서 한껏 농땡이 치고 있을 적에 놀래키려 살금살금 다가오던 냄새나는 보스의 숨결을 느낄 때에만 근면하게 일을 하는 척 합니다. 그에게서 졸졸 흘러나오는 그 숨결이 자신의 배신자이지요. 그 좋은 사람은 약간의 기분전환 기회를 주어서 나는 진짜 상당히 그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내 의무와 지시를 거의 존중을 하지 않도록 나를 부추기는 걸까요? 나는 작고 핼쑥하고, 소심하고 약하고 우아하고 어리석은 작다리로, 속세를 벗어난 감정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일이 잘못되어 혹시 된바람으로 불어 닥치면 저는 세상사 고초를 버텨낼 재주는 없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지속한다면, 내 직업을 잃는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무서움을 불어넣을 순 없는 걸까요? 보시다시피 그럴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보시다시피 그럴 수 있습니다. 나는 살짝 두렵습니다. 그리고 살짝 두렵지 않기도 합니다. 아마도 두려워하기에 내 지력이 영 딸리는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흡사 아이 같은 생떼로 직장 동료들 앞에서 구구히 변명을 하는 일이 우유부단의 표식 같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이는 항상 약간 정상에서 벗어난 일을 하라고 가르치는 내 성품에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일입니다. 비록 내게 불이익이 닥친다 해도 늘 그렇게 들쑤시지요. 그리하여 예를 들어, 허락되지 않는데도 저는 작은 책들을 사무실에 들고 와서는, 거기서 책장을 갈라 열고 읽습니다. 진짜 읽는 일을 즐기지도 않으면서요. 하지만 그러고 있으면 교양 있는데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세련되고 싶어 하는 우아하고 완고한 사람처럼 보이는 법이지요. 난 진실로 더욱 세련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영달을 바라는 지경에 도달하면 사냥개 같이 아주 집중을 합니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한 동료가 다가와서 질문을 합니다. 거의 그 순서대로인데 당신 무엇을 읽고 있소, 헬블링?” 이러면 짜증이 나지요, 이런 경우에 성가신 질문을 떨쳐버릴 만한 짜증을 드러내는 편이 적당합니다. 나는 책을 읽고 있으면 흔치 않게 영향력 있는 사람처럼 굽니다. 거기 있는 누군가는 얼마나 영민하게 그의 마음과 기지를 향상시키고 있는지 지금쯤 알아차린 사람이 있나 주위를 온통 둘러보지요. 나는 아주 인상적인 여유를 잡고 페이지를 하나씩 하나씩 종이칼로 잘라나갑니다. 더 이상 읽고 있지도 않지만 책속에 푹 빠진 사람의 몸가짐을 취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흡족해 하는 겁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에요. 무모하게 경망스러운, 모두 겉만 번지르르한 인간입니다. 나는 허영청입니다. 허영심으로 이룬 나의 만족감은 진짜 손해될 건 또 거의 없습니다. 내 의복은 품새가 조악합니다만 나는 열심히 변화를 줍니다. 동료들에게 내가 몇 벌이나 정장 슈트를 가지고 있고 색깔 선택에 상당한 아취가 있게 보이는 일이 내심 기쁘니까요. 나는 숲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초록색을 입는 일을 좋아합니다. 바람 불고, 선선한 날에는 노란색을 입습니다. 노란색은 바람에나 춤에나 딱 맞는 색이니까. 나는 여기서 잘못을 범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매일같이 내가 얼마나 자주 실책을 범하나 지적을 하는 것만 봐도 알겁니다. 사람들은 결국 사람이 숙맥이란 말을 믿게 되는 법입니다. 하지만 어떤 차이로 사람을 반편이로 혹은 존중할 만한 인물로 가르는 걸까요? 비는 당나귀나 출중한 인물이나 똑 같이 내리는데요. 그리고 태양도! 나는 태양 속에서 열두 시 종이 땡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행복합니다. 그리고 비가 내리면 풍성하게 둥그런 우산을 머리 위로 활짝 펴듭니다. 그래야 내 모자, 내가 소중해마지 않는 모자가 젖지를 않지요. 나는 모자를 아주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내가 일상적인 온화한 매너로 가볍게 모자에 손을 댈 수 있으면, 나는 아직도 완전히 운 좋은 사람이로다, 느껴집니다. 근무 시간이 끝나고 조심스럽게 머리에 모자를 얹는 일은 특히나 큰 기쁨이 다가들지요저 일은 항상 내게는 매일 마다 아주 좋아하는 마무리입니다나의 삶은 정말이지 자잘하니 단순한 일투성이로 이뤄졌습니다. 나는 항상 그런 혼잣말을 하지요. 그리고 그런 일이 아주 낯설다 하고요.

 

로베르트 발저, 헬블링 이야기 전반부,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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