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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짓, 헛짓/Robert Walser

툰에 머문 클라이스트

by 어정버정 2023. 4. 15.

2013-07-09 

클라이스트는 툰 근처, 아르 강 섬 위의 어느 빌라에 하숙을 구했다. 백 년도 더 지난 오늘날로서는 당연 틀림없노라고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가 10미터 길이의 어느 작은 다리를 걸어서, 종 담김줄을 당겼으리라 생각한다. 이에 누군가 도마뱀처럼 집안의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와 누가 왔나 내다보았을 것이다. “셋방 놓으십니까?” 간단하게 곧장 클라이스트는 놀랄 정도로 싼 가격에 그에게 할당된 방 세 개 하숙에 편안히 짐을 풀었다. “예쁘장한 베른 시골 처녀가 집안일을 한다.” 아름다운 시, 아이, 용맹한 행위, 이 셋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그는 조금 몸이 좋지 않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누가 알겠는가.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여기는 아주 아름답다.”

그는 물론 글을 쓴다. 때때로 베른으로 나가는 마차를 잡아타고, 문학계 친구들을 만나고 그가 쓴 것은 모조리 읽어준다. 당연스레 그들은 그를 총체적으로 괴상한 인물이라고 여기긴 했어도, 하늘 높이 칭송을 한다. 그는 깨진 물병을 집필한다. 그런데 모두들 왜 법석들이지? 봄이 왔다. 툰 주위의 들판은 꽃으로 흐드러지고, 사방이 향기에, 벌의 붕붕 소리, , 소리는 떨어지고 한 사람은 판판이 빈둥거린다. 여름 열기 속에서 사람들이 미칠 수도 있겠구나. 그가 탁자에 앉아 무얼 쓰려고 애쓸 때마다 그의 머릿속에서 휘황찬란한 붉은 정신 호리는 물결이 그의 머릿속에서 난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그는 그의 재주에 욕을 퍼붓는다. 그는 스위스로 올 적에 농부가 될 작정이었다. 좋은 생각이다, 그건. 생각해내기 쉬운 일이었다. 포츠담에서는. 시인들은 아무튼 쉽게도 그런 일들을 생각해낸다. 종종 그는 창가에 앉는다.

 

아침 열시 즈음인가 보다. 그는 완전 혼자다. 그는 그 옆에 누군가 말소리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도대체 무슨 목소리? 손길, 그래, 그리고는? ? 하지만 뭣 하러? 저기 바깥에 하얀 향기 속에 면사포에 감겨 잃어버린, 요염하게 부자연스러운 산으로 틀을 두른 호수가 있다. 얼마나 다들 눈부시고 성가시게 어지러운가. 물가까지 모조리 전원 지대가 순전히 정원이다, 꽃으로 가득한 다리와 향기로 가득한 테라스로 된 푸른빛 공기 속에서 들끓어 올랐다 잦아드는 것 같다. 새들이 온통 햇볕 아래, 온통 불빛 아래 너무나도 희미하게 노래한다. 그들은 더없이 행복하고 잠으로 가득하다. 창턱에 팔꿈치를 대고 클라이스트는 얼굴을 손에 괴고 밖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잊기 원한다. 그의 북쪽 먼 고향집의 모습이 마음속에 들어온다. 선명하게 보이는 어머니의 얼굴, 오래된 목소리들, 빌어먹을, 그는 벌떡 일어서 마당으로 달려 나간다. 거기 작은 배로 달려가 청명한 아침 호수 위로 노를 젓는다. 태양의 키스는 나눌 수가 없고, 눅어지지 않는다. 한 치도. 동요도 거의 없이. 산들은 총명한 배경화가의 책략이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전 지역이 앨범 같다. 노련한 딜레당트가 앨범을 소유한 숙녀를 위해, 기념품으로 빈 페이지에 운문의 선으로 그려넣은 산이다. 앨범은 옅은 녹색의 덮개를 지니고 있다. 어느 것이 적당한가. 호수 가장자리 작은 언덕에 아주 반반씩 푸른색이다. 아주 높고, 아주 향기롭다. 라라라! 그는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는 그에게 정말 말도 못하게 사랑스럽다. 그는 헤엄을 치고 기슭의 여인들 웃음소리를 듣는다. 배는 녹빛, 청빛 물위에서 느릿느릿 떠다닌다. 주위 세상은 광활한 포옹 같다. 얼마나 현황한 광경인지, 하지만 얼마나 격심한 고통이 되기도 하는지.

때때로 특히 날 좋은 저녁에 이 장소는 세상의 끝이라고 그는 느낀다. 알프스 산맥은 그에게 산등성이 높이 올라앉은 다다를 수 없는 낙원으로 가는 대문처럼 보인다. 그는 작은 섬 위를 천천히 보폭을 떼며, 이리저리 거닌다. 일하는 계집이 덤불에 빨래를 넌다. 가락이 곱고, 노랗고,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빛으로 환하다. 모든 일에 지배적인 것은 최종적인 무형의 아름다움이다. 골풀 사이로 왔다갔다 헤엄치고 있는 백조들은 아름다움과 어스름 빛의 마법에 사로잡힌 것 같다. 공기가 끈적하다. 클라이스트는 잔혹한 전쟁을 원한다. 전투 속에서 싸우기를 원한다. 그 혼자 가련하고 불필요한 그런 존재 같다.

 

그는 산책을 나간다. , 왜 아무 할 일도 없고, 덤벼들 것도 없고, 뿌리칠 것도 없는 것이 그여만 하는가? 미소를 띠고 자문을 한다. 그는 몸속에서 부드럽게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생기와 기운을 느꼈다. 높은 고대의 벽들 사이로 그는 어두운 녹색 담쟁이덩굴이 열정적으로 휘감아 타고 오른 회색 바위 부스러기가 비탈진 아래로 성이 있는 언덕빼기까지 올랐다. 여기 위의 모든 창문들은 저녁 햇살로 환히 빛난다. 암벽이 쾌적한 파빌리온을 견디고 있는 바위 가장자리 위에 올라 그는 여기에 앉는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경건하게 번뜩이는 조용한 광경 너머로 아래로 한껏 날아든다. 지금 몸이 가뿐하게 느껴지기라도 하면 아주 놀라운 일일 테지. 신문을 읽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누구 존경받는 공식적인 팔푼이나 다른 이를 붙들고 어리석은 정치적인 논쟁 혹은 일반적으로 유익한 논쟁을 벌인다? 그래? 그는 행복하지 않는 게 아니다. 비밀스럽게 그는 슬픔을 가눌 수 없는, 당연하게 강력하게 슬픔에 잠긴 사람은 행복하다고 혼자 생각해본다. 그는 행복하기에 너무 예민하다, 그의 모든 우유부단하고, 조심스럽고, 의혹 깊은 감정에 너무 시달린다. 그는 큰 소리로 고함을 쳤으면 좋겠다.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하늘에 계신 신이시여, 대체 제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는 어두워지는 언덕을 달음질쳐 내려간다. 밤이 그를 달래고 어른다. 그의 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으며 광포가 휘몰아칠 때까지 일하기로 결심한다. 등불의 빛은 그가 어디 있는지 이미지를 지워버린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비우고 그는 이제 글을 쓴다

 

비오는 날에는 소스라치게 춥고 공허하다. 장소가 그에 떤다. 초록 관목은 징징거리고 훌쩍거리고, 햇살 조각을 바라며 비 눈물방울을 흘린다. 이마를 짚는 능글능글한 살인자의 손처럼 산봉우리 위로 거대하고 칙칙한 구름이 떠다닌다. 시골 풍경은 이런 사악한 날씨로부터 살금살금 뒷걸음질 쳐 숨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오글쪼글 말라죽고 싶은 것 같다. 호수 탁한 회색 으로 적막하고, 물결의 언어들은 불친절하다. 섬뜩한 질책처럼 울부짖는 폭풍은 어떤 쟁점도 찾을 수 없이, 이쪽 가파른 비탈에서 다른 쪽으로 부딪는다. 여기는 어둡고, 작고 작다. 모든 것이 사람의 코앞으로 바싹 몰려들었다. 누구라도 기꺼이 큰 모루를 들고 이 모든 것을 빠져나갈 길을 내려고 할 것 같다. 거기 비켜, 비키라고

 

태양이 다시 빛난다, 일요일이다. 종이 울리고 있다. 사람들은 언덕 꼭대기로 교회로 향하고 있다. 단단한 검정 레이스 보디스에 은빛 스팽글을 단 소녀들과 여인들, 단순하게 멀쩡하게 옷을 입은 장정들. 그들의 손에는 기도서를 쥐고 있고, 얼굴은 모든 불안이 사그라지고, 근심과 말다툼의 고랑은 말끔히 다리고, 모든 골치는 잊힌 듯 평화롭고 아름답다. 그리고 종소리. 얼마나 크게 울리는지, 우레 같은 소리로, 소리들 물결 사이로 어떻게나 튀어오르는지. 햇살에 흠뻑 잠긴 작은 마을의 전체 일요일을 파란 벨 톤으로 어찌나 반짝반짝 빛을 내는지. 사람들은 산산이 흩어진다. 클라이스트는 낯선 감정에 솔솔 까불려 교회 계단에 섰다. 그리고 그의 눈으로 사람들을 넘어뜨리고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쫓는다. 그가 보는 많은 농부의 아이들은 타고난 공주처럼, 뼛속까지 위풍당당함과 자유가 익은 아이들처럼 계단을 내려온다. 시골에서 올라온 근육이 우락부락한 잘생긴 젊은이들이, 그냥 시골이 아니라, 평지가 아니라, 들판의 사내가 아니라, 험한 산줄기의, 좁지만 종종 훤칠하고 조금은 거대한 남자의 팔처럼 감싼 기묘하게 동굴이 진 깊은 계속에서 솟구쳐 나온 사내들이다. 그들은 옥수수 농지와 목초지가 크레바스로 가파르게 떨어지는 산에서, 냄새 고약한 뜨거운 풀들이 무시무시한 산골짜기 벼랑 끄트머리에 좁고 길게 엎드린 땅뙈기에서 자라는 산에서, 저 아래 넓은 시골 길 위에서 저기 저 위도 사람 사는 집이랄 수 있을까 쳐다보며, 서 있을 때 그런 집들이 목초지 위에 점점이 박혀있는 산에서 온 사내들이다

 

 

 

일요일을, 장날 역시, 모든 것이 파란 색 덧옷과 시골 아낙 복장들로, 길 위에 좁은 큰길에 떼를 지어 다니고 잔물결을 일으키는 그런 때를 클라이스트가 좋아한다. 거기 이 좁은 길 위에, 보도 옆에 둥근 석벽 천장 아래 물건이 쌓이고, 빈약한 판매대에 쌓인다. 잡화상은 살살 구슬리는 시골 목소리로 외치며 값싼 보물로 손님을 끈다. 그리고 보통 그런 장날에는 거기에 가장 환한, 가장 뜨거운, 가장 유치한 태양이 빛난다. 클라이스트는 해맑은 단조로운 시골 사람들 무리에 이리저리로 떠밀리는 일을 좋아한다. 곳곳에 치즈 냄새가 난다. 좀 더 근사한 점방으로 진지하고 때로는 아리따운 시골 여인들이 조신하게 물건을 사러 들어간다. 많은 남자들이 입에 담뱃대를 물고 있다. 돼지, 송아지, 소들이 끌려 어렵사리 지나간다. 멈춰 서서 막대기로 새끼 돼지더러 걸으라고 웃으면서 때리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새끼 돼지가 꼼짝을 앉자 사내는 팔로 안아 나르며 가던 길을 간다. 사람 몸의 냄새가 그들 옷 사이로 걸러 나온다, 여인숙 밖으로 흥청거리는 소리, 춤추고 마시는 소리가 쏟아진다. 이 무슨 야단법석이며, 이 무슨 온통 소리의 자유인가! 가끔 마차가 지나지를 못한다. 말들은 물건을 팔고 한담을 나누는 사내들로 빽빽이 둘러싸인다. 그리고 태양은 정확하게 대상들 위로, 얼굴, , 바구니, 물건들 위로 눈부시게 내리비치며 빛난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눈부신 햇살은 물론 모든 다른 것들과 함께 잘도 잘근잘근 따라 움직인다. 클라이스트는 찬미를 하고 싶다. 그는 그렇게 아름다운 장엄한 음악을 들은 적이 없고, 이런 모든 인간 활동의 음악과 영혼처럼 그렇게 미묘한 영혼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어느 좁아지는 길로 난 계단 하나에 앉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는 걷는다, 치맛단을 높이 치든 여인네들을 지나, 그림에서 본 적 있는 물 항아리를 나르는 이탈리아 여자들처럼 머리에 바구니를 인, 차분하고 거의 고귀한 젊은 처자들을 지나, 소리 지르는 남자들과 술 취한 남자들을 지나, 경찰들을 지나, 학교학생 목적들을 지고 움직이는 학교학생들을 지나, 냄새가 서늘한 그늘진 벽감을 지나, 밧줄, 지팡이들, 먹을거리들, 모조 보석들, , , 모자, , 베일, 담요, 모직 스타킹, 소시지, 뭉친 버터, 납작 자른 치즈를 지나, 요란한 데를 벗어나 아르 강 위로 난 다리 쪽으로 멈추고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대고 늠실늠실 멀어지는 짙푸른 물길을 내려다본다. 그 위로 솟은 성의 작은 탑이 갈색 액화(液火)처럼 찬연히 불타오른다. 이런 모습은 거의 이탈리아 같다

 

일상적인 평일에는 그에게 작은 마을 전체가 태양과 고요에 마법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그는 꼼짝 않고, 번쩍이는 흰 벽에 날렵하게 날짜의 숫자들을 새겨 넣은, 오래된 낯선 시청 앞에 선다, 사람들이 예전이 잊은 노래의 한 가락처럼 모두 아예 돌이킬 수 없다. 살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아니다, 전혀 없다. 그는 목재로 에워싸인 계단을 짚어 오래 전 백작들이 살던 성에 오른다. 목재는 세월과 사라진 인간의 운명의 냄새를 풍긴다. 여기 위에 풍광을 음미하러 그는 굽은 녹색 벤치 판자 위에 앉지만, 눈을 감는다. 모든 것이 아주 끔찍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이, 마치 생명이 떠나버려, 먼지 아래 묻혔다. 가장 가까운 것도 장막처럼 꿈결 같은 거리로 저 멀리 놓여있다. 모든 것이 뜨거운 구름 속에 움츠러들었다. 여름이지만, 대체 무슨 여름이 이렇담? 나는 살아있지 않다, 그는 소리쳐 외친다. 어디로 눈길을, , 다리, 숨결을 돌려야할지 모르겠다. 꿈이로다. 아무 것도 거기 없다. 나는 꿈을 원하지 않는다. 한참 만에 그는 너무 오래 혼자 살았다고 혼잣말을 한다. 어깨를 으쓱하고 자기 주변 세상을 향한 그의 관계가 얼마나 무정한가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그런 뒤 여름 저녁이 저문다. 클라이스트는 높은 교회경내 벽에 걸터앉는다. 모든 것이 눅눅하지만 그래도 후덥지근하다. 그는 셔츠를 벌려, 자유롭게 숨을 쉰다. 그 아래 거대한 신의 손이 바닥에 패대기를 치듯이 호수가 눈이 시린 노랑, 빨강 번갈아 누워있다. 온통 그 빛자락이 저 깊은 호수에서 뻗어 시리도록 내비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호수가 불이 붙은 것 같다. 생명을 얻은 알프스 산등성이 멋드러진 몸짓으로 앞이마를 호숫가에 담근다. 호수 백조들이 저기 아래 조용한 호수 섬을 맴을 돌고, 찬가를 읊조리는 향기롭고 어둑한 환희 속에 잠긴 나무 도가머리가 둥둥 떠다닌다. 어디 위에? 그저 무, 아무 것도 아닌. 클라이스트는 그 모든 것을 들이킨다. 그에게 검게 반짝이는 호수 전체가 금광석이 다닥다닥, 잠든, 거대한, 알지 못하는 여인의 몸 위에 놓인 것 같다. 라임 나무와 소나무와 꽃들이 각자의 향기를 풍긴다. 저기 아래 아스라이, 거의 감지되지 않는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그는 이를 들을 수 있지만 또한 이를 볼 수도 있다. 그건 무언가 새롭다. 그는 만질 수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는 것을 원한다. 호수 아래 보트 하나가 흔들거리고 있다. 클라이스트는 그 배는 보이지 않지만 이끄는 남포등이 앞으로 뒤로 흔들리는 모습을 본다. 거기 그는 앉는다, 그의 얼굴을 그 사랑스러운 깊이의 이미지 속으로 죽음의 도약을 준비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앞으로 쑥 내민다. 그는 그 이미지로 사라져 소멸하고 싶다. 그는 눈만 단독으로 원한다, 오직 단 하나의 눈만 되길 원한다. 아니다, 무언가 완전히 다르다. 공기는 다리일 것이다. 그리고 전경의 전체 이미지는 육감적으로, 행복하고, 나른히 안락하게 기댈 수 있는 의자 등받일 일 것이다. 밤이 이슥하다, 하지만 그는 내려가고 싶지 않다. 그는 덤불 아래 숨은 어느 무덤에 몸을 던지고, 박쥐가 그 주위로 휙 움직이고, 뾰족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공기가 머리맡을 지나자 속살거린다. 풀 냄새가 아주 상큼하고, 묻힌 사람들의 해골을 두툼하게 덮고 있다. 그의 질식, 그의 불모, 그의 비통함이 자리는 곳에 그는 지독히도 행복하고, 너무나도 행복하다. 아주 외롭다. 왜 죽은 자는 누운 자리에서 나와 이 외로운 사람과 반시간이나마 말을 나눌 수 없는가? 여름밤에 사람들은 사랑할 여자들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광택이 이는 하얀 -가슴과 입술의 생각이 클라이스트를 언덕에서 호숫가로, 물속으로 내동이쳤다. 완전히 옷을 입고 웃으며, 울먹거리며

 

몇 주가 지나고, 클라이스는 하나의 작품, , 세 개의 작품을 파괴하였다. 그는 최상의 숙달, 좋고 좋은 기예를 원한다. 그게 무어냐? 잘 몰라? 갈기갈기 찢어라. 새로운 무언가, 더욱 휘몰아치고, 한층 아름다운 무언가. 그는 젬파흐 전투the battle of Sempach를 시작한다. 이 중심에 오스트리아 레오폴드의 조상(彫像), 그를 끌어당기는 기이한 운명을 지닌 인물이 있다. 한편 그는 그의 로베르트 귀스카르트 Robert Guiscard를 잊지 않고 챙긴다. 그는 그가 뛰어나기를 원한다. 그가 보는 단순한 감정들로 현명하게 균형 잡힌 남자가 되는 행운이 산산조각 박살이 나고, 그의 삶을 산사태로 무너뜨리는 바위처럼 콰당, 덜커덩 부딪친다. 그는 그럼에도 그를 거들고 이제 그는 의연하다. 그는 시인이 되겠다는 오롯한 파국에 정신없이 빠져들고 싶다. 최상의 일은 그가 가능한 한 빨리 파괴되는 일이다

 

그가 쓴 글월에 그의 이맛살을 구긴다. 그의 창조는 무산되었다. 가을로 접어들자 그는 병에 걸렸다. 그는 지금 그를 덮치는 온화함에 놀란다. 그의 누이가 그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툰으로 여행 왔다. 그의 볼에 깊은 고랑이 패어있다. 그의 얼굴에는 영혼이 좀먹은 이의 표정과 색채가 떠돈다. 그의 눈은 그 위로 내려뜨린 눈썹보다 더욱 생기가 없다. 그의 머리카락은, 꼬질꼬질한 구렁텅이로 그리고 지옥으로 끌고 가던 모든 그의 상상들로 일그러진 관자놀이에 굵고 삐죽빼죽한 타래로 엉켜 늘어졌다. 머릿속을 텅텅 되울리는 시구는 큰까마귀가 까악까악대는 소리 같아서 그는 차라리 그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진다. 그는 그의 삶을 저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먼저 그의 삶을 껍질들을 산산조각 내버렸으면 한다. 그의 분노는 그의 극에 달한 지통에 격분을 하고 그의 경멸은 정점에 달한 궁핍에 격분을 한다. 오라버니, 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누이가 그를 감싼다.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냐. 그게 최대로 잘못 된 일이다. 그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말을 해야만 한다. 그의 방 마루에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끔찍하게 버림받은 아이처럼 그의 원고들이 놓여있다. 그는 손을 누이의 손에 올리고 흡족하게 그녀를 오랫동안 말없이 쳐다본다. 이미 해골 속의 텅 빈 눈길이로구나, 젊은 처자는 오싹 몸을 떤다.

그런 뒤 그들은 떠난다. 집을 돌보던 시골 계집은 클라이스트에게 작별의 인사를 한다. 밝은 가을 아침, 마차는 다리 위를 구르고, 사람들을 지나, 대충 회반죽을 바른 도로를 따라, 사람들이 창밖으로 쳐다보고, 머리 위로 하늘이 있고, 나무 아래 누런 나뭇잎이 드리우고, 모든 것이 깔끔하고, 가을빛으로, 또 뭐? 그리고 마부는 담뱃대를 그의 입에 물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함없이 예전 그대로이다. 클라이스트는 마차 귀퉁이에 맥없이 앉았다. 툰 성의 탑이 언덕 위로 사라진다. 나중에, 아주 멀리서, 클라이스트 누이가 다시 한 번 아름다운 호수를 볼 수 있겠지. 이미 꽤나 쌀쌀하다. 시골 대저택들이 나타난다. 그래, 그래, 그런 가파른 산골에 그런 웅장한 영지가? 계속 되고 계속 된다. 모든 것이 곁을 쳐다보면 빠르게 날아가고 뒤로 처진다. 모든 것이 춤을 추고 빙빙 돌고 사라진다. 많은 것이 이미 가을의 면사포 아래 숨었고 모든 것이 구름들을 뚫고 나온 작은 햇살 속에 작은 금빛이다. 그런 황금으로, 얼마나 거기 일렁이고 있는지, 오직 먼지 속에서 발견되지만 여전히. 언덕, 벼랑, 골짜기, 교회, 마을, 쳐다보는 사람들, 어린이들, 나무, 바람, 구름, 그저 그런 쓸데없는 소리들, 이 모든 것이 어디 남다른가? 모두 허접에 일상적으로 번다한 것들이 아닌가? 클라이스트는 아무 것도 보지 않는다. 그는 구름을 그리고 이미지를 친절하고, 살짜기, 마음 달래고, 보듬는 인간적인 손을 꿈꾸고 있다. 기분이 어때? 누이가 묻는다. 클라이스트의 입술이 오므라진다. 그는 누이에게 작은 미소를 내다보이고 싶다. 간신히 그는 하지만 애써 성공을 한다. 마치 미소를 머금기 전에 들어 올려야할 한 덩이 바위를 입안에 문 것 같다.

누이는 조심스럽게 용기를 짜내어 오래지 않아 무언가 실재적인 활동을 취하여야 한다는 말을 꺼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자신도 같은 의견이다. 음악과 환한 빛의 줄기가 그의 감각 언저리에 깜박거린다. 사실 그가 상당히 솔직하게 스스로 인정을 한다면, 그는 지금은 상당히 몸이 가뿐하다.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기분이 좋다. 무언가 그를 괴롭힌다. 그래, 진짜, 아주 정확히는 그렇지만 가슴 속이 아니라, 폐 속 역시 아니라, 혹은 머릿속이, ? 아무 데도 아니라고? 글쎄, 그다지 아니 되나, 조금은, 그러니까 어딘지 콕 집을 수 없는 어딘가에. 말인즉슨, 말로 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그런 뒤 노골적으로 아이처럼 행복한 순간들이 오고, 그리고는 물론 젊은 처자가 그냥 몹시 기이하게도 얼마나 그가 자신의 삶을 노닥거리며 다니고 있는지 조금 보여주려고, 다소 심각하고, 엄한, 질책의 얼굴을 해 보인다. 저 아이는 천생 클라이스트라, 그녀의 오라비가 없애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분야, 교육을 흡족히 누렸다. 내심 그녀는 그가 기분이 나아지고 있어서 당연히 기쁘다. 계속 되고 계속 된다, 좋아 그래, 참으로 가뿐한 여행이로고. 하지만 마침내 여행길을, 이 승합마차를 떠나보내야 하고, 그래야, 최후로 클라이스트가 살았던 빌라의 정문 위에 거기 누가 거기 살고 일하고 있는지 가리키는 대리석 명판이 걸리는 일의 목격도 허용할 수 있게 된다. 알프스 산지를 관광하려는 여행객들은 이를 읽을 수 있다, 툰의 아이들은 읽고 또박또박 한자 씩 한자 씩 읽어 내리고는 의문에 잠긴 눈으로 서로서로 쳐다본다. 유태인도 이를 읽을 수 있고, 시간이 있다면, 기독교인이라도 읽을 수 있고, 바로 그 순간 타야할 기차가 떠나지 않는다면, 터키인도, 제비도, 흥미가 있다면야, 나 역시, 내가 내키면 다시 이를 읽을 수 있다. 툰은 베른 오버란트(스위스 남서부 산맥) 초입에 서있고 수천 명의 외국인이 매년 방문한다. 나는 아마 거기 맥주 공장 직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 지역을 조금 안다. 그 지역은 지금 여기서 내가 묘사할 수 있는 것보다 엄청 아름답고, 호수는 곱절은 파랗고, 하늘은 세 곱은 더 아름답다. 툰은 견보시도 연 적이 있는데 언제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 4년 전이었던 것 같다.

 

Kleist in Thun, 1913

 

로베르트 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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