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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짓, 헛짓/Robert Walser

헬블링 이야기 II

by 어정버정 2023. 4. 15.

2031-7-14

 

 

나는 인간성에 관련된 거대한 이상에 열중하는 일이 맞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내 기질은 열정적이기 보다 비판적인 편이니까요. 이 점은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긴 머리카락에, 벗은 발에 샌들, 둔부 주위의 맨살에 앞자락, 머리에 꽃을 꽃은 이상적인 사람과 마주치면 격하된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입니다. 나는 그런 경우들에 난처해서 미소만 짓습니다. 큰 소리로 웃는 일은 사람들이 분명 가장 할 가능성이 큰일이건만 불가능합니다. 또한 나처럼 매끄러운 머리카락의 머리를 혐오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 살다보면, 웃음소리보다는 짜증의 원인이기도 하는 게 사실입니다. 나는 성내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항상 살짝궁만 건드려도 성이 돋습니다. 나는 자주 빈정대는 발언을 하긴 하지만 분명 다른 사람에게 악의적으로 굴 필요는 거의 안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이의 경멸로 속이 상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아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관찰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배우지 않고, 내가 학교를 떠나던 바로 그날처럼 행동을 합니다. 내 속에는 상당 양의 학생이 있는데, 아마도 생애 내내 지속적인 동반자로 남아있겠죠개선의 여지를 전혀 지니지 않았거나 다른 이들의 행동에서 배우는 재주는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들 합니다. 아니요, 저는 배우지 않습니다. 내 존엄성보다 못한 교육에 대한 충동에 항복하는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나는 내 손에 우아하게 지팡이를 쥐고 다니고, 넥타이를 매고,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쥘 정도로, 그리고 누가 물으면, “감사합니다. 어제 저녁은 아주 근사하였습니다.”하고 답할 만큼 이미 충분히 교육을 받았습니다. 교육으로 나를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솔직히 나는 교육은 상당히 잘못된 사람을 낳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돈과 안락한 직위를 좋아합니다. 그게 내가 교육에 대한 욕구입니다. 나는 광부에 비하자면 몹시도 우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광부라 해도, 혹시 그러길 원하다면야 그 사람 왼손의 검지를 가지고 홱, 땅 속의 구멍으로, 에라이 너도 검댕이나 묻어봐라 튕겨 넣을 수 있겠지만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힘과 수수한 차림 속의 아름다움은 제게 어떤 인상도 주지 못합니다. 나는 그 같은 사람을 볼 때, 우리 같은 잘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우위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데 그런 일로 지친 바보와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는가, 항상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연민도 마음속에 끼어들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어디에다 두어야 할까요? 내가 지녔던가는 잊어버렸습니다. 분명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비애를 느끼는 일이 적절한 일인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돈을 잃었을 때나, 혹은 새로 산 모자가 잘 맞지 않을 때나, 혹은 증권 거래소에서 보유 주식을 떨어질 때만 비애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럴 때도 그 일이 비탄스러운지 아닌지 물어야만 하고, 좀 더 면밀히 살펴보니 그렇지 않으면, 이는 그냥 바람처럼 사그라져 가버릴 순식간의 유감일 뿐입니다아닙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이런 식으로 아무 느낌도 없는 것은, 감정이 무엇인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는 일은 기막히게 낯선 일입니다. 자신의 사람을 염려하는 감정은, 모든 사람들은 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체적으로 인간성과 결부시키면 뿌리부터 비열한 것들, 뻔뻔한 것들입니다. 허나 특정한 누군가에 대한 감정은? 물론, 사람들은 이런 일을 때때로 자문을 하곤 하고, 사람들은 좋은, 순종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람이 비슷한 감정을 조금 느껴요. 하지만 어떻게 해낸단 말입니까? 어쩌면 아침 일곱 시에, 혹여라도 다른 시간에? 이미 금요입니다. 바로 뒤따라 토요일로, 일요일에 무얼 할까, 고민해야 하는 토요일로 이어집니다. 일요일은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하니까요. 나는 혼자 산책을 나가는 일은 드뭅니다. 보통은 젊은 사람들 틈에 끼입니다. 다들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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