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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짓, 헛짓/Lost classics

Doctor Glas

by 어정버정 2023. 4. 16.

2013-3-14

마가렛 앳우드 글라스 의사 -얄마르 쇠더르베리

Margaret Atwood Doctor Glas Hjalmar Söderberg

 

나는 열린 창문에 글을 쓰며 앉아있다. 누구를 위해 ? 친구나 애인은 아니다. 나 자신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어제 쓴 글도 오늘이면 읽지 않는다. 이 글 역시 내일이면 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 손 가는 대로, 내 생각이 그에 부응하여 움직이도록 쓰고 있다. 나는 잠 못 자는 시간이나 이려고 쓰고 있다. 나는 왜 잠을 잘 수가 없나? 어쨌거나, 나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이 짧지만, 놀라운 소설은 몇 해 전 스웨덴 친구들이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스웨덴 번역본 책들을 찾아서 중고서점에서 뒤적이다 발견하고 보낸 책이었다. 그들 판단이 딱 맞았

글라스 의사 1905년에 처음 출판되어 그 당시에 스웨덴에서 상당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물의를 일으키는 두 가지 항목 성과 죽음을 다루는 있다는 까닭이 아니었을까, 군다가, 하위항목인 낙태와 안락사까지 다루었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판본은 1963년 번역본을 재발간한, 1970년도 다 해진 문고판이다, 이 책을 기초로 만든 영화와 시기를 맞춰 아마 출판 된 모양이었다.  여담이지만 마이 세테를링이 영화의 감독이었다. 책의 뒷면에는 옵저버, 가디언, 선데이 텔리그래프, 글래스고우 헤럴드 등의 명작이라느니, “올해의 가장 탁월한 소설,” 등등 다양한 찬사가 빼곡하였다. 그럼에도, 내가 아는 한에서 글라스 의사는 적어도 영어판은 절판된 지 오래다.

글라스 의사의 서술자는 글라스 의사이다. 이 의사는 서른 남짓한 남자로 우리 위선적인 독자(hypocrites lectuers)들은 그가 작성하고 있는 일기를 어깨 너머로 훔쳐본다. 우리는 그의 일기 속 아주 비범하지만 무기력하게 만드는 익숙한 목소리가 전하는 반추, 얼버무림, 자아의 맹비난, 지루함, 아쉬움, 시구 같은 찬미 혹은 날씨에 대한 성마른 맹비난을 따라간다. 어느 낭만적인 이상주의자는 외로이 씁쓸한 사람으로 바뀌어, 세기말적인 병폐로 고뇌하고, 다윈과 의무의 생각으로 고단하고, 보들레르와 현실도피를 고민하고 사랑과 행동에 대한 갈구, 나이에 비롯된 회의적인 무력감으로 괴로우며, 다른 사람과 사람에 빠진 여자들 말고는 사랑에 빠질 수 없으며, 단속적으로 의식하고 있지만, 그 자신의 무의식으로 들끓으며. 그의 성(Glas)이 암시하는 것처럼 솔직한 투명성과 나르시시즘 둘 다 제공한다. 

그렇다 해도 가운데 이름이 가브리엘이 그냥 우연이 아닌 듯, 그는 진료소에 도움을 호소하며 찾아온 어느 아름다운 여성의 생명의 천사 역할 유혹을 받는다. 결혼에 수반되는 일에 무지하여, 여자는  존경스럽지만 도덕적으로 육체적으로 징그러운 성직자에게 팔려가듯 떨이로 시집을 갔다. 그녀가 글라스에게 원하는 도움은 이 트롤같은 인간의 성적인 관심에서 벗어나는 일이었고, 그녀는 몸서리치게 이런 관심이 싫다.-특히 그녀가 다른 남자와 정사를 벌이고 있기에  글라스 의사는 그녀를 측은히 여기고 그녀를 위해 거짓말로 병을 지어내고 그녀를 돕기 위해 남편에게 거짓말을 한다. 이와 같이 일은 시작된다.사는 물론, 생명의 천사이기도 하지만 죽음의 천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의사들은 이런 역할의 자리에 아주 편리하게  맡기게 되나보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스포일러라서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세 겹의 매듭으로 묶인 정교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글라스 의사는 뒤숭숭한 특정 꿈들은 그렇듯이, 혹은 우연찮게도,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들처, 분명 그도 이 책을 읽었겠지만, 그렇듯이 깊숙이 마음을 뒤흔들고 불안하게 만든다. 책은 추악함에서 지극히 평범함으로, 불안하게 비현실로, 경제적이며 인상적인 스타일의 몽상으로 옮아간다. 몇 년 만 일찍 나왔더라면 이 책은 결코 출판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몇 년 만 더 늦게 나왔더라면, 의식의 흐름의 전신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세기의 발단에, 이후로 우리 죽 열어가고 있는 문을 열고 등장한 책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열린 창문 앞에 앉아 까무락대는 촛불 옆에서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석유램프를 만지는 일은 질색이고 가정부는 나로서는 깨울 엄두가 나지 않게 장례식 커피와 케이크를 먹은 뒤 너무나도 달콤하게 자고 있다.- 지금은 촛불이 외풍에 펄럭이고 내 그림자가, 마치 다시 살아나려는 몸부림치는 것처럼, 벽지위의 불꽃처럼 전율을 하고 펄럭거리자, 나는 이제 한스 안데르손을 생각을 하고 그림자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니 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던 그림자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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