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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짓, 헛짓/Lost classics

Malina

by 어정버정 2023. 4. 18.

 

2015-3-15

로버트 보이어스

말리나 잉게보르크 바흐만

 

Robert Boyers Malina Ingeborg Bachmann

 

거의 십년 동안 나는 아직 출판은 되지만 영어 사용 국가에서 거의 아무도 읽지 않고 있는 책을 추천을 하고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은 서점에서도 구할 수 없다. 캠브리지도, 매사추세츠도, 그리니치빌리지에서도 구할 수 없고, 토론토나 버클리, 캘리포니아에서도 구할 수 없다.  잃어버린 고전 1973년 사망한 오스트리아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말리나라는 소설이다. 기억하는 이들도 단편과 시인으로 기억할 작가이다. 

말리나 이름 없는 여인이 서술하는 일인칭 소설이다. 무명의 여인은 적지 않게 미친, 적지 않게 뛰어난 작가이며, 말리나라는 한 남자와 별 특징 없는 비엔나 골목 어딘가에 살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녀의 한때 애인 이반의 주소이기도 하다. 자신에 대해 말을 하더라도 어디 하나 어떻게 지금의 그녀가 되었는지 또렷하게 설명해주지 않지만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그녀의 문제들은 남자들과 많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부추긴다. 소설의 색다른 점, 세련된 점, 새삼스럽게 놀라운 특질은  독서로 얻을 수 있는 그런 편안을 우리로 하여금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름 없는 여인이 아버지, 그녀의 어깨를 물었던 애인 같은 특정 남자들 혹은 다양한 가부장적인 관습들-언어, 우편 제도, 만연하는 폭력의 공포들 낱낱들의 희생자라고 암시가 역연하지만, 자신의 현재  상태에 누군가 분명히 지목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일차원적인 비인격적인 요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아니 적어도 오랫동안 그러지 않는다는 다른 암시들도 엿보인다. 그 여자 자신이 파시즘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에서 첫 번째 일이다라고 말을 하면서, 재빨리 그녀는 우리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그녀는 하고 있는 말에 전적으로 전념, 몰두하지 않으면서 많은 다른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녀의 주장은 종종 아주 광범위하고 히스테리컬해서, 아주 과장을 하고 어떤 단서들이 없어서, 그녀가 우리더러 그것들을 믿으라고 의도했던가 그 의도의 추측도 불가능하다. 그녀가 진실로 남자들은 질병이라고 믿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녀는 또한 특정 남자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말리나라는 이름의 남자가 한결 같이  어떻게 자신을 방어하는 게 최선인지 어떻게 자신을 방어하는 게 최선인지 충고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그렇게 놀랍지가 않다. 남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의 위약감과 희생의 끈질긴 망상에 대항하여 충고를 준다. 

말리나는 쉬운 책이거나 편한 책이 아니다. 책은 이례(異例)와 고충으로 만연하다. 패러독스와 히스테리아 천지이다. 긍정적이 되겠다, 심술궂은 악의를 포기하겠노라 결심을 하면 그 자신의 쓰라린 감성들을 불신하고 다소 어쩔 수 없이, 자포자기한 사람과 고발자가 복합된 소설의 특징적인 어조로 되돌아간다. 가끔 우화적이거나 현실 도피주의적이지만, 소설은 보통은 종말론적이며 예언적인 경우가 잦다.

말리나를 페미니스트 소설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 문학 평단이 그렇다.  대부분 우리가 이름을 댈 수 있는 여성에 대해 토로하는 소설보다 더욱 괴벽하고 도발적인 면모가 분명 있다. 하지만 이는 어떤 입장도 떠받치고 있지 않고 명석한 독자들이라면 의존할 수 있는 이념적인 전제를 제기하지 않기는 하다. 바흐만은 책에서 보편적으로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할 의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등장인물은 남자들이 하는 일을 남자들 탓으로 돌리고 있고 수용을 하고 고통 받는 경향도 여자들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책은 좌절한 꿈들과 각종 범주의 감각의 폭행으로 가득 차 있고 이런 특정 여성의 비정상적인 경험의 특징, 명약관화한 그녀의 인식의 비신뢰성을 확고히 보여주는 소설 속 흥미진진한 구절들이 들어있다. 바흐만이 그녀의 이름 없는 주인공이 일반적인 여성들을 대변해 말을 할 의도였다면, 궁금하다. 왜 그녀는 굳이 애써 그녀의 발작적이며, 역겨운, 그녀의 세상의 평범하고 위로를 주는 관계에 참여할 수 없는-결코 안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인물로 만들어 낸단 말인가?

물론, 말리나 같은 소설에는 어떤 쉬운 대답이나 특정 해답은 없다. 바흐만은 비록 그녀가 자신의 수면 위로 부유하려는 본능조차 의심하고 있긴 해도 그 자신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느끼고 어떻게든 매달려 있기를 바라는 개인의 파괴적인 자기의심으로, 흉포하게 글을 쓴다. 그녀의 이름 없는 여자는 그녀가 만지는 모든 것을 조롱 혹은 통렬한 불신감 하에 둔다. 그녀가 짧지만, 그럴싸하게 자신이 만족스럽다고 상상할 때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행복, 행복,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불합리하게 하는 말이므로 불가능하며 백치 같이 망상적인 생각이다. 쾌락이 동시에 고난과, 친밀함이 의존과 관련이 있듯이 자유에 대한 모든 생각은 즉시 예속의 전망과 관련이 있다. 그녀의 친구/애인/보호자/고문자 말리나는 그녀에게 가장 겁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다시 말해서 가장 강력하고 전지전능하기 조차 할 때, 그는 또한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을 그녀에게 줄 것 같은 사람이다. 혹시 있다면, 용기를 북돋는 일은 여기는 오직 전쟁만 있다 혹은 새로운 스타일의 몸부림을 그냥 배워라 혹은 당신은 이제 앞으로 갈 수도 뒤로 갈수 없다.”처럼 보통은 위협을 보여주는 형태로 혹은 적어도 오래 끄는 고통의 형태로 튀어나온다,

이런 공식 같은 체계적인 서술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깊게, 딱 공식들이 의도했던 것처럼, 겁도 주고 위로도 주는 양면의 모습으로, 망상에 기초하여 가득한 희망들을 깡그리 일소를 하기 때문에 겁을 주고, 그런 서술들이 고심을 하는 사람의 한 가지 이해를 그렇게 전적으로 얻어낼 수 있어서 위안을 주며 다가오는지 생각하면 몹시 놀랍다. 이름 없는 여자는 그녀의 많은 시간을 현재의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으로 보냈고 세상과 남자들과 전 세계적인 매춘과 평정을 얻는 데 그녀 자신의 실패에 대해 그녀 자신을 비난을 했었다. 가장 명료한 순간에는 그녀는 그녀에게 적어도, 가짜라는 것을 알고 적어도 그녀에게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줄 안다. 희망은 때로 절망처럼 보인다는 것, 의지를 바랄 수 없는 데는 적극적인 의지를 중단하는 능력은 종종 분별의 복구와 기운의 회복에 가장 중요한 단계라는 점을 바흐만의 소설이 암시하는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이런 발견들 속에는 전혀 계획적이거나 치료적인 일은 없지만 그들은 순수한 폭로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일부 사랑 이야기”, 일부 탐정 소설” “서사시”, “오페라 그리고 어느 영악한 비평가가 평하였듯이, “정신분석학적 사례 연구 말리나는 오롯이 풍성하고 골머리가 아픈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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