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 소리가 들렸다고, 내가 그녀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종이 하나가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이를 떼어 내었다. “내 삶의 빛, 내 심장의 장미, 내 사랑 내게서 멀리 떨어져 갇혀 있는 당신,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요. 당신의 아름다운 표정 풍부한 얼굴을 보면 나는 우리가 하나임을 압니다.” 이건 나를 위한 건가? 아 아니다. 로젠버그 편지들. 맞다. 그 목소리는 상상했던 모양이었다. 내 목소리였는지도. 나는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했구나. 나는 몹시 지쳤다. 정말 기나긴 하루였다. 위기 회담들, 세계 긴장들, 상원에서 의장직 수행, 엉클 샘에 대한 공포, 전화호출, 로젠버그 사건. 이 엉망인 상태를 얼른 치우고 집에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일 누가 날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패트가 있는 집으로, 아이스박스, 아이들. 그냥 정리만 된다면. 이런 엉망진창 상태를 내일 여자직원들 보라고 내버려둘 수 없었다. 누군가 감옥에서 줄리어스가 토마스 울프의 당신은 다시 집에 갈 수 있다를 읽었다고 하던 말이 기억난다. 어쩌면 그의 편지 중에 하나에 직접 언급했는지도 모르겠다. 웃기는 인간 줄리. 대단한 집이다: “쥐와 해충들과 끝도 없는 전투는 여전히 마음속에 생생하다.” 공평하자. 그건 그가 아이였을 적 집이었다. 나는 내 발부리에 걸려 비틀거렸고 회전의자로 넘어져 그 안에 세차게 나가떨어졌다. 나는 사건에 대해 금방 했던 생각들을 재구성해보려 노력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희미한 느낌의 어두운 복도, K1C3 선거 캠페인 공식, 무언가 매니 블로크와 FBI에 관한 것만. 그가 비밀요원이었다는? 아니, 불가능했다. 그의 귀가 너무 멀리 튀어나와 있었다. 그렇게 튀어나온 귀를 하고서 FBI에 들어갈 수 없다. 잘못된 종류의 코 역시. 요원이 되려면 크고, 탄탄한 체격, 깊은 목소리, 젊은 사업가처럼 보여야 하고 개버딘 외투와 스냅브림 모자를 써야 했다. 공화당원, 가톨릭인 혹은 원리주의자, 전직 장교나 변호사라면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입을 닫고 껌을 씹는 것도. 책상 어딘가에 껌이 있나 의문이 들었다. 아니면 초콜렛바라도. 나는 서랍들을 뒤적거렸다. 나는 초콜렛바로만 먹고 살 수 있었다. 줄리어스 로젠버그도 사탕을 좋아했다. 네 살일 적 할머니 집으로 가던 길 사탕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형을 졸라 페니 동전을 얻어 사탕 가게로 거리를 가로질러 달렸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지나는 택시의 옆면에 충돌했다. 그는 치료받은 뒤에 괜찮았지만, 그 충격에 어머니가 아기를 조산하게 되었고 아기는 죽었다. 아메리카가 한 명 원자 스파이만 낳고 거의 그 비밀을 지킬 뻔했다. 단 것을 좋아하느라.
이 에피소드는 내게 큰 인상을 남겼는데, 나도 하마터면 어려서 죽을 뻔했기 때문이었다. 고용된 여자애가 무릎에서 나를 떨어뜨려 사륜 마차의 철제 바퀴 아래 들어갔다. 내 머리를 치었고 머리가죽이 갈려 벌어졌다. 나는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25 마일을 이웃 자동차를 타고 실려 갔고 열한 바늘 머리를 꿰맸다. 나는 사륜마차에서 떨어지는 일도 기억나지 않았고, 병원일도 하나도 혹은 어머니가 겁먹던 일도 기억나지 않았고, 기억나는 건 그 자동차 좌석을 씌운 싸개였다. 퀴클리라고 이름의 사람들이 소유한 차로 요바 린다에서 유일한 자동차였던 것 같다. 우리는 엄청 대단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여전히 그 흉터를 지니고 있었다-앞이마에서 뒷목덜미까지 죽-하지만 가르마를 그 위로 타서 거의 보이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 모두들 내가 죽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내 밑에 남동생들이 대신 죽었다. 만약 동생들이 살고 내가 죽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궁금했다. 상상을 해봐도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또한 내 책상에 먹을거리 찾는 일도 불가능함을 알았다. “시발,” 투덜거렸고, 마지막 서랍을 쾅하고 닫고서 의자에 축 늘어졌다. 나는 이 말을 다시, 좀 더 진심으로 말하기 시작했지만 갑자기 나는 엉클 샘이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까 두려웠다. 나는 여전히 이 일에 익숙해지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리고 이를 남은 생 내내 수용하고 살아야 하리라, 알았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치러야 할 희생들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다. 는다. 스매터스처럼 그냥 엄청 부자가 되거나 해군 제독이 되거나 유명한 극작가나 그런 인물이 되면 행복하겠다 바라던 때가 있었는데.
나는 지금 당장 아이스크림 콘 하나만 있어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비프샌드위치. 한 조각 초콜렛 케이크. 휘티어 거리에 떨어진 저들 더러운 대추 한 알이라도. 다른 아이들은 이들을 집어 올리기도 했고 먹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땅에 떨어진 것을 먹는 일은 더럽다고 해서 나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커다란 씨앗이 들었고, 과일이라고도 거의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꺼이 한 알 먹겠다. 아마도. 에설 로젠버그는 어린 소녀였을 때 10센트 아이스크림 소다를 사곤 했다고 나는 읽었다. 로우어 이스트사이드에 있는 마치오니 가게라는 곳에서였다. FBI 는 아마 그 장소 잠복감시를 했을 것이다. 혹은 아마 지금은 사라졌거나. 나는 때 묻은 창문에 바퀴벌레들이 벽을 기어오르고 있는 어두운 장소를 상상했다. 아마 소다도 형편없을 터이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다처럼 아주 크림 풍성하고 진하지도 않을 것이고. 여기 동부 변방의 사람들은 음식에 아주 오만했지만 음식에 괸해서는 개뿔도 알지 못한다. 내 입맛을 조롱하고 나를 고직하다고 부르는 통상 경향이 있지만 어떻게 먹는지 진짜로 아는 우리 시대 얼마 안 되는 미국인들의 한 명임을 역사가 보여주리라.
나는 아무튼 음식과 자랐다. 아버지 과수원에서 난 것들, 그런 뒤 가족 가게에서 난 음식들, 식료품을 배달하고, 농작물을 사고, 고객들과 음식들과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해롤드가 병에 걸려 엄마가 애리조나로 한 두어 해, 휘터어에 나머지 가족들은 홀로 남기고, 해롤드를 데리고 갔을 때, 나는 엄청 많은 요리를 했다. 통조림 칠리, 스파게티, 돼지고기와 콩, 수프로 된 끔찍한 저녁들을 잽싸게 만들고 계란 후라이와 감자 튀김도 배웠다. 지금 당장 돼지 콩요리 통조림 하나 다 먹을 수 있다-차가워도! 스읍. 마요네즈 결들인 서부 요리. 바나나와 휘핑 크림 올린 젤-오. 구운 흰 마쉬멜로가 든 치킨 샐러드. 코크 플로트(아이스크림 뜬 콜라). 하지만 내가 가진 건 다만 또 다른 제산제여서, 나는 이를 먹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재판에 조금 법석이 일었다. 골드와 그린버그 사이에 인식 신호로 사용이 된 찢어진 젤-오 상자의 맛에 관해서: 라즈베리. 라즈베리? 아마 이는 FBI 안에서 쓰는 농담일 지도 몰랐다. 저들에게 라즈베리(야유) 주어라(giving them the old raspberry). 맛은 당연히 붉은색이리라. 나는 항상 라즈베리 젤-오를 좋아했다. 이 인스턴트 제품이 이제 시장에서 빠지지 않기를 나는 바랐다. 패트가 진짜 잘 만드는 요리 중의 하나였다. 그녀는 어머니처럼 파이를 잘 굽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붙어 다니던 동안, 그녀는 가게에서 팔 파이 굽는 엄마를 도우곤 했다. 때로 패트가 나보다 엄마와 더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장모님은 어릴 때 돌아가셨고 패트는 겨우 열셋에 집안의 모든 잡일을 완전 책임졌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일을 돌봤다. 그래서 그녀는 부엌에서 아주 편안히 잘해 냈다. 그녀가 엄마와 파이 만드는 지켜보는 일은 아름다웠다. 그녀는 틸리 더 트와일러(코믹 이름)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나는 충실한 맥이었다. 다만 훨씬 더 똑똑하지만.
나는 여자아이들 많이 알았지만, 잘 알지는 못했다. 나는 그들 숙제를 도왔고 그들과 위원회 일원으로 일했고, 그들에 맛서 토론을 했다. 하지만 패트 이전에 꾸준히 간 여자친구는 한 명뿐이었고-올라-그녀는 제대로 알아주지 않았다. 내가 알던 거의 모든 여자와 애무하며 살갑게 지내길 원치 않은 것 아니었다. 아니다, 이미 여덟 혹은 아홉 살 때부터, 어쩌면 더 이른 시기에 이를 원했고 날이 갈수록 여자아이가 학교 복도에서 급수관에 허리 숙인 엉덩이에 혹은 영화관에 나를 스쳐지나갈 때 손을 뻗어 엉덩이를 쥐고 싶은 마음을 다잡기 어려운 시절들이 있었다-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바로 말을 붙일 수도 없었고, 엉덩이 잡는 일은 더더욱 못했다. 나는 그저 그런 일을 성취하기 전에 내가 아는 모든 어리석은 말들을 먼저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게 내 문제였다. 부분적으로 또한, 물론 부끄러움을 탔다-나는 이런 밀하우스(닉슨의 중간이름) 얼굴을, 아주 심각하고 재미 하나 없는 책 좋아하는 인물의 모습을 가졌고, 이를 어떻게 에둘러 해결할지 몰랐다.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지만 나는 실제 더욱 열심히, 신체적으로 더 열심히, 미소짓도록 애를 써야 했다. 사람들은 내가 미소짓는 일을 미용체조 같다고 농담했지만 진짜 농담 아니었다. 항상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처럼 미소짓는 얼굴로 태어난 인물을 질시했다. 나는 태어난 날 설교가처럼 보였다. 음울한 거스, 나를 그렇게 불렀다. 아마 이런 이유로 포스터 덜레스와 나는 잘 어울려 다녔는지도 몰랐다. 그런 만큼 여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들은 내 머리와 리더쉽에 존경했지만 나와 차 뒷좌석에 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는 새러 B. 듀크 정원에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때로 이에, 여자를 우정어린 존경의 감정 이상으로 흥분시키지 못하는 무능에 화가 치밀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무모해지곤 했으나 항상 실망스러웠다.
그러다 패트가 등장했다. 나는 듀크에서 승려처럼 살고 있었고 휘티어 집도 별 다르지 않았다. 그날 밤 리틀 극장 시험공연에 패트를 만날 때까지 수 년을 여자와 키스조차 하지 않았다. 거기 그녀가, 잭 드라운이 내게 “아주 멋진 빨강머리!”라고 보증했던 모습과 꼭 같은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이제껏 꿈꾸던 모든 여자들을 모아놓은 여자였다. 그녀는 고아, 학생이었으며, 뉴욕 비서, 병원 기술자, 웨이트리스, 사서, 영화 엑스트라 그리고 판매원이었다-그리고 그녀는 아름답고, 근면하고, 인기 좋고 더군다나 아일랜드 혈통이었다. 이건 운명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녀를 만난 날 밤에, 내게 강림한 성탄절과 동창회 그리고 새해의 성령에게 나는 청혼했다. 이런 일 했다고 하자, 많은 이들은 영 믿으려 들지 않았고 이에 대한 수많은 어리석은 해석을 했다-패트조차 내가 농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혹은 무슨 미치광이라거나. “그저 그를 쳐다만 봤던 거 같아요-그런 말을 그렇게 뜬금없이 없이 하는 사람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하지만 내게 훤히 펼쳐지고 있는 패턴, 내 삶의 이정표,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의 일부였다. 패트는 그녀 아버지-고래잡이, 측량사, 탐사자, 세상 여행자-처럼 진짜 모험가를 찾고 있었다. 그녀 아버지는 다코타에 두 아이가 딸린 가난한 과부와 마침내 결혼했고, 네바다에 광부로 정착해 셋을 더 낳았으며, 패트가 막내였다. 그녀는 내가 그녀가 찾고 있던 모험가임을 깨닫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우리 만난 말 그날 밤 이후 수많은 이들과 데이트 다니며, 서두르지 않는 방식을 찾아야 했고, 한편 나는 내 역할을 행하며 끈기 있게 기다렸다. 나는 올라와 그랬듯이, 어떤 뒷무대 돌진을 가장하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엔딩을 읽었으니까. 나는 때로 패트를 다른 데이트에 데려다주었다. 그 당시에 상관없었다, 무슨 일을 치러야 할지 알았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일이 년 후에, 일이 벌어졌다. 1940년 6월 18일, 그녀는 내가 연극 속에 하던 인물과 너무 많이 동일시하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그런 뒤-나는, 내 말은 6월 21일에. 내가 그녀를 본 이후로 하려던 말을 막…신경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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