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by Joseph Decker - Artv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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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말하고 있었더라? FBI, 간첩단 찾아 집어냈다고, 아니 적어도 아주 접근했다고 아마 확신했던 이들은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부족해, 이 모든 사람들 팔을 비틀어 폭탄-절도 음모를 꾸며내기를 강요하였던가? 거의 그럴 가능성 희박하지만 모든 연결들이, 이번처럼 거꾸로 걸어 따라가면 (사실 나는 손과 무릎으로 내려앉아 기어서 이 서류들 따라가고 있다) 어떻게 맞물리지 않고 끊겼다. 골드가 진짜 푸크스의 운반책이었다고 가정하면, 예를 들어, 소련은 아주 정신이 홀딱 나가서 골드를 그린글래스 플랫에 보내 이 연결을 위태롭게 할 위험을 무릅쓰겠는가? 러시아인들에게 푸크스는 생시냐 싶은 꿈과 같은 존재였다-그는, 말 그대로 그들이 필요했던 거의 전부였다. 그린글래스는 그에 비하면 순 어리석음과 지나친 열성으로 모든 것을 망쳐버릴 수도 있는 아둔배기 YCL(청년공산당연합) 부대 돈만 노리는 꼬마일 뿐이었다.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그는 FBI가 심은 첩자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어쨌거나, 로젠버그가 이에 가담했다면, 그들은 골드가 거의 필요하지 않았고, 데이비드가 그들을 위해 구해다 준 뭐든, 줄리어스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FBI 같은 곳에 쏟아지는 압력을 나는 잘 알았다. 각 부서는 그들 예산과 봉급의 명분을 증명해야 했고 각자 그 자신의 진급도 생각해야 했다. 로젠버그 부부가 유죄라고 상정하고(그리고 아마 FBI에 있는 어느 누구도 애초부터 이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고, 한 사람의 믿음들 혹은 가정들은 종교적인 추종과 꼭 같이 그 다음을 지탱하였고, 편집망상의 믿을 수 없는 상태로 증대되었으며-Fear Bullshit Insecurity(공갈 불안정 불안), 스스로들 그렇게 불렀다-그리고 거기 국장에 대한 맹목적 순종이 만연하였다), 그러니 꼼짝없이 잡아낸 사람은 딴 논 당상, 포상을 얻는다. 보상과 ㅉ형벌, 상벌제도로 이곳은 돌아간다. 1950년 5월 31일에, 사건이 공개되었던 딱 십일일 후에 예를 들어 골드의 심문자 T. 스콧 밀러와 리처드 브레넌이 “상상력 높고 지략 높고 활기 높은” 임무의 처리로 부서 상장을 받았고 “공훈에 따른 봉급 인상”이 천거되었다. 전체 집단에 즉각적인 우화, 이 일에 상을 놓고 거기 나가서 경쟁하던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사건, 세기의 범죄. “충격과 화”로 반응을 보이던 후버는 이미 1949년 인터콤을 움켜잡고서 “그 스파이망을 잡아들어!”라고 했다. 그래서, 의문 안 품는 열성 기독교 전도자처럼, 밖에 나가 하나 잡아들였다. OPA에서도 똑같았을 것이다. 물론, 우리 OPA에서 아무도 전기의자형에 처하지 않았다.
그러가, 간첩단이 전혀 없다면, 궁금했다. 이 모든 인물들이 있다고 믿고 이런 가정에 제 역할들을 해냈다고, 전체 법정에 몽상가들로 가득하였다면? 분명 대부분 그 사람들 스스로 지어내는 일에 특출한 재능을 지녔고-아니 CIA 그리고 KGB 사람들이 말하듯, 그들 위장을 교묘히 가공하는데 탁월했고-아마, 하는 수 없이, 그냥 이 모두 꾸며내었는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로젠버그 부부, 모두들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에 홀려 넘어가 면부득 그들이 내내 기다리고 있던 순교 역할을, 존경받고 동정받고 싶어 안달 나, 그들의 영웅적 행위와 그들 친구들 대의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하려고, 떠맡았다. 친구 몇몇은, 그들은 분명 (FBI가 스파이단이 있다고 했으니, 하나는 있을 것이다) 제기된 음모의 구성원들일 테니. 1943년 로젠버그 부부는 모든 명시적인 공산당 활동에서 벗어나 중단하였고, 데일리 워커의 구독도 취소하였으며, 더 이상 진정에 서명하는 일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이폴은 이는 그들이 지하로 숨어들고 있었다는 표식이라고 주창했고,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아기도 새로 태어났고 줄리어스는 보수 좋은 군대 일을 하고, 어느 미래보다 아주 밝아, 그들은 그들 친구들을 그저 저버리고 숨었을 수 있었고, 그래서 뭔가 여전히 한 8년 지난 뒤에도 죄의식을 느끼고. 그 사이에 줄리는 직업을 잃고, 에설은 신경쇠약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칙칙하고 개떡같은 삶으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갑자기-빙고!-원자탄 재판, 그들의 자존심을 회복할 그리고 실제 내용물 없이 의미 없는 그들 존재를 신명 나게 끌어올릴 기회였다. 소벨은, 한편으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알지 못한다-파시즘의 탈취인가?-그리고 공포에 휩싸여 멕시코로 줄행랑친다. 그는 로젠버그 스파이단에 관해 듣자, 아마 그도 이를 믿는다. 그러니 다른 증인들도 그렇다, 왜 아냐? 가능하다…우리 모두 이를 믿는다…
나는 엎드러 누워 넓게 흩어진 종이들 너머 바라보았다. 나는 이 모든 추측들에 잠겨 있느라 갈피를 잃었다. 바다에. 요바린다에 있는 용수로 옆에 누워 끝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변하는 구름처럼 흘러가는 진실들을 쳐다보는 것과 비슷했다. 지금은 다만 좀 더 심각하였다. 사실은 무엇이고, 의도는 무엇이며, 뼈대는 무엇이고, 본질은 무엇이었나? 이상했다, 역사의 영향,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역사의 그 장악력, 그래도 다만 말에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에 우연한 부착물들이 끼고, 그 이야기 대부분 잊히고 빠져버린다. 우리는 말의 진정한 힘을 파고드는 일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만약 우리가 모든 규칙을 어긴다면, 증거로 놀이를 하고, 언어 자체를 조종하고, 역사를 열렬한 편파적 협력자로 만든다면? 물론, 팬텀은 이미 착수했다, 안 그런가? 다시 우리보다 앞섰다. 언어의 자연적인 제한의 해체가 아니라면 공간, 논리적인 대안들 사이 으스스하고, 인공적인 중간 무인지대의 의식적인 발명이 아니라면 그의 변증법적 교묘한 술책이 뭐겠는가? 나는 어떤 사안이든 양측에 논쟁하는 일을 사랑했지만 그 사이에 든 낯선 공간은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난다. 역설은 정신과 의사들과 여자 신문기자들보다 더 싫어하는 일이었다. 운 좋게도 이 대부분을 잊어먹었음을 나는 알았다-이들 그릇된 인식들은 항상 달아났고 좀 더 견고하고, 합법적인 인식들이 늦든 빠르든 그 자리를 탈취하였다. 나는 바른 질문 찾아내고, 한 편을 취하고, 다시 여러 일의 꼭대기에 선 느낌이 들곤 했다. 전망을 확보하라, 용기, 확신. 그리고 전망: 로젠버그 공식이다. 그들 편지에 다 있던 말들이다. 어쩌면 비밀 의미가 있을지도. 공산당에 관한 그런 비밀. “CCCP”는 내가 알기로, 러시아인들이 이런 식으로 USSR(소련)을 썼다. 이는 1952년 “K₁C₃” 캠페인 구호, 코리아, 공산주의, 부패 그리고 통제(Korea, Communism, Corruption, and Controls)을 닮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은 비용(costs)-우리는 이를 정리하지 못했다. 위대한 십자군(greate Crusade). 딘 애처슨의 비겁한 공산주의자 봉쇄대학(Dean Acheson’s College of Cowardly Communist Containment). 평화, 빵 그리고 장미를 위해. 대학 정치에서 갈팡지팡 부딪히고 실수하며 우리가 배웠던 일들, 줄리어스와 나는….
그래도 나와는 다르다. 그의 콧수염만으로도 충분한 증거이다. 그 방식대로 무슨 발광하는 일종의 열광신도. 귀 여리고, 마음 여린 인물. 우리는 오히려 서로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한 다른 편. 왼쪽-오른쪽, 신자-비신자, 도시-시골, 피고인-고소인, 생산자-파괴자. 나는 다리를 세웠고, 그는 이들을 폭탄으로 파괴했다. 열넷에 탈무드 광신도, 열다섯에 성명서 열성분자. 그는 주변으로 움직일 때 나는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는 사회주의자 그의 아버지와 논쟁을 벌였고, 여전히 꼬맹이던 시절에 당에서 트로츠키 파를 쫓아내는 일을 도왔다. 그가 유대인이 아니라 가톨릭이나 루터 교도를 태어났다면, 그는 아마 나치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 일종의 성적 도착자이기도 하겠지, 이들 게토유형들이 대부분 그랬으니까. 너무 많은 이들이 서로 위에 켜켜이 산적하여, 시골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할 무수한 조합들을 상상하는 일이 쉬웠다. FBI가 로젠버그 부부 플랫을 급습했을 때, 줄리의 실패한 사업의 씁쓸한 하락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오래된 수표장 부본쪽지들 외에 그들이 발견한 한 가지는 한 세트 포르노그라피 레코드와 콜 니드레 성가 같은 종교적 예식들을 비웃는 다른 레코드들이었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인간 품위의 위반들”이라고 했던 것들. 세이폴은 그 레코드들만으로도 그들을 목매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들 정신 상태의 지표,”라는 말을 곧잘 썼다.
분명 그들의 싱싱 내 최초 재결합에 관해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들은 누가 지켜보고 있건 상관하지 않았고, 운동장에 있는 개들처럼 맹렬히 달라붙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재판 이후로 떨어져 지냈고, 이 만남을 위해 단단히 벼르고 준비를 해왔다. 문이 열리고 서로를 보자, 그들은 각자 감호요원들을 벗어나 서로를 향해 돌진해, 서로 얼굴에 숨막히게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고, 사납게 서로 손을 대기 시작했고, 옷을 잡아당겼다. 줄리어스는 에설의 블라우스를 빼내고 치마를 들추었고, 그녀는 그의 바지에 덤벼들었다. 만약 경비와 여간수가 충격에서 회복하여 그들을 잡아 떼어 내고 그들을 감금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5초 만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 바닥에서 - 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를 사랑이라 불렀지만 분명 사랑보다 한참이나 더 위험하였다. 드노 소장이 이후로 그들 수갑을 채우고, 2 미터 회의탁자 반대 끄트머리에 앉아야 하며, 잘 감시를 하고 절대 다시 만지는 일을 허용하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1936년 뉴욕 국제 선원노동조합이 제공한 새해 전날 모금 무도회에서 만났다. 아마 팬텀의 또 다른 위장 간판이리라. 저들 선원 노동조합 하나가 바로 지금 파업 중으로, 항구들을 꽁꽁 묶고 자유여신상 주변으로 철의 장막을 쳤다. 그 도시의 모든 것이 뭔가 다른 것들의 위장 같아서 나는 거기 위로 거리를 걷기만 해도 바싹 긴장이 되었다. 외지 요바 린더 혹은 휘티어에서 그렇지 않았다. 도시들은 대체 어째서 그럴까? 내가 소년이었을 때 나는 때로 도시에 가서 이중생활을 영위하는 꿈을 꾸었다. 지금도 거기에서 더 자유롭게 느껴졌다. 그 말이 적절한 말이라면. 에설은 무대 위에 나가 “치리비리빈” 노래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그녀가 잘 부르기로 유명한 노래였지만, 연습을 못해 실력이 떨어졌다. 그녀는 노조 조직책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고, 그녀의 무대 경력은 거의 끝났다…내가 그 당시 극작가와 배우가 되겠다는 비밀스러운 꿈들을 천천히 포기하던 것처럼. 줄리어스는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 소개를 하고 물었다. “왜 긴장하세요?” 대단한 대사다. 왜 긴장하세요. 나라면 생각해냈을 딱 그런 대사. 다만 나는 “왜 내가 긴장하지?” 아마 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나 자신도 그날 밤 거기 갔을 수도 있었는데. 그때 시내에 있었다. 나는 흥분해 길을 잃었지만 지역 지리를 잘 아는 척했다. 어디든 우연히 들를 수 있었다. 나는 고층빌딩을 넋을 놓고 보지 않으려고 머리를 계속 숙였고, 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던 때도 결단력에 찬 사람처럼 걸었다. 사실 말해서 뉴욕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도시에는 무언가 쇠퇴한 느낌이 있었고 살기에는 너무 춥고 비정한 장소라는 인상이 스쳤다. 엄밀히 미국도 아니었다-일종의 서부 홍콩이었다. 그리하여 흥분되긴 그래도 했고, 도발적이었다. 빠른 출세의 길, 로스앤절러스보다도 더 빠르다. 남자는 그런 게 필요하다. 좋아하지 않더라도 필요하다. 어떤 이든 빠른 길 위에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무위도식에 치우치기 쉽다. 여러분 벼락치기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 경쟁에서 날아 남아야 하는데, 나는 그럴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듀크법대를 졸업을 막 앞두고 있었고 나는 대형법률회사에 자리를 찾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얻으리라는 점을 알았고, 나는 교내로 돌아가 이를 자랑할 일만 고대하고 있었다. 겸손하게 물론. 이에 대해 집에 전화 쓰고. 나는 편지에 쓸 수 있도록 세부들을 급하게 써내렸다. 나는 여기 산다는 생각을 넘어 산다는 말로 전달하게 될 그 가망성을 즐겼다. 나는 학급에서 학문적으로 삼 등이었고, 학생 변호사협회의 회장, 코이프 훈위의 회원이었으며, 법학 리뷰지와 듀크 변호사협회 저널에 일을 했으며 자동차보험 법에 대해 중요한 기사를 썼고 호랙 학장 그의 망할 책에 쓸 연구를 도왔다. 틀림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높은 콧대를 치켜세우고 나를 깔보았다. 내 옷이 잘 맞지 않는다거나 금방 이발한 티가 너무 나거나 뭔가 있나 싶었다. 아마 내 억양이 다 드러나나-나는 그들에게 고등학교에서 캘리포니아 하버드 클럽 상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와 함께 도시로 나간 두 친구는 자리를, 대단한 자리를 얻었지만 나는 못 얻었다. 완전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그날밤 록펠러 센터와 타임즈 스퀘어 대신에 국제 선원 노동조합 무도회에 갔다면, 나는 아마 공산주의자가 되었을 것이고 역사의 방향을 바꿨을 것이다, 그렇게 엄청 열을 받았다. 나중에 마음이 가라앉자, 나는 과거에 좌파 판사들 조금 너무 관대하게 칭송을 했고 학생 변호사협회 회장으로서 듀크의 연설자로 잘 나가는 뉴딜 반독점법 위반 단속관을 모셨음을 깨달았고, 학교내 무슨 적이 이 모두 뉴욕의 접촉자들에게 왜곡해 전했다고 생각했다. 이는 아마 FBI와 함께 행동하게 된 설명도 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어찌 되든 말든, 나는 파란색 새 서지 정장을 샀고 휘티어로 돌아가, 내 길을 닦아나갔다.
이상하게, 나는 선원 무도회에 가지 않았지만, 홀의 전경이 본듯이 아주 또렷한 인상이 들었다. 광활한 번드르르한 마루, 심하게 왁스 칠을 했고, 한구석에 빅터 축음기 보관장, 작은 무대, 저 끝에 떨어진 부엌. 곰팡이 냄새. 육인조 밴드. 머리 위 풍선들. 줄리어스와 에설은 줄리어스를 앞에 두고 노래 연습할 수 있도록 무대 뒤 방으로 갔다. 그의 아이디어다. 그는 어떻게든 건드려보려고 하고 있었다. 왜 아니겠어? 진짜 탈의실이었다고 생각은 안 들었다. 뒤편에 그냥 빈 방, 의자 두엇 있을 테고, 크림색 벽에 무언가 낙서가 있고. 거울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녀가 심술궂은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시험 삼아 노래하는 모습이 내게 보였다. “치어리-비어리-빈!” 얇다. 하지만 예쁘다. 동그랗게 뜬 밝은 눈. 알고 보니 그들은 이웃사촌이었다-줄리어스에게, 에설은 말 그대로 옆집 사는 모든 영화들과 꼭 같이 여자아이였다. 비록 그녀가 세 살이 더 많고 시간제 매음굴에 살긴 했어도. “십여 년 전에, 크리스마스 시절에, 1936년, 나는 젊은 아가씨를 만났다. 살결 희고, 다정하고, 얌전한…” 다른 이들과 너무 달랐다. 그녀는 다른 남자친구도 없었고, 이전에도 한 명도 없었다. 패트와 달리. 외려 나와 비슷했다. 이후에, 집에 바래다주면서, 줄리는 온통 대학교 학생활동들 하느라 학점에 문제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시립대학에서 활동들은 휘티어 대학의 활동들과 달랐지만 어떻게 그가 휘말리게 되었는지 알수 있었다. “제가 도울게요,” 그녀가 말했다. 아무도 그에게 그런 비슷한 말도 한 적이 없었다. “제가 도울게요.” 물론, 나는 한 번도 문제에 처한 적이 없었다. 학점이든 뭐든. “제가 도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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