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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뻘짓)

the woman of Andros 7-22

by 어정버정 2023. 4. 14.

2018-07-23

안드로스의 여인

이 소설의 처음 부분은 안드로스, 테렌티우스의 코미디를 근간으로 하였다. 이 테렌스의 작품은 지금은 망실하여 알 길 없는 메난드로스의 두 가지 그리스 비극을 근간으로 삼았었다.


지구는 자신의 궤도를 돌면서 한숨을 쉬었다. 밤의 그림자가 지중해 연안을 따라 스물스물 기어갔고, 아시아는 어둠 속에 남았다. 언젠가는 지브롤터라고 불리게 될 커다란 벼랑은 오랫동안 어슴푸레한 붉은빛과 주황빛을 머금었고, 한편 이를 가로질러 아틀라스 산은 눈부신 빛의 경사면에 짙은 파란색 골짜기들을 내보였다. 나폴리 만을 둘러싼 동굴들에는 더욱 깊은 그늘이 드리우고, 각 동굴들의 어둠 속에서 뎅겅거리는 혹은 부웅 울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승리는 그리스에서 이운되고 지혜는 이집트에서 이운되었지만, 밤의 개시와 더불어 이들은 잃어버렸던 그들의 영광을 되찾는 것 같았고, 얼마 안 되어 신성하다고 불릴 땅은 칠흑 속에서 경이로운 그 부담을 대비하고 있었다. 바다는 드넓어 다채로운 날씨를 충분히 품었다. 어느 태풍이 시칠리아와 연기를 뿜는 산 주변으로 뒤놀지만, 나일 강어귀에 강물은 젖은 판석도로들처럼 누웠다. 민첩하고 상쾌한 산들바람은 에게 해를 잔물결로 간질이고 그리스의 모든 섬들은 해질녘에 새로운 신선함을 느꼈다.
가장 행복한, 가장 덜 유명한 섬들 중 하나인 브뤼노스 섬은, 산들바람을 환영으로 맞았다. 저녁은 길었다. 당분간은, 파도의 소리, 작은 항구의 방파제를 세차게 치는 그 소리는 여성들의 수다로, 사내아이들의 고함소리, 어린 양들의 울음소리로 뒤덮였다. 첫 번째 등불이 가물거리며 나타나자 여자들이 물러났다. 허공에 상점 앞면에 자리를 접고 정리하느라 뗑그렁거리는 소리로 가득하자, 소년들의 목소리가 중단되었다. 마침내 포도주 주막에 사내들이 웅얼거리는 소리만이 남아, 상아색 카운터에 게임하는 소리는 바다에서 들리는 소리와 섞였다. 아직도 떠오르지 않는 달에 벌써 걱정을 띠며, 허둥대는 별빛 하나가 비탈에 줄줄이 다붙은 집들 위에 그 집들 사이에 거리 역할을 하는 구불거리는 까꼬막 계단 길 위에 떨어졌다.
포도주 주막들은 강가에 대충 판석을 깐 한터 주변으로 서있었다. 그 주막 하나에 섬의 노장 유지들이 대여섯이 앉아 놀이를 벌였다. 달이 떠오를 시각 즈음에, 동석인들 다들 가고 이들 중 두 사람, 시모와 크레메스는 뒤에 처졌다. 시모는 부두 창고 둘을 지닌 창주에, 상인이라 섬 사이를 계속 들고나며 건너다니는 배 셋의 선주였다. 남자들은 놀이를 다들 끝냈다. 상단 널들이 그들 사이 탁자에 놓여있고 그들은 귀신같은 올리브 나무 사이를 걸어 집에 가는 긴 길을 생각하며 수염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시모는 평소보다 더 지쳤다. 머리는 상품이나 숫자에 매일 세 시간 이상 오점 없이 쓰이지 못한다고 절제의 법칙으로 훈육을 받지만. 그는 토론과 운항에 다섯 시간을 보냈다.
‘시모’ 갑자기 크레모스가 말을 꺼냈다. 마음을 다잡아 오래 미뤄둔 달갑지 않은 임무에 임하는 말투였다. ‘자네 아들이 이제 스물다섯이지-’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할 주제가 나올 참이라고 알자 시모는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어언 사 년이야,’ 크레모스가 말을 이었다. ‘자네가 젊은 아들에게 집안 어른들이 결혼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때가, 참말로 팜필로스에게 아무 강요하려 들지도 않았지. 하지만 그 아이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자네 창고 일도 돕지, 들판에서 몸도 단련하지, 그는 안드로스 집에서 저녁을 먹어. 얼마나 많은 그런 세월 그런 종류의 삶이 지속되어야 그가 내 딸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내 말에 자네가 동의를 하게 되려나?’
‘그는 제 발로 나를 찾아올 거야. 내가 먼저 그 아이에게 말을 넣지는 않을 테야.’
‘먼저! 누가 먼저 말 꺼내나 말하는 게 아니야, 시모. 그 아이가 필루메나와 결혼한다는 전제는 몇 년간 집안끼리 용인된 사항이었어. 늘 그런 이야기 오고 갔잖은가. 젊은이들이 자네 아들을 아침부터 밤까지 그 일로 놀려대었고. 그는 내 딸이 그와 결혼할 준비가 된 걸 아주 잘 알지 않는가. 자네 아들이 그저 너무 안이한 탓이야. 그냥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섬에서 으뜸가는 집안의 가장이 되는 책임을 지는 게 마뜩찮은 거야.’
‘아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할 작정인지 잘 아는 젊은이야. 그에게 강압적으로 굴지는 않을 거야.’
‘그럼 자네 아들이 내 딸과 결혼을 원하지 않는 걸로 결론짓겠네. 딸이 그 많은 세월 자네 아들 마음먹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낯부끄러운 일이지. 그리고 걔 어미는 예전부터 이 문제를 종지부 지으라고 쫓아다니며 닦달해. 내가 이런 말하면 안 되지만, 자네는 좋은 혼처를 그저 망설이느라 다 놓치고 있어. 자네 둘 다. 필루메나는 근방 섬에서 어느 누구보다 한참 건강하고 어여쁜 아이야. 그리고 여자들 집안일 다반사에 총명하기 그지없고. 우리 두 집안의 결합은 이득도 많아, 시모, 이건 굳이 입에 올리지는 않아도 되겠지. 하지만 이렇게 시간만 잡아먹고 있으니 자네 아들은 다른 여자아이에게 마음이 뺏기길 기다리고 있다는 말밖에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하네. 그런고 하니! 바로 오늘밤부터 안사람은 다른 젊은이를 찾기 시작할 거라네.’
‘크레메스, 크레메스, 그 아이는 겨우 스물다섯 살이야. 조금 더 놀게 놔두게. 왜 젊은이들이 그렇게 빨리 남편이며 아버지가 되어야 하나? 그 아이는 사람 좋고 행복해 해. 자네 딸도 그렇지. 잠시 그렇게 지내도록 해줘.’
‘손주들은! 오매불망 그들이 보고 싶어 난 간절한데. 세대 간에 아주 폭이 져서는 안 돼. 풍습이나 예의에 좋지 않아.’
‘일을 늦출 때보다 일을 서둘다 낭패 보기 십상이야.’
‘그래,’ 크레마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일을 얼른 성사시키려는 이유가 따로 있네. 이유는 이렇다네. 우리는 팜필로스가 그 안드로스 여인을 방문하는 일이 달갑지 않아. 당연히, 시모, 나로서는 그 일을 엄하게 꾸짖기는 힘들어. 내 아들 녀석도 거기 가니까. 하지만 아버지라면 아들 대하는 일보다 사위 관련 일은 꼼꼼하게 따지기 마련 아닌가.’
시모는 평소보다 더 불편한 안색으로 침묵을 지켰다. 크레메스는 말을 지속했다.
‘자네도 이런 외국 여인에게 발길 잦은 것은 좋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믿네. 우리 섬들은 엄격하고 얌전한 행동거지로 항상 유명했지. 소년시절 우리 사이에 악마가 있으면 우리는 그런 여자 양치기를 뒤따라 어두운 길로 접어들 수 있어. 하지만 이 안드로스 인은 이 마을에 온갖 알렉산드리아 풍속을 들여왔지, 향수며 온욕이며 야밤까지 노는 일이며.’
시모는 한순간 볼을 쓰다듬다 낮게 투덜거리는 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그렇게 치면 문제가 어디 그거뿐이겠나. 나는 이 안드로스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여자들이 아침부터 저녁 저물도록 다른 이야기들은 하지 않는가 보지만 그들 하는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
이렇게 도발을 받으니, 크레메스는 상당히 열의를 띠고 세세한 설명에 돌입해서는 가다가다 이런 세부사항들에 그들로는 좀체 드러내지 않고 삭히던 관심들을 혹시 저쪽이 드러내는지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 여자 이름은 크리시스라네. 무슨 의미로 자신을 안드로스 인이라고 하는지 알길 없어. 안드로스에 그녀가 풍기는 그런 분위기와 품위로 이름난 적이 없지. 그녀는 코린트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제비처럼 돌아다니며 살았다는군. 그건 확실하네. 그녀는 우리 마을에 파묻혀 젊은이들에게 시를 낭송해 주는 일에 골몰하느니 그런 도시들에 머무르는 게 나을 것을. 맞아, 그래. 그녀는 유명한 사람들처럼 그들에게 시를 암송해주지. 매 이레 혹은 여레마다 저녁식사에 그들을 열둘에서 열다섯 청해 들여, 물론 결혼 안 한 이들로. 그들은 침상 주변으로 누워 기이한 음식들을 먹고 말을 나눠. 이윽고 그녀가 일어나 암송을 하지. 그녀는 비극 이야기 전체를 책 없이도 욀 수가 있어. 그녀는 젊은이들에게 까탈스럽게 굴지. 그녀는 젊은이들이 이타카 사투리로 발음을 하게 한다든가, 아테네 방식으로 음식을 먹고 축배를 들지. 화환을 걸치고 돌아가면서 한명씩 만찬의 왕으로 추대되네. 그리고 맨 끝으로 뜨거운 수건으로 손을 닦으라고 주위로 돌린다네.’
시모는 크레메스 말에 높은 관심을 내보이며 흔쾌히 수긍을 하기는커녕 눈을 내리깔고 섬마을 뜬소문을 들을 때면 짓는 지겨워하는 예의 그 표정을 지었다. 크레메스는 스스럼없이 떠들던 말은 삼가야겠다 싶어 딱딱하지만은 않는 노기로 덧붙였다. ‘나로서는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드리아고, 브뤼노스는 브뤼노스야. 몇 개 더 외래 관념/문물들이 들어오고 우리 섬은 영원히 망치게 될 거야. 모든 여자아이들이 글을 읽고 쓰고 연설을 하려고 들겠지. 가정생활이 어떻게 되겠나, 시모, 여자들이 읽고 쓰면? 자네와 나는 우리 시절 가장 고상한 여자와 맺어졌고 행복하게 살았지. 우리는 양식과 가범을 지닌 세대를 적어도 하나 더 조성할 수는 있지. 온갖 여자들이 춤꾼의 분위기를 풍기고 모든 사내들이 그들 비위나 맞추며 어정거리고 다니는 시대가 오기 전에.’
시모는 이 말의 대답은 알았지만, 이를 억눌렀다. 크레메스는 이 섬의 여느 남자들보다 엄처시하 아내에게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늘 속 크레메스 아내는 베틀 앞에서 전체 섬을, 입법과 처벌의 병기로 남편을 들쑤시며 괴롭히며 휘두르려고 드는 사람이었다. 시모가 ‘만찬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나?’ 물었다.
‘각자 소년들이 요릿값을 지불하지. 그것도 대단히 넉넉하게 내지. 때때로 한두 명은 영광스럽게 새벽까지 머물러도 되는 허락을 받는다네. 그게 내가 아는 전부야.’
‘자네 아들도 어쨌거나 그런 저녁에 참석하나?’
‘그 아이는 싸우거나 그런 일에 말려들었지,-아마 너무 많이 마시지 않았을까 싶어, 나는 잘 모르겠네. 모든 사건에 그는 당분간 축출 당했어. 길거리로 내던져졌지, 우리 아들이, 다른 손님들이 내쳐서. 하지만 아들은 그 여자와 다시 화해했다고 하더군.’
‘자네는 아들에게 이 사람……이 크리시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나?’
‘웬걸, 아니. 나는 아무 것도 못 들은 척 하고 있어.’
‘내 아들은 항상 거기 있고?’
‘사람들 말로는 그는 거기 매일을 살다시피 하고 있다던데.’
긴 침묵이 이어졌다. 포도주 가게에 심부름하는 소년이 달빛 속으로 나가 덧문을 세우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어 심부름꾼이 돌아와 밖에 노부인이 그에게 말을 전하고자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더라고 시모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이 일은 브뤼노스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시모는 여간 놀라도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 점에 자긍심을 느끼는 사람이라, 별 표정은 없이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 앞을 계속해서 뚫어지게 보았다.
‘안드로스 사람 집에 다른 여자들도 있는가?’ 그가 물었다.
‘나는 모르네. 누군가는 있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없다기고 하고. 하지만 집은 늘 득시글거리는 편이지. 사실 일종의 늙은이 절름발이 이런 사람들 자선 시설이야, 온갖 종류의 늙고 병든 연금생활자들이 들락거리는. 그 집은 마을 가장자리 한참 올라가야 있지……’
‘나도 어디 있는지 아네.’
‘……그 사람들, 그 누구든지 간에, 읍내에는 발을 들이지 않아. 그들은 낮에는 거리로 나가지도 않지. 오, 마을 사람들은 입만 열면 다들 그 이야기를 한다네.’
크레메스는 일어나 그의 외투를 걸쳤다. 시모는 확답을 영 줄 성 싶지가 않았다. ‘어쨌거나, 현 상황이 이렇다네.’ 그가 말했다. ‘차후 열흘 후에 좀 더 확실한 대답을 해줄 수 있기를 바라네. 시모, 내 아내는 장난 아니게 다그치고 있지. 그녀가 내가 꼭 이 말을 자네에게 해야 한다고, 팜필로스가 그런 방문을 중지하지 않는다면 그와 필루메나 사이의 결혼 생각일랑은 꿈도 꾸지 말라더군. 그리고 그런 혼사는 조만에 확약으로 성사되어야 한다고, 아니 그러면 덕목으로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여자아이들 중에 며느리감을 고르기 시작해야 할 거라고.’
처음으로 시모는 분기로 뒤틀린 어조로 천천히 말을 뱉었다. ‘자네와 자네 아내 역시 좋은 혼처를 내다 버리는 꼴이 될 거야, 크레모스. 내가 내 아들에게 다른 아들에게 말하듯이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팜필로스가 섬의 다른 평범한 아이들보다 대단한 재목이라서야. 자네 상상하는 것보다 팜필로스에게 우월한 면도 만만찮아.’
‘그래, 시모, 자네 아들 훤한 인물의 젊은이인 거 아네. 하지만 이런 말은 뭐하긴 하지만, 팜필로스에게는……결정을 못 내리는, 자꾸 뒤로 미루는 성벽이 있는 것도 아네. 전력을 다하고 제 자리를 꿰차게 하려면 누군가, 자네처럼, 그가 존경하는 누군가 팜필로스를 부추겨야 해. 자네 에스쿨라피우스(그리스 신화의 의술의 신)와 아폴로의 젊은 사제 아는가? 그래, 팜필로스는 그런 사제의 면모가 있어. 그런 인물들은 자신의 발을 앞으로 내미는 데 관심이 도통 없지. 그들은 인생이란 어떤 건지 아직 알지도 못해.’
크레모스는 밖으로 나가 자갈 많은 길을 따라 집으로 터벅거렸다. 시모는 조금 더 미적거리며 앉았다. 운 나쁜 날에 참으로 운 안 좋은 끝이로고, 그는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은 섬에서 같이 자랐다. 삼십 년간 그들은 섬에서 가장 선도적인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들의 대화에 그들 사이에 늘 가로놓인 희미한 적대감을 그대로 내보이고 말았다. 자신의 아이들을 두고 이렇게 자랑으로 뻐기다니, 참으로 천박하고, 얼마나 비-헬렌적인가. 얼마나 비철학적인지.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팜필로스에게는 사제 같은 측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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