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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짓, 헛짓/Lost classics

Lost classics 46

by 어정버정 2023. 5. 1.

2013-6-8 

 

Michael Ondaatje 

 
Bringing Tony Home-Tissa Abeysekara 
 
 
마이클 온다체 
토니를 집에 데려오다 -티사 아베이세케라 
 
 

내가 처음 토니를 집에 데려오다를 읽었을 때, 내가 이미 잘 알던, 어린 시절의 책을 우연히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이는 물론 내 어린 시절을 마주 치는 책이기도 하였으며, 그 기이하고 부풀린 묘사의 감각(“여자가 집안으로 사라지자 그녀가 증기롤러가 그녀 위로 눌러 지나간 것처럼 몹시도 얇고 납작하게 보였다.”)과 아주 먼 거리를 날라야만 하는 너무 무거운 단지처럼 사물들이 확대된 느낌들을 불러일으켰다. 책은 당신과 당신의 가장 가까운 이웃 혹은 친척들 간의 수천 가지 번잡들로, 이 세상에 혼자되었다는 맛 좋은 슬픔 느낌을 지녔다.

토니를 집에 데려오다 1996년에 쓰인 책이니 잃어버린 고전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책을 되찾았다는 느낌이었다. 그게 쓰인 방식에 무언가,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것도 그렇고,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에도 무언가가, 사실 서구에 사라지지 않는 점도 한 몫을 하였다.

“40년대의 후반기에 내가 아직 열 살의 나이에 이르지 못 했던 때, 우리 가족은 찢어지게 가난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토니를 집에 데려오다는 시작을 한다.

저자, 티사 아베이세케라는 현대의 스리랑카의 영화제작자이며 중년에 이 첫 중편소설 어찌 보면 사라져가는 그의 어린 시절의 순간들의 회고록을 쓴 작가이다. 거의 내 나이 또래의 누군가가, 공통된 어린 시절을 두고 쓴 소설이다. 나는 그 책을 읽기 전까지 스리랑카에서 보낸 내 삶을 물리적으로 비추는 그런 책을 발견한 적이 없었다. 보통 나는 내가 읽었던 어린 시절에 관한 어떤 소설이라도 그 사건들을 친숙한 장소에 맞출 수 있도록 장소나 배경을 뒤바꾼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에서 소년이었을 때, 나는 계단을 가진 집을 딱 한 집만 알았고, 아주 오랫동안 소설에서 카라마조프든 몬/ 크리스토 백작이든 사람이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올 때마다 그들은 네드라 이모네 집을 오르내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린 시절 상실에 관한 티사 아베이세케라의 얇은 소설은 바로 나를 나의 유년기의 장소로 데려갔다그냥 스리랑카가 아니라, 그냥 콜롬보가 아니라, 보라레스가무와에 있는 고가도로로 딱 집어 데려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장소에서 그리고, 번역 없이도 실컷 음미할 수 있기도 한 곳에서, 나는 사십년 저자의 성인의 삶으로 채색이 되고 변모가 된 그의 소년시절 이야기 속의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책은 재산운의 변화로 이사를 해야만 했던 어느 가족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하는 도중에 가족의 개를 뒤에 두고 떠나야하는 필요가 생긴다. 소년은, 일주일 뒤에 혼자서 토니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서술자의 왜소함 때문에, 그 주의 세상의 거대함 때문에 소년이 하는 여행은 신화적이다. “유리잔은 희미하게 정어리 냄새가 나고 물은 아연철판 양동이에서 나왔을 때 같은 맛이 났지만, 나는 단숨에 이를 다 들이키고서 양손으로 그 여인에게 잔을 돌려주었다…….” 나는 벌써 개인적으로 들은 이야기를 단순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이 책을 오직 넘겨주고서 나누기를 바라는 책이다. 재밌고 아련하다. 위험하다. 불공평하다. 그리고 물론 가장 슬픈 이야기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각 해 4월의 시기에 한 거대한 바퀴가 데파나마에서 건조되곤 하였고 이는 웨사크가 끝날 때까지 거기 있었다. 올해는 이를 파니피티야 철도역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바지에 짓고 있었다. 거기에 한 때 정구장이 있었고 매주 토요일 아비지는 저녁에 메스르스와 정구를 치러 가곤 하였다. 아서 코텔라웨라, 불너, 수바싱가, 철도 역장, 사마라시냐, 그리고 선인장 덤불 옆에 내가 높인 두둑에 머슴애, 구네리스와 함께 걸터앉아, 아래 역을 오고가는 철도를 구경을 하였다. 그리고, 정월 초에서 늦 5월까지 해당하는 스리 파다 기간에는 기차들은 순례자로 가득 차 하얀 천이 창문에서 새의 날개처럼 파닥거리는데, 빈랑자(빈랑자) 꼬투리의 껍질이 바스락거리고, 목소리가 연호를 하고, 이를 따라 기차의 철제 바퀴는 끼익 브레이크를 밟고, 쨍그랑거리고 꽥소리를 지르며 모두 완벽한 하모니로 섞여들었고, 역을 떠나면서 슬픈 멜랑콜리의 기차 휘파람 소리 하나로 뭉쳤으며, 뒤에는 정구채, 부드럽지만 선명한, 변화무쌍한 리듬으로 땅, 그리고 네트를 치는 공의 소리가 남았다…….

그런 뒤 한 명씩 한 명씩 경기를 그만두었다. 수바싱갸 씨는 사라져버렸다.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쑥덕거리는 말을 엿들은 바로는 그의 아내가 지역 정부 조제실의 약제상이었던 어느 타밀 양반과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코텔라웨라 씨는 중풍을 맞았고 꼼짝도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철도 역장, 사마라시냐 씨는 낮 시간에도 역시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저녁참이면 너무 취해 정구를 칠 수가 없었고 나이 든 불너 씨는 그냥 치는 일을 그만두었다. 우리는 큰 집에서 데파나마에 있는 작은 집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정구를 칠 시간이 없었다.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가 토요일에도 저녁 늦게서야 돌아오셨고, 때로는 며칠 동안 나가 계시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정구장은 버려지고 사방에 잡초야 돋았고, 땅을 고르던 철제 롤러는 몇몇 마을 소년들이 작은 언덕 꼭대기까지 끌고 올라가서 굴러뜨려 배수로에 처박혔고 거기 고장 난 동물처럼 누워있었다.

 

작가가 우리에게 세세한 점과 이름의 물결과 모든 이들이 공식적인 역할을 계속 들이부으며 그린 세상의 초상은 어린이들은 약제상, 철도 역장처럼 어른들에게 붙은 딱지를 알고 기억하기 때문에 익살스러우면서 정중하며 의례적이다. 한때 그의 어린 시절 사회를 함께 결합하였던 것은 완벽한 조화 속에 고루 섞인, 그의 기억 속의 이런 상세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의 습관들, 공공의 싸움들에 대한 기억들은 사라지고 변덕스러운 것으로 발견된다. 그래서 그냥 한 소년이 사랑하는 개 한 마리를 잃은 데 대한 소설만이 아니라 모든 것들의 소설, 그의 삶을 둘러싼 전 세계를 다룬 소설이다.

그에 따라서, 묘사는 세밀하지만 정신이 없다. 과거를 함께 합치려고 버둥대는 목록들의 아리아이다. 이는 어른인 영화제작자가 부지불식간에 하부 플롯으로 이제는 이 지역에서 영화들을 만들고 있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나타난다. “사십오 년이 지난 후 나는 피타감카라요의 도입 장면에서 죽도록 이런 분위기의 일부를 잡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들이 벌어지는 논은 아주 똑 같은 논이었다.”

 

책 속의 비극은 그 짐승을 잃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소년이 마지막에 그 개를 두고 가야함을 깨닫는다는 점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어른의 자리로 들어서는데 이는 이런 이야기에 더욱 슬픈 일이다. 두 번째 읽으면서 우리는 이야기 속의 소년이 회상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현대적인 사견이나 사건들이 이런 경미한 이야기 속에서 흘러들어, 젊은이와 어른의 시각 두 곱으로 들려준다

 

열한 시까지 나는 내 맡은 일, 조합의 상점에서 냄새나는 노란색, 결이 큰 밀차드 쌀, 쿠폰당 여섯 춘두로 두 개, 갈색의 끈적하고 상한 꿀벌의 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설탕, 삼 파운드의 배급품 받아오는 일을 마쳤다. 달이라는 미수어 파리푸라고 일컫던 품종의 결이 곱고 분홍색의, 인도의 미소르에서 온 것이라고 잘못 믿기 십상인 쌀도 있어, 팔십년 대 후반에 인도 평화유지군이 자피나에 있던 소녀들을 겁탈을 하였다는 혐의가 제기되자 JVP의 명령 아래 구매를 거부했었다가 누군가가 우리에게 달은 인도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실제로 마소오르 달은 터키에소 온 것이라고 제대로 알려 주기도 했었다……

 

우리는 보편적이지만은 않은 몇 가지 이유들로 선호하는 책들을 고수한다. 이 책속에 있는 각 단어와 문단은 내가 한때 안겼던 품속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어떤 다른 책도 이처럼 잃어버린 나 자신에 가까이 접근한 적은 없다.

이는 책의 재빠른 운명 때문에 내게는 잃어버린 고전이기도 하다. 스리랑카의 작은 출판사에서 출판이 되고 지금까지 어디 다른 곳에서 출판된 적이 없다. 이는 서구의 출판 충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쓰인 책이다. 그래서 여전히 나머지 세계에 잃어버린 채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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