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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 없는 짓/the museum of unconditional surrender

the museum of unconditional surrender p140-

by 어정버정 2023. 4. 1.

리스본에서 하룻밤

 

리스본과 관련하여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처음으로 머물러야 했던 시절에, 레마르크의 오래된 소설 제목 리스본에서 하룻밤이다. 레마르크의 소설은 이미 잊힌 시대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그리고 유효한 패스포트가 전부이던 시절을 다룬다. 내가 독일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서베를린 사무실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며 그런 뒤 작은 포르투갈 영사관 동베를린 사무소에서 두어 시간 죽이며 손에 레마르크의 소설을 들고 있다 그 구절을 마주쳤다. 비자로 알록달록 장식이 잘 된 내 여권에 잘 생긴 포르투갈 비자는 꽤나 전망이 밝아 보였다.

나는 리스본으로 엄청난 양의 짐과 함께 여행했다. 아니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지만 완전히 짐은 하나도 없이 여행했다. 나는 고국을 잃었고 이 상실이 아직은 길이 들지 않았다. 아니 고국은 여전하지만 달라졌다는 데 영 어색했다. 일년 사이에 나는 집을 잃었고, 친구들과 내 일 그리고 곧 돌아간다는 가능성을 잃었지만 또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도 잃었다. 대체로--. 마흔네 살의 나이에 가방 하나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 담고 있는 세상에, 마치 세상이 폭격 피난소인 것처럼 몸담게 된 것이다. 공중 포격 경고에 동료 고국민들과 가곤하던 그 피난소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했다. 내 짐가방은 때로는 너무 무겁게, 때로는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해 보이기도 하며, 내 느낌은 그 순간 내 기분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나는 보통은 그 상실을, 다독거리는 마음에 상상의 일반적인 자로 재려고 애를 썼다.

유럽은 나 같은 사람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내가 가는 곳마다 동향민을 마주쳤다.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우리의 이야기는 달랐지만 끝에 가면 똑같은 일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내 손으로 내 을 파괴했었다. 나는 전쟁과 독재 형제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레마르크는 잘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 나는 내가 겪지 않아도 되던 일들에 관해 썼다. 솔직히 말해, 내가 그런 건 영웅이 되겠다는 욕망에서 그런 게 아니라 일반적인 거짓말에 적응하는 능력이 갖추지 못한 까닭이다. 나는 거짓말은 삶이 아니라 정당한 전략으로 오직 문학에서만, 예술에서만 허용이 되는 나이에 이르렀다.

수많은 우리나라 피난민들처럼 나는 유일하게 확실한 일이 여권이 거의 무용지물이라는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내가 범죄자였다면, 아마 그런 여권이 가치가 있었을 것이지만 나는 작가이다. 하지만 나는 내 운명을 극적인 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 책들은 외국어로 수수한 각인을 새기며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이틀간의 문학 모임에 초대를 받은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리스본에 대한 낭만적인 개념에 이끌려 나는 주최자에게 모임 시작되기 며칠 전에 싸구려 호텔에 예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알고 보니 그리 싸지 않은 호텔이었다. 작고 낭만적인, 노후한 펜사오(펜션, 그게 내가 상상한 방이다)대신에 모든 면에서 동유럽의 호텔을 빼닮은 무심한, 최신식 호텔에 묵게 되었던 것이다. 리셉션 장, 작은 바와 복도는 퀴퀴한 담배 냄새로 절어있었다. 나는 금요일 오후에 도착을 했고 다음 주 문학 모임은 화요일까지 시간이 남았다. 접수처에 돈이 든, 내 경비가 든 봉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 깊은 주최자가 남긴 것이었다. 루아 카스틸료(castle 거리)는 텅텅 비어, 더럽고, 바람 많은, 눅눅한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에 나는 어찌 보면 지저분하고 기름기 가득한 유리를 통해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처음 마주친 신문가판대에서 산 가이드북과 지도를 거의 들춰보지 않았다. 나는 도회인의 본능에 몸을 맡기고 내가 가고 싶었던 바로 그곳에, 타호 강변 방죽에 올라 만족감으로 강물을 바라다보았다. 강을 처음 볼 때 나는 이게 바다인줄 알았다. 나는 카페에서 아침커피를 마시며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그러다 걸음을 걸었고, 시끄럽고 좁다란 거리의 구역으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거리 바깥에 서서 이야기하고, 싸우고, 서로에게 고함을 질러대고 잡담으로 낄낄거렸다. 시꺼매진 허름한 판잣집 앞에서 대충 만든 작은 가판대들에 야채, 고기, 생선, 와인들이 놓여 있었다. 매대 주위로 파리 떼들이 꼬여 들었고, 고양이와 개들이 맴을 돌고, 행인과 지역민들과 지역의 미치광이들이 몰려 들끓었다. 나는 알프마에 있었다. 사방에서 내게 몰려드는 윙윙거리는 소리, 들꾄 파리 떼들과 후덥지근 피어오르는 연무에 어질하니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나는 솔직히 대서양까지 뻗어나간 지중해의 아주 그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찔한 머리로, 숨을 헐떡이며, 나는 그 뇌실(腦室)의 하나를 꾸물꾸물 기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사방이 트인 작은 전차를 타고 성 호르헤 성으로 올라갔다. 전차에 승객들이 마치 포도송이들처럼 매달려있었다. 성에서 호화로운 도시의 풍광이 내려다보였다. 도시는 너무 익은 멜론을 닮았다. 하늘에서조차, 서성거리는 수천의 제비들로 잘려, 노랬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길을 따라, 호시오를 거쳐 호텔로 돌아왔다. 노란 연무 속에서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복권을 팔고 있는 판매상을 계속 마주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실제로 사방에 있는 지도 모른다호텔에서 나는 묵직하고 멍하게 취한, 열대의 잠에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