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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뻘짓)

Excellent womne 8장

by 어정버정 2023. 5. 11.

2012-5-17

 

8

 

그 다음 몇 주 동안에 날이 풀려 갑자기 거의 봄 날씨가 되었다. 매년 있던 윌리엄 칼디코트와의 오찬 약속시간이 다가왔다. 칼디코트는 내 친구 도라의 오빠이다. 이 일은 거의 의례행사 같은 일이었고 도라가, 심지어 윌리엄조차도 무슨 일이 이뤄지지 않을까하고 바라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 약속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자 우리의 관계는 편안하고 재미없는 사이로 정착이 되어버렸다. 윌리엄이 결혼을 생각하는 종류의 남자가 아니며, 그리고 내가 아주 조금도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언제 처음 깨달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와 함께 택시라도 오르면 나와 따로 떨어져 기쁘기보다는 자리에 앉게 되어 다행이라는 심정을 표현을 해도 당연한 일로 여길 정도였다. 음식이나 음료에 대한 그의 까탈 역시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였고 내가 그런 것 때문에 득이라도 본다면 흐뭇한 마음까지 하였다. 윌리엄과 함께라면 항상 좋은 식사를 하게 되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화이트홀 근처 어딘가에 있는 정부부처에서 일을 했고 30대 후반의, 이제는 조금 머리가 세어가고 있는, 놀라울 정도로 구슬처럼 반짝거리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항상 그를 알고 있는 소호 거리의 식당에서 만남을 가졌다. 내가 늦는 바람에 그곳으로 서둘러 가면서 윌리엄은 진짜 이런 화창한 봄날에 오찬을 같이 먹기에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명 멋지게 낭만적인 사람이 동반자로 딱 좋겠지?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구름이 잔뜩 낀 푸른 하늘, 마음을 간질이는 산들바람, 지나면서 만나는 여성들의 화사한 모자들, 수레에 든 미모사, 이 모든 것 때문에 윌리엄의 친구, 건강과 음식에 대한 유난스런 관심이나 올드미스 같이 소문에 관한 악의적인 위락을 느끼는 그와 말동무가 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는 오늘 신경질적이었다. 그가 약간 성마르게 메뉴를 훑어보는 걸 보고 알 수 있었다. 간 요리는 아마 너무 익히고, 오리요리는 충분히 익히지 않을 것이며 날씨는 너무 온화해 셀러리 숨이 다 죽을 것이다. 정말 우리가 먹을 만한 게 하나도 없어보였다. 나는 윌리엄과 웨이터가 화난 목소리로 낮게 속닥이는 동안에 가만히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포도주 한 병이 나왔다. 윌리엄을 이를 붙들고 의심쩍은 듯 상표를 살펴보았다. 나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가 시음을 하는 동안 지켜보았다. 그는 형식상 절차가 그냥 형식으로 끝나지 않는 사람이며 병을 다시 돌려보내며 새 병을 요구하는 일이 상당히 잦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시음을 하자 표정이 풀어졌다. 훌륭한 병이다. 아니,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먹을 만은 하군요, 밀드레드.’ 그가 말했다. ‘가식이 없네요, 당신이 좋아할 거 같습니다.’

가식이 없다, 딱 나처럼.’ 나는 갈색 모자의 깃털을 만지작거리며 바보처럼 말했다.

오늘은 진짜 먹을 만한 와인을 먹어야 돼요. 봄이 거의 다 된 거 같아서.’ 그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뉘 셍 조르쥬.’ 나는 상표를 읽었다. ‘이름이 굉장히 흥미롭게 들리네요. 성 조지 축일의 밤이란 뜻이지요? 아주 훌륭한 그림이 떠오르네요, 갑옷과 흰 말들, 용이나 불꽃도, 아마 횃불로 된 어마어마한 행렬도 있겠죠.’

그는 잠깐 나를 의구심에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직 내가 와인 맛을 보지 않은 것을 눈여겨보며 뉘 셍 조르쥬는 포도밭이 있는 장소의 이름이라고 설명을 하였다. 그리곤 상표에 그 이름을 달고 있는 모든 병이 최상품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오디네흐(ordinaire, 보통의 식탁 와인)인 경우도 있어요.’ 그가 심각하게 말했다. ‘항상 그걸 기억하세요. 설핏 아는 게 더 위험해요, 밀드레드.’

과음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뮤즈 여신의 샘물의 맛을 모를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받아 인용구로 한방 먹일 수 있어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전 아마 과음을 할 기회가 결코 없을 거예요. 그래서 아쉽지만 계속 무지한 상태로 남게 되겠지요.’

, 트위커넘의 교황(pope at Twickenham. 찰스 켄트의 1824년 시)’ 윌리엄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지금 폽스그로브(Popesgrove)는 전화교환국이에요. 그 생각을 하면 아주 애석합니다.’ 그는 잠깐 멈췄다가 다시 엄청 흥겨워하며 먹기 시작했다.

오찬은 누가 봐도 훌륭했고 우리가 먹은 음식은 메뉴에 나와 있지 않았다. 우리는 얼마간 먹기만 하며 야수 같은 허기를 먼저 만족시킨 뒤에 그는 나 자신에 대해, 우리가 마지막을 만난 뒤에 무엇을 했는지, 우리 위원회에 흥미로운 사건이라도 있었는지 묻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종류의 일을 한다면 아주 좋을 텐데.’ 그가 말했다. ‘그 일에 나도 거의 천부적인 재주가 있는 거 같아요. 알겠지만 나는 이런 불행한 귀부인들의 상실을 아주 잘 이해할 겁니다. 벨그레이브 스퀘어의 대 저택에서 지하층에서 트레이를 날라다 오던 하인들하며, 외국의 왕족들이 방문을 하던 에드워드 시대의 시골 저택, 겨울 동안 지내던 니스나 보디게라의 빌라들……

, 하지만 우리가 보살펴야 되는 사람들은 보통 그만큼 으리으리했던 사람들은 아니에요.’ 나는 윌리엄의 이해를 경이로워하며 말을 했다. 그와 도라는 의사 아버지를 두었고 어릴 적에 버밍엄 교외에서 자랐다는데. ‘그들은 물론 귀부인이긴 해요. 하지만 우리 쪽에 더 가까워요. 성직자의 딸이거나 전문직종의 자제들이에요. 부족한 것은 없긴 해도 아주 부유한 적은 없던 사람들이죠.’

안 됐어요.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신이 더 웅장한 퇴락을 알지 못한다는 거죠. 추락이 더 클수록 비극은 더 가슴 저미니까.’

그래요. 그런 것 같아요.’ 나는 그런 종류의 일은 세익스피어의 비극을 배우면서 학교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우리도 아주 비극적인 경우도 몇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그리고 유감이지만 그들에게 그렇게 극적인 일 같은 건 전혀 없어요. 그저 불쌍한 일들이죠.’

, 그래요.’ 그는 심각한 얼굴이 되었지만 곧 얼굴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하숙집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 이야기 좀 해 줘요.’

나는 네이피어 부부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조금 주뼛거리며 전했는데 그들의 의견충돌을 대단한 일양 떠벌리고 싶기 않아서였다. 소문과 스캔들을 아주 기꺼워하는 윌리엄이 속속들이 알아내려고 할 일은 틀림없었다.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던가 보았다.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아마 조심성이 덜해졌는지 나도 깜짝 놀랐지만, 그가 그녀에게 너무 지나치게 친절하다고 우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비일비재해요.’ 윌리엄이 말했다. ‘아무도 그런 일을 두고 놀라지 않을 걸요. 이런 유쾌한 사람들은 모두 그런 괴물들, 그런 악귀들과 결혼을 했어요.’

아녜요, 네이피어 부인은 그렇지 않아요.’ 난 반발을 하였다. ‘그냥 그가 예외적으로 친절한 것뿐이에요.’

뉘 셍 조르쥬 때문이거나 봄날이어서 혹은 친밀한 레스토랑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로키 네이피어는 나라면 분명 좋아할 딱 그런 사람이라는 의미의 말을 웅얼웅얼거리는 내 자신에 오싹 놀랐다.

내가 이 말을 하고 나서 뚜렷한 침묵이 흘렀다. 그 동안에 나는 무심한 척 레스토랑을 둘러보다가 웨이터가 벽의 사이드테이블에서 무슨 요리를 섞는 걸 쳐다보고 어떤 남자가 몸을 기대어 반대편에 앉은 여자의 손을 만지고 있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윌리엄이 매력이 없고 야단스러운데다 몇 년간 알아온 도라의 오빠란 사실이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밀드레드. 당신은 분명 결혼을 않겠지요.’ 그는 화난 얼굴로 말을 하고 있었다. ‘삶은 이런 깜짝 놀랄 기색이 없어도 그냥 있는 그대로도 아주 혼란스러워요. 나는 항상 당신은 아주 균형 감각이 있고 지각 있는, 그런 탁월한 여성(excellent woman)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신 결혼을 할 생각은 아니길 바라는데?’

그는 탁자 너머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과 입은 불안한 마음으로 동그랗게 심각했다. 나는 둘 사이 피어오른 비정상적인 긴장을 깨뜨리기 위해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론 도라 측에 한정되긴 하지만, 도라는 여전히 윌리엄과 내가 언젠가는 결혼할 거라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기는 했다.

아녜요. 물론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제가 놀라게 했다면 아주 미안해요. 어째, 적합한 사람을 알지 못해요. 누구하고 시작해야 할지 이런 것들.’

그 목사는 어때요?’ 윌리엄이 떠보듯이 물었다.

말로리 사제요? , 그는 성직자들의 결혼을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게 아니더라도 그는 진짜 제가 결혼하고 싶은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나는 그를 안심시켰다.

그 말 들으니 마음이 놓이네요.’ 윌리엄이 말했다. ‘밀드레드, 우리는 말입니다. 인생의 관찰자에요. 다른 사람들은 무슨 수를 쓰서라도 결혼을 하라지요. 많을수록 더 재밌을 겁니다.’ 그는 병을 들고 안에 얼마나 남았나 가늠을 하고 자신의 잔을 다시 채웠다. 내 잔은 아니었다. ‘도라는 제가 좋으면 결혼하라고 둡시다. 동생은 당신 같은 관찰자의 능력이 없어요.’

이 작은 찬사에 기뻐야 마땅하겠지만 어쩐지 살짝 언짢았다. 가만 보면 대단한 찬사도 아니지 않은가. 나를 불쾌한, 인간미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건데.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 그랬던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도라에게 새로운 소식은 없어요?’ 나는 화제를 바꾸기 위해 물었다. ‘어서 도라에게 답장을 해야 하는데.’

, 많은 소식이 있어요.’ 그는 손을 쭉 뻗어 아주 활짝 펼치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 작은 세상에 많기도 많은 일이 벌어지나 봐요. 거기에 여자 학교는 다른 세계들만큼 많은 일이 일어나고 물밑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욱 더 끔직한 거 같아요.’

그래요? 뭐 특별한 일이라도?’

윌리엄은 몸을 앞으로 기댔다. 그의 구슬같이 반짝거리는 작은 눈이 기쁨으로 환해졌다. ‘악감정.’ 그가 연극조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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