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0
대단히 좋은 장소 The Great Good Place, 1900
Henry James
I
조지 대인은 눈이 부셔 눈을 떴다. 새로 밝은 날은, 지난 밤 퍼부은 폭우로 씻긴 말간 얼굴로 드높은 기상과, 멋진 각오, 생생한 의도들을 안고 하늘 한 조각도 붙여두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엄청나게 눈부신 재개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늦게까지 자지 않고 일을, 무지하게 밀려있는 일을 끝내려고 했으나 거의 줄어들지 않은 서류철을 둔 채 침대로 갔었다. 그는 이제 어젯밤 멈춘 데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동안 그걸 보고만 있다가 이른 아침 우체부가 한 시간 전에 몰래 넣어둔 깔쭉깔쭉 빽빽한 편지 뭉텅이를, 벌써 체계적인 그의 하인이 격식에 맞게 둥그렇게 그리고 네모지게 배열한 벽난로 옆 평소 탁자 위를 대충 쳐다보았다. 브라운의 완벽한 집안 단속은 좀 너무 매정한 데가 있었다. 다른 탁자 위에는 철저한 관습에 따라 딱딱 맞춰 놓은 신문들이 있었다. 신문들이 너무 많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뉴스들을 원하나? 그리고 각 신문들은 다른 신문의 목 부위와 아귀를 맞춰 놓아서, 몸체 없이 차례로 놓인 머리들은 잘린 머리를 죽 늘여놓은 것 같았다. 온갖 종류의 다른 학술지나 정기 간행물은 며칠 동안에 접힌 그대로, 그리고 포장지에 싸여 옹송그리며 더미를 이뤄 덩치를 키웠다. 그런 모습이 그는 진력이 났지만 무력하게 쳐다보았다. 여전히 포장지 그대로인 새로운 책이, 그와 더불어 껍질을 벗기고는 다시 팽개친, 출판업자에게서 온 책, 저자에게서 온 책, 친구에게서 온 책, 적에게서 온 책, 상상도 못할 일을, 때로 그도 입이 쩍 벌어지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신의 서적상에게서 온 책들이 있었다. 그는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고, 아무 것에도 다가가지 않고 말하자면 어젯밤의 일감으로 그냥 무거운 눈을 돌렸다. 높고 드넓은 창문을 가진 방에는 의무가 방 구석구석까지 진한 빛을 드리워 여전히 씻을 수 없는 책망의 엄연한 사실을 비추고 있었다. 그것은 예전부터 솟아오르고 있던 물결이었다. 잠시 잠깐 쳐다보는 사이에도 치솟고 또 솟아올랐다. 어제 밤은 어깨까지 차오르던 것이 이제는 그의 턱까지 찼다.
아무 것도 사라진 게 없었다. 그가 자는 사이에 어디 넘어간 것 없이 모든 것이 자리에 그대로였다. 그가 고스란히 아직 느끼는 걸 보면 아무 것도 죽지 않았다. 많은 일들이 반대로 새로 태어났다, 그런 느낌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들을 그대로 두자, 이런 일들, 새로운 일들, 말 그대로 그냥 혹여라도, 어떻게든 그들을 다룰 최선의 방법으로 증명이 아니 될지는 두고 보자. 이런 달콤한 생각이 예전에도 흔히 그랬듯이, 다시 시원한 바람 한 줄기처럼 무작정 저절로 떠오르며, 가능한 해결인양 잠시 동안 그의 얼굴을 쓸었다. 그런 후 그는 다시 예전과 똑같이 그냥 버려두는 일은 어렵다, 그렇게 두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직 한 가지 해결책은, 정말 폭신하게 싹 지워버릴 스폰지는 그냥 버리고 떠나 잊는 것이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 한번이라도 그만큼 삶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이제야 빠져나갈 수 있는 입장이 안 되었다. 뿌린 대로 거둬들어야 한다. 그건 그물 망조직과 같은 일이었다. 그는 단순하게 그 그물 아래 자러 갔다가 그냥 같은 그물 위에 일어난다. 그물은 아주 촘촘했다. 끈이 서로 엇갈리는 지점은 너무 가까운데다, 각자 작고 빡빡하고 단단한 매듭을 이루고 있어 지친 손가락은 오늘 아침은 너무 흐늘흐늘, 물렁거리고 아려 만지기에도 버거웠다. 우리의 불쌍한 친구는 아무 것도 손대지 않았다. 단지 그의 호주머니 속만 의미심장하게 슬며시 집어넣고 창문 쪽으로 느긋이 거닐어 자연의 에너지를 희미하게 들이쉬었다. 가장 어리둥절한 일은 자연은 벌써 준비를 다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연은 이미 전날, 한밤을 지나 램프 옆에 지내던 시간에 상당히 그를 달래 주었었다. 커튼을 걷은 그의 서재 뒤편으로 비 내리는 소리가 자비 가득히 온화하게 들렸다. 한결같은 빗줄기는 창문을 씻어 내렸었다. 비가 최적의 방법이겠다.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방법으로 훌륭하다. 계속 되기만 한다면 그의 발이 부리에 걸리고 빗나가는 수많은 장애물을 경계 없는 바다로 둥둥 휩쓸어가 바닥을 말끔히 지워버릴 것 같았다. 거기에서 친근한 압박의 감각이 느껴지자 그는 단호하게 펜을 내려놓았었다. 램프를 끄자 친절 충만한 휙 소리가 유리 위에서 났었다. 그는 구절을 끝내지 않고 두었고 끝내지 못한 종이는 왈칵 몰려들어 그들을 데려갈 홍수에 대비하듯 가만히 누워있었다. 하지만 탁자 위에는 여전히 발가벗은 문장의 뼈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 그런 것은 또 아니었다. 한 가지 일이 삐끗 어긋난다, 그래서 결코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와 짝을 이루고 있었을 절반을, 그로 빚은 인물을 잃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결국 창문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도처에, 안으로 밖으로 존재했다. 엄청 노려보고 있는 건강과 힘의 이기주의는 요령이나 사려로 믿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하인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쪽으로 얼굴 돌려 트레이에 담긴 우스꽝스럽도록 근엄한 두 장의 전보를 마주하였다. 브라운은 전보를 그냥 방 안으로 차 넣었어야 했다. 그러면 그 자신이 직접 그들을 내다 차버렸을 텐데.
“그런데요, 주인님께서 상기시켜달라고 말씀하셨더랬습니다.”
조지 대인은 끝끝내 화가 치밀었다. “아무 것도 상기시키지 마!”
“하지만 주인님께서 내가 고집 세울 일은 세우라고 우기셨잖습니까!”
그는 절망에 휩싸여, 터무니없는 변형을 깔고 애처롭게 떨리는 단어들을 써가며 몸을 돌렸다. “네가 고집하면, 브라운, 자넬 죽여 버릴 거야!” 그는 모르는 새 새로이 창문 앞에 서 있었다. 그곳 4층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는 트럼펫이 울려 퍼지는 소리가 막 터져 나오려는 찰나의 하늘 아래, 광활한 이웃 구역을 볼 수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브라운이 그를 떠나지 않으리란 사실을 그는 알았다. 그가 얼마나 똑바로, 심각하게 그리고 어리석을 정도로 충직하게 서 있을 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일분 뒤에 그는 다시 브라운이 하는 말을 들었다.
“이건 단지, 주인님도 아시겠지만 주인님께서 기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말에 대인은 발끈해 홱 몸을 돌렸다. 그 순간에 그 말 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기억을 할 수 없다고, 내가? 난 잊어버릴 수가 없어. 그게 나한테 문제라고.”
브라운은 18년간의 일관성이라는 이점을 안고 주인을 바라보았다. “몸이 편치 않으신 것 같아 심려스럽습니다.”
브라운의 주인은 생각에 잠겼다. “충격적인 말이긴 하겠지만 내 몸이 편치 않았으면 바랄 게 없겠어. 그랬다면 변명이라도 되었겠지.”
브라운의 얼빠진 당황이 사막처럼 번졌다. “그분들과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서요?”
“아!” 한숨 소리는 탄식이었다. 복수 대명사, 아무 대명사인들 어떠랴, 아주 때가 좋지 않았다. “누구 말인가?”
“말씀 하셨던 그 숙녀분들요…오찬에 오신다던.”
“오!” 처량한 남자는 가장 가까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잠시 양탄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복잡하기 그지없다.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올까요, 주인님?” 브라운이 물었다.
“오십!”
“오십이라굽쇼?”
우리 친구는 의자에 앉아, 하릴없이 주위를 두릿두릿 둘러보았다. 그의 손아래는 전보가 아직도 열지 않은 채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이제 산산이 찢었다. “ 내 동반자로 오늘, 1.30. 불쌍한 레이디 멀릿으로 데려가도 상냥하게 맞아주길 바람. 아주 몹시 굽었음.(bent-몹시 궁상인, 안달한다, 열망한다는 뜻이 같이 있음.),” 그는 그의 동행에게 전보 내용을 읽어주었다.
동행은 이리저리 내용을 재어 보았다. “그분까지 몇 명입니까?”
“불쌍한 레이디 멀릿? 나야 알 도리가 있나.”
“그분 혹시 불구이신 건가요?” 브라운은 이런 경우라면 혹시 그녀가 한사람 몫 이상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로 물어왔다.
그의 주인은 의아하였다. 그런 후 브라운이 (bent를) 무언가 몸 한구석의 만곡으로 짐작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아냐. 그 여자는 그냥 오고 싶어 안달 났다는 말이야!” 대인은 다른 전보를 열고 다시 읽어 주었다. “11시 불가능, 정말 죄송. 하해 같은 선의로 당신이 여기 오길 기대. 대신 정각 2시.”
“그러면 몇 분이 되는 겁니까?” 브라운은 침착하게 질문을 이었다.
대인은 두 편지를 구기고, 구긴 종이를 지니고 종이쓰레기통까지 걸어가, 깊이 생각에 잠겨 떨어뜨렸다. “뭐라 말은 못하겠네. 모든 건 자네가 알아서 해야 해. 난 여기 없을 거야.”
이 말에 그제야 브라운 얼굴에 표정이 바뀌었다. “안 계시고 나가시겠다는 거군요,”
“안 계시고 나가실 거다!” 대인은 바락 소리를 질렀다.
브라운은 하지만 자신은 절대 맡은 임무를 저버리지 않으리란 내색을 비칠 기회는 또 놓치지 않았다. “그러면 세 명 손님을 다소 희생시키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존중과 비난 사이에서 그는 멈췄다.
“세 명이던가?”
“전 다 합쳐 4명분을 준비했습니다.”
그의 주인은 어쨌든 브라운의 생각을 따라잡은 듯 했다. “한 명에 세 명을 희생시킨다, 이 뜻인가? 아냐, 난 그 여자한테 갈 거 아냐!”
브라운의 유명한 “철저함”이, 그 대단한 미덕이 그렇게 몸서리 쳐진 적도 없었다.
“그러면 어디로 가시려던 겁니까?”
대인은 그의 책상에 앉아 누더기가 된 문구를 쳐다보았다. “거기 행복의 땅이라고 있어, 멀리 아주 멀리!” 그는 아픈 아이 투정하듯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런다고 브라운이 눈 하나 꿈쩍 안 하리란 것은 잘 알았다. 그 잠깐에 그는 등줄기에 꽂히는 비난의 눈총을 느꼈다.
“괜찮으신 게 진짜 맞습니까?”
“나를 꺾지르고 있는 게 이 확실성이야. 직접 둘러보고 판단해 보게. 시샘 많은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것보다 더 ‘맞는’ 일이 어디 있나? 저 어마어마한 편지, 쪽지, 안내문 뭉치들, 인쇄업자들 교정쇄며 잡지, 책 더미들, 끊일 줄 모르는 전보, 곧 닥칠 여기 손님들, 지체되고,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는 이들 작업 보게. 무얼 더 바랄 수 있겠어?”
“너무 일이 많다는 말씀이신가요?” 브라운은 가끔씩 이런 재기를 보이기도 했다.
“너무 많아. 많아도 너무 많아. 하지만 자네도 어쩔 수 없겠지. 브라운.”
“어림없지요, 주인님.” 동의를 했다. “누군들 안 그렇겠습니까?”
“생각 중이야…한 번 보자…시간이 있어!” 그렇다.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이게 그중 하나였다. 그는 그의 미로 속에서 다시 방향을 틀기 위해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건드리지도, 그의 훈계자의 눈과 다시 마주치기조차도 않았다. 그가 만약 누군가로 천재라면 그는 브라운에 대해 천재였다. 하지만 그 의미하는 바는, 브라운에 대해 천재가 되는 일은 끔찍하였다. 그가 여차저자 일을 계속 해나가도록 브라운이 최선을 다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러나 거의 나빠도 한참 나쁜 산사태로 무너지고 있었다. “내 일로 걱정하지 마.” 그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이어나가며 창문 너머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비스듬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어쩌면 비가 올지 모르지. 아마 안 그칠 수도 있고. 난 진짜 비를 좋아해.” 그는 못내 아쉬워 웅얼댔다. “어쩌면, 눈이 온다면 더 좋겠지.”
브라운은 이제 표정의 변화가 완연했다. 완전 두려움에 휩싸인 표정이었다.
“눈…이라굽쇼…이런 오월 말에 말입니까?” 이런 당연한 지적은 접어두고 브라운은 그의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침 식사를 하시면 기분이 더 나아지실 겁니다.”
“아마 그렇겠지.” 대인이 말했다. 아침이라, 그것 참 편지 열어보는 일보다 훨씬 유쾌한 대안이 되겠구나, 하는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바로 들어가지.”
“하지만 기다리시지 않고…?”
“무얼 기다려?”
브라운은 마침내, 그의 우려 하에, 논리에서 처음으로 이탈을 했다. 그의 논리는 그의 벗이 반짝 기억을 되살려 그에게 지워진 부당한 의무를 덜어줄 수도 있다는, 바람에 지날 지도 모를 희망 아래서 망설이느라 배반을 당했다. 하지만 지금 이들 섬광/재기들은 주인 나리에게만 달려있을 뿐이었다. “주인님은 잊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잊고 계시지….”
“무엇 못마땅한 거라도 있어?” 대인이 끼어들었다.
브라운은 한발 물러났다. “저에게 신사 분 한분을 청했다고 말씀하시….”
대인은 다시 그를 가로챘다. 못마땅하든 아니듯 말대꾸는 돌아온다. 흡족의 유무는 진짜 그냥 맞대꾸질 하나로 분류가능하다. “오늘 아침식사에? 아, 오늘 아침이었지. 알겠어.” 돌아오긴 돌아왔다. 그래, 기억이 돌아왔다. 젊은 남자하고 약속이, 젊은 사람이겠거니는 그의 추정이지만, 문뜩 떠올랐다. 누군가의 편지, 무슨 일에 관해서인데, 무엇이었더라? “그래, 그래, 잠깐, 잠깐만.”
“아마 그 사람이 주인님께 도움을 주겠지요.” 브라운이 넌지시 말을 했다.
“분명, 분명 그렇겠지. 좋아!” 그가 무슨 일을 하든, 적어도 뭔가 다른 할 일은 막아줄 것이다. 그런 생각이 플랫 문의 전기 벨(초인종)이 진동을 하여 브라운이 물러나자, 우리 친구에게 떠올랐다. 그 뒤 짧은 간격으로 두 가지가 대인에게 떠올랐다. 그는 어떻게 연줄이 닿아, 객이 어디에서, 어디로, 왜 왔는지 깜깜하게 잊어먹었으며 손대지 않으려는 아니, 손가락 하나 대지 않으려는 근지(靳持)도 고수할 것이었다. 아 다시는 손도 대지 않았으면! 뜯어보지 않은 봉인과 도외시한 간청들 모두 얼마가 될지 짐작할 수 없는 멈칫 사이, 그가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넣고 벽난로 앞에 서있는 동안, 거기 누워 있었다. 복도에서 짧게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브라운이 다시 나타나, 앞으로 나서 다른 사람, 아무리 더듬어도 도무지 귀에 낯선 이름의 존재를 알려주던 시간은 그 뒤로 결코 메워지지 않았다. 브라운은 주인과 객이 마주 선채 두고 아침을 대접하기 위해 다시 자리를 떴다. 이 첫 번째 단계의 지속기간 역시 나중에 돌이키면 측정이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그건 거의 문제 되지도 않는다. 왜냐면 연달아 터진 일들은 주렁주렁 즉각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른 일의 연속이 다채롭게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벌어진 일이라곤 대인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팔을 쭉 뻗어, 마주 쥔 손을 느낀 일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진짜, 다시는 손대지 않기를 원한다면, 그건 이미 끝난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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