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5
메이지가 깨달은 일,
What Maisie Kenw, 1897 by Henry James
소송은 끝도 없어 보였다. 사실 아주 복잡하게 얽혔다. 하지만 항소심 결정에 따라 이혼 법정은 그 아이의 양육 할당에 관해 확정 판결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흙탕물이 튈대로 튀긴 했지만 아이 아버지는 이혼 소송으로 상당한 몫을 챙겼고, 이런 승리의 이행으로 아이를 부양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 일은 어머니의 기질에 더욱 극도로 손상을 입혔다기보다 숙녀로써 외관과 인식(그리고 법정에서 이 숙녀의 외모는 어마어마하게 주목을 끌기도 했지만)의 광채에 오점을 내보인 일로 여겨지는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선고에 덧붙여,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는 전처에게, 3 년여 전에 아이의 양육비의 지분으로 지정으로 하였으므로, 그녀가 예치한 이천육백 파운드를 상환해야한다는, 비얼 패런지 입장에서는 소송의 달콤한 맛이 쑥 떨어지는 명령이 붙었고, 정확하게 확증된 상호 합의로 그는 어떤 권력행사도 할 수 없이 그 돈은 그가 관리권을 가지기는 하지만 한 푼 청구서도 낼 수 없는 돈이 되었다. 소송 상대방에게 부여된 의무는 억울한 아이다에게는 적지 않은 위안거리였으며 패배로 따끔따끔한 자리를 일부나마 어루만지는 연고였다. 우쭐거리던 패런지는 기세등등 마루에서 물러나 완연히 움츠러들었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지불할 수도 혹은 모을 재주도 없었다. 옥신각신 다툼이 아주 살짝 대중의 눈을 벗어나고, 아주 살짝 원래 전쟁의 충격에서 품위를 되찾게 되자 그가 곤란하다는 유일한 쟁점을 내세워 남편 쪽 법률고문들이 타협을 제안했고 실랑이 끝에 아내 쪽도 수용을 하였다.
이런 협의로 그의 빚은 면제가 되었으며 그 작은 소녀는 어떤 면으로 솔로몬의 재판정에 버금가는 해결을 보게 되었다. 아이는 둘로 나뉘어 각 분배 분은 공명정대하게 논쟁자들에게 던져졌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한 번에 육 개월씩 그녀를 맡게 된 것이다. 아이는 각 부모와 꼭 반년씩 보내게 되는 셈이었다. 이 일은 재판정에서 뿜어져 나오던 맹렬한 빛에 아직도 눈이 시려 끔벅거리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조처였다. 그 빛으로 보건대 양쪽 부모 어느 쪽도 순수한 어린이에게 조금도 행복한 예가 되어 주질 못할게 뻔했다. 이런 증거의 당연한 귀결로 부모 책임을 대리할, 누군가 적당한 제삼자, 존경을 받거나 적어도 반듯한 사람을 지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하지만 패런지 부부와 어울리는 사람들을 샅샅이 훑었으나 헛되게도 그런 치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이 모든 어려움에 맞아 들어가는 유일한 해결책이, 메이지를 홈(양육원/가정)에 보내는 일을 제외하면 내가 앞에서 말한 바대로 후견인 사옥의 양분만 남았다. 그녀 부모가 어떤 다른 일에 보이지 않던 동의를 보인 데는 몇 가지 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은 이미 충분히 증명이 된 야비함을 섬겨서라도 아이의 도움을 받아 영예를 만끽할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들의 파열은 만방에 울려퍼졌었다. 그리고 함께로는 완전히 하찮은 존재였다가 갈라서서는 대놓고 두드러진 존재가 될 참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어떤 인상을 주었겠는가? 사람들이 소녀를 구제해달라고 신문에 호소할 길을 찾아야 된다, 목소리 큰 대중들 중심에는, 무슨 운동이라도 시작되어야 한다. 혹은 무언가 자애로운 사람이 나서야된다는 반향이 타당하고도 남았다. 한 명 마음 좋은 친척 부인이 실제로 한두어 발자국 나서기도 했다. 그 여자는 패런지 부인에게 멀지만 친척관계로 패런지 부인에게 아이들과 놀이방을 단속하다가 지금은 접었기 때문에 논쟁의 원인을 집으로 데려갈 여유가 있으니 이 일을 그녀의 체계 속에 포함해 넣음으로써 적어도 부모 한쪽의 부담을 덜 것이라고 제안을 했다. 이런 일은 메이지에게는 매번, 어쩔 수 없이 비얼과 지내야 하는 6개월을 후에, 훨씬 많은 변화 혹은 변경을 가져올 일이었다.
“더 많은 변화요?” 아이다가 소리쳤다. “아이가 그런 저급한 짐승에게서 세상에서 가장 그를 혐오하는 사람에게 오는 변화로도 충분하지 않은가요?”
“아니. 자네는 전남편을 아주 혐오해서 항상 전남편에 대해 그 아이에게 말을 하겠지. 끝도 없이 독설을 퍼붓느라 그 아이 앞에 항상 아이 아빠를 데려다 놓고 있는 셈이야.”
퍼랜지 부인이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면요, 그 사람이 악랄하게 절 욕해대는데 저더러 대꾸 않고 가만있으라고요?”
사람 좋은 친척 어른은 잠깐 동안 아무 대답을 안했다. 그녀의 침묵은 전체 관점에 대한 암울한 판단이었다. “가여운 골칫거리 아가!” 그녀는 끝끝내 탄식을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은 메이지의 어린 시절이라는 무덤에 놓인 묘비명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운명에 그대로 내맡겨졌다. 여느 관망자들의 눈에도 아이와 양쪽 부모를 잇는 유일한 고리는 그녀가 금방이라도 고하(苦河)에 이용되는 그릇, 서로 물어뜯을 산을 섞을 수 있는 작고 깊은 도자기 컵이 되리라는 이 한탄스러운 사실이 또렷했다. 그들은 아이를 하나라도 잘 대해 주려고 원한 게 아니라 아이의 무의식적인 도움을 받아 서로에게 해를 끼칠 수 있도록 아이를 원했다. 그녀는 그들의 분노를 송달하고 그들의 복수로 인장을 찍는 존재였다. 남편과 아내는 준엄한 법의 처결로 똑같이 불구가 되었고, 재판이란 최후의 수단은 그들 말마따나, 모든 것을 갖겠다는 분기 오른 양쪽 주장 어디에도 흡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각자 오직 반만 갖겠다고 했다면 이는 둘 다 다른 쪽이 그런 척 시미치 떼는 만큼 비열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꼴처럼 보였다. 다른 말로 돌려하면 그들 서로가 다를 바 하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둘 다 나쁜 사람으로 비치기 때문이었다. 아이 엄마는 그녀 말을 빌면 아버지가 아이를 “보는 것조차도” 막기를 바랐고, 아버지는 또 엄마가 아주 스치듯 닿는 일도 “모조리 오염”이라고 항변하였다. 이는 메이지가 교육을 받게 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맞춰야만 하는 원칙들에 상반되는 일이었다. 제일 처음 한 점 때 묻지 않은 아이의 영혼 앞에 기다리고 있는 시련을 의심조차 하지 못 하는 일보다 더 마음 뒤흔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를 맡고 있는 이들이 이를 메우려고 또 무엇을 덧붙일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사람들이 있긴 있었다. 그래도 하마면 마음속으로 그들이 아무 일도 불행하게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수다에만 몰두하고 있는 사회였다. 하지만 갈라선 커플에게 마침내 활기찬 활동의 시간을 기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들은 둔부를 거들로 둘러매었다(역주: 남자에게는 전쟁의 표시, 여자에게는 처녀성의 표시). 그들에게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듯하였다. 그들에게 결혼이란 절대 깨지지 않는 싸움의 기회를 주로 의미하였으므로 진짜 결혼 전보다 더욱 결혼한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도 “편”은 있어 왔다. 그리고 더욱 편이 갈릴수록 주체할 길 없이 남아도는 두서없는 대화의 제재가 유쾌한 형태를 취할 전망, 또한 넓어지니까 언제나처럼 여전히 편은 있었다. 패런지 부부의 많은 친구들이 다른 견해에 따라 서로들 뭉쳤다. 반박이 찻잔과 여송연을 사이에 두고 다시 젊음을 되찾았다. 모든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에 아주 충격을 받으리라 확신을 하고 있었고 아무도 그렇게 비분강개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렇게 흥에 겨워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 쌍은 단순히 딱 서로에게만 통하지 않는 사회적인 매력을 가진 듯하였다. 아이다에게 비얼 말고는 아무도 그녀의 피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거나, 비얼에게는 혹여 누가 비얼의 눈을 긁어 파낸다면 그럴 사람은 그의 아내뿐일 거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다면 실로 대단한 일일 것이다. 보통, 처음에는 그들은 아주 보기 좋은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허나 그들은 실제로 더 깊은 잔사(殘渣)까지 분석된 적이 없었다. 그들은 같이 예를 들면 12피트 3인치 조각상을 이루지만 이런 수량의 배분 이상으로 의논되는 일은 없었다. 아이다의 아름다움에 유일한 흠결은 당구에서 번번이 전남편을 무찌르기에 아마 도움이 되었을 팔 길이와 그 범위였다. 당구는 그녀가 우위를 점하는 게임으로,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신체적 폭력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분개는 거개 이로 인한 것이었다. 당구는 그녀가 큰 성취를 이루고 탁월함을 보인 취미였으며 그녀 이름이 언급되면 꼭 제일 먼저 따라붙는 설명이었다. 그녀에 관해 모든 것이 어찌 보면 크지 않을까 싶은, 많은 여성들이 그 방종으로 이익을 얻었을, 다소 아주 길디길게 선으로 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를 제외하면 그녀는 작다는 걸로 찬탄을 받고 입에 오르내렸다. 그 예외가 그녀의 두 눈이었다. 눈은 그냥 정규 크기일 수도 있겠지만 자연의 겸손을 넘는 크기였고 그녀의 입은 반대로 거의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허리둘레로 내기라도 걸라치면 응당 응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밖에 외출하면, 항상 나가있긴 하지만, 모든 곳에서 너무 자주 눈에 뜨인다는 느낌이 드는, 일부러 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조금 서민적인 느낌의 평범한 곳인데 그녀가 웬일일까 의아함을 자아내는, 눈에 잘 띄는 존재란 점을 일견 남용한다는 느낌까지 드는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들만 오직 그럴까, 하지만 그들은 친숙한 이들의 오락거리 들이밀듯, 수시로 그러고 다녔다. 기벽을 드러내는 불가피한 방법이었다. 남편처럼 그녀도 옷을 끌고 다녔다. 마치 기차가 승객 나르듯이 가는 곳마다 옷을 질질 끌고 다녔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기사와 소식으로 그들의 취향을 비교하고 합의를 둘러싼 논쟁을 잘 알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아이다에게 찬사가 몰리는 편이긴 했지만 너무 요란하지 않나, 특히 보석이나 꽃은 덜 난했으면 하는 평이었다. 비얼 패런지는 자연적인 장식, 황금색 흉갑처럼 윤이 나는 보기 좋고 굉장한 턱수염을 무슨 의상 마냥 지니고 있었고 영겁으로 반짝거리는 이빨에, 길고 무성한 콧수염은 길이 잘 들어 이를 또 숨김없이 드러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즐거운 삶의 매력을 내다보였다. 그는 젊은 시절에 외교 일에 종사할 예정이었고 잠시하나 어느 공사관에, 무급이긴 하지만 소속되기도 하여 “내가 한때 동양에 있을 때”라는 말버릇의 명분이 되기도 했지만 현시대의 역사는 왜 그런지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이, 그를 두고 재빨리 지나가버려 그는 피카딜리에 영속적으로 붙박인 몸이 되어버렸다. 모든 사람이 그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오직 2천5백 파운드 뿐이란 사실을 알았다. 불쌍한 아이다는 모든 것을 낭비로 써버리고 이제는 그녀의 짐 가방과 마비된 삼촌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짐승 같은 늙은이라고 부르는 이 인물 앞으로도 상당한 돈이 들어갈 일이 태산이었다. 아이는 비얼 쪽의 작고한 어느 교묘한 숙모를 대모로 둔 덕택으로 대비가 되어 있어서, 아이에게 남겨진 돈이 부모에게는 유일한 수입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지경이었다.
2012-12-28
I
아이는 대비를 했다. 하긴 새로운 합의는 어쩔 수 없이 어린아이 머리에 혼란을 가해 상당히 많은 일이 얽혀 들어간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강하게 의식하였고 그렇게 대단한 원인의 결과가 어떻게 되나, 아주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처음에 아이가 이해한 바보다 훨씬 많은 일을 지켜보아야 하는 일이 이 참을성 많은 작은 소녀의 운명으로 점지되긴 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어떤 다른 꼬마아이들보다 훨씬 많이 이해하긴 하였지만, 아무리 참을성이 많아도 아마 점점 더 이전보다 이해를 많이 해야 할 것이었다. 발라드나 이야기에 나오는 소년 고수(鼓手)나 그런 두꺼운 전투의 포연 속에 있어 봤을 것이다. 그녀는 꼼짝없이 앉아 그냥 환등기 슬라이드의 이미지가 벽을 가로질러 튀어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길 수도 있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격노의 비밀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그녀의 작은 세계는 주마등같았다. 이상한 그림자들이 이불보 위에서 춤을 추었다. 전체 공연은 그녀를 위해, 거대한 극장, 희벗한 어둠 속에 반쯤 겁에 질린 자그마한 아이를 위해 펼쳐지고 있는 듯하였다. 그녀는 요컨대 다른 이의 이기심이 채산이 맞는 삶이 되는 인생을 물릴 틈도 없이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이 특유의 얌전함 말고는 희생을 피할 방도가 없었다.
처음 기간은 아버지와 지냈다. 아버지는 아이 앞으로 엄마가 부친 사나운 편지를 아이가 지니는 일을 오로지 허락하지 않는 일 빼고는 그녀 마음대로 하게 두었다. 그는 한껏 자제하였다. 아이 아버지는 편지를 아이를 향해 높이 치켜들 뿐, 편지를 뒤흔들다가 다음 이를 환히 드러내고 냅다 방을 가로질러 던져, 난로 속에 탁 집어넣어 아이를 웃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하지만 그녀는 겁먹은 피곤의 예측, 그 때까지 떠오르지 않았던 죄의식이 생겼고, 개봉을 하지 않은 딱딱한 봉투가, 커다란 모노그램이 그려진, 아이다가 모노그램으로 가득 채운, 자기도 봤으면 좋으련만. 하고 여기는 봉투가 날아다니는 아주 위험한 무기처럼, 공기 중으로 슈욱 날아오를 것만 같은 폭력의 매력을 느꼈다. 대단한 원인의 가장 대단한 영향은 더욱 대단해진 아이 자신의 중요성이었다. 이제는 허락이고 뭐고 더욱 마음대로 그녀를 돌리고, 이리로 저리로 당기고, 입 맞추는 일이 더 많아졌고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중요성으로 그에 비례해서 그녀가 내보여야만 하는 상냥함도 더 커졌다. 그녀의 이목구비도 어째 좀 더 돌출이 되었다. 아버지를 보러 와서 아이 얼굴에 담배연기를 내뿜어대는 신사 분들이 진짜 끊임없이 꼬집어 대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손님 중의 몇몇은 아이가 성냥불을 긋고 그들 담배에 불붙이는 일을 시켜 주기도 하였다. 또 어떤 손님들은 무릎에 올려놓고 사납게 어르고, 아이가 꺄악 비명을 지를 때까지, 아이 비명조차 감탄을 하며 아이 종아리를 꼬집고 종아리가 이쑤시개 같다며 책망을 했다. 그 단어가 그녀 마음에 쿡 박혀 이후로는 그녀는 일반적인 사람들 바람에 맞아 들어가는 무언가가 결핍되어있다는 느낌에 일조를 하였다. 그녀는 이쑤시개가 무언지 알아내었다. 그건 그녀의 보모인 모들이 짧고 추한 이름을 붙였던, 만찬에서 그녀가 싫어하던 고기 관절 부위와 뼈저리게 연관이 있는 물질의 생산에 붙는 선천적인 버릇이었다. 그녀는 아무도 다시 만나고 싶은 어떤 바람도 없는 시간은, 적어도 모들과의 시간은 제외하고 먼 옛날 과거로 남겼었다. 모들은 켄싱턴 가든즈에서 그녀가 너무 멀리 놀라 갔나 싶을 때 돌아와 살필 때 그 벤치에 항상 앉아 맞아주던 사람이었다. 모들이 아이가 그냥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바라자, 또 아이는 아주 수월히 말을 따라서 그 길고 밝은 날 속의 유일한 얼룩은 모들이 아이가 돌진해서 되돌아오는데 벤치에 모들이 어디에도 없으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던 순간들뿐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가든즈에 갔다. 하지만 거기에도 다른 점이 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다른 아이들의 다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보모에게 저 다리도 이쑤시개냐고 물었다. 모들은 통탄스럽게도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항상 “오, 얘야, 너 같은 다리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 이 말은 보모가 자주 했던 말 “네가 부담을 느낀다. 거기서 부담이 생겨나. 그걸 느끼면 훨씬 더 나빠져, 알겠지.”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메이지는 그 점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그렇게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인식의 일부는 그녀 아버지가 그녀에게 그도 역시 이를 느꼈다고 말하고, 또 아이가 있는 데서 모들에게 아이는 으레 그런 사실을 집으로 몰고 오는 것 같다고 말한 일의 결과였다. 그녀는, 여섯 살의 나이에, 모든 것이 자신 때문에 바뀌었다는, 모든 것이 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열중할 수 있도록 정리되었다는 사실에 익숙해졌다. 그녀는 아버지가 정말 전력으로 기울이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모들이 하던 말들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네 아빠는 끔찍한 말을 다 감수하고 다녔다는 점을 네가 결코 잊지 않기를 바라고 계셔.” 만약 모들 얼굴의 피부가 메이지가 보기에 과도하다는 기운을 띠고, 진짜 아프겠다 싶을 정도로 팽팽하게 당겨졌다면, 드물지도 않은 기회 때마다 한마디씩 내뱉는 그런 말귀로는 결코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그들이 평소보다 더 아프게 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그녀는 그녀 아버지가 겪는다는 고통의 그림에. 그리고 특히 그들에 대한 보모의 태도에, 이런 일들이 기다리고 있던 의미를 붙일 수 있었다. 그녀의 종아리에 대해 비난을 하던 신사들이 하던 말 그대로, 그녀가 좀 더 날카롭게 깡총 자라고 나자, 그녀의 마음속에 모여 있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미지와 메아리 모둠을 발견했다. 아직 자라지 않아 가지고 놀기에 부적합한 게임처럼 그녀를 위해 어린이 같은 그늘, 부연 옷장, 높은 서랍 속에 모아두었던 이미지들과 메아리들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지고 다니던 큰 중압은 그녀 아버지가 그녀 어머니에 대해 했던 일들, 대부분 실제로 모들이라면 잠깐의 눈길에도 그들이 복잡한 장난감이나 어려운 책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서 빼앗아 멀리 벽장 안에 치워버렸을 것들을, 헷갈리지 않고 제대로 담고 다니는 일이었다. 이런 종류의 대상들을 무지하게 한데 묶다보니 거기서 나중에 그녀는 모든 것이 그녀 어머니가 아버지를 두고 했던 말과도 뒤범벅이 되고, 같은 그릇 속에 섞여 들어갔더라는 점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녀는 매일 점점 더 어머니가 문 앞에 나타나 그녀를 데려가는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잘 알았다. 그리고 이 일은 재간 많은 모들이 다른 집에 가서 즐기게 될 수많은 즐거움이라며 아주 크고 쉬운 단어로 종이에 써주지 않았더라면 날이 다가오는 내도록 기분이 어두워졌을 것이다. 이런 약속들은 “어머니의 다정한 사랑”에서 “차에 담긴 근사하게 삶은 수란”까지 다양했다. 기대에 부풀어 아주 늦게까지 앉아서 무슨 옷을 입었는지 모르는, 비단에 벨벳, 다이아몬드와 진주를 차고 있는 숙녀가 외출이라도 나왔나, 쳐다보고앉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최고의 시간이 되어, 모들의 지시에 따라 그녀의 주머니에 찔러넣은 종이가, 거기서 그녀 주먹 속에 콱 쥔 종이의 감촉이 메이지에게 진짜 버팀대가 되어주었다. 그 최고의 시간은 그녀에게 생생한 회상으로, 모들이 거하는 쪽 거실에서 아버지가 금방 말한 무언가에 대한 대답으로 이상하게 터져 나오는, 모들이 큰소리로 울부짖는 기억으로 물들었다. “주인님 자신이 얼마나 낯부끄러운지 알기나 하십니까? 고집하고 있는 방식이 얼마나 민망한지나 아시라고요.” 어머니가 타고 있던 마차는 문가에 있었다. 거기 같이 있던 어느 신사, 항상 거기에 있던 신사는 아주 큰 소리로 웃었다. 팔에 그녀를 안고 있던 아버지는 모들에게 말했다. “이보게나, 이 여자야. 내 곧 정산을 해주리다.” 이 말 뒤로, 그는 메이지를 안고 있는 동안 보이던 때보다 더욱 활짝 이를 드러내며 보모가 그에게 대들며 주워섬긴 말을 그대로 되풀이 하였다. 메이지는 그 당시에는 모들의 갑작스런 무례와 진홍색 얼굴에 놀라 그 말들을 완전히 의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차 안에서 오 분을 경과하자 그 말이 고스란히 떠올랐고, 그 짧은 사이에 그녀 어머니는 모든 키스들, 리본들, 눈길, 팔, 기이한 소리와 달콤한 냄새들 속에서 그녀에게 말했다. “내 소중한 천사야, 그런데 너의 짐승 같은 아빠가 너의 사랑스러운 엄마에게 어떤 메시지라도 보내더냐?” 그런 후 그녀는 짐승 같은 아빠가, 어쨌든, 당혹한 작은 그녀의 귀에 대고 했던 말이, 엄마가 간청을 듣고 보니, 거슬러 전달되어, 또렷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작고 순진한 입술에서 바로 “아빠는 엄마한테 전하라고 하셨어요. 아빠 말이. 뭐냐면 당신은 진저리나는 못된 돼지다.”라고 충실하게 보고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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