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II
수지는 스트레포드를 런던에서 기다리기로 결심했었다.
새 올트링엄 경은 그의 가족과 북쪽에 있었다.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전보를 받긴 해도 그 다음 주에 마을에 그녀와 합류할 거라는 내용이어서 그녀는 여전히 며칠 사이는 메워야 했다.
런던은 사막이었다. 비가 쉬지 않고 내렸고 성수기가 끝났는데도 그녀가 구할 수 있는 최상이었던 허름한 가족용 호텔에 홀로, 마침내그녀는 자신과 일대일 대면을 하고 앉았다.
바이올렛 멜로즈가 풀머의 어린이를 두고 계획의 이행에 실패한 순간부터 수지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눈에 보이게 약해졌다. 과거에도 종종 수지 브랜치는 그 순간의 주인들의 태도에서 동일한 급작스런 온도 변화를 느꼈었다. 그래서 종종, 정말로 자주, 소원해지는 결과를 무릅쓰느니 양보를 하고 요구된 서비스를 수행 하던 일도 다반사였다. 그 점에서, 적어도, 고맙게도 다시는 그녀가 몸을 숙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베르사유에서 서둘러 트렁크 짐을 싸고, 매치 부인에게 적당한 팁을 어렵게 긁어모으고 (그녀의 방문객이 철도역으로 안전하게 향하게 되자 갑자기 애정이 커지고 감정을 드러내던) 바이올렛에게 작별의 고하자, 수지가 강요된 고별의 친숙한 오랜 무언극을 치르면서, 그녀의 임시변통의 공간과 숙박시설을 전전하는 삶에 대한 넌더리가 너무 깊이 일어나 그 순간 닉이 다시 나타나 그녀에게 팔을 내민다면, 그녀에게 그런 공간으로 돌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을 정도였다.
런던의 고독 속에서 독립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사납게 커졌다. 물론 훌훌 던져버린 독립이다. 오, 지긋지긋한 아무 쓸모없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그것은 항상 그녀에게 저주였다. 만약 그녀가 이를 충족하고 표현할 물질적 수단을 가지고만 있었더라면 그녀에게 축복이었을 텐데! 그런데 그 대신에 노란 비의 불빛 속에 잠긴 흉측한 호텔 침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검댕과 양배추의 냄새, 울퉁불퉁한 벽지, 유리 공 아래 먼지투성이 밀랍 부케, 천장의 중간에 늘어뜨린 희미한 전구를 켜면 침대 옆의 더욱 희미한 다른 것이 나가버리는 아주 계획적인 전기 불빛에 병적인 혐오감만 짙어졌다!
그녀와 닉은 몇 달 아닌 동안 같이 얼마나 엉터리 세상에 살았던가! 그들 중 누가 여유로운 삶의 정교한 무대, 호수 위의 동백과 사이프러스에 숨은 길고 하얀 집, 혹은 프레스코화 천장에 어른어른 운하의 물결이 항상 하느작거리는 지우데카 운하 위의 커다란 방들을 누릴 권리를 가지기라도 했던가? 그래도 이런 장소들이 진짜로 그들에게 속한다고, 그들이 항상 애정 가득, 나무랄 데 없이, 다른 이의 부의 틀 속에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그건 다시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의 저주였다, 그녀가 항상 그녀에게 속한 것처럼 밀고나가던 방식에 대한 저주였다!
그래. 자각은 언젠가는 올 일이었고, 아마도 그렇게 빨리 와야만 했던 게 나을 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녀의 생각이 산산이 부서진 그들의 헛된 천국으로 돌아가려고 헤매 다녀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직, 거기에 앉아 스트레포드가 올 때까지 날짜를 하나씩 꼽으면서, 세상에 그 밖에 생각할 만한 게 있는가?
그녀의 미래와 그의 미래?
하지만 그녀는 그 미래를 이미 익히 알고 있다! 그녀는 부자와 상류사회 속에서 삶을 보내면서 부자와 상류사회 결혼의 과시적인 허세의 모든 세부이라면 아니 배운 것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얼마나 많은 디너 드레스가 얼마나 많은 티 가운이 얼마나 많은 레이스 속옷로 미래의 올트링엄 백작부인의 복장을 구성할까 다 산정했었다. 그녀가 하나 가졌으면 하는 친칠라 외투며 어떤 드레스메이커에게 맞추러 갈지도 다 점찍어 두었었다. 그녀의 발치까지 치렁치렁 더욱 부드럽고, 더욱 육감적이고, 바이올렛이나 우르술라 것보다 더욱 사치스럽게 호화로운…… 은색 여우 털옷이나 흑담비는 말할 것도 없고…아니, 올트링엄 가문의 보석들하며.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항상 알아왔던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이 우아한 삶의 구성물에 속했다.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녀가 새로 알아낸 것은 그저 닉과의 짧은 기간이, 그 설정은 정말 비현실적이었지만 그 본질은 정말 현실적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이제껏 알아온 단 하나의 현실이었다.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그녀는 황금 같은 행복의 쇄도, 가슴과 몸 깊이 오감을 만족시키는 환희의 갑작스런 개화를 제쳐두고서라도 얼마나 많은 것을 그녀에게 주었나 번연히 보였다. 그래도 무언가 더욱 진중한, 강한, 미래의 힘으로 꽉 찬, 무언가 처음 가벼운 황홀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항상 황홀이 가라앉으면 그녀의 잠잠해진 영혼에 돌아와 사로잡던, 마치 산고 같은 진통 역시 만개하였다. 닉과 사랑이 그녀에게 가르친 무언가 그 깊은 동요의 감각, 하지만 사랑조차 그리고 닉 조차 더 너머 뻗어나간 감각 역시 개화하였었다.
그녀의 신경은 끊이지 않는 휙휙 소리에, 더러운 유리창을 때리는 비의 쏴한 소리에, 창문을 닫고 나자 문 밑으로 기어들어오는 양배추와 석탄의 냄새에 시달렸다. 곧 내려가야만 하는 점심의 이런 속 울렁거리는 맛보기는 그녀가 견딜 한계를 넘었다. 그 냄새에 묻어 아래층 눅눅한 다실, 그을음이 묻은 스미르나 깔개, 천공광 위의 비, 음식물에도 역시 비가 내린 듯한 맛이 나는, 열의 없는 웨이트리스가 건네주는 음식의 광경까지 따라 올라왔다. 그녀가 그런 물질적인 궁핍을 그녀의 우울함에 더하도록 두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모자와 상의를 입고, 택시를 불러 누보 뤽스 호텔의 런던 분점으로 몰아 갔다. 막 한시였고 그녀는 점심 한 끼는 얻겠거니 확신했다. 런던이 텅 비었다 해도 거대한 시설물들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적이 없었다. 관능적인 벨벳 카펫을 깐 복도를 따라, 그 엄청 꽃으로 장식하고, 향내를 더한 식당 안에는 항상 들고나는 목적 없는 부자들이, 지구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직무를 쫓아다니며 아무 할 일 없이, 바쁜 사람들이 있었다.
오, 천편일률적인 그들의 얼굴들. 사람들이 항상 아는, 사람들이 거기에 속했는지 아닌지 아는 얼굴들! 그들을 보자 새로운 혐오감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마음이 약해져, 돌아서서 도망쳤다. 하지만 문턱에서 한층 익숙한 인물이 그녀를 마중했다. 지나친 진주목걸이와 흑담비 옷을 입고, 잡지선전처럼 보석으로 치장한 미인들과 호리호리한 젊은이들이 알프스 정상에서 눈 덮인 봉우리를 쳐다보느라 멈춰서 있는, 거대한 방주 같이 과한 자동차에서 내려오는 한 숙녀가 있었다.
우르술라 길로우였다. 오랜 친구 우르술라. 스코틀랜드에 가는 길에 그녀와 수지는 서로의 길목에서 맞닥뜨렸다. 드레스메이커의 늑장으로 다음날 저녁까지 지체가 된 우르술라는 또한 딱히 할 일이 없어 시간을 죽이고 있노라고 언급했고, 그 둘은 곧 수석 웨이터가 권위적으로 길로우 부인에게 “평소처럼 그에게 맡겨두라고” 청한 매우 아름다운 오찬의 예비 상차림 위로 서로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르술라는 기분이 좋았다. 이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녀의 자비심은 한계가 없었다.
멜로즈 부인처럼, 사실 그녀의 모든 종족들처럼, 우르술라는 자신의 일에 너무 몰두를 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은 살짝 스치는 이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만남이 어쩌다 선택권자의 유쾌함을 방해하지 않는 한에서, 방랑하는 인류가 다른 동료 방랑자와 우연히 마주치면 항상 기뻐하듯이 그녀는 수지를 만나 기뻐했다. 혼자 있지 않는 일이 시급한 일이었다. 그래서 런던에서 마흔여덟 시간을 혼자 지낸 우르술라는 친구에게서 즉시 남은 시간을 같이 지내야 한다는 약속을 강제로 받아내었다. 하지만 그 합의가 타협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비밀들을 수지에게 그런 경우들의 수석 웨이터의 이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연달은 요리접시들 위로 쏟아내었다.
우르술라의 비밀들이란 보통은 사람이 달라지긴 하지만 항상 똑 같았다. 그녀는 그녀의 정서적인 삶을 그녀의 드레스 메이커를 바꾸고, 거실을 다시 꾸미고, 새로운 차를 주문하고, 보석을 다른 받침에 얹고, 그녀 삶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갱신을 하듯이 똑 같은 빈도와 욱하는 마음으로 부쉈다가 재건했다. 수지는 그 이야기가 무엇일지 미리 알았다. 하지만 완벽한 커피, 그녀 입술의 호박색 향내 궐련 위로 듣고 있는 일은 곰팡내 나는 다실에서 혼자 차가운 양고기를 우적거리고 있는 일보다 더 유쾌했다. 그런 대조가 너무 마음이 누그러져 그녀는 그녀 친구의 이야기에 나른한 흥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점심 후에 그들은 같이 차에 올라 웨스트엔드에 즐비한 모피상인, 보석 상인과 고가구 판매상의 가게들을 조직적으로 돌기 시작했다. 물건을 앞에 두고 원하던 물건이라는 생각에 결정을 내릴 때까지 바이올렛 멜로즈이 한참이나 망설이는 때와 그렇게 다를 수도 없었다. 우르술라는 그녀의 과잉의 감상벽에 흡족하다 싶은 물건이면 즉각적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은색 여우 털옷이며 옻칠 고가구를 답삭 물었다. 그녀는 즉각 그녀가 원하는 물건을 알았고 그녀의 것이 된 후에는 더욱 가치를 쳐주었다.
“그런데 이제 네가 그랜드 피아노를 고르는 일을 도와줄 수 없을까.” 마지막 골동품 전문가가 배웅의 절을 하자 그녀가 은근 물어왔다.
“피아노?‘
“그래. 루언에 보내려고. 그레이스 풀머를 위해 내려 보낼 거야. 그녀가 와서 머물 거거든……내가 말했던가? 나는 사람들이 그녀 연주를 들었으면 해. 나는 그녀가 런던에서 계약을 따냈으면 해. 정말이지, 그녀는 천재야.”
“천재? 그레이스가?” 수지가 말이 턱 막혔다. “나는 내트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내트라, 내트 풀머!” 우르술라 조소의 웃음을 웃었다. “아하, 너는 그 어리석은 바이올렛하고 머물다 왔으니까 그렇겠지! 그 불쌍한 이는 내트에 완전히 정신이 나갔어. 가여워 죽겠어. 그 사람 물론 재능은 있어. 나는 바이올렛이 그 사람에 대해 듣기 훨씬 전부터 알아봤지. 왜, 지난겨울 미국 미술가 전시회에서 개막식 날, 나는 ‘봄 눈보라’ 앞에 뚝 멈췄어. 아무도 그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데 나하고 같이 있던 왕자님께 말씀드렸어. ‘이 남자 재능이 있어요.’ 하지만 천재는, 아니, 천재적 재주가 있는 건 그의 아내야. 너는 그레이스가 바이올린 연주하는 거 들어본 적 없어? 불쌍한 바이올렛, 평소처럼 완전 빗나가서 떠벌리고 있는 거지. 나는 풀머에게 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에 가든 하우스를 줬어. 너도 바이올렛에게서 들었지? 하지만 그레이스는 내가 발견한 보물이야. 나는 그녀를 알리고 그녀가 두 사람 중에 천재라고 모든 사람들이 알아보도록 할 작정이야. 나는 그녀에게 아무 생각 말고 루언에 꼭 오라고 말했어. 그리고 그녀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반주자도 데리고 오고. 너도 가여운 네로네가 총을 들고 나가긴 해도 끔찍하게 운동경기는 지루해하는 거 알지. 그리고 사람들이 저녁에 작은 예술 시간을 갖지 않으면……오, 수지, 진짜 네가 어떻게 피아노 고르는지 모른다는 말이니? 나는 네가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음악은 좋아해. 하지만 음악에 관해 아는 것 없이-그저 우리 모두 우리 어리석은 집단이라도 가치가 있는 것들은 좋아하듯이 좋아만 하는 거야.” 덧붙임 말은 혼자서만 삭였다. 우르술라에게 그런 생각의 반영을 전하는 일은 분명 쓸모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레이스가 온다는 게 확실해?” 그녀는 큰 소리로 물었다.
“그렇고말고. 못 올게 뭐 있어? 그녀에게 어제 전보를 쳤어. 그녀에게 천 달러하고 모든 경비까지 지불할 거야.”
그들이 피커딜리 찻집에서 차를 마실 즈음이 되어서야 길로우 부인이 그녀 친구의 계획에 무언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지를 잃는다는 생각에 갑자기 속이 탔나 보았다. 시즌이 지난 런던에 어물쩍거리고 있을 이유를 모르겠다던 왕자는 루언으로 이미 내려갔고 우르술라는 그날 저녁과 그 다음날 하루 종일을 혼자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너는 무얼 하고 있는 거야? 너한테 물어봤는지 기억이 안 나네.” 그녀는 수지의 담배로 불을 붙이며 차 탁자에 단단히 팔을 얹고서 말했다.
수지는 망설였다. 그런 시간에 왜 여기 있는지 무슨 해명을 해야 할 때가 곧 닥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리고 우르술라에게 먼저 말을 못 꺼낼 이유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나?
그녀의 침묵은 길로우 부인에게 비난 같은 인상을 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뉘우치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닉은? 닉은 너하고 있지? 그는 어때? 나는 너하고 닉이 베니스에서 여전히 엘리 밴더린과 있을 줄 알았어.”
“몇 주 동안 그랬지.”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주 즐거웠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은 다시 각자 있어, 당분간은.”
길로우 부인은 더욱 탐색적으로 그녀를 뜯어보았다. “오, 너는 여기 혼자 있다고. 그럼. 완전히 혼자?”
“그래, 닉은 친구들과 지중해를 항해하고 있어.”
우르술라의 얕은 시선이 특이하게 깊어졌다. “하지만 수지. 그러면 네가 혼자서 하는 일도 없이, 그냥 잠시 동안?”
수지는 미소를 지었다. “글쎄 확실하진 않아.”
“오, 하지만 네가 그러면 있잖아. 너도 루언으로 와! 프레드가 너 초대했단 거 알아, 맞지? 그리고 내게 너희 둘 다 거절했다고 하던데. 그이는 너희들 안 오는 일에 끔찍하게도 씩씩댔어. 하지만 닉이 다른 계획이 있어서 그랬던 거로군. 우리는 지금은 그를 맞을 수 없어. 다른 포수를 맞을 방이 없거든. 하지만 그가 여기 없다면 네 마음대로지. 왜 잘 알잖아, 우리가 너하고 있기 바라는 거. 프레드 역시 좋아할 거야. 아주 엄청나게 좋아하겠지. 하지만 너는 프레드 구애는 너무 신경 쓰지 마, 응? 그리고 너는 내게 무척 도움이 될 거야. 무슨 싸움 같은 게 일면! 그 큰 집이 남자들로 가득 차서 사람들이 매일 밤 저녁 먹으러 떼를 지어 모이고 프레드는 오직 스포츠만 신경 쓰고, 네로네는 그저 혐오하고 그걸 비웃기만 할 거고, 그를 기분 좋게 맞춰주느라 절대 나 혼자 시간은 1분도 못 내겠지 ……오, 수지. 안 된다고 하지 마. 바로 내일 밤 기차에 자리 알아보게 전화해도 되지?”
수지는 뒤로 기대고, 그녀의 담배의 재가 길어지도록 가만있었다. 얼마나 익숙한가, 얼마나 가증스럽게 저런 오래된 호소가 익숙한가! 우르술라는 프레드와 몇 주가 희롱하고 시시덕거릴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간절한 압박을 느끼고 있다……그리고 여기 그녀가 필요한 바로 그 사람이 있다. 수지는 그 생각에 진저리를 쳤다. 그녀는 진짜 루언으로 갈 뜻이 없었다. 황야 지대는 바이올렛 멜로즈가 문 밖으로 살살 떠밀었을 때 그저 핑계로 댄 것이었다. 우르술라가 부탁한 일을 하느니 그녀는 스트레포드에게 그가 제안했던 대로 몇 백 파운드를 차라리 빌리겠다. 그런 뒤 일시적으로 머물 것을 찾아다니다가 언젠가……
언젠가 레이디 올트링엄이 될 때까지? 음, 어쩌면. 하여튼 그녀는 우르술라의 노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로 머리를 저었다. “미안해. 우르술라. 물론 나도 아주 진짜 가고 싶긴 한데…….”
길로우 부인의 눈길이 점차 책망조였다. “나는 꼭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투덜거렸다. 수지는 그녀의 눈을 맞아, 저 아래 호의가 드리운 기나긴 앞날을 들여다보았고 우르술라가 그들 사이에 놓인 채무가 어느 쪽에 있는지 잊지 않을 여성임을 감지했다.
수지는 망설였다. 그녀가 길로우 부부의 결혼축하 수표를 소유했을 때 몇 주의 황홀경을 기억했다. 그리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는 일은 마음이 아프다.
“나도 할 수 있으면, 우르술라……하지만 진짜……나는 지금 당장은 자유롭지 않아.” 그녀가 말을 중단했다가, 갑작스런 결정을 내렸다. “사실은 있지, 나는 여기서 스트레포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어.
“스트레포드? 올트링엄 경?” 우르술라가 빤히 보았다. “아, 그래. 기억난다. 너하고 그이하고 막역한 친구였었지. 안 그래?” 그녀의 산만한 주의가 깊어졌다……하지만 수지가 영국에서 가장 부자 남자 중의 한 명인 올트링엄 경을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니 놀랄 일이군! 갑자기 우르술라가 금색 망사 백을 열고 소형 다이어리를 속에서 낚아챘다.
“하지만 잠간 기다려 봐. 그래. 다음 주야! 나는 그가 다음 주가 그가 루언에 오는 주인 줄 알았다니까! 하지만 너, 그러면 모든 게 다 잘됐네. 너는 즉시 전보를 보내고 나하고 내일 같이 가자. 그리고 이런 형편없는 질퍽질퍽한 불모지 대신에 거기서 그를 만나. 오, 수지. 내가 스코틀랜드에서 왕자님과 프레드 사이에 있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면, 진짜 안 된다는 말도 못 꺼낼 거야!”
수지는 여전히 흔들렸다. 하지만 어쨌든, 스트레포드가 진짜 루언으로 갈 생각이면 젖은 런던 거리들을 배회하며 그와 따분한 날을 보내는 대신에, 아니면 왁자지껄한 레스토랑 오케스트라 소리 너머 그에게 악을 쓰는 대신에, 거기서 그를 못 볼 이유도 없지 싶어 동의하였다. 그녀는 그가 그녀와 런던에 하릴없이 지내기 위해 루언으로 가는 방문을 연기할 성 싶지 않았다. 그런 양보는 그의 사전에 없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완벽하게 그가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지금은 더욱 그럴 리 만무하였다.
처음으로 그녀는 그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완전히 감이 왔다. 당연지사로 그의 하루 그리고 시간은 모두 미리 앞서서 계획이 짜였다. 초대가 그를 괴롭히고 기회가 그에게 자꾸 권하니 그는 오로지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니 여자들은! 그녀는 여자들 생각은 전에 해본 적이 없었다. 영국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그와 결혼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녀 자신의 진취력 있는 동료들을 말할 것도 없이. 그리고 결혼한 여자들도 있다. 이들은 더욱 더 두려워해야 할 사람들이다. 스트레프는 당분간 결혼에서 도망 다닐 수 있겠지만. 그녀는 설득의 힘을 추정할 수 있긴 해도, 그가 그렇게 자주 비웃던 가문의 압력,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통의 영향들에서 그녀가 아는 바로는, 그래도 완전히 벗어버린 적은 결코 없었다. 그렇다. 올트링엄에 있는 눈에 띄지 않은 조용한 그 여인들, 숙부의 미망인, 그의 어머니, 독신의 누이들, 요령과 끈기를 보이는 일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그리고 가장 어리석은 여인들이 그런 경우에 요령 있고 끈기를 보이는 법이니, 그들은 결국에 그의 의무라고 그를 설득하고, 그의 앞길에 딱 맞는 젊고 아리따운 색시를 들이밀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당장에도 지금은 결혼한 여자들이 있었다. 아, 그들은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십중팔구 벌써 그들의 덫을 놓았을 것이다! 수지는 그 생각에 몸을 떨었다. 그녀는 속임수가 이뤄지는 방식을 너무 잘 알았고 그런 모든 접근들의 꾸불꾸불 복잡한 굽이를 자주 따랐었다. 그것도 너무나 자주. 요즘은 그렇게 구불거리지도 않는다. 그냥 때가 되면 덤비고 덮쳐 낚아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차츰 다가가는 모든 기교와 농간들을 알았다. 그녀는 그것들을 알았다. 얼마든지 그녀는 그것들을 알았다. 감사하게도 스트레프에게 하지만 그녀가 그것들을 행사하도록 요청을 받은 적인 없다니! 그의 사랑이 부탁만 하면 거기 있었다. 그를 거절하는 바보가 되지는 않겠지?
아마도-그 지점에서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긴 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녀는 분명히 우르술라의 압력에 항복하는 게 나을 것이리라. 마음에 맞는 친구들 속에서 그를 루언에서 만나는 게 낫겠지. 거기서 그녀는 그녀의 자세를 취할 시간을 얻고, 어떤 위험이 그를 위협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그녀의 결심을 결정할 시간을 가질 것이다. 아무튼 그를 다른 여자들에게서 구해주는 게 그녀의 임무이다
“저기, 정히 그렇다면, 그러면 우르술라…….”
“오, 천사라니까, 넌! 너무 기뻐! 우리 가장 가까운 우편국에 가서 직접 전보를 보내자.”
그들이 차에 오르자, 길로우 부인는 수지의 팔을 간청의 압력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너 프레드가 너에게 조금 구애해도 눈감아 주겠지, 응?”
XVIII
“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엘리 밴더린이 솔직한 어조로 말했다. “이혼 기다리기 전에 너희 약혼 먼저 발표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사람들이 그렇게들 하기 시작하더라고. 네가 그럼 훨씬 더 안전할 테니까!”
밴더린 부인은 세인트 모리츠에서 영국으로 돌아오던 길에 잠깐, 겨우 두 달 전에 터질 듯이 트렁크마다 잔뜩 채워 넣었건만, 고갈이 된 옷장을 새로 갖추려고 파리에 멈췄다. 같은 목적으로 지구의 온갖 지점에서 와글와글 떼로 모여든 다른 숙녀들은 누보 뤽스의 루이 16세 스위트, 식당에서 분홍색 촛불을 밝힌 테이블, 드레스 메이커들의 가봉 시간을 두고 다투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사람들로 아주 그득하고, 모든 열정적으로 같은 일들을 같은 시간에 얻기 위해 싸우느라, 모두 들뜨고, 행복하고 마음 느긋하게 지냈다. 1년 중에 가장 중대한 기간이었다. “드레스 메이커의 시즌”의 절정이었다.
밴더린 부인은 루드라페 어느 한군데 개막날 수지 랜싱을 우연히 마주쳤다. 그 거리에 열기와 감정에 탈진한 여인들이 줄줄이 완전한 몰입하여 몇 시간씩 앉아있으면, 한편 믿기지 않는 의복을 걸친 괴기한 허깨비들이 아픈 발을 하고 쉬지 않고 종종거리며 그들을 지나쳤다.
여왕 같은 한 친칠라 외투의 장관에 한눈이 팔려 있다가 다른 여성 역시 이를 꼼꼼히 뜯어보고 있다고 눈치 채고 고개를 돌리던 밴더린 부인은 깜짝 놀랐다. 그 모피를 비판의 눈길로 굽어보고 있던 사람이 수지였던 것이다.
“수지! 당신 여기 있는지 전혀 몰랐어! 길로우 부부와 있다고 신문에서 봤는데.” 관습적인 포옹이 뒤따랐다. 그런 뒤 눈으로 물러나고 있는 마네킨들의 전경이 사라지는 내내 비할 데 없는 외투에 쫓고 있던 밴더린 부인은 날카롭게 추궁했다. “우르술라 대신 쇼핑하는 중이야? 그녀 대신 그 외투를 주문할 작정인지 조금 알고 싶은데.”
수지는 대답 전에 잠깐 말을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멈춘 사이에 그녀는 머리의 깃털 달린 관에서 에나멜가죽 구두의 완벽한 장심까지 매우 아름다운 엘리 밴더린의 세월을 잊은 젊은 자태의 세부들을 샅샅이 눈여겨보았다. 마침내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아니요. 오-늘은 저 자신을 위해 쇼핑하고 있어요.”
“자신? 당신 자신?” 밴더린 부인 쉽사리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되풀이 물었다.
“그래요. 그냥 변화를 주려고.” 수지가 잔잔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외투는, 그 친칠라 외투 말이야……어민 안감을 댄 거…….”
“그래. 그거 진짜 좋지 않아요? 하지만 결정하기 전에 다른 곳도 둘러볼 작정이에요.”
아, 얼마나 자주 친구들이 저 문구를 사용하던 걸 들었던가! 그리고 오만하게 물린 어조로 자신이 무심히 턱 던지는 소리를 듣고 엘리가 놀라는 모습을 보는 일은 또 얼마나 짜릿한가! 수지는 점점 더 그런 전환에 중독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그녀의 나날은 그들만큼 북적거리긴 해도 그럼에도 무겁게 느릿느릿 지나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형 드레스 제작자들을 찾아가고, 늘어선 마네킨들을 쳐다보고, 그런 과정에서 비할 바 없이 거만하게 가장 비싼 드레스를 검토하고 있던 친구들 눈에 뜨이는 일은 즐거웠다. 그녀는 자신과 닉이 이혼을 할 것이고 올트리엄 경이 그녀에게 “진력”을 다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런 보고에 확언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되는 대로 수월한 물결을 타고 앞으로 사치스럽게 떠밀려 나가도록 두었다. 하지만 이제 닉이 팔라조 밴더린을 떠난 지 석 달이 되었건만 그녀는 아직 그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고 그 역시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한편 그녀가 그런 일로 매일을 가득 메우고 있음에도 그 나날들은 더욱 더 천천히 흘러갔다. 그리고 그녀가 의지하고 있던 흥분들은 더 이상 그녀를 흥분시키지 않았다. 스트레포드는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그녀가 자유로워지자마자 결혼할 거란 걸 알았다. 그들은 루언에서 열흘간 같이 있었다. 그리고 그와 자동차로 남쪽으로 옮겨 도중에 그 순간에 상중인 친척들이 마침 없던 올트링엄에 들러 구경을 했다.
올트링엄에서 그들은 헤어졌고 영국에 있던 동안 한두어 군데 더 방문하고 그녀는 파리로 돌아왔고 거기서 그는 그녀와 이제 합류할 참이었다. 올트링엄에서 지낸지 몇 시간 안 되어 그녀는 그가 필요한 만큼 길게 그녀를 기다려 줄 거란 걸 알게 되었고 그녀를 괴롭히던 “다른 여성들”에 대한 공포도 중단되었다. 하지만 아마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미래는 그녀가 기대했던 것보다 덜 흥미진진했다. 때로 그녀는 그건 그녀를 압도했던 그 거대한 집을 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건물은 너무 방대하고 너무 숭엄하고 고대의 세력권의 전통과 의무로 지어진 너무 기념비 같은 막대한 건물이었다. 아마도 너무 오랫동안 아주 신중하고 생각 깊고 양심적인 여성들이 들어가 살아 왔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왜 그런지 그녀는 이 저택이 브리지와 빚과 간음으로 침범되는 모습을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런 것들도 암 있어야만 할 것이겠지, 물론……그녀는 스트레포드이든 그녀 자신이든 거기서 무거운 자치주의 책무들, 심심한 파티들, 고된 의무들, 매주 교회 가는 일, 지역 위원회들의 주재하면서 그들의 삶을 지속하는 그림을 그릴 수가 거의 없었다. 그냥 다 팔아버리고 템즈 강이 보이는 작은 집을 가질 수 없다니 얼마나 불쌍한 일인지!
그럼에도 그녀는 올트링엄이 그녀가 받아들이겠다고 선택하면 그녀 차지라고 알려지게 두는 게 아쉽지 않았다. 때때로 그녀는 닉이 알고 있는지……그에게 소문들이 닿는지 궁금했다. 그랬다면 그가 감사할 자신의 편지를 받은 것일 뿐이다. 그는 어떤 항로를 쫓을 것인지 그녀에게 물었었다. 그리고 이게 지금 쫓고 있는 항로이다.
잠시 동안은 엘리 밴더린과의 만남이 그녀에게 충격이었었다. 그녀는 다시는 엘리를 보지 말았으면 바랐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 하고 있는 지금 수지는 그녀의 감수성이 얼마나 둔해졌는지 감지되었다. 잠시 지나자 다시 돌아와 점차 길이 들고 있는 옛날 생활 속 모든 사람들, 모든 일들처럼 그녀는 점차 엘리에게 익숙해졌다. 그런 일에 그런 법석을 떠는 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녀와 밴더린 부인은 드레스 메이커 가게를 같이 떠났다. 그리고 새로운 모자 장수의 가게에서 흠뻑 빠져 지낸 후에 이제는 누보 뤽스의 엘리 방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엘리는 버릇없는 어린 아이의 고집처럼, 친칠라 외투의 문제로 다시 돌아왔다. 그 외투는 그녀가 아주 적으나마 끌린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물품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괜찮은 털옷을 하나도 그녀 이름 아래 찜해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연적으로 얼마간 마음이 조급하였다.……하지만 수지가 그 모델을 친구를 위해 고르고 있었다면야…….
수지는 쿠션에 등을 기대고 반쯤 감긴 눈썹 사이로 찬찬히 미묘하게 재건한 밴더린 부인의 작은 용모를 뜯어보았다. 거기에 그녀가 아주 유명했던 젊은 데이브넌트로 담론을 벌일 때 짓던 어린아이 같은 열망과 일치하는 표정이 담겨있었다. 다시 한 번 수지는 현재 엘리의 좌불안석의 상태에서 모든 관심이 정확하게 같은 수평면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느꼈다
“부들부들 떠는 불쌍한 그 친구는,” 그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근사하고 뜨뜻한 그 겨울 외투 가지라지요. 그리고 저는 다른 것을 대신 고르면 되고.”
“오, 마음도 고와! 정히 그렇다면! 물론 누구의 필요를 대신해 주문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그이는 결코 모르…….”
“아, 그런 걸로 위안은 삼지 마세요. 아쉽지만. 저는 이미 당신에게 제가 저를 위해서 주문하고 있었다고 말씀드렸어요.” 수지는 말을 멈춰 멍하니 어리둥절한 엘리의 표정을 맘껏 음미했다. 그런 뒤 그녀의 즐거움은 그녀 친구의 표정에 정의하기 힘든 변화로 제지를 받았다.
“오, 이런, 진짜로? 나는 누군가 있으리라고 몰랐어…….”
수지는 머리끝까지 얼굴이 붉어졌다. 굴욕감의 공포가 그녀를 덮쳤다. 엘리가 감히 그녀를 그렇게 생각하다니, 저 대단한 인물이 감히 그렇게!
“누군가 나를 위해 친칠라 외투를 사준다고요? 고맙기도 하지!” 그녀는 확 타올랐다. “당신에게 그런 생각이 즉시 떠올리지 않았다니 고마워해야 할 것 같군요. 적어도 품위 있는 의구심이 드는 시기라도 있었으니…….” 그녀는 다시 웃으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방 여기저기를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벽난로 위 거울 속에 벌겋게 화가 난 얼굴, 그리고 당혹한 밴더린 부인의 얼굴이 잡혔다. 그녀는 친구에게로 몸을 돌렸다.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한다면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여겨도 되겠네요. 그러니 제가 설명을 하는 게 낫겠어요.” 그녀는 말을 멈추고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닉과 나는 헤어질 작정이에요. 실은 헤어졌어요. 그는 모든 일이 실수라고 간파했어요. 그는 아마 조만간 곧 결혼하겠지요. 저도 그럴 거고요.”
그녀는 숨도 안 쉬고 엘리 밴더린이 잠시라도 어떤 다른 이유를 더 떠올릴까봐 섬뜩한 불안함에 자백을 내리쏟았다. 그녀는 그렇게 솔직할 뜻은 없었다. 하지만 일단 그 단어들이 나오자 그녀는 온통 비참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사람들은 곧 왜 그녀가 세계를 홀로 헤매고 다니는지 말들이 돌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닉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인데, 그녀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이유는 없잖은가? 마지막 시간 베니스의 불타오르던 분노를 떠올리며 그녀는 그녀를 아주 초라하게 만든 그 남자에게 갚을 어떤 배려라도 빚지고 있던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엘리 밴더린은 그녀를 당황하여 쳐다보았다. “당신이? 당신하고 닉이 갈라선다고?” 무언가 반짝 그녀에게 떠오른 모양이었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그가 내 핀을 돌려보낸 게 그 이유였구나. 맞지?”
“당신의 핀요?” 수지는 처음에 기억을 하지 않아 의아해 되물었다.
“내가 베니스를 떠나기 전에 그에게 준 가여운 작은 스카프 핀. 그 사람 거의 즉각 돌려보냈어. 진짜 이상한 쪽지하고 그냥 ‘나는 진짜 이런 받을 짓 안 했다.’ 나는왜 그가 핀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더라니까. 하지만 지금보니 당신하고 그 사람하고 싸웠던 거로군. 진짜라고 해도, 그랬대도 그가 왜 굳이 내게 유감을 품는지 알 수가 없어…….”
수지는 금세 피가 솟구쳤다. 닉은 그 핀을 돌려보냈구나, 이 사태를 부른 그 핀! 그리고 그녀, 수지는 그 팔찌를 눈에 뜨이지 않게 넣어 모셔두었다. 짐을 싸거나 풀면서 이를 만질 때마다 그 작은 통에 흠칫 움츠러들긴 했지만 돌려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 한 번도 안 났다! 둘 중에 누가 옳은 걸까? 그녀는 궁금했다. 닉이 이해도 못하는 불쌍한 엘리에게 선물을 다시 내던지는 게 그녀에게 간접적인 모욕은 아닌가? 아니면 오히려 그의 더욱 고결한 도덕적 민감성의 또 다른 증거는 아닌지?……그리고 그들의 갈피 못 잡는 세계에서 어떻게 누가 감히 말 할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싸웠기 때문이 아니에요. 우리는 싸우지 않았어요.” 그녀의 사생활과 닉의 사생활을 지키고 싶은 갑작스런 열망으로 마음이 동해, 그들의 쓰라린 마지막 시간을 함께 모든 시선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의 실험이 두 명의 극빈자에게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거예요.”
“아, 그럼 물론 우리 모두 그때 느꼈어. 그리고 지금 다른 사람이 당신하고 결혼하고 싶어 하고? 그리고 네가 외투로 고르고 있던 게 혼숫감인가?” 엘리는 기쁨에 사로잡혀 믿지 못 하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리고 몸을 빼는 수지의 어깨를 팔로 둘렀다. “너, 운 좋은, 진짜 운 좋은 아가씨야! 너 똑똑하고, 똑똑한 자기! 그런데 대체 그 사람 누구야?”
그리고 수지가 처음으로 올트링엄 경의 이름을 입에 올린 게 그때였다.
“스트레프, 스트레프? 친애하는 우리 스트레프? 네 말은 그가 너하고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거야?” 그 소식에 송두리째 마음이 사로잡히자, 엘리는 아주 광분을 하였다. “하지만 자기, 정말 기적 같은 운이야! 물론 나는 항상 그가 너한테 끔벅 넘어갔다는 건 알았어. 프레드 데이브넌트가 그렇게 말하던 게 기억나네……그리고 넬슨조차도. 그이는 그런 일은 아주 젬병인데 베니스에서 알아채더라니까. 하지만 그땐 사뭇 달랐지. 아무도 그가 그 당시에 결혼하리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잖아. 반면에 지금은 물론 모든 여자들이 그에게 달려들고 있지만. 오, 수지 네가 무엇을 하더라도, 기회는 잃지 마! 그를 잡겠다고 사방에서 몰려들 사악한 계략과 흥미진진한 일들을 너는 감도 못 잡을 거야. 가장 의심 못하는 곳일수록 더하지. 너는 여자들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짓을 하는지 몰라. 어린 소녀들도!” 이런 생각으로 솟은 몸서리가 그녀를 훑었다. 그리고 그녀는 수지의 손목을 거세게 거머잡았다. “하지만 자기, 당신들 약혼을 즉시 왜 발표를 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되네.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 시작하고 있어. 확신컨대 그게 훨씬 더 안전해!”
의아한 눈으로 수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짧은 지복의 몰락에 어떤 동정의 말 한 마디 없었다. 그것의 원인에 대해 설핏한 호기심조차 없었다! 틀림없이 엘리 밴더린은 수지의 모든 다른 친구들처럼 덧없이 짧은 그녀 꿈은 ‘무시한지’ 오래였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 자신이 그 영광이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기도 전에 이의 속편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녀와 닉은 엘리 밴더린의 지붕 아래 함께한 얼마 안 되는 몇 주의 아주 상당한 부분을 보냈다. 하지만 엘리에게, 분명 그 사실은 딱 그 시기와 맞물려 젊은 데이브넌트의 대체자, 스트레포드가 결코 이름을 올리지 않은 못 믿을 망나니와 그녀 자신의 무모한 도피행각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친구를 위하는 그녀의 유일한 생각이 수지가 현상금을, 믿을 수 없는 경품을 단단히 그러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어찌 되었든 엘리는 그녀 종족 대다수의 방긋 웃는 배신 위로 돋보이는 차가운 사심 없는 친절을 선보였다. 적어도 그녀의 충고는 충심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현명한 일이리라. 왜 수지는 그녀가 “형식상 절차”가 충족되자마자 스트레포드와 결혼을 작정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녀는 즉각 밴더린 부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후자는 질문을 되풀이하고서 조바심으로 덧붙였다. “나는 네가 이해가 되지 않아. 닉이 동의했다면.”
“오, 그는 동의해요.” 수지가 말했다.
“그러면 더 이상 무얼 원해? 오, 수지 네가 내 예를 따르기만 한다면!”
“당신의 예?” 수지가 말을 멈췄다. 그 말의 무게를 견주고, 그녀 친구의 표현에 곤란스러운, 간교하지만 반쯤 미안해하는 눈치에 얼어붙었다. “당신의 예?” 되풀이해 물었다. “아니, 엘리, 대체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가여운 넬슨하고 갈라서겠다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밴더린 부인이 그녀의 비난 섞인 눈길을 수정같이 맑은 눈길로 맞았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 하늘은 아시겠지. 가여운 남편 넬슨! 나도 그런 일 그저 혐오스러워. 그는 항상 클라리사에게 천사 같았는데……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하고. 하지만 세상에 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겠어? 올기는 그렇게 부자인데, 진짜 소름 엄청나게 부자인데, 나는 끊이지 않고 그에게 다른 여자들 멀리 하도록 감시를 해야 하고 그게 너무 사람 지치는 일이라…….”
“올기?”
밴더린 부인의 사랑스러운 눈썹이 올라갔다. “올기. 올기 보크하이머. 너도 알지 않나? 네가 그의 부모님하고 저녁을 먹었다고 말했던 거 같은데. 세상에 어느 누구도 보크하이머 가족들큼 부자는 없어. 그리고 올기는 그들 외동아들이지. 그래. 그 사람하고, 지난봄에 아주 끔찍하게 행복한 게 그 사람하고였지.……그리고 지금은 그 사람 잃을까봐 아주 죽을 만치 두려워. 그리고 진짜 그들을 곁에 두는 다른 방법은 없다니까, 그 사람들이 그처럼 무섭도록 부자라면!”
수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작은 소름이 오삭 끼쳤다. 그녀는 이제 새로이 개관한 5번가의 대리석 대저택에서 그의 부모가 최초로 열던 몇몇 접대 중 하나에서 올기 보크하이머를 본 기억이 났다. 너무 흠잡을 데 없는 옷과 광이 나는 그의 작고 엉큼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엘리 밴더린을 매몰찬 경멸로 홱 쏘아보았다.
“나는 당신이 가증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부르짖었다.
다른 편의 완벽한 작은 얼굴이 무너졌다. “가-증-스럽-다고? 가-증-스러워? 수지!”
“그래요……넬슨하고……그리고 클라리사……그리고 당신의 과거 모두 다……그리고 당신이 원할 수도 있는 모든 돈하고……그리고 그 남자도! 가증스러워요.”
엘리는 부들부들 떨며 일어섰다. 그녀는 그런 장면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그녀의 생각을 그녀의 얼굴 안색만큼이나 어지럽혔다.
“너 정말 잔인하구나, 수지. 아주 잔인하고 끔찍해. 내가 도저히 뭐라고 대답하지도 못하겠다.” 그녀가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너는 그저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 마치 누군가 혹여 그들이 원하는 모든 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그녀의 까맣게 물든 눈자위를 거울을 들여다보고 조심스럽게 손수건으로 찍어 눌러 닦았다. 그리고 도량 넓게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네가 한 말을 잊어보도록 노력 해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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