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 사람들은 소풍 나온 사람들 같았다. 휴대용 라디오로 유행곡들을 듣고, 아이스크림과 도시락을 먹고, 체커 게임을 하고, 일광욕을 하고. 그들 중 일부는 사형에 항의시위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저 사람들 다 사기당한 이들이었어? 그러면 로젠버그 부부는? 뒤에 누가 있나? 정말 저들은 보기만큼 속도 투명했을까? 아니면 재판 증언 중 중산층의 진부한 상투문구 뒤에 숨겨진 타락의 이상한 무늬들이, 사형동감옥 편지의 따분한 말 아래 파묻힌 비밀 메시지들이 있었나? 이런 와중에 어떻게 그들 아들이 5학년 반장에 당선되었으며,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도 호레이쇼 앨저와 같은 경력을 쌓고 있는 도중인가? 이 모든 질문들. 왜 내가 그런 질문을 해야 한다고 느꼈나? 왜 나는 이 사건을 계속해서 다시 검토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스스로를 몰아대고 있나? 나는 끝없는 탐구에 사로잡힌 느낌을 받았다. 의무에 대한 순교자… 하지만 무엇에 대한 의무인가? 아마도 내 자신, 자신의 창조와 개선, 내가 뭐든 필요하면 할 능력이 있다고, 무슨 갖고 있든 내가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성…
이런 끈덕진 목적 의식, 쉬운 승리는 오명이라는 확신은 대부분 소녀들과의 어려움 뒤에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문제는 내가 어렸을 때 만난 여자들은 모두 나의 삶과는 꼭 맞물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말하듯이, 싱크가 나갔다. 그들은 마치 다른 평면에 존재하는 것처럼, 다른 각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인정한다. 나도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많이 이해하고 있던 건 또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나는 국가 정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에세이에서 투표하란 모든 설교조 글에도 불구하고, 내가 투표하기에 충분히 나이 먹었을 때도 투표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의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몰랐고 여기에 다다르겠다는 구체적인 야망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녀들이 내가 가는 곳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중앙을 향해 몰아가고 있었는데, 그들은 가장자리에서 회전목마를 타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들과 너무 친밀해지는 일이 두려웠고, 그들보다 더 두려웠으며, 감정의 미로에 빠지는 것이, 자기통제를 포기하고 굴복하는 일이 두려웠고…추방이 두려웠다. 나 자신에게서 추방. 비록 나는 굴복을 갈망하고, 나의 지나친 사명감으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했지만. 종탑에서의 길고 외로운 저 밤들, 깊고 위험한 꿈들…
내 약점은 사랑에, 열정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분명히 도드라지지 않지만 사실이다. 정치인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 이는 임무의 일부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친밀한 우정이란 사치를 누릴 수도 없다. 누구에게도 절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다. 개인적인 계획이나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 말을 많이 해서도 안 된다. 내 의중을 내비치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강렬히 믿는다. 옷을 입는 일과 같다 – 헝클어진 머리로 스스럼없이 군다면 발가벗은 듯한 느낌이 든다거나. 그러나 나는 이 벌거벗는 일을 갈망했다. 내 시험장은 패트 이전 유일하게 꾸준히 사귀던 여자 친구 올라였다. 그녀는 예쁘고, 발랄하고, 신나고, 나의 좀 더 무모한 모습을 끌어내었다. 사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회전목마에서 내리려고 하지 않았고 나도 올라 탈 수 없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 6년이 걸렸다-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 대학 4년, 듀크 대학교 1학년 내내 단속적으로 어울려 다녔다- 아니면 항상 깨닫고 있었는 지도, 아마 그 6년은 뭔가 다른 때였는지도….
올라는 지역 경찰서장의 딸이었는데, 그래서 내가 그녀와 함께 다니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나는 그것이 어떻게 합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는. 동시에, 그렇게 경찰의 아이와 데이트하는 일은 위험천만한, 반장에게 걸맞는 도전이자 남자에게 황홀한 영예 같았다. 때때로 나는 칼리프의 하렘에 빠져든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같은 기분으로 학교를 돌아다녔다. 나는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남자형제들만 있었고, 여자들 - 몰랐다는 것을 인정한다. '월-'은 머나먼 풍문이었다.- --- 그때에도 우리는 너무 긴장해서 앞줄에 앉을 수 없었다. 나는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서도 -스가 무엇인지 몰랐다. 사실, 여전히 본다고 해도 알 수 있을지 확신은 없다. 올라에게는 남자형제가 없었다. 아마도 우리 둘 시작점이 똑같았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 그녀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귀엽고 인기가 많았으며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민주당이었다. 그 당시에 이는 많은 점을 내게 시사했다. 또한 그녀는 모든 위험한 것-그 당시에는 "재즈 베이비들"와 "레드핫 마마"가 나오는 영화, 해변 파티, 댄스 등이 있었다-들을 좋아했다. 나는 춤이 엄청나게 서툴렀지만, 춤을 추면 나는 항상 -분되었고, 왜 야생적인 사람들이 춤추기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아이네아스와 디도라는 고등학교 라틴 클럽 작품에서 낭만적인 주연을 맡아, 멋진 출발로 관계를 시작했다. 연극에는 암울한 징조가 들어있었다. 디도는 아이네이아스에게 버림받고 자살했다. 올라가 자살하거나 할 성격이나 성정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천만의 말씀. 하지만 올라는 자신을 그 작은 마을에 영원히 가둔 남자와 결혼했으니, 일종의 자살이었던 셈이다. 나는 항상 그녀가 내게 앙심을 품고 일부러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정확히 말하면 나를 버리고 떠난 건 사실 그녀였다. 하지만 그건 몇 년 후의 일이고 끝은 천천히 다가왔다. 당시 연극을 통해 내가 쓰던 어휘와 생판 다른 어휘들을 습득했고 나는 한동안 굉장히 성공적으로 이를 이용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하얀 토가들 마치 침대시트처럼, 얇은 잠옷 같았다. 나는 남의 구경거리 되지 않으려고 운동용 국부보호대를 차야 했다. 저 빌어먹을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틀림없이 항상 그 짓 하고 있었으리라. 마지막에 디도 여왕의 관대에 몸을 던질 때마다 나는 자신을 주체할 수없이 곤란했는데, 내가 한 장면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었다. 모든 것이 훌륭했지만 연극이 지속되는 동안에만 그랬다. 그러다가 그녀는 다른 모든 소녀들과 똑같이 나에 대한 상투적인 곡해에 걸려들었다. 어쩌면 여자애들이 그녀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해줬던가. 나는 이에 맞서 싸웠고, 어리석게 행동하거나 시끄럽게 행동하거나 추파도 던지고 호전적인 행동도 보였다. 나는 이때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소유의 분위기를 풍겼고, 나이 들고 이미 반쯤 결혼한 모습으로, 그녀도 유사한 패턴들에 휩쓸려 들어 언제 장벽을 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채 어느새 장벽 넘었기를 바랐다. 그녀는 다른 어떤 여자보다도, 심지어 패트보다도 나를 더 우러러보았고, 어디든 나와 함께 다니며 내가 세상물정 밝은 남자라고 치켜세우고, 내 주변에 있으면 그녀는 너무 바보 같다고 느끼고 때로는 거의 두렵다고도 했지만 그녀는 굴복하지 않았고, 시시한 장난은 그만하고 그냥 내 것이 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완고하였다.
우리는 논쟁을 벌였다. 종교, 정치, 친구,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문제가 뭔지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않았다. 언급하지도 않았다. 나는 모든 시도를 다했다. 형 해롤드가 죽었을 때 나도 결핵에 걸렸을 수도 있다, 곧 죽을 수도 있다고까지 운을 띄웠다… 이것은 정치적 언쟁들보다 훨씬 덜 성공적이었다. 매일 기회가 멀어졌다. 나는 우울한 기분에 휩싸이고 불건전한 상상을 하였다. 나는 그녀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고 단지 나를 조롱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가 원했던 것은 그녀의 -성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나는 그럴까 봐 무서웠다. 내가 원했던 것은 그녀의 항복이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을 바치기를, 완전히, 비굴하게, 미친 듯이 어쩔 줄 몰라 마음을 주기를 원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얻는 것은 많으리라. 우리의 정치적 언쟁들은 이렇게 깊이 아래 숨은 투쟁의 표면적 표현이었다. 나는 그녀의 자기 확신을 깨부수어 공화당원으로 만든다면, 나머지는 다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러한 언쟁들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런 언쟁에 경솔하게 굴곤 했고 나의 진지함을 놀리곤 했다. 나는 성질을 내며 소리를 질러대고, 그러면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교조주의가 아니었다-우리 퀘이커 교도 모두 1932년에 퀘이커인 후버를 지지했고, 그런 지지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그해 가을 루즈벨트가 후버를 박살냈을 때 나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수중의 새(확실한 것)’ 연극 최종 리허설 중이었고 선거가 끝난 지 이틀 지나, 개막식 밤에 내 인생 최고의 공연을 선보였다. (솔직히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보수주의자인지 보여주는 “스스로 처신하지 못한다는 듯이 지배, 통제하는 사람들!”이라는 대사에 꽤나 비뚤어진 기쁨을 느끼긴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밀하우스 할머니 집에서 형제회 전체 사람들을 대접했다. 축구팀 전체가 형제회에 들어 있었고 파티는 로욜라 팀을 상대로 이긴 포잇트 팀의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40명의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맙소사, 우리가 대체 정치에 대해 신경이나 썼겠나? 올라는 이런 점이 보이지 않았던 건가?
봄에 우리는 혁명적인 희곡에서 낭만적인 주연을 맡기도 했다. <석탄의 가격>이란 작품으로 스코틀랜드 석탄 광부의 참혹한 삶을 다룬 연극이었다. 대부분 내 아이디어였고, 사실 나는 우리가 아이네아스와 디도의 기분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우리는 사투리에 정신 없이 헤매었고, 또한 조명이 끔찍한 말썽을 일으켰다. 완전 재앙이었다. 늘 그렇듯 파운더스 홀에서 상연되었는데 그 건물에 뭔가 잘못된 점이 있는지, 내 전체 로맨스가 그 속에 달려 있고 숨을 곳이 수천 군데가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결국 항상 복도 바깥 혹은 계단참에 짜 넣은 벤치 위에서 끝을 맞았다 — 이미 내 생활은 공적 생활이었다. 나는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었고, 소풍을 준비하고,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밴드를 캠퍼스로 데려오고, 토론에서 우승하고, 장학금을 받고, 형제회 동아리를 결성하고, 클럽에 참여하고, 회장직에 입후보하고, 말 그대로 똥줄 빠져라 일했고 어쩐지 이런 모습에 올라는 유쾌하게 웃으며 반기고 자리를 뜨고는 다른 남자랑 데이트 나갔다. 나는 2층에 있는 그 비좁은 작은 무대 위를 서성이던 일이 기억난다-금요일 아침 예배당이었고 앞에 나와 있는 사람들 모두 여전히 반쯤 졸려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 젠장, 그녀는 가치 평가 감각이 없구나. 그녀에게 가치관이 없군요. 광부 조크나 로마인들의 아버지 다 똑같아, 터놓고 말해서, 그녀는 너무 변덕스럽고, 나는 결코 그녀와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를 무너뜨리고 싶었고, 그녀에게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면 아마도 나는 그녀와 결혼할 것이다. 나는 부속동으로 돌아와서 분장용 화장품 자국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의상 선반의 곰팡이 냄새에 -해 그녀를 오랫동안 깊은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전기 기술자들에 대해 불평했다. 아니면 어깨 너머로 친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댄스 파티에서 우리는 싸움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두고 나갔다. 나는 그녀가 나를 따라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데리러 올라고 전화를 걸었다. 그것으로 끝이었어야 했는데 나는 계속 노력했다.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는 갑자기 함께한 날 중에 최고의 밤을 보냈다. 듀크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밤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애무하려고 들지도 하지않았는데 거의 그럴 뻔했다. 내가 샀던 오래된 1930년형 포드로 밤새도록 타고 돌아다녔다. 내 생각엔 올라는 그날 밤 정말 나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과 너무 사랑에 눈이 멀어 너무 뒤늦게야 이를 눈치챘다. 그때까지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축하를 했고 그녀는 졸려서 집에 가고 싶어했다. 나는 아무것도 망치고 싶지 않았고, 우리 둘 다 너무 행복했고, 항상 내일이 있으니까... 하지만 없었다. 내가 듀크 로스쿨에 멀리 간 동안 매주 그녀에게 편지를 썼고, 방학때 귀향하여 그녀를 만나러 갔다. 완전히 반대편으로 돌아. 그녀는 다른 사내들과 어울려 다니고 있었다. 나는 절망적이었고 이를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올라는 내가 보러 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자 나는 성질을 내고 버럭 관계를 끝내버렸다. 전화기를 쾅하고 내려놓는데 그녀가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마음이 놓였다. 나는 구원받았구나. 나는 내가 무슨 직업처럼 열정을 뒤쫓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심지어 로스쿨을 집어치우고 휘티어로 영원히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 하지만 이제는 억눌린 열정을 법조계 경력을 추구하는 데 땔감으로 사용했다. 아, 나는 결혼하고, 내 옆에 여자를 두고, 자식들도 얻을 것이라고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나는 정상이었다. 그러나 법학 학위는 강력한 최음제임을, 금욕을 통해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나는 열 살 때 에디스 이모가 나에게 준 역사책을 기억했다. 변호사가 세상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들 마음대로 사람들 누구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 화장실도 수돗물도 없는 휩푸어윌 저택의 음침하고 불 안 켠 방에서, 따뜻함을 유지하기 위해 낡은 판금 난로에 구긴 신문지를 태우고, 친구 빌 “붑-붑” 퍼듀와 더블 침대를 공유하고, 다른 침대에서 교태와 정복이란 흥분되는 이야기들 자아내고 있는 건너편 침대 브라우니와 ‘경각에 달린’ 프레디 말에 귀 기울이고, 다음 차례 시험들에 대해 걱정하고, 춥고, 비참하고 심지어 광부 조크보다 더 가난한 처지지만, 나는 이 짝--가 나에게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랬다. ‘다크 타워’에서. 물론 올라는 아니지만 나는 그녀를 잊지 않았다. 몇 년 뒤 그린 섬에 나가 있을 때 나 자신에게 메모를 썼다. “일견 영속성에 대한 사랑이 있다. 그냥 샴페인 거품과 달빛인 또 다른 종류가 있다. 지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삶에 전반에 지니고 있으면서 되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일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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