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국가 계관 시인 계시의 기술에 대해 곱씹어보다
The National Poet Laureate Meditates on the Art of Revelation p319
뱃사공들의 파업이 끝났다. 자유의 여신상 주변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관광선 페리가 다시 운행된다. 타임스퀘어 남쪽 끝 교통 혼잡은 군중이 배터리 공원으로 우루루 몰려들어, 베들로 섬을 가로질러 햇빛 노란색 페리를 타고 전통적 탄생 항해를 하고, 그곳에서 마이티 레이디(Mighty Lady) 속으로 들어가 자유의 원천 도달하는 여정으로 빠지자, 잠시나마 주저앉는다. “오, 유배자들의 어머니, 자비로우시고 온화하시며, 폭풍우 시달린 자의 피난처시요, 비참한 폐물의 위로시요, 죄의 얼룩 없이 잉태되셨고, 은총과 강화된 구리로 가득 차고, 정부의 삼권의 고귀한 침상이며, 감금된 번개를 그 불꽃으로 지닌 신성한 사랑의 완전한 홀로코스트이시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그러나 광장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새로 도착하여 센터를 향해 밀고 나가자 곧 다시 가득 차게 되었고, 센터에서 현재 엔터테인먼트 위원회는 특별 발표를 하고 있다: 유대인 안식일과 추가 연기를 피하기 위해 처형 시간을 오후 11시에서 8시로 앞당겼습니다. 8시까지 — 미연방 특급이 정시에 도착할 뿐만 아니라 3시간 일찍 도착하네! 이미 좌절감에 사납게 날뛰던 로젠버그 변호인단은 조리에 어긋한 비통의 발작에 휩싸여 폭발하고 자살충동 행위로 광장으로 돌격한다 – 단 한번 끝에서 끝까지 그들은 둘러싸여 호되게 매질을 당하는 형제애 서약처럼 통과가 허용되고, 그들이 악을 쓰며 지나가자 왁자웃음의 돌팔매질과 선의의 모욕들이 떨어지고, 그들은 중심까지 들어갔다가, 그들 꼬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그대로 쌩하고 나와, 자격 충분한 망각 속으로 든다. 아니 그렇게 모두 희망한다.
온통 숨겨진 아이러니들에 쓴웃음을 지으며 국민 계관시인 수상자는 그들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야단스레 눈을 모으지 않고 지역을 돌아다니며 이미지를 수집하고, 다양한 구성과 운율을 실험하며, 오늘 밤의 주요 의식을 담고 재창조할 은유적 틀을 찾고 (“…마지막 장면…일곱 번째 결정…그의 격렬한 곡조에 맞춰 춤추다…배척과 혐오의 외침…시계가 똑딱거리며 가자…") 그리고 그 일이 그 자신의 성명서를 통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도록” 한다. 이것이 그의 기술의 중요한 그 진가이며, 그의 어머니 말마따나 “진리의 종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이다. 사실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언가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상상력과 심장을 통해 관측을 하고, 접근 가능한 대상이지만 글 쓰는 대상인 독자, 인디애나 출신의 신사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어야 한다. 원시 데이터는 정신을 마비시킨다. 악몽이다, 데이터는 너무나도 많으며 인간의 마음은 금방 데이터에 완전 에워싸인다. 시는 사실을 상상력 아래에 두고, 사실에 형태와 가시성을 부여하고, 이들을 사적으로 유지하는 기술이다. 어머니 루스가 말했듯이, “진리에 충실한 가짜”이고, 과잉으로 넘쳐 흐르는 사건들을 일견 해석적으로 재현하는 일이며, 삶의 “단편적인 문서”로 모아들인 “효과적인 모자이크”이며, 대담한 형상화와 독특하고 독창적인 운율 체계로 소생시킨다. “뉴스 냄새 맡는 코는 음악을 위한 귓바퀴 사이 있도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깊은 개인적 관여, 그러한 비유적 압축과 내면의 비전과 상상적인 “출처들”에 대한 의존하면 객관성은 불가능해진다고 말할 것이며, 타임 지도 이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자신이 진리를 섬기고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누구나 단순히 문맹이라고 그는 판단할 것이다. 게다가, 그는 객관성은 불가능한 착각이고 “환상적인 주장”(“영지주의자/그노시스주의자”가 요즘 그의 입에 오르는 단어다)이라고 주장하고, 이상적인 것으로 어쩌면 부도덕한 것일 수도 있지만, 대놓고 편향되고 왜곡된 예술의 렌즈를 통해서만 궁극적인 진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을 실제로 파악하는 것이 아주 조금이라도 가능하다고 언쟁한다.
따라서 뒤숭숭한 마음으로 자신과 논쟁을 벌이고, 독자들이 의심하거나 희망하는 것보다 자신감이 부족한 채로, 그는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고 타임스퀘어의 대중을 사이를 누비며 다니지만, 기분에 반영되어, 자신이 어쩌다 길에서 벗어났을까 걱정하고, 그는 자신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듯이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고 성공의 정점에 있는 청년이자 인생의 꽃이 만발한 한가운데, 자신 필멸성을 의식하고 있다. 어머니 루스는 오래전인 1936년으로 그의 죽음을 예언하지 않았던가? 그와 그의 형제들은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으리라, 그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안락사 날짜를 우리가 정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한 가지 방법으로, 그들이 20년 조금 더 되는 삶을 누리리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겨우 열세 살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도 이 땅을 겨우 33년만 걷고 다니게 되리라는 생각에 겁을 먹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모두 가능했다. 보험 통계표만 봐도 그와 같은 시인들의 수치는 암울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도 서른한 살의 나이로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나? 타임의 여섯 번째 생일날 밤, 갑작스럽고 추악한 죽음, 그는 결코 이겨낼 수 없었다. 거의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뭔가를 말을 전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렵사리. 타임은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종종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지만, 그는 안다, 시인의 마음에 품고 다니는 것은 불행한 아버지의 유령이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 할당된 33년 중 30년이 쓸려 내려갔고 그 중 3년 밖에 남지 않았다.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은 문제를 정리하고 다시 젊어질 무슨 방법을, 너무 늦기 전에 자신을 향한 세계의 엔트로피 공격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그는 자신의 운명과 미국의 운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그의 어머니가 말씀대로, 그와 미국은 둘 다 “미래에 대한 감각, 더 큰 그리고 더 나은 것에 대한 신뢰감, ‘이제까지 본 건 본 게 아니다’라는 기백”을 잃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아마도 오늘 밤은…?
이전에 두 차례, 자신이 비결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에 “미국 세기”에 대한 자신의 꿈으로 (“우리는 이제 전 세계에 선한 사마리아인 되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세계무역의 역동적인 지도자…[서구 문명의] 이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동력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3년 전, 한국에서 적대 행위가 발발했을 때, “사랑, 죽음과 함께 영원히 지속되는 위대한 테마 중 하나” 영원한 전쟁에 대한 그의 비전으로. 사실 그의 어머니의 비전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도 어머니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미국인들은 정착민과 긴급 소집병 시절 이래로 경험하지 못하던 전쟁과 같이 살아나가야 하리라…. 전쟁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왕국이 올 때까지 앞으로도 인간 운명의 일부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전쟁을 관습처럼 조금 더 행하여야 전쟁이 끝나지, 그러니 전쟁과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다…. 현 소련 공산주의 체제와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면 전면전은 ‘필연’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 천인공노할 악과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해 대치하지 않는 한 소련 제국은 계속 확장할 것이고 이는 총력 기울인 전쟁의 위험을 꾸준하고 침착하며 지속적으로 수용하는 일이 포함된다… 진실은 이성까지 아니더라도 진노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두 꿈 모두 틀어졌다. 그의 자비로운 의도를 오해한 다른 자유 국가들은 그가 20세기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고 불필요하게 과한 성을 내었고, 심지어 그의 동료 미국인들조차도 상상력이 부족한지 “숙명의 취지를 받아들이고” 밖으로 나가 세계를 장악하고, “최초의 위대한 미국 세기를 창조하”려 들지 않았다. 왜 상관을 하지 않지? 무엇이 잘못되었나? “내 생각에 이 나라는 대내외적으로 견고한 대의에 대한 조지-워싱턴 식의 믿음을 갖는 일은 고사하고, 실제로는 그 자신에 대해서도 확실성이 거의 없고, 나라의 ‘영혼’에 대해서도 분열되고 혼란스러우며 세계정세 속에 이 나라의 ‘목적’에 관해서는 현실적 기본개념들조차 거의 전무하다!” 한국에서의 전쟁은, 전쟁이 늘 그렇듯이, 더욱 유망해 보였다. 특히 타임 지의 탁월한 직관에 따른 지지에 크게 힘입어, 아이젠하워 장군이 최고 통수권자로 선출되었을 때 더욱 그랬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의 평온한 시절을 되살렸다. (제왕들처럼 전쟁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타임 지의 표현장치들이었다), 이 일로 거의 하룻밤 사이에 이 어린 범상치 않은 청춘이자 사춘기의 미국 사기꾼이 강력하고 진지한 시인이 - 심지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 국가의 계관시인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가 어떻게 전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그는 전쟁을 가능하게 했다는 이유로 일본인을 사랑하기까지 했다. 진주만 공격 이후 어머니 루스는 그의 형제 라이프에게 편지를 보냈다. “오늘은 진노의 날이다. 또한 희망의 날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 시간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는 자신의 “약행弱行한” 젊은 시절이 갑자기 부끄러웠고, 그는 이를 조국의 약행과 동일시하였다. “이 세월을 비극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비극은 적어도 운명의 위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월 동안 위엄은 없었고, 우리가 스스로 초래하지 않았던 운명은 운명이 아니었다. 마무리 짓고 있는 그 시대는 비극적이라기보다 훨씬 더 부끄러운 시대였다….” 그는 다메섹 가는 길에 빛을 맞고 쓰러진 바울처럼, 텍사스에서 번개를 맞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처럼 느껴졌다. 그는 안하무인 거만했던 과거를 일소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시인이었다. 물론 그의 독자들은 그 차이를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는 속으로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1941년 타임에게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3년 전, 그는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옛 희망과 기쁨의 부활, 영광스러운 투쟁 - 그는 심지어 세계 계관 시인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적군의 '명백한 패배'를 외치며 제3차 세계대전의 도래를 예고하고 술취한 카우보이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손에 펜을 들고 한국전선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지금은 뭐? 모두 허사가 되었다. 의미 없는 교착상태. 그리고 곧 서약으로 완료가 될 비참한 휴전의 모든 징후. 그는 맥 아서 장군을 사랑하고 옹호했으며, 오늘 밤에도 전쟁을 중국 본토까지 공세를 지속 해야 할 필요성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지난 몇 달 동안 국민들에게 호소한 밴 플리트 장군의 “완전한 승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지만 가망 없는 일임을 안다. 뼈저리게 느낀다. 그는 더 이상 괜찮은 시조차 이 전쟁으로부터 자아낼 수 없다. 지난주 그의 “올드 해리 위에서 지샌 밤”과 그의 “못생긴 소시지/모양의 능선”, “어수선한 비탈”, “무너진 참호” 정도가 전쟁 초기 최고 서정시들에 근접한다. 그건 모두 아마 쓸데없는 일, 그의 현재 불행한 상황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는 내용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차라리 “올드 해리 안에서 지샌 밤”이라고 부르는 게 나았을지도…
…하나씩 하나씩 벙커들이
무너져 미국인과
중국인 시체를 모래와
먼지로 덮고
왕은 다시 보강이 되었다
적군은 다시 밤
사이 공격을 했다
이만 개 포탄이
타임즈 스퀘어보다 작은
지역에 터졌지만
하지만 언덕은 남아 있었다
미군의 손에
언덕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괜찮기는 해도 저 싯구는 예를 들어 노네임 능선 공격이나 평양 함락에 대한 기술에는 발끝에도 미치치 못하고 (“...전쟁의 끝은 명백히 스탈린의 얼굴에/난 콧수염처럼 명백하게 곧 닥쳤다…”) 또는 그의 제2차 세계 대전 모범적인 케이블과는 한참 격이 졌다. 아, 다 어디 갔지? 그는 점점 더 생경한 느낌의 사람들이 사방에서 바싹 밀고 들어오는 광장을 힘겹게 밀고 나가며 궁금해한다. 인디애나 출신의 신사가 죽었구나, 그는 한탄한다. 30년 동안 그는 자신의 꿈을 그와 공유해왔고 이제 그 오랜 벗은 그 꿈들을 무덤으로 그와 함께 지고 갔다. 그러나 검열되지 않는 깊은 곳에, 비록 꿈들이 그의 기대를 저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양쪽 꿈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여전히 “미국만이 미래를 위한 패턴을 제시할 수 있으며… 인류의 형제애 안에서 열방의 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전쟁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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