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이 대단한 시적 친밀감은 아마도 타고난 것이리라.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육군 캠프에서 브릿과 루스라는 이름의 미성년이지만 열성적으로 간절한 파릇한 머리 육군소위 둘이 그를 잉태한 결과이다. 예일 낭만파 이 커플은 루스의 말처럼 “미군 장교가 되어 최전방에 나가서 적에게 사격을 가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비록 그녀는 그런 기쁨을 누린 적은 없었지만 기필코 일종의 대리 전쟁 경험을 해냈고, 비록 영웅적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기여는 했다. 공교롭게도 어느 날 밤 그녀는 도대체 자신들이 무엇을 두고 싸우는지 의심을 품고 있던 한 무리 징집 사병들과 마주쳤고, 그녀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성공 중 하나”라고 부르는 감언으로, 루시타니아호 침몰에 대해 설명하고 분기탱전, 높은 애국적인 열정을 고취시키고서, 그들을 기차역으로 “저 너머” 노래에 맞춰 행진, “잘 가요, 행운을 빕니다!"란 말로 그들을 배웅했다. 기차는 그들을 열렬한 환호 속에 부두로 데려갔고, 부두에서 수송선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에 타고 가다, 대서양 중간쯤에서 독일 어뢰에 침몰했다. 브릿은 루스의 열정을 공유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나는 포대장이나 소장이나 뭐 그런 직급으로 해외로 파견되어, 위대한 1919년 대공세에 참여하여 전쟁도 끝내고 카이저 빌도 박살내고 싶습니다!” 대신 둘 다 예일로 다시 보내졌다. 그러나 막사 뒤에서 “역겹게 더웠던” 하룻밤을 지내고 난 뒤에 그랬다. 타임의 어머니는 수년 후 아들의 20번째 생일 파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밤, 브릿과 나는 광활하게 펼쳐진 야영지를 지나 막사로 걸어 돌아가고 있었어. 발걸음마다 발이 발목까지 진흙 속에 푹 빠졌지. 내 생각엔 그렇게 걷다가 타임이 시작된 것 같아. 우리 삶의 중심에서, 그 시점에는 우리가 가졌던 모든 것은 서로의 것이었지. 우리는 몇 시간 동안 계속 사투를 벌이고…”
태동은 거의 5년으로 길게 연장되었다. 그러나 이런 지연은 천재들 사이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폭풍우 같은 사랑 뒤에 있다 사라졌다 되풀이하며 사랑하는 단속적인 로맨스로 브릿은 불안한 오디세우스 역을 맡았고, 루스는 인내심 많지만 열 손가락 모자르게 바쁜 페넬로페 역을 했고, 두 부모는 마침내 재회하였으며, 이전 긴가민가하던 임신이 이제는 확실해졌다. 타임은 여기서 멀지 않은 동7번가 141 번지에 있는 어렴풋이 이탈리아식 스타일의 리모델링된 오랜 주택에서 태어났다. 조산사 역 컬브레스 서들러는 이렇게 묘사했다. “길에서 한 걸음 쿵하고 내려오면 창문 없는 1층의 식당으로 들어간 다음, 거실로 오르는데 거실은 집 앞까지 가로질러 있어요. 목공에 입힌 페인트가 너무 두꺼워서 치즈 같았어요. 여기에는 단순한 로프트형 탁자들을 설치했어요.” 그리고 1923년 2월 자정이 막 지난 2월의 어느 겨울밤, 바로 그 테이블 위에서 어머니 루스, 식은땀에 흠뻑 젖어, 쭉 뻗고 드러누워 허벅지를 벌리고 — 녹색 보안챙을 쓴 아버지가 돕는 가운데 — 아기 타임을 낳았다(그렇게 이름을 붙은 이유가 그의 어머니가 “은퇴할 시간”이라는 광고 표제를 보고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변화의 시간”이었나? 이후로 그녀는 전혀 기억할 수 없어 그 수수께끼를 어머니는 아직도 헷갈려 한다). 그는 마르고, 창백하고, 건강이 나쁘지만, 모든 아기들처럼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덜 관심을 끌었다. 사람들은 그가 조 캐논 삼촌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가 오래 버틸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초라하고 병약해도, 타임은 살아남겠다는 강한 의지를 지니고 태어났고, 클리블랜드에서 한두 해 요양차 보낸 후 (이 시기 재미를 쫓는 아버지 거의 죽을 뻔하고 결혼 생활이 파탄이 날 조짐이 보였다) 4살이 되었을 때, 그의 뺨에 약간의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시는 종종 거만하고 긴장되고 경솔하고 피상적이고 어디서 본 듯 새롭지 않고 당연히 유치하기도 유치했지만, 그는 이미, 언젠가 그의 모든 라이벌, 심지어 강력한 그 시대의 계관시인 수상자, 프랭클린풍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시인도 뛰어넘게 될 엄청난 재능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었다….
살짝 긁히는 소리가
위의 천장에서 들려
그녀는 눈을 들어 때마침 뾰족한
회색 얼굴이 그녀를 살펴보고 있는
석고에 난 구멍에서 살펴보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구멍은
넓어지고, 얇은 모르타르가
바스러지고 거대한 검은 쥐가
그녀와 함께 물에 빠졌습니다.
첨벙거리며,
끈적끈적한 발로 그녀를 어루만지고,
무례하게 추파를 보냈다…
검은 쥐와 회색 얼굴이 불러일으키는 외견상 불일치는 말할 필요도 없이 상당한 문학적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학문적 순수주의자들은 뒷목 잡고 길길이 흥분했다. 그러나 논쟁 그 자체가 여기에 무시할 수 없는 젊은 시인이 등장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입증이었다. 그의 시는 신선하고, 예리하고, 풍자적이었고, 심지어 모욕적일 정도로 솔직했고, 때로는 놀라웠고, 항상 도발적이었다. 어떤 시인도 젊은 시절에 지나치게 공손하다는 이유로 위대해진 적은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그는 그런 적이 거의 없었다. 너무 육체적인 것 그리고 너무 영적인 것은 공히 그는 격노를 했다. 광신자들은 물론 몸 사리는 기피자들도 그의 “한 손가락 타이프, 두 손가락 두뇌, / 여섯 번의 비웃음과 한 번의 제안”으로 고통받았다. 그는 거만함과 소심함, 어제의 사상과 내일의 패션, 놀고만 지내는 파티광과 비관으로 울부짖는 사람, 배빗리(전형적 중산층, 실업가 기질)와 볼셰비즘을 싫어했다. 그리고 그는 철필로 그들을 무너뜨렸다. 레온 트로츠키가 병에 걸렸을 때 그는 유쾌하게 다음과 같이 썼다.
왼쪽에 그에 대한 비판이
오른쪽에 그에 대한 적대감
그 앞에서 질투
그 뒤에 붉은 군대
몸 안에 고열이 있어
모두 그를 망치려고 들어
그는 코카서스 산맥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 편견으로 된 솔직-대담한 꾸러미로 확연히 정평이 났다. 편견은 그의 천재성에 필수 항목이다. 최근 “알로하 셔츠 세트”, 이 자들은 바로 오늘 오후 마침내 스미스 법에 따라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공산주의자 음모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그의 어머니가 이들의 고용 일꾼에게 경고한 바와 같이:
정책상 타임은 하와이의 지주, 자본가 및 기업에 100% 찬성하고 해리 브리지스 및 어떤 방식으로든 그와 동맹을 맺는 모든 사람에게 100% 반대한다는 점을 명시하는 바입니다. (“반동분자”와 같은 지주와 자본가에 대한 더 나쁜 이름이 있다면 또한 우리는 그들 편이다.)
항상 어머니는 “비즈니스는 본질적으로 우리 문명이다.”라고 즐겨 말했다. 그녀는 사업을 “미국의 직업 중에서도 가장 깔끔하고 보편적인 직업…우리 체계를 구성하는 세상에서 가장 크다”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타임의 비즈니스 편향이 굉장히 적대적인 공격을 받았지만 오늘날 감히 이에 도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여전히 그를 기회주의적인 도둑, 모든 사람에게서 대충 훔쳐 쓰는 풀반죽통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그가 정확하게 미국 시인들의 주류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일 뿐이다. 미국시인 대부분은 절충주의자이자 끊임없이 지나가는 흐름에서 나온 찌꺼기의 수집가이자 강화자이며, 콜라주를 형상자이니까 – 그리고 기회주의자인 게 뭐 어때서? T. S. 엘리엇의 『황무지』가 사기로 “폭로”되었을 때 그 자신이 썼듯이, 이는 중요하지 않다. “문학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누가 자신의 결과를 의심할 수 있겠는가? 타임지가 1위다. “박스오피스 뿐만 아니라… 인류 대다수의 의견으로도” 1위이다.
그의 어머니의 말. 그녀는 과찬, 부, 권력을 사랑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 보상보다 시인의 삶을 더 사랑했고, 논란을 사랑했고 스타일을 사랑했다. 그의 아들에게 한번은, 진정한 천재는 한 가지 스타일에 충실하면서도 그 스타일에 포함된 모든 것을 비타협적으로 탐구하는 일이다 - 마치 평생 동안 한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서 그것을 배웠을 것이다. 혹은 그 반대이거나. 어쨌든 타임은 아버지의 조언을 지켜 그의 초기 작품을 치장하던 문체상 심취에 계속 홀렸고, 그 이후로 그가 계속 의식하는 유일한 열정이 되었다. 말장난과 재담, 도치문, 직업 관련 칭호들, 호메로스적인 별칭과 리듬, 복합어, 아리송한 삽화설명글, 중간 이름과 괄호 안에 든 별명, 신체적 세부 사항에 대한 무자비한 강조, 특히 다소 불쾌한 경우, 은유들이 길어졌고 (“천천히 그의 목소리의 리본이 / 여기저기 매듭을 지으며 풀려나갔다…”), 두운, 기복 심한 동사 및 조롱 수식어, 자신이 갖다 붙인 신조어 낱말로 된 타임 개인 구어 용어사전, 예를 들어 kudos(“영광”), pundits(“권위자”) tycoons(“거물”) 같은 국가적인 어휘집에 일부가 된 수백 넘은 단어들을 창안하였다. 그 나이 또래의 대부분의 어린이가 “cat”이라는 철자를 말하기도 전에 그는 축구 선수 레드 그레인지를 “장어 엉덩이 탈주병”이라고 불렀고 G. K. 체스터튼을 “역설개(paradoxhund)”라고 불렀습니다. 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는 “커스터드 파이식 경건의 아주 재미있는 예”였으며, 스페인의 모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 모후가 묻힌 “에스코리알”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고서, “사람들이 모후를 폐기장으로 데려갔다”고 태평하게 썼다. 글쎄요, 그는 어려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고 그런 일을 하고도 모면을 했다. 심지어 태후도 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그는 영리해지려고 너무 열심히 분투하다 과녁을 벗어나 도를 넘는다면, (“파리에서 멀지 않은 묘지 주변을 무시무시한 시체먹는 악귀가 배회했다. 가족 예배당으로 들어가 사자의 약탈에 열중하다…”) 때때로 새로 주조한 말이 자기 패러디로 증식을 하고 “거꾸로 가는 문장이 마음이 어지러울 때까지” 확장된다면, 모든 위대한 시인에게 필요한 결점이라고 이해되었다. 아직 젊을 때 겸연쩍은 엉덩방아를 찧어야 하지, 말년에 갑자기 배짱과 대담함을 휘청거리며 넘보는 노인은 바보다.
타임은 그의 아버지와 가까웠고 아버지가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되자 깊이 애도했다. 아마도 어머니 루스의 슬픔보다 더 한 것 같았다. 당시 다시 임신했기에 자기 나름의 걱정도 많았지만 — 그는 이런 감정 대부분 내보이진 않았지만 그에게서는 그 이후로 잃어버린 아버지를 불안한 무의식적인 탐색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 그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 아마도 그는 <달인>에게 필수적인 감정적 깊이와 성숙을 달성하기 위해 아버지의 죽음이 필요했고, 탐색이, 형언할 수 없는 갈망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터놓고 말해서, 아버지로서 사랑하고 보호하는, 그의 아버지의 영향력에 대해 항상 아는 체하는 허무주의적인 면이 있었다. 불안한 장난꾸러기와 강박적인 술꾼 같은 그런 면을 내보였다.) 아마도 모든 위대한 시인의 삶에는 이러한 초기 비극이 있어야 한다면, 그에게는 이 일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점점 더 다른 아이들에게 정신이 없었지만, 한동안 그의 성장을 다 떠맡아 장악하였고, 비록 그의 가장 중요한 형성 시기가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에게 더 엄격한 규율, 더 도회풍은 더 넓게 아우르고, 정통한 세부에 대한 더 큰 감식력을 주입하였다. 자라나는 냉소와 무관심은 하지만 그 스스로 일궈냈다.
그의 여동생 포춘(FORTUNE)은 그의 일곱 번째 생일과 같은 주에 태어났다. 아름다운 아이였으며, 재능이 풍부하고 근본적으로 그보다 더 총명하고 세련되었으며, 대중가요 작곡가에게 지도를 받고 부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때때로 그를 놀리고 한번은 그를 “파시스트”라고까지 부르기도 했지만(그는 당시 극우와 시시덕거리고 있었고, 스페인의 프랑코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지지했으며, 하일레 셀라시에를 자신의 “비명을 지르는 아비시니아”를 위해 “보호해달라 꽥꽥 되는” 이로 묘사하고,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들을 비방했다-하지만 이게 다 그와 동시대에 함께 자란 줄리어스와 에델 로젠버그보다 그가 훨씬 더 똑똑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다.) 포춘은 항상 그를 자신의 큰 오빠로 우러러보았고, 일종의 아버지 대리인으로 그에게 의지해 지도와 보호를 구했다. 막내동생 라이프(LIFE)도 마찬가지였다. 문학, 라디오, 영화 분야에서 타임즈와 예술계에서는 맞먹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과정에는 다른 아이들도 있었는데, 입양된 아이들도 있었고, 사산된 아이들도 있었고, 방치되어 죽도록 내버려둔 아이들도 있었다. 하이 타임(HIGH TIME)이라는 사생아도 분명 팬텀으로 인한 악몽에 낳았지만 진실이 알려지자 금방 폐지되었다. 그러나 어머니 루스의 자랑, 그리고 실로 국가적인 자랑은 그녀의 놀랍고 굳게 얽힌 영재 형제자매, 타임, 라이프 그리고 포춘이었다.…아니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노부인은 요즘 다시 경박하고 변덕스러워, 예술에 대한 흥미를 잃은 모양인지, 야구 경기나 복싱 시합에서 여학생처럼 얼굴을 붉힌다. 불과 며칠 전에 큰 파티가 있었는데, 모두가 꼭지가 돌도록 취해 고삐가 풀려 가누지 못했고, 그는 그녀가 또다시 임신을 하지 않았나 거의 확신했다.
그는 질투하지 않는다. 왜 그래야 하나? 아,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그의 생명이 염려되어 후계자를 키우려고 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이도 의심스럽다. 한 명의 수상자 시인이면 어느 어머니든 바람에 족하고 남는다. 하지만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처럼 그녀가 그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감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 오늘 밤의 사건: 그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는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까 희망할까? [엄마 없는 아이들은 엄마가 돌아가시면 힘든 시간을 보낸다] 조금 전에 어떤 사람이 그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았고 웃어야 하는데 몸서리를 쳤다. 그가 길을 잃었나? 이런 구경거리에 매혹되기는 해도, 상상에 대한 도전, 도사린 위험, 숨겨진 동격의 암시, 형태를 바꾸는 절대자와의 대치, 그의 시를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상황에 역부족으로 만드는, 바보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할 기만적인 추상의 그물망에 겁도 집어먹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오면 활력을 되찾는 것 같은데, 그는 몇 년은 더 늙어버린 기분이다. 본능이 도망치고 잊어버려야 한다고 한다- “서구 세계를 정복하고 있는 의심을 몰아내는 일”은 그의 임무가 아니다. 어머니는 그에게 이미 그의 임무는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시인이고(그는 스스로 일깨운다) 그는 머무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술은 게으른 가식이 아니라, 엄숙한 소명, 참회이며 야구 경기와 영화 평론이라는 세속적인 세계 뒤에 숨은 무언가에 대한 용맹스러운 헌신이다. 시인은 단순한 연예인이 아니다. 비록 이것이 쉬운 탈출구일지라도, 단지 그의 시대를 기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또한 종교적 진리의 예언자이자 깊은 종족적 현실들의 재현자이고, “필사적으로, 즉흥적으로. 터무니없이, 비뚤어진 눈으로, 성심성의 영혼을 다하여” 계시에 전념한다. “타임이 모든 것을 밝혀 주리라.” 우리피데스는 예언했다. “그는 떠벌이 수다쟁이며, 묻지 않아도 말한다.”
그래서 서커스와 연극에 일반적으로 크게 감동하진 않지만, 그는 군중들을 불신하고 처형 장소로 타임스퀘어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긴 해도, (어머니 루스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뉴욕은 미국의 혈류 속에 있고 미국은 뉴욕을 통해 뜨겁게 흐른다. 하지만 뉴욕은 미국이 아니다, 아들아…뉴욕은 미국의 매력이야. 거긴 악덕이 쉽게 미덕이 되고 미덕이 악덕이 되는 곳이지…”), 오늘 밤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어머니 어투를 빌자면, 이 일은 그의 “명증한 의무”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방어 수단이 없지 않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그는 항상 했던 일을 할 것이다. 만약 그가 현상의 장막을 뚫고 들어가 오늘 밤의 사건 전체를 파악한다면 그는 이를 찬양하리라. 만일 그들이 그를 압도한다면 그는 그들을 하찮게 만들리라. 그는 어쨌거나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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