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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뻘짓)/the recognitions, 인식

인식 p32- 35

by 어정버정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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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 별자리도 부재하였기에 플레이아데스 성좌를 찾는 그리스 항해사의 불안한 눈에는 밤하늘이 텅 비어 보였을 것이다. 그에게 플레이아데스가 사라진다는 일은 항해 시즌이 종결되었다는 신호가 된다. 플레이아데스는 퍼듀 빅토리호가 아직 바다에 있을 때 졌으나 지금은 아무도 그 성좌를 찾지 않았다. 태양들의 은하계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 태양계는 그렇게 먼 거리에서는 보이지 않게 떠오르고 지리라. 이 별자리가 지면 아즈텍 아메리카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무덤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위한 축하 행사를 시작하였고, 드루이드에게 세계 재건의 가장 엄숙한 신비를 촉발하였고 페르시아에는 모르다드(Mordad/각주)의 달, 그리고 죽음의 천사가 나오게 되었다.

아래에는 별자리 속 형태 맞춰 배열된 별들처럼 고대 상상력의 횡포로 다만 그 위에 덧씌운 형상들의 추측으로만 내몰아, 남쪽 하늘의 아르고 별자리는 자신의 눈이 아니라 기억 속 내면의 눈으로만 보이듯이, 그래서 수평선 없는 밤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배는 그 동일한 눈에 그 완벽함을 또렷하게 표현하는 선들을 남겨두었고, 그곳에서 가장 쇠락하고 남용된 거대 선체가 그 빛의 배치들을 넘어 우아한 선을 깨끗하게 띠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흐릿하고 별이 없지만, 뱃머리부터/돛대까지, 다른 일부는 빛으로 타오르고,” 퍼듀 빅토리호는 알헤시라스 앞바다에 놓여 있었고 아르고처럼 이제 누가 뱃머리와 선미를 구별할 수 있으리오? 벨라(Vela), 돛 자리? 카리나(Carina), 용골 자리? 배는 천구의 남극에, 정박하고 있으며, 황금 양모를 쫓던 여정은 끝이다.

홀아비는 출항할 때 지니고 있던 짐보다 짐이 하나 더 늘어나 11월의 서늘하고 맑은 밤에 바지선을 타고 배에서 내렸다. 그위언은 바다에 매장하는 일을 거부했다. 그는 스페인 항구에 입항하는 데 막대한 고초를 겪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하자품 사체 불법 수입(Importación ilegal de carnes dañadas)’이라는 항목에 걸려 미적대었고, 그 시체가 명백히 태생이 이단의 나라인지라, 그 난관들이란, 벌금, 관세, 소비세, 수입세, 공물, 대주교성좌 특별시혜를 다 아우르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서야 극복이 되었다. 마침내 다루기 힘든 이 꾸러미는 마호가니 상자에 봉인되었고 그는 안장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결국 바위투성이 뉴카스티야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산 츠빙글리 마을 뒤편 언덕에서, 카밀라 그위언은 벽으로 둘러친 공간에 집세를 내는 다른 세입자들 차지하는 틈새에 쉴 자리를 찾았고, 그녀의 선조들이 칼빈주의적 평정심을 잃고 경악했을 법한,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신자인 자신도, 항의할 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대경실색했을지도 모를 제례를 치렀다. 하지만 뜻밖의 일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병 환자조차도 주변의 죽은 자들에게 질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화형되거나 따로 묻혀 있던 이 땅에 이 이단적인 손님이 유입되는 일로 진저리 쳐, 이 주변에 일지도 모를 그런 신자의 들끓는 동요에 제지받지 않고, 상자는 보베다(지하납골당)의 높은 홍예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저녁 무렵에는 썩은 헌화들과 구슬 혹은 금속으로 만든 화환들 사이, 깨진 유리 파사드와 무너질 듯한 성상들 사이, 그녀 이름보다 더 화려하게 장식된 이름, 유리 아래 사진들 사이, 수많은 아이들과, 지금 잠시는 깨진 꽃병이나 깨진 빗자루가 들이는 저장소 노릇하며, 차기를 기다리는 빈 구획들 사이, 그녀의 존재는 이의제기 없이, 토종처럼 자리 잡았다. 긴 흰색 스타킹을 신은 사팔눈을 가진 작은 소녀의 사진 옆에 카밀라는 거기 남아, 카스티야를 그녀의 발 앞에 펼쳐두고, 바다처럼 거쳐 지나간 일에 대한 기억에 무관심한 평야의 삭막한 지평을 두었다.

 

젊어서 뉴잉글랜드의 한 대학에서 그는 로망스어와 수학을 공부했고, 고전 운문과 인류학을 전공했는데, 일련의 학과들을 그의 가족은 언어는 학생 고유의 관심사이니까, 안전하고 무난한 김빠지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입체적인 기하학만큼 더 육욕적인 세계관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없는데다, 그들이 알기로 인류학은 단순히 오래된 뼈를 조사하고 이교도 머리를 측정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고, 고전에 관해서는, 그리스 희극작가 메난드로스(“향수를 뿌리고 찰랑거리며 늘어진 옷자락에, 나른한 걸음으로 느리게 ...”)식 자유의 낌새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저녁에 그위언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밀담을 나누거나, 로저 베이컨과 함께 신에 대한 어마어마한 기하학적 증명을 구축하며 보냈다. 대학 신학부에서, 그리고 신학대학에서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났다. 그 후 그는 아메리카 원시 문화권을 여행했다. 그는 선교 사업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는 창조 시작에 저지른 죄가 그들 책임이라는 혐의를 납득시키는 데 거의 성과가 없었다. 그 중에 하나, 그들이 이해했듯이 그들은 스스로를 복제할 준비도 되어 있고 능력이 있었다는 (실제로 그들은 확실히 그렇게 하려고 부적까지 지녔는데) 점도 그랬다. 그는 어떤 인물이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어느 나무에서 죽었다고 설득하는 일도 별 다르지 않았다. 한 늙은 인디언은 이를, 그위언이 제대로 통역했다면 주제넘은 하극상이라고 할 행동으로 여겼다. 그가 기록한 회심/개종 사례는 보잘것 없었고, 주로 여자들, 허약자,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 과도기에 있는 이교도 병자들이었는데, 이들은 낯선 놀이공원에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그가 제시한 낙원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한 산전부전 초주검 늙은 전사가 그위언이 묘사한 생동감 넘치는 지옥에 자신이 가게 될 것이라고 오직 확약해주면 회심하겠다고 말했다. 들어보니 지옥이 남자에게 더 어울리는 곳이네, 이 열성적인 지원자의 피비린내 진득한 자격요건들(그 보증으로 스승의 두피를 그의 수집품에 더해주겠다고 제안까지 했다)을 듣고 선교사는 그가 그럴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었다. 그러나 주변 키 큰 남자들은 그의 덧없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장래들은 전혀 상대하지 않고 나무들, 폭풍우, 기타 자연의 불가사의를 계속 칭송했다. 기겁하여 소집된, 엄숙한 집회에서, 그의 상관들은 그위언이 너무 어리다고 판단했다. 분명 그는 자신 주변에 보이는 것들에 너무 관심을 쏟았다. 그는 재교육 과정을 위해 신학교로 다시 불려갔고, 그때 그는 슈냅스 술에 대한 취향을 개발하고 말년에 아주 크게 써먹을 면독법(mithridatism/각주) 과정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어린 마음에 그는 연극이라는 세속적 도락에 관심을 가졌다(몇 년 후 사람들 떠벌리는 것처럼 그가 무방비로, 갇혀 있을 때 신학부에 다니던 중 외설적인 스콜레이 스퀘어 극장에서 익명으로 말 궁둥이 역을 하며 용돈벌이를 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는 대중적인 기부금 없이는 어떤 연극도 번창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자신의 연극보다 더욱 연극적인 진지한 종교 연극 공연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리라. 그런 이유로 스페인의 산 츠빙글리 신부에게 검은색에 금으로 걷잡을 수 없이 아래 등뒤로 내려가게 해골과 뼈를 수놓은 휘황찬란한 제의복을 기증하였다(이 신부는 가난한 동료가 눈만 감아준다면 대주교처럼 차려입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군중의 관심사와 이익들 굽어살피고 지키는 시성된 망령의 새 석고 조상을 만들 돈을 주었고(비록, 사제의 말마따나,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현지에서 부화한 합법적인 수호성인이긴 해도), 군중에게 카밀라의 옷가지와 각종 탬버린 한 벌을 선물로 주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기독교식 화답으로 헌신적으로 그가 공유했던 육신을 땅에 안장시키는 축제를 벌였고, 그가 하늘을 향해 찾았던 유일한 영혼을 회유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안식년을 갖고 있는 목사와 관련한 다양한 보고들이 집에 들어왔다. 진실은 빼고 온갖 요소들로 장식된 로코코식 소설들이었다. 이 불가항력 하나님의 섭리(훗날 이를 그는 빗나가는 일 없이 엄수된 우연이라고 칭하는 말을 들었다)로 엄정히 그를 덮친 이 겸하(謙下)를 수행하려고 누더기옷을 입고, 불쌍한 세 아이를 빌려서, 마드리드 리츠 호텔 앞에서 탁발승처럼 쇠약해 쓰러져 매일 방랑벽 관광객들을 맞닥뜨리더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말라가의 전 주민을 3일 내리 공짜술을 먹이고 그런 뒤 그들을 통솔해, 그가 찾아 헤매는 그분이 마른 발로 어떻게든 건널 것이라는 심사에, 아프리카를 향해 바다를 건너는, 실험적인 도보여행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귀에 뱅글을 단 백발 성성한 노처녀와 결혼하고 자신을 압드-에르-라만 왕좌의 정당한 후계자로 선포하고 코르도바에서 무어인의 반란을 이끌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그가 수련 수사로 카르투시안 수도원에 들어갔다는 것도 전혀 말 같잖은 일이었다.

거의 제 목숨을 일소하는 일과 맞먹는 카타르시스/정화 작용으로, 그는 어느 프란체스코 수도원에 손님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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