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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뻘짓)/the recognitions, 인식

인식 p35-38

by 어정버정 2024. 6. 20.

레알 모나스테리오 데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오트라 베스Real Monasterio de Nuestra Señora de la Otra Vez 수도원은 소실된 후 14세기에 교황청의 명에 의해 끝장이 났다. 죄책감이 너무나 컸고, 속죄의 조치들이 너무 엄중해서 이를 살아 견뎌낸 이들은 가끔 음식과 잠으로 자신의 육신을 아낀 태완한 수도자들에게 창피를 안기는 근원이 되었다. 포탑 달린 벽, 난간총안, 돌출총안, 망루, 압도적인 로마네스크, 비잔틴 양식 방출 속에서 참혹하게 다채로운 돔과 첨탑, 고딕 양식이 창문 멀리언(중간문설주), 살대들이 마구 날뛰고, 너무 정교해 유리롤 끼울 수 없을 정도로 무늬 장미창이 있는 거대한 수도원이 완성되자 형제들은 이단으로 몰려 재판에 회부되었다. 호모이우시우스(Homoiousian, 물질유체론자) 아니면 호모우시우스(Homoousian, 동일실체론자), 그게 문제였다. 이는 천년 전 니케아에서 기독교 교회의 운명은 이중모음, 호모우시우스, 하나의 실체이라는 뜻의 이 단어를 붙잡고 늘어지기로 했을 때 이미 결론 난 문제였다. 멀리 에스트레마두라의 형제들은 니케아 신경(信經, Nicaen Creed)을 잊어버렸고, 늘 그랬듯이, 문밖에서 바쁘거나 혹은 차가운 물속에 일에 몰두하느라 정신 없어 아리우스(Arius/주석)파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들은 대롱같이 동글동글한 대안보다 더 행복한 단어, ‘실체와 비슷한/주석이란 뜻의, 호모이우시우스 선택했고(아무도 그들에게 헤테로오우시우스, 이본질론, 이실체론의 선택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들은 곧바로 조용한 지하 감옥에 갇혔는데, 알고 보니 방종의 안식처라, 기실 자연적인 과정을 방해하는 어떤 도구들도 비치되어 있지 않은지라, 성 안토니를 계속 사막에서 덜덜 떨게 했던 그런 포르노그라피 음란 환상을 떠올릴 수도 없이, 아주 남부끄럽게 죽었다(솔직히 말해서 이 뛰어난 동료 수사들 중 누구도 여자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고, 그리고 각자는 신성한 영감의 노력 없이, 그들 사이 수 세기에 걸쳐 통화로 점점 가격이 오른 이미지, 그 통화 속 그분은 가슴에 상당히 튼튼한 더듬이에 고정된 벌건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 보시는지라, 쉽사리 떨쳐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채는 한 그룹에서 다른 그룹으로 넘어갔고, 융통성 좋은 프란체스코회 수도자들이 수 세대에 걸쳐 축척된 보시 물품을 보관하려고, 성채를 받아주었다. 이 자선품들, 진주로 거추장스럽게 주렁주렁 아로새긴 예복, 값비싼 보석의 무게로 사람의 이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보관, 식탁용 흰 아마천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그 장소를 잘 이용했다. 여기에서 암브로시오 형제는 나가서 그의 형제들을 위해 구걸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쇠솥 아래 깔렸다. (그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셰키나 수도원장(개종자)이 그의 비범한 증류기를 설치한 지점도 거기 있었다. 86세의 잘 나가던 미치광이 에우랄리오 신부가 머물던 독방도 있었다. 이 미치광이는 자신의 이름에 모음이 모두 들어 있다는 비기독교적인 자부심을 두고 크게 자책을 하였고, 계속해서 우는 것으로 크게 존경받았고, 아우성치고 울부짖는 그런 규모의 황홀경에 눈이 멀어 성인의 반열도 보장이 되었다. 그는 너무나 운다는 뜻의 에피클란토스(Epiclantos)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의 눈에 바르던 생석회는 원래 있던 정원에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 곡물창고에는 수도원장, 주교, 땅벌 자리가 있는데그러나 너무나 놀라운 규모들의 기적들도 부지기수라, 은혜가 현격히 부족하여 불신이 조롱으로 피어오를 만한 이들 귀에 안 들어가게 비밀로 꽁꽁 숨기고 있어야 하기도 한다.

그들은 잘 헤쳐나갔고, 교황청과도 충분히 잘 지냈으며, 17세기에 발생한 약간의 어려움은 꽤나 당연한 일로 이해하고 넘겼다. 왜냐면 바티칸의 세겹-줄 왕관을 쓴 이탈리아 인이 다음에 어떤 아늑하고 가정적인 관행을 악덕으로 배격할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제회는 지역 귀족들 사이에서 토양식(土壤食, geophagus) 성향들을 부추겼다는 혐의로 심하게 견책을 받았다. 귀족 가문 여인들은 조미료로, 혹은 그 자체 요리로 지역 토양의 맛을 갈구하도록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결국 스페인 땅이었다. 그러나 소동은 사그라들었다. 귀족여인들은 소금(카디스산 스페인 소금이었다)에 매혹이 되었고, 2세기 동안 평화가 정착되었으며, 다만 평화는 십일조를 바치는 방식으로 농부들이 우유를 가끔씩 날려 교회 제단을 흠뻑 적시거나, 수도사들이 벽 너머에서 눈에 띄었다가 날아온 돌을 맞고 정신없이 쓰러질 때만 가끔 깨졌다.

아무도 중앙난방이나 아니 어떤 종류라도 난방 시설을 설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여름에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겨울에는 선한 형제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고인 물처럼 정체되어 두껍게 덧씌운 탁자 주위로 모여 밑에 놋쇠 화로를 깔고 샌들 신을 발들을 노릇노릇 굽고, 은밀한 곳까지 데웠으며, 대부분 시간 그대로 하반신 마비 환자보다 조금 나은 상태로 지냈다. 그위언 목사가 나타난 겨울은 에스트레마두라에 특히나 혹독한 겨울이었다. 카우디요(군사 독재자)들 누구도 본 일은 고사하고, 살아있는 개신도를 본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호기심 차원에서 입회가 되었다. 그러나 오르간 연주자 마노무에르타 신부 때문에 그들 투숙객은 다른 곳으로 초빙되어 갈 뻔했다. 젊은 왕의 고해신부가 최근 개신교와 겸상을 하는 일은 파문을 자청하는 일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비탄도(vitando, 기피자)는 아니겠으나 적어도 생업수단이 뭐냐 중요성을 암시하는 일이리라고. 호기심이 만연하였다. 그리하여 성탄절에 마노무에르타 신부는 이단 손님이 자신의 방에서 자신에게 성체성사를 집행하더라 (큰 열쇠 구멍을 통해) 목도했다고 그들의 의식에 비하면 조잡하고 외로운 의식이더라고 형제회에 보고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마노무에르타 신부는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면모가 있다고그러나 그 중 몇몇은 그들의 의식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그위언을 견책하고 싶어했고, 그가 실제 검은 미사(악마숭배미사)를 벌이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조차도 그의 부당변경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줬을지 누가 감히 알겠는가 생각했다. 마노무에르타 신부는 영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고 그런 일은 없었다고 안심시켜려 했지만, 의심이 가시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응보가 며칠 안 남고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세든 주인네 적포도주 물 빠진 독처럼 들이키는 그위언 역량은 주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식사를 마친 후에도 툭하면 한참 동안 더 남아 마시며 앉아, 은식기를 아마천 냅킨에 닦아 숨기고는 발소리를 죽이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결국 그는 심한 기관지 질환에 앓아누웠고 폐렴으로 번질 기세라 선한 형제들의 손에 죽어 성교회에 가장 높은 개신교적 경의를 그가 표할 기회를 얻게 될 조짐이 보였다. 진흙투성이 마을 중앙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교회 정면으로 난 창문이 있는 작은 방에서 그는 섬망 증세를 일으켰는데 그 모습에 어떤 이들에게는 존경받는 에우랄리오 에피클란토스의 전설을 떠올렸고, 어떤 이들은 (그래도 읽은 축들) 성 장 비앙니, ‘아르스의 치료자의 귀신들린 피해망상을 떠올렸다. 비앙니 사제관이 계속 포위당한 상태에서, 악마들이 접시를 던지고 물주전자를 깨뜨리고, 식탁을 두드리고, 미친 듯이 웃고, 심지어 어느 밤에는 치료사 침대 주변 커튼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는 전설이었다. 그윈 자신도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이런 불시의 방문 중에 들면 그를 혼자 내버려두는 일이 현명한 처사로 여겼다.

그렇게 어느 날 저녁 홀로 누워, 추위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설핏 잠이 들었다가 아내가 버릇처럼 어깨를 쓰다듬으며 깨우는 손길에 화들짝 잠에서 깼다. 그는 골방처럼 들여지은 잠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방을 가로질러 차가운 빛이 조용히 낭하를 메아리치는 창문으로 향했다. 거기 떠 있던 달이 그의 뒤에 가만히 팔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침대까지 닿았다. 그는 추위 속에서 휘청거리며 서서, 거의 그녀의 이름으로 차츰 갖춰가던 음절들을, 마치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기 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 마법이 있기 전, 마법이 절망하기 전, 마법이 종교가 되기 전의 시간을, 종교가 되도록, 기억하고 다시 소환할 수 있는 것처럼, 웅얼거렸다.

마을 위로 구름이 낮게 흐르고, 더러운 회색 조각들이 서둘러 모인 악마처럼, 먹구름이 지울 수 없던 달의 경멸을 받으며, 위협적으로 모여들었다.

다음날 형제들은 걱정과 측은지심에, 그위언을 노새에 태우고 아주 아래 계곡 밑바닥까지 데려간 뒤마노무에르타 신부는 축복기도로 축원하고 돌아오라는 간곡한 권고를 건넸다. 끔찍한 여정 끝에 그위언은 이 나라 최고의 호텔로 이송되었고 회복하도록 거기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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