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일즈 블런델은 평상시 해리성 둔주에 빠져 베니스를 누비며 나가 있다가, 마치 흐르는 시간에 닳아버린 부분들은 바다가 된 지도인양 망가진 낡은 프레스코화를 바라보거나, 널따란 이스트리아 석조물을 오래 응시하고 그 자연적으로 굴곡진 무늬와 표시에서 금단의 해안선에 대한 해설을 읽으며, 훗날 취조에서 완곡하게 비쳤던 것처럼 성 마르코의 예언자적 환상으로, “하지만 정반대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즉, 그는 서기 1세기 모습 그대로 간직한 리알토 습지들과 석호로 돌아갔다. 볼품없이 급강하하는 검은 가마우지, 갈매기들의 불협화음, 습지 냄새, 불어오던 시로코 아래 갈대밭의 거친 마찰음의 숨소리, 다가오는 말소리, 그 시로코 바람에 마일즈의 배는 항로를 벗어났고, 발목까지 물컹한 개흙에 빠져, 마일즈가 확연히 아주 근방 사람이 아닌 ‘존재’로 등장하였다. 근처, 희미한 해안선에서 걸어서 건널 거리에, 그 ‘존재’가 타고 도착한 듯한 기묘한 배가 정박해 있었다. 흔한 큰삼각돛배는 아니었고, 사실 돛도 돛대도 노도 없는 듯했다.
“그냥 가면이나 그런 걸 쓴 사람이 아닌 것 확실해? 아, 그리고 그 날개 달린 ㅌ사자는 대체 뭔가?” 이는 심문관인 칙 카운터플라이가 특히 캐묻고 싶어하던 내용이었다. “책, 그 책이 어느 쪽으로 펼쳐져 있었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래, 카르파치오 화가 식으로, 애증이 엇갈린 미소, 포르타 델라 카르타(도제의 성), 등등, 모두 예술가들의 충동이 다 들었어요, 염려스럽지만…그 존재가 나를 봤을 때 그 존재가 무엇을 보았느냐 말하는 게 아니라면?”
“네가 어떻게 알겠어, 그게 너를 봤을 때 그것이 무엇을 보았—”
“내가 이해하도록 주어진 것을 봤어요. 여기서 사람들이 말하듯이, 무억양에, 억양 굴절없이, 때로는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나 자신으로 온전히 남아 있으면서도, 나는 또한 날개 달린 사자였습니다. 어깨 뼈에 추가된 무게와 뜻밖의 근육의 구속을 느꼈습니다. 그 책, 그게 대체 뭐였나고요? 어떻게 된 건지 저는 그 ‘책을’ 다 외고 있었습니다. 약속의 책, 야만인들에게, 갤리선 사공들에게, 총독(도제)들에게, 비잔틴의 도망자들에게, 지구의 알려진 경계 밖에 사는 사람들, 그 이름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한 약속들. 책 페이지 속에 든 ‘나의’ 약속이, ‘여기 그대 우리 방문객의 몸이에서 쉬게 하리니’ 단순한 약속이, 습한 소금 사막에서 얼마나 중요할 수 있을까요? 한편 그 책의 다른 곳에는 도모해야 할 훨씬 더 중요한 일들이, 결혼과 임신, 왕조와 전투, 바람, 함대, 날씨와 시장 가격, 정확한 일치. 혜성, 유령들이 기다리고 있는데—사소한 약속이, 하물며 복음서 제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그는 알렉산드리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는 자신의 운명이 그곳에 놓여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것은 단지 잠시 중단일 뿐,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삐딱한 바람이, 그도 그 즈음에 순례길에 자신이 올랐음을 알았던 그 길에서 잘못된 임시 방향 전환일 뿐인데.”
“이봐, 마일즈.” 다비가 야유했다. “혹시 관심 있다면 부대 사목자 자리가 비어 있는데.”
마일즈는 싹싹하게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우리 역시 순례 중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고 싶어 했습니다. 이티네라리오 스핀치우네스(스핀치우네 여정표)와 그 안에 적어놓은 일련의 오아시스 역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우리를 끌어들인 이들의 이익보다는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모든 가면을 벗고 나면, 그것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의무, 우리의 운명에 대한 탐구가 됩니다. 이는 이익을 얻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아시아에 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채 세상의 사막에서 소멸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권력의 위계에 높이 오르는 오르는 일도 아닙니다. 아무리 상상이라 해도 어떤 성십자가(True Cross) 파편들을 발견하자는 일도 아닙니다. 프란치스코회가 교구민이 교회 경내를 떠나지 않고도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도록 ‘십자가의 길’을 발전 시켰듯이,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거의 한이 없는 세상이라고 여기는 곳에서 그 궤도와 통로를 오르내리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을 반영하는 초라한 이미지들의 순환일 뿐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여행을 해야 한다는, 한 에피소드에서 다음 진정한 여정을 해야 하는, 지상에서 지내는 그리스도 마지막 날의 다음까지, 그리고 마침내 진정한, 견디기 힘든 예루살렘에 다다르는 여행이라는 눈부신 공포는 면하게 하려고요.”
만질 수 있는 실세계에 솔깃하게 충성하는 칙 카운터플라이지만, 그럼에도 마일즈가 자신의 환상을 열정적으로 전하는 모습에 늘 그렇듯 죄책감의 통한을 느꼈다. 베니스 임무가 진행될수록 칙은 선상에서 일어나는 문제에는 신경 덜 쓰고 도시의 소토포르테기(sotopòrteghi/베니스 고유 큰 건축 아래 통로)와 그 음침한 통로 아래 맛볼 모험의 기회에 점점 더 끌리게 되었다. 그렇게 내려가 있던 어느 날, 흐릿하고 축축한 황혼녘, 레나타라는 젊은 여성이 검은 곱슬머리로 고갯짓을 하며 러시아 은과 니엘로(흑금상감)로 만든 담뱃갑을 들고 그를 불렀다. 담뱃갑이 딸깍 열리자 “엽궐련” 수집품, 즐비한 오스트리아, 이집트, 미국산 담배들이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게 드러났다. 개중에 금박 인쇄된 문장과 신구 글라골 문자처럼 이국적인 문자가 새겨진 담배도 있었다. “여기저기, 친구들에게서 주워 모았어요. 하룻밤에 똑같은 담배를 두 개씩 보는 일은 거의 없어요.” 칙은 골루아즈 프랑스 담배를 골랐고, 그들은 “불을 붙였다.” 그녀는 전통적인 인습으로 그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고 그의 특허품 라이터를 살펴보는 척했다.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작동하나요?”
"안에 방사성 합금으로 된 작은 프리즘이 있는데, 특정 에너지선을 방출해요, 특별히 고안된 ‘방사선 렌즈’로 이 광선을 모아 당신 담배 끝부분이 있는 지점에 집중시켜요, 스쿠시(실례), 있던 지점에.”
레나타는 호기심 가득한 취록색의 커다란 눈으로 생각에 잠겨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특수 렌즈를 발명한 건 바로 도토레(닥터), 당신이었군요.”
“어, 아니. 이건 아직 발명되지 않았어요. 내가 그걸 찾았어요. 그게 나를 찾았나? 안개 속에서 어부가 보이지 않는 강, 흐르는 ‘시간’에, 낚싯줄을 몇 번이고 다시 던지고 던져요, 이런 인공 유물을 회수하기 바라면서.”
“아파시난테, 카로(혹하는 이야긴데요, 자기). 그 말은, 오래 살다보면 언젠가 리알토에서 이걸 수십 개씩 파는 걸 볼 수 있다는 뜻인가요?”
“꼭 그런 건 아녜요. 당신 자신의 미래에 이 물건이 안 담겼을 지도 몰라요. 제 미래에도요. 시간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아요.”
(카페로 가 타로점)
새벽 무렵, 그녀는 마치 방금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부대에 있어야 하는 거 아녜요?”
“자정부로 공식적으로 저는 ‘낙오’ 상태였고, 부하들이 얼마나 일찍 항해를 할 계획인가에 따라 배의 기동도 놓칠 수도 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나에게 연락하려고 상륙전초부대를 보낼 수도 있겠지요... 밖에 누구 수상한 사람 보이나요?”
“아침식사 배만 있어요. 자, 가요, 제가 뭐 좀 사줄 테니.”
작은 배를 탄 두 동네 주민이 아침 느지막이 되어도 꺼트리지 않고 타오를 스푸마토(경계가 흐릿하게 그리는 화법)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노를 저었고, 다른 한 명은 작은 숯불 화로를 지피고 있었는데, 화로 불빛은 차오르는 일광의 진주빛 물결에 곧 스며들 참이었다. 멀리 바닷물에 홍합을 캐는 사람들이 이제 보이는데,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밭에서 수확하는 사람들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폰테(다리) 디 팔리아에서 올라온 농산물 실은 배들이 미끄러지듯 지나갔고, 작은 배에 가득 차도록 채운 녹색 게들이 새벽녘에 멀리까지 들리도록 달가닥거리며 버둥대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불손하게 다비 서클링이 현수하강으로 도르래 줄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에 중단되었다. “와, 참 티피코(전형적)하네요. 가요, 카운터플라이.”
“팍스 티비, 다르베(너에게 평안을, 다비Pax tibi, Darbe). 레나타와 인사 나눠.”
“아리베데르치(안녕, 또 만나), 자매.”
“예전에는 착하고 예의바르더니, 무슨 일이 있었어?”
“에에에에음. 몇 년 동안 너무 많은 정신박약아들을 다뤄서 그런가 봐요—아, 미안해요, 기분 나쁘라고 하던 말은 아니—”
“그래요, 먼저 당신이, 그리고 나서 하나씩, 하나씩, 마치 빌어먹을 작별 교향곡처럼, 우리는 촛불을 불어서 끄고, 걸어 나가는 겁니다. ‘하늘’에서 물러나는 거죠.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넌 절대 날 그리워하지 않을 거야. 곧 바람이 급격히 바뀔 것이고, 그러면 정례적인 겨울-”
“‘하늘’은 당신을 잘 대해줬는데요, 카운터플라이.”
“내가 고심하고 있는 건 미래야. 내가 퇴직 연금에 문제점이 많아 받아들이기 힘들어.” 업계에서는 옛날부터 있었던 가벼운 농담이었다. 퇴직 연금 제도는 없었고, 사실 퇴직이라는 것도 없었다. 우연의 친구들은 일을 하다가 죽거나, 아니면 영원히 살거나, 사실 두 가지 신조밖에 없었으니까.
“당신 머리 곤봉으로 내려 갈겨서 어떻게든 끌어내면 될 것 같은데.” 다비가 투덜거렸다. 이미 그들과 합류해 구운 생선, 롤빵, 무화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차린 바깥 작은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일이 많아.” 칙이 말했다.
그들은 리바 강을 따라 천천히 거닐며, 그곳에 줄지어 정박해 있는 어뢰정들을 지나쳤다.
“지상 임무라도 얻어요?” 다비가 말했다. “당연지사로 그러겠지, 멍청하긴. 하지만 무얼 해요? 저 아래에서 우리 기술 필요로 하는 일이 많으면 모를까.”
“우린 떠들썩하게 노는 파티에서 늘 벗어나 비행하긴 하지, 그건 확실해.” 칙이 말했다.
“파드히트노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그건 정부 소관이야. 이탈리아 육군성에 있는 내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아드리아 해 건너편 몬테네그로에 주둔하며 달마티아에 있는 오스트리아 시설들 항공사진 정찰을 하고 있다고 해. 육군성은 촉각을 세우며 관심을 쏟고, 양국에 있는 이레덴티스트(이탈리아 통일당) 당원들도 말할 것도 없이.”
“최근에 이 망할 이레덴트(민족 통일주의) 세력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다비가 말했다.
“오스트리아는 아드리아 해에 얼쩡거릴 권리가 없어요.” 레나타가 딱 잘라 말했다. “그들은 원래 바다에 접한 나라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저기 산위에 머물고 스키를 타고, 초콜릿을 먹고, 유대인을 괴롭히든 뭐든, 원래 하던 일 하라죠. 우리는 베네치아를 되찾았고, 트리에스테도 다시 우리의 땅이 될 겁니다. 그들이 여기에 더 많이 개입할수록 그더욱 확실하고 철저히 그들은 파멸할 겁니다.”
(p255)
아래의 보행자들은 평상시 하듯이 걸음걸이로 움직이고 있고, 마치 프랑스 애호가가 혁명기념일에 건배하며 잔을 드는 것처럼, 플로리안과 콰드리 카페 탁자에 앉아서,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고, 사진을 찍고,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비둘기들은 머리 위 하늘에서 불길한 이상 현상을 감지하고 더듬더듬 거칠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가라앉았다가, 잠시 후 일제히 마치 소문에 힘입은 듯이 또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상에서 바라보면, 라이벌 비행선들은 있는 그대로 비행선이라기보다는 어림짐작에 가까웠다. 두려움과 예언의 대상, 당시 어떤 공식 항공기도 갖추지 못한 재빠른 속도와 기동성을 발휘한다고 전해졌으며, 꿈, 소원(疎遠)함, 고독에서 응축된, 아니 투영된 존재였다. 캄파닐레(종탑)가 무너져내리기 직전 그런 순간에, 하늘에서 싸움을 목격할 기회는 피아자 근처에서 항상 발견되는 라자뇨니(허풍쟁이들)들만 부여받았다. 이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수천 명의 관광객-사진작가들의 사진에 기록되어, 무성(無聲) 가을의 디아스포라 속 고향집으로 가져가는 그들의 이미지는, 황혼녘 박쥐처럼 흐릿하고, 종종 꿈결 같은 바실리카 산 마르코 정면을 혹은 프로쿠라티에(산 마르코 광장을 둘러싼 빌딩들)의 좀 더 세속적인 반복 건축물을 배경으로 세피아 몸짓들 이상으로 거의 보이지도 않았는데, 베니스의 습한 빛 속에서 장시간 노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비행사들이 일상과 유령의 영역에서 이중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전을 목격할 수 있는 시력의 선명도가 허용된 이들이 라자뇨니들이었다. 오직 그들에게만. 악명 높은 비둘기 떼처럼 꿈에 한껏 취해, 하늘을 오래 응시하던 그들은 그날 아침 스푸마토(어릿한 응달)에서 뭔가 다른 것이 나올 것이라고, 어떤 불시의 강림이 있으리라 알았다…첨스(친구들)와 토바리쉬치(동무들) 둘을 다 초월하게 될 무언가가…왜냐면 갑자기 불가시성에서 귀가 먹먹하게 엄청난 거칠고 탁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중에서 벌어진 거의 물리적인 일, 치명적인 임피던스, 마치 악의적인 무언가가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 형상을 취하고서 길고 메마르고 갈라지는 충돌음으로 세상에 방출되는 듯이, 마치 4차원 공간 자체의 구조를 삐거덕 뒤흔드는 듯이. 일제 사격할 때마다 매번 두 대의 비행체는, 빛이 통과해야 하는 이곳 위의 매질이 너무 왜곡되어, 거의 제대로 판독할 수 없는 각도로 미끄러져 나갔다.
양측 승무원들 모두 판단력 경솔함에 사로잡힌 듯했다. 무기 조준 상황은 동시성의 이해하기 어려운 이니그마들로. 마치 저주처럼, 모두를 짓눌렀다. 몇 도, 심지어 몇 분각 차이로, 그들의 사수들은 ‘시간’을 허물고 있었다. 조준경에 “지금” 보이는 것은 사실 아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몇 초 후에 존재할 것이었고, 각각 진로와 속도를 유지하는 -아니 바람이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양쪽을 변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화된 “진로와 속도”를 유지하는- 플랫폼과 표적에 따라 결정되었다.
캄파닐레(종탑)은 비둘기 똥이 얼룩지고, 창백하게 그리고 어둡게 부스럼투성이로 심하게 대각선을 지나 차츰 추하趨下하여, 수직에서 눈에 띄게 벗어나 마치 비밀을 털어놓으려는 듯 몸을 기울이고, 마을의 술주정뱅이처럼 초췌하게. . . .
다음 순간, 파드지트노프는 고대 구조물이 네 개의 벽돌 그룹을 지으며 깔끔하게 분리되는 것을 보았는데, 각 그룹은 빛나는 윤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시간이 느려지고 각 모양새의 치환들이 등장하자, 공중에 즉각 매달려, 부드럽게 불사신처럼 하강하기 시작하여, 마치 정신 나간 집단 이론적 분석을 만족시키려는 듯, 모든 가능한 모드에서 회전하고 바뀌었고 마침내 벽돌 그룹들이 무너져 내리며 솟아오르는 먼지 구름은 불확실성의 거대한 흙-암갈색 자국으로 그러한 모든 고려 사항을 모호하게 가렸다.
그들 무기고에서 이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공중 어뢰 견본품을 일찍이 챙겨두었다. 칙 카운터플라이 박사가 발명한 이 어뢰는 대립하는 적 비행선을 완파하려는 것도 하물며 손상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중력에 대한 감수성을 상기시키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정상 전수(全數)가 6발인 발사체였고-이는 ‘친구들’끼리는 “하늘 물고기”라고 하였다-불편 호의 무장 목록에는 반부력 장치로 기재되어 있었다. 그날 정오의 난잡한 분규 직후 열린 교전 후 비평분석에서 암묵적인 의문은, 습도와 같은 여러 중요한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볼샤이아 이그라를 향해 발사된 이 어뢰 중 하나가 캄파닐레를 넘어뜨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천 년 동안이나 버텨온 것을, 폭풍도 지진도, 심지어 파멸을 일삼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건드릴 수 없었던 것을, 우리가 어이없게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랜돌프가 선고했다. “우리의 기량 부족으로 다칠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노트르담? 피라미드?”
“그건 전쟁에 따른 우발 사고였어.” 린지가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했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럼 너는 실제로 제대로 본 게 있어, 노즈워스?” 칙 카운터플라이가 물었다.
“애석하네,” 린지가 코를 킁킁댔다. “한창 교전하느라 여유를 가지고 과학적 관찰을 거의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요. 하기는 상대 지휘관이 뚝뚝 떨어지는 석조물로 목표물을 공격하는 성벽이란 건 다들 아는대로. 오도가도 못할 증거는 아니더라도 강력하게 암시는-”
“하지만 높이 올라와 있었어도, 탑 붕괴 경로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어.” 끈기있게 칙이 지적했다. “우리는 유리한 입장에 있었어. 바람 부는 쪽이라 그들을 향해 돌진하고 았었어.”
“—그들이 재빨리 벗어나는 일과 결부하여 따져보면,” 린지는 몰두하느라 의식하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마치 그들이 저지른 일이 창피한 듯이—”
“봐요, 린지, 서두르면 잡을 수 있어요.” 다비가 놀렸다.
“아니면 ‘네 모계 친척’을 쫓아서 보낼 수도 있어, 써클링, 한 번 쳐다만 봐도 아주 치명적이고도 남을 만큼 그들 사기를 꺾기에 충분할 거야. 설령 그들이 모두 석조로 탈바꿈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기요, ‘댁’ 어머니는,” 곧잘 발끈하는 젊은이가 응수했다. “어찌나 못생겼던지—”
“여러분,” 랜돌프가 애원을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간신히 굴하지 않고 있는 신경쇠약으로 탈진할 듯한 기색이 신통력이 없어도 감지될 정도로 역력했다. “오늘 우리는 역사에 반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이 하찮은 다툼은 초현미경적으로 사소한 일로 치부된다. 부디 이런 다툼은 나중에 좀 더 느긋한 오락 시간을 위해 아껴 두기 바란다.”
그들은 멀리 리도 섬 말라모코 쪽으로 거의 버림받은 아드리아 해 해변 구간에서 파지트노프 선장과 그의 장교들을 만나기로 했다. 지휘관들은 격식과 슬픔이 묘하게 뒤섞여 포옹했다.
“이건 정말 끔찍합니다.” 랜돌프가 말했다.
“볼샤이아 이그라가 아니었어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불편 호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누구겠습니까?”
러시아 열기구 조종사는 윤리적인 문제로 고심하는 듯했다. “세인트 코스모. 저 밖에 뭔가 다른 게 있다고 인지하고 계시죠?”
“예를 들면...”
“아무것도 못 보셨나요? 유다른 일은 전혀 감지하지 못하셨나요?”
“피아자(광장) 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디든요. 지형은 상관없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은 뜬금... 조금 다른 조건에서 나타났다가 다시 그 상태로 사라집니다.”
“당신은 캄파닐레를 때려눕힌 게 그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칙이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진동선으로. 가까스로 우리가 알아낸 바로는요.” 칙과 대등한 상대역인 게라시모프 박사가 말했다. “목표물의 정확한 공명 주파수에 맞춰 조정이 가능하면, 그 직접적인 결과로 발산성 발진發振을 유발합니다.”
“"얼마나 편리한 핑계인지,” 린제이가 험악하게 투덜거렸다. “당신 싫어하는 사람에게 신이 나서 퍼붓은 네 겹의 폭언(brickbat)에 대한 증거를 돌무더기 잔해에서 분석할 수 없으니까.”
러시아인은 붕괴가 연상되어 힘없이 미소 지었다. “사석(四石 Tetralith)은 오로지 화가 난 경우에 배치 사용됩니다.” 그가 말했다. “일본인에게서 얻은 정보인데, 일본인들은 본래 화를 돋울 작정이 아니면, 절대 뭐든 네 개로 된 선물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4’에 해당하는 일본어가 ‘죽음’에도 똑같이 쓰여서.”
“일본에 가보셨습니까, 대위님?” 랜돌프가 한편으로 린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요즘 저 같은 직업 분야에서 안 가본 사람이 있나요?”
“혹시 우치다 료헤이(우익인사, 첩보조직 흑룡회결성)씨를 아시고 계시진 않겠죠. . . .”
고개를 까닥하고, 눈이 열렬한 증오심으로 번들거리는데, “우리가 2년 동안 암살하려고 하는놈. 요코하마에서 멋진 직각 단편으로 거의 잡을 뻔했는데. 정말 가까워 사실 그는 직각 안쪽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밀리미터 차이로 빗나갔습니다. 폴니 피즈뎃츠(제대로 망쳤어요)! 운도 좋지, 그 놈의 자식!”
“상당히 언변 좋은 신사 같았는데, 그가 우리에게 임무 맡기려고 인터뷰-”
파드지트노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경계했다. “임무요?”
“작년에 그 사람 수하들, 흑룡회라 일단이던가? 일상적인 항공 정찰 임무에 우리를 고용하고 싶어 했습니다.”
“세인트 코스모, 정신 나갔어요? 왜 그런 말을 꺼내나요? 그들이 누군지 몰라요?”
랜돌프는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애국 단체겠지요. 일본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누구 못지않게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거죠.”
“스미르노(조용히 해), 풍선-소년! 돌아가는 정치상황은 바로 이래요! 흑룡회의 목적은 만주에 있는 러시아 주둔을 전복하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만주는 1860년부터 러시아 땅이었지만, 중국과의 전쟁 이후 일본은 이제 만주가 자기네 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온갖 조약, 중국 동방 철도, 유럽 열강의 의도, 심지어 중국 국경을 존중하겠다는 그들 자신의 약속조차 무시한 채, 일본은 만주에 최악의 범죄자들을 모아 무장시키고 훈련시켜 게릴라 부대로 만들어, 그곳에서 우리에게 대항해 싸우도록 시킵니다. 세인트 코스모, 당신을 존경합니다만, 당신이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일할 생각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만주?” 랜돌프가 어리둥절해했다. “왜요? 형편없이 초라한 늪지대잖아요. 일 년 중 절반은 얼어붙어 있는데 왜 굳이 그런 데를 그렇게 고생을 사서 한단 말입니까?”
“금과 아편,” 파지트노프는 모두가 알지 않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랜돌프는 몰랐다. 그래도 이론적으로는 지상 세계의 일부 세력 집단들은 금을 놓고 전쟁까지 벌일 수 있다는 점은 수긍이 갔다. 바로 지금 이순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고, “금본위제”는 현재 미국도 시달리고 있는 사회적 불안의 한 요인으로까지 거론되었다. 그는 60년 전 중국과 영국 사이에 “아편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와 이를 몰아대는 지반면/기준전위/ground-level 감정들 사이에, 가난에 대한 두려움, 말하자면 고통에서 구제된 그 축복에, 그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말리는 이 낯선 간격이 깔려 있었다.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양측 모두 당혹스러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중에 대화를 되짚어 살펴보니, 칙 카운터플라이는 파드히트노프가 모른 척 시치미를 떼는 것 같았다. “만주 문제에 대한 아무 의견이라도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실용적으로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그는 지적했다. “우리가 자주 목격했듯이, 충분히 높은 고도에서, 실제로 그 거대한 프로젝트는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과도하게 넘겨짚자면 자체적인 필요와 계획을 품고 있는, 의식이 있는 유기체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당면 목표를 위해, 내륙 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을 열어젖히는 일이야말로, 불가피하게 러시아가, 그리고 어느 정도는 유럽이 샴발라에 접근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샴발라가 어디에 있든지.”
“그러니까 . . . .”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스핀치우노 여정표를 찾아 여기 온 거라고 가정해야겠지요.”
한편, 건축양식적 기도의 한 형태처럼, 마치 시간과 엔트로피의 퇴락을 되돌릴 수 있다는 듯이, 캄파닐레 도베라, 코메라(dov’era, com’era, 원래 있던 데에, 있던 모습대로) 재건하려는 도시 계획이 가동되었다. 도시 종들의 합창 질감이 바뀌었다. 합창이 기반이 되어줄 지주대, 가장 깊은 라 마랑고나 종소리가 없어지자, 하늘을 나는 사람들은 하늘에 더욱 가까이 이끌리는 느낌과 출발이 임박하다고 느꼈다. 마치 중요한 극성이 역전되어 더 이상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오라고 호출하는 것처럼. 아니면 마일즈가 어느 날 저녁 막 해가 질 무렵 했던 말처럼, “종은 가장 오래된 물체이다. 영원으로부터 큰소리로 우리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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