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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 없는 짓34

the museum of unconditional surrender 13 2019-05-03 part 2 가족 박물관 I (page 13) 앨범의 시학 현시대는 향수의 시대이고 사진들은 적극적으로 향수를 조장한다. 사진술은 애수 어린 예술, 황혼의 예술이다. 사진으로 찍은 대부분의 주제들은, 그냥 사진으로 찍혔다는 점 때문에, 파토스, 연민을 자아낸다. 꼴사납거나 섬뜩한 주제가 사진사의 주목으로 위엄을 갖추게 되었기에 감동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아름다운 주제는 나이를 먹거나 퇴락하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회의 감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사진을 찍는 일은 다른 사람의 (혹은 물건의) 필멸성, 취약성, 변덕스러운 변화에 참여하는 일이다. 정확하게 이 순간을 잘라내어 동결시키는 일, 모든 사진들은 가차 없이 녹아내리는 시간을 증명한다. -사진술에 관하여, 수전.. 2023. 4. 1.
the museum of unconditional surrender 7- 2019 5-02 14 애초부터 내 지인인 S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녀는 간호사 교육을 완수했고 마을 끄트머리 정신박약 소아병원에 일을 구했다. ‘좋게 끝맺지 못할 거야. 나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압지처럼 빨아들여.’ 그녀가 말했다. 병원에서 그는 작은 개인적인 행복을 발견했다. 남자 간호사, 그녀보다 훨씬 젊은, 남들보다 한참이나 작은 남자였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광택을 낸 작은 신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기억이 난다.) 그의 성조차 자소사(diminutive)형이었다. 상당히 늦은 나이에, 그녀는 임신을 했고, 둘 다 당뇨를 갖고 있는 데도 밀고 나가 보자고 결정했다. 그녀는 (쌍둥이를 임신해) 만삭에 이르렀고, 그러다, 출산 예정일 하루 전에 태중의 아기들은 질식사했다. 지.. 2023. 4. 1.
the museum of unconditional surrender 3- 2019 5-2 page 3 part 1 ich bin müde 1 ‘Ich bin müde(나는 지쳤어)’하고 나는 프레드에게 말한다. 슬픔 가득한 창백한 얼굴이 활짝 웃음으로 길게 벌어진다. ich bin müde가 그 순간에 내가 아는 유일한 독일어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더 이상은 배우고 싶지 않다. 더 배운다는 것은 마음을 터놓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당분간은 한참까지 닫아 놓고 싶다. 2 프레드의 얼굴을 보면 옛날 사진의 인물이 떠오른다. 프레드는 러시안 룰렛을 불행하게 사랑하는 젊은 장교처럼 보인다. 나는 한 백 년 전쯤 부다페스트 식당에서 온밤을 지새우는 그를 상상해본다. 애절하게 긁어대는 집시 바이올린은 그의 창백한 얼굴에 가벼운 떨림조차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아주 가끔씩만 그의 두.. 2023. 4. 1.
무조건 항복 박물관 1999 Dubravka Ugresic 두브라브카 우그레시치 베를린 동물원에, 살아있는 바다코끼리가 들어 있는 못 옆에 범상치 않은 전시물이 있다. 그 유리장 안에 1961년 8월 21일 죽은 바다코끼리 롤란트의 뱃속에서 발견된 모든 물품들이다. 아니, 더욱 엄밀히 말해, 분홍색 담배 라이터 하나, 아이스크림 (나무) 막대 4개, 푸들 모양의 금속제 브로치 하나, 맥주병 따개 하나, 여성용 팔찌 하나(추정컨대 은제), 머리핀, 목제 연필, 어린이용 플라스틱 물총, 플라스틱 칼, 선글래스, 작은 사슬, 18인치 가량의 금속제 사슬, (대형) 못 4개, 녹색 플라스틱 차, 금속 빗, 플라스틱 배지, 작은 인형, 맥주 캔 (필스너, 하프-파인트), 성냥갑 하나, 갓난아기 신발, 콤파스, 작은 자동차 열쇠, 동.. 2023.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