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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 없는 짓/the museum of unconditional surrender

무조건 항복 박물관

by 어정버정 2023. 4. 1.

1999 
Dubravka Ugresic
두브라브카 우그레시치 
 

베를린 동물원에, 살아있는 바다코끼리가 들어 있는 못 옆에 범상치 않은 전시물이 있다. 그 유리장 안에 1961 8 21일 죽은 바다코끼리 롤란트의 뱃속에서 발견된 모든 물품들이다. 아니, 더욱 엄밀히 말해,

 

분홍색 담배 라이터 하나, 아이스크림 (나무) 막대 4, 푸들 모양의 금속제 브로치 하나, 맥주병 따개 하나, 여성용 팔찌 하나(추정컨대 은제), 머리핀, 목제 연필, 어린이용 플라스틱 물총, 플라스틱 칼, 선글래스, 작은 사슬, 18인치 가량의 금속제 사슬, (대형)  4, 녹색 플라스틱 차, 금속 빗, 플라스틱 배지, 작은 인형, 맥주 캔 (필스너, 하프-파인트), 성냥갑 하나, 갓난아기 신발, 콤파스, 작은 자동차 열쇠, 동전 4, 나무 손잡이 달린 칼, 아기 젖꼭지, 열쇠 한 꾸러미(5), 맹꽁이자물쇠, 바늘과 실이 담긴 작은 비닐봉지.

 

범상치 않는 전시물 앞에 선 방문객은, 고고학적인 전시품 앞에 선 것처럼, 충격을 받기보다는 넋이 잃고 흥미로워한다. 방문객은 박물관-전시물 운명은 우연(롤란트의 변덕스러운 섭식취향)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이 물건들이 더욱 미묘하고 비밀스러운 연관성을 획득했다는 시적인 생각을 영 억누를 수는 없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방문객은 의미론적 좌표를 확립하려고 노력하고, 역사적인 텍스트를 재구성하고 (예를 들어, 롤란트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지 일주일 후에 죽었구나 같은), 그런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뒤에 따르는 장이나 단문들은 비슷한 식으로 읽어야한다. 독자가 보기에 어떤 의미도 없거나 어떤 단단한 연결점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인내심으로 버티기를. 연결점들은 그들 나름대로 저절로 형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소설이 자서전적이냐는 질문에 관해서 어느 정도 가정적인 순간에 대해서 경찰에게 중요할지 모르나 독자에게는 아니다

가브리엘 뮌터, 새들의 아침식사 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