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잘데기 없는 짓/the museum of unconditional surrender

the museum of unconditional surrender 3-

by 어정버정 2023. 4. 1.

2019 5-2

 

 

page 3

 

part 1

 

ich bin müde

 

 

 

1 ‘Ich bin müde(나는 지쳤어)’하고 나는 프레드에게 말한다. 슬픔 가득한 창백한 얼굴이 활짝 웃음으로 길게 벌어진다. ich bin müde가 그 순간에 내가 아는 유일한 독일어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더 이상은 배우고 싶지 않다. 더 배운다는 것은 마음을 터놓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당분간은 한참까지 닫아 놓고 싶다.

 

2 프레드의 얼굴을 보면 옛날 사진의 인물이 떠오른다. 프레드는 러시안 룰렛을 불행하게 사랑하는 젊은 장교처럼 보인다. 나는 한 백 년 전쯤 부다페스트 식당에서 온밤을 지새우는 그를 상상해본다. 애절하게 긁어대는 집시 바이올린은 그의 창백한 얼굴에 가벼운 떨림조차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아주 가끔씩만 그의 두 눈은 반짝거리는 금속 군복 단추에 따라 빛날 뿐이다.

 

3. 내 방, 일시적인 유배지에서 보이는 광경은 키 큰 소나무로 가득 찼다. 아침에 나는 커튼을 걷어 낭만적인 무대 세트를 드러낸다. 소나무들은 처음에 유령 같은 연무의 장막에 가려져있다. 그리고 연무는 가닥가닥 아롱져 사라지고, 그리고 동이 튼다. 날이 저물어갈수록 소나무들은 어두워진다. 좌측 구석에 호수가 간신히 보일락 말락 한다. 저녁에 나는 커튼을 닫는다. 무대 세트는 매일 똑같다. 정지된 장면은 가끔 등장하는 새 한 마리로 깨어진다. 하지만 늘 변하는 것이라고는 모두 빛이다.

 

4 내 방은 침묵이 탈지면처럼 두텁게 채워져 있다. 창문을 열면 이 침묵은 지저귀는 새소리로 부서진다. 저녁에, 내가 방을 나와 홀(hall)로 나가면, 텔레비전 소리(같은 층 키라의 방)를 듣고 타자기 소리(아래층의 러시아 작가)를 듣는다. 조금 뒤에 나는 지팡이를 짚은 불규칙한 소리와 보이지 않는 독일작가의 작은 발자국 소리가 질질 끌리는 소리를 듣는다. 침묵은 때로 관리인, 프레드 때문에 깨지기도 한다. 프레드는 시끄러운 전기 잡초기로 사랑의 고통을 몰아내기 위해 공원의 잔디를 깎는다. 그의 아내는 최근에 그를 떠났다. ‘지 비페 이스트 크레이지,’하고 프레드가 설명한다. 그가 유일하게 아는 영어 구문이다.

 

5 가까운 무르나우의 마을에 박물관이 있다. 가브리엘레 뮌터와 바실리 칸딘스키의 집이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 삶의 자취에 조금 시달려서, 그들은 즉시 개인적으로 그리고 비개인적이 된다. 내가 거기 갔을 때 나는 그 집을 그린 그림엽서를 한 장 샀다. 다스 루선 하우스(das russen house, 러시안 집) 나는 자주 이 엽서를 쳐다본다. 나는 때로 창문의 아주 작은 사람 그림자, 검붉은 점을 나라고 느낀다

 

 

6. 내 책상 위에 노랗게 탈색된 사진이 있다. 이름 알길 없는 멱 감는 여성 세 명이 든 사진이다. 나는 사진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그저 세기의 초에 파크라 강변에서 찍은 사진이란 정도이다. 저 강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서 그리 멀리 흘러가지 않는 자그마한 강이다.

나는 항상 이 사진을 그 의미는 나도 모르는 자그마한 집착의 대상처럼 지니고 다닌다. 무광의 노란색 표면은, 최면을 걸 듯 나의 관심을 끈다. 때로 나는 오랫동안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서 이 사진을 들여다본다. 때로는 주의 깊게 물결에 반사된 수영객 세 명의 반영에 빠져들기도 하고, 나를 똑바로 마주 보는 그들의 얼굴에 빠져들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미스터리를 풀기라도 할 것처럼 그들 속으로 잠수해 들어간다. 갈라진 금을, 다른 공간, 다른 시간 속으로 몰래 숨어들어갈 수 있는 숨은 경로를 발견할 참인 듯이 뛰어든다. 나는 보통은 창문의 왼쪽 모퉁이에 기대어 놓는다. 호수의 가장자리 끝이 보이는 곳이다.

 

7. 나는 때로 키예프에서 온 키라와 커피를 마신다. 그녀는 은퇴한 문학교사이다. ‘ya kamenshchista야 카멘슈치스타(나는 자갈돌 애호가에요)’라고 키라가 말한다. 그녀는 온갖 종류의 돌에 열정적이다. 그녀는 매해 여름 크림 반도, 바닷물이 각종 준-보석의 돌들을 해변으로 밀어 올리는 작은 마을에서 보낸다고 말한다. 그녀 말로는 자신 혼자만이 아니란다. 다른 사람들 또한 거기 온다. 그들도 카멘슈치스타들이다. 때로 만날 약속을 잡고, 불을 피우고 보르쉬(Borsch) 수프를 만들고, 서로에게 그들의 보물들을 보여준다. 그녀는 대천사 미카엘의 사본을 만들었다. 비록 그녀는 실로 꿰는 것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내게 부서진 목걸이가 있는지 묻는다. 그녀는 구슬을 다시 꿰어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있잖아요, 나는 뭐든 물건 실로 꿰는 일을 좋아해요,’하고 키라가 말한다. 마치 이 말을 사과하는 투로 그녀는 말한다

 

 

 

8 근처 무르나우에 외된 폰 호르바트(Ödön von Horváth,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헝가리 극작가이자 소설가)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있다. 외된 폰 호르바트는 1901 12 9일 리예카에서 16.45 (일부 다른 문서에 따르면 16.30) 태어났다. 그의 몸무게가 16킬로그램에 이르자 그는 리예카를 떠났고, 어떤 때는 베니스에서 보내고 더 자주는 발칸 반도에서 보낸다. 그의 키가 1미터 20에 이르자 부다페스트로 옮기고 거기서 그는 1미터 21이 될 때까지 살았다. 외된 폰 호르바트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키가 1미터 51에 이르자 에로스가 그 속에서 깨어났다. 예술에 대한, 특히 문학에 대한 호르바트의 관심은 1미터 71의 키일 때 나타났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1미터 60로 측정되었고, 전쟁이 끝났을 때 오롯이 1미터 80에 이른다. 외된 폰 호르바트는 1미터 84에 이르자, 성장이 멈췄다. 호르바트의 전기는 센티미터로 측정이 되었고 지리적인 지점들은 박물관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9. 전범 라트코 믈라디에(Ratko Mladie,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인종청소 주범)에 대해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는 사라예보를 둘러싼 언덕에서 포격을 하며 몇 달을 보내는데, 한번은 다음 타격 목표물에 지인의 집이 들었음을 알아차린다. 믈라디에 장군은 지인에게 전화를 넣어 그는 그 집을 날려버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에게 그의 앨범들을 챙길 5분의 시간을 주겠다고 통고한다. 이 살인자가 앨범이라고 한 말은, 가족의 사진이 든 앨범을 두고 한 말이었다. 몇 달 동안 도시를 파괴하고 있던 장군은, 어떻게 기억을 괴멸시키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그런 이유로 그는 관대하게 그의 지인에게 추억의 권리를 지닌 삶은 선사하였던 것이다. 가까스로 목숨과 몇 개 가족사진들을 건지는 삶

 

10 ‘피난민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사진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 어느 보스니아 피난민이 말했다.

 

11 ‘여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기이다.’라고 내 친구 한나로허가 안덱스(Andechs) 수도원 근처를 향해 걷고 있을 때 말한다.

여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집사야,’라고 내가 한나로허를 향해 수도원의 기념품 가게에서 안에 수호천사가 그려진 플라스틱 공을 사면서 답한다.

한나로어는 소리 없이 웃는다. 공을 조금 흔들어대자, 눈이 수호천사 위로 떨어진다. 한나로어의 웃음이 폴리스티렌 눈처럼 바스락거린다. 

 

12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나는 며칠을 아드리아 해변에, 바닷가 바로 옆의 집에서 보냈다. 가끔 멱 감는 사람들이 작은 해변으로 왔다. 그들은 테라스에서 보이고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하루는 어느 여성의 엄청나게 큰 웃음소리에 귀가 쏠렸다. 고개를 들어 나는 바다 속의 세 명의 나이 든 여자 수영객들을 보았다. 그들은 가슴을 드러낸 채 해변 바로 가까이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마치 원형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처럼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억양으로 추정컨대) 보스니아 인들이었다. 아마 피난민들에 간호사들인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아냐고? 그들은 먼 옛날 학창시절을 더듬고 있었고 기말시험에서 아남네시스(anamnesis추억 병력)’ ‘amnesia기억상실을 헷갈려 하던 네 번째 사람을 두고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다.  ‘amnesia’와 기말고사에 관해 이야기는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고 그럴 때마다 웃음보가 일제히 터졌다. 동시에 그 세 명은 존재하지 않는 탁자의 보이지 않는 빵 부스러기를 털 듯 손을 내저었다. 아주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아주 짧은, 갑작스러운 여름 소나기였다. 욕객들은 바닷물 속에 머물렀다. 테라스에서 나는 크고 굵게 반짝이는 빗방울과 세 명의 욕객들을 구경했다. 웃음소리는 갈수록 커졌으며 엄청나게 짧은 간격으로 터져 나와, 이제 웃음으로 몸이 둘로 접혔다. 중간중간 멈추는 사이, 나는 그들이 계속 반복하는 떨어지는이라는 단어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아마 비가 떨어진다는 뜻이리라그들은 팔을 뻗어 손으로 바닷물을 철벅였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는 누가 더 걸걸한지 누가 더 큰지 내기라도 하듯이 새처럼 까악까악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도, 같이 미치기라도 한 듯이, 더욱 거세지고 더욱 따뜻해졌다. 테라스와 바다 사이에, 물안개가 눅눅하고 짭쪼롬한 커튼이 드리웠다. 갑자기 그 커튼이 모든 소리를 흡수했고 세 쌍의 날개가 아른거리는 침묵 속에서 장엄하게 계속 퍼덕거렸다.

나는 마음속에 클릭을 하고서 그 장면을 기록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13 ‘여자가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야.’ 한나로레가 호화로운 분위기의 뮐러셔 폭스바츠(Mullersche Folksbads)에서 수영한 뒤 쉬고 있을 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