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7
21장
같은 일이 모든 이들에게 일어난다, 야누스의 석상은 소용없는 낭비이고, 사십 년의 나이 이후로 우리는 우리 머리 뒤에 우리 진짜 얼굴을 지니고, 필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는 것은 진실이다. 진정으로 일상다반사라고 하는 수밖에. 여러분은 한쪽 얼굴의 청소년들의 지루한 입 사이로 비틀어져 나오는 그 단어들로는, 이에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대충 그것의 힘이 그렇다. 셍제르멩 프레의 카페-크레메의 담배연기 속에서 더럴 보봐르, 뒤라스, 두아소트, 크노 사로뜨 읽는 이들, 헐렁한 스웨터를 입은 소년과 유쾌하게 펑키한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여기 나는 프랑스화한 아르헨티나사람은 (공포 중의 공포), 이미 청소년기 유행은 넘어, 냉담한 사람으로, 내 손에 시대착오적으로 르네 크레벨의 에테-부 푸(Etes-vous fous? 당신들 미쳤어?)를 지니고, 내 기억에 초현실주의의 전신(전신)을 지니고, 내 골반에 안토닌 아르토의 자국을 지니고, 내 귀에 에드가르 바레즈 이온화를 지니고, 눈에는 피카소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나는 몬드리안이 된 듯하다, 적어도 내가 들은 말은 그렇다.)
‘Tu sème des syllabes pour récolter des étoiles,(별을 주워모으려고 음절을 뿌리고 있어)’ 크레벨이 나를 놀린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내가 대답한다.
‘그리고 그 여성, n'arrêtera-t-elle donc pas de secouer l'abre à sanglots? (눈물로 나무를 흔드는 일을 멈출까)’
‘부당한 언사야,’ 내가 그에게 말한다. ‘그녀는 그냥 조금 우는 거라고, 불평보다 아주 조금 더한.’
삶에서 책 96쪽을 열고 작가와 카페에서 무덤까지, 따분함에서 자살까지, 대화를 하는 일이 더 쉬워지는 지점에 이르는 일은 슬프다. 한편으로 주위 사람들 앉은 탁자에 알제리, 아데나워(서독 수상), 미자누 바르도, 기 트레베르, 시드니 베셰, 미셀 뷔토르, 나보코프, 자오우키, 뤼송 보베에 관해 말하고 있고 그리고 내 나라에서 소년들이 말을 한다, 소년들은 내 나라에서 무슨 말을 하는가? 나는 더 이상 모른다. 나는 너무 멀리 있다, 하지만 그들은 스필림베르고에 관해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스토 수아레즈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퀴야의 상어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니니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레귀자모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모든 게 상당히 자연스럽다. 애로점이 자연과 현실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자연이 끔찍하게 잘못된 것으로 들리던 때가, 스무 살의 현실은 마흔 살의 현실과 팔꿈치를 닿듯 친밀하던, 닿은 팔꿈치 각자 우리 재킷을 베는 면도칼이 있던 때가 있었다. 나는 동시적이며 생경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다. 내가 동의하는 일은 착각 중에 최악의 착각이라는 느낌이 더욱더 강하게 든다. 왜 이런 보편성에 대한 갈증이, 왜 이런 시간에 대항하는 분투를 하나? 나 역시 사로트를 읽고 수갑을 찬 기 트레베르를 보지만, 그것들은 어쩌다 내게 다가온 일들이며, 한편 내가 결정하는 사람이 나여야만 한다면, 나는 거의 항상 뒤편 방향이다. 내 손은 책꽂이를 뒤적이고, 나는 크레벨을 집어 내리고, 로베르토 아를트를 내리고, 자리(Jarry)를 집어 내린다. 오늘이 나를 매혹시키긴 하지만 항상 어제의 관점에서다 (내가 매헉적이라고 했던가?) 그런 식으로 내 나이에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는 헐렁한 스웨터의 소년들과 긴 머리 소녀들이 카페 크레메를 마시고 고양이 혹은 식물의 느릿한 우아함 가득히 서로를 어루만지는 곳의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미래이다.
우리는 이에 맞서 싸워야한다.
우리는 현재에 다시 한번 우리의 자리를 잡아야한다.
나는 몬드리안인 것 같고, 그러하므로……
하지만 몬드리안은 40년 전 그의 현재를 그렸다.
(정확하게 전형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훌리오 데 카로, 에코!)처럼 보이는 몬드리안의 한 그림, 안경을 쓰고 포마드를 발라 붙인 머리카락과 딱딱한 옷깃, 부둣가 창녀와 춤을 추고 있는 성직자의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난다)
너는 늙어가고 있어, 호라시오. 퀸투스 호라시우스 올리베이라, 너는 늙어가고 있어, 플라쿠스(플라쿠스 퀸투스 호라시우스, 로마의 서정, 풍자시인) 너는 축 늘어져 늙어가고 있어, 올리베이라.
‘Il verse son vitriol entre les cuisses des faubourgs(그는 이웃의 허벅지들 사이에 녹반을 붓는다.’ 그가 조롱한다.
나는 무엇을 하지? 이런 대단한 어수선함 한가운데에서 나는 여전히 내가 매번 돌 때마다 어디가 북쪽 혹은 남쪽인지 보여야하는 풍향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풍항계라고 부르는 일은 약간의 상상력을 요한다. 당신은 회전은 보지만 목적은. 옹송거리며 쪼그려 바람의 강 속에 숨으려고 하는 화살의 끝을, 결코 보지 못한다.
형이상학적인 강이 있다. 그럼, 내 사랑, 물론이지.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아들을 돌보고 있다. 때때로 울음을 터뜨리고 여기는 따뜻하지 않은 또 다른 태양이 뜬 또 다른 날이다. J'habite a Saint-Germain-des-Pres, et chaque soir j'ai rendez-vous avec Verlaine (나는 생제르맹데프레에 산다 그리고 매일 저녁 베를렌느와 약속이 있다)/Ce gros pierrot n'a pas changé, et pour courir le guilledou(이 큰 참새는 변하지 않았고 단두대로 달려가려고)……동전구멍에 이십 프랑 그리고 레오 페레가 그의 사랑을 당신에게 노래 불러 줄 것이다 혹은 질베르 베코가, 혹은 기 베아르가. 과거 내 나라에서, Si quiere la vida color de rosa(장밋빛 인생을 원한다면)/Eche veinte centavos en la ranura 20세트를 동전구멍에 던져라/넣어라……라디오를 트는 게 더 낫다 (사글세를 다음 주 월요일까지 치러야 한다, 당신에게 말해줄 걸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내악을 듣고, 아마도 모차르트로, 혹은 로카마두르가 깨지 않도록 볼륨을 낮게 줄이고 레코드라도 올려놓는다거나. 그리고 나는 로카마두르가 아주 아프다고, 엄청나게 약하고 아픈지를, 병원에서 더 나은 치료를 받을 거라고, 당신이 정말로 깨닫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들을 당신과 더 이상 이야기할 수가 없다, 다 끝났다고 하자 그리고 여기 주변을 배회하고 있고, 내가 진짜로 그것들을 찾고 있지만, 북쪽과 남쪽을 찾으려고 위아래로 걷고 있다. 내가 진짜로 그것들을 찾고 있지만, 하지만 내가 그렇지 않다면, 무슨 연유로 다 이러고 있는가? 오, 내 사랑, 나는 당신이 그립다, 나는 내 피부에, 내 목에 당신의 고통을 느낀다. 내가 숨을 쉴 때마다 당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내 가슴 속으로 공허가 들어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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