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5
친할머니이신 빅토리아 할머니는 거의 영어를 못했다. 할머니는 낮에는 삯바느질로 집에서 일을 했다. 마이크 할아버지를 사람들이 데려간 뒤에 그녀는 야간에 도심사무실 빌딩의 마룻바닥을 닦는 부업을 얻었다. 아버지는 그 당시에 열한 살이었고, 여섯 아이들 중 맏이였는데, 집안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몇 가지 일을 해야만 했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우유를 나르고, 그런 뒤 신문을 나르고, 그런 뒤 초등학교에 출석하고, 학교 마친 뒤 바로 쿨터 거리의 꽃집으로 향했고, 여기서 저녁 먹을 시간까지 일했다. 마이크가 유폐된 그 첫 해 성탄이브라 가게는 늦게 문을 닫는데 꽃집 주인이 아버지에게 뒤늦게 화환-성탄절 화환이 아니라 장례식 화환- 긴급 주문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화환을 어쨌거나 소나무 가지를 엮고, 젖은 스패그넘 이끼를 군데군데 찔러 넣고 만들어 검정리본을 묶었다. 아버지가 이 작업을 도왔고 꽃집 주인은 배달하라고 보냈다. 주소는 아버지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동네였다. 그는 어둠 속에 눈에 날리는 거리에 반쯤 길을 잃고, 자신 앞에 화환을 꼭 쥐고, 도시를 뚫고 갔다. 아버지는 장갑도 없었다. 마침내 그 주소를 고속도로가 들어선 뒤 말소된 거리에서 찾아냈을 때는 손이 화환에 얼어붙어서 손으로 문을 두드릴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발로 문을 차야했다.
그의 나이 또래 소년이 대답을 했다. 죽은 남자의 아들이었다. 가족은 장례식장 비용을 댈 형편이 안 되어 시체는, 일요일용 정장을 입고 작은 거실인지 아버지 부르시는 대로-아버지는 항상 거실을 응접실이라고 하니까-응접실인지에 누워있었다. 문을 열어준 아이는 아버지가 화환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안으로 초대해 들였고 기름난로 옆에 아버지를 앉혔다. 난로 꼭대기에 물이 든 냄비가 있었고, 그 꼬마, 테디 커닉은 행주와 수건을 들고 와 손이 녹을 때까지 아버지 두 손을 씻겨주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차 한 잔을 만들어 주었다. 그들은 그날 이후로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이건 아버지가 내게 두 번 해준 이야기였다. 한번은 구주소나무에 버블 라이츠를 매달던 그날 오후에 한번, 그런 뒤 다시, 삼십 년 뒤 주조공장에서 퇴직을 한 뒤에 한 번 더 들었다. 그는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퇴직을 했다. 거긴 시카고의 하베스터 공장이 문을 닫았을 때 전근 조치되었던 곳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종국에 아버지 목숨을 앗았던 신장 질환으로 병원에 머물다 퇴원한 뒤에 방문을 하고 있던 차였다. 우리는 옛날 동네에 있던 온갖 미친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나누며 웃었고 나는 그가 폴란드에 관해서는 무슨 기억이 있는지 얻어 들으려고 해보았다. 그는 아버지의 표현을 쓰자면, ‘그들이 보트타고 건너 온’ 때 아주 어려서 모르겠다고 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다시 했고, 장례식 화환에 손이 얼어붙어 노크를 할 수 없어 테디 커닉의 문을 차던 대목에 이르자, 눈물을 터뜨렸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버지 모습이었고, 잠깐 실례한다며 방에서 급히 빠져나갔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경의의 의미로 몇 마디 말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그런 기회에, 한창 깊은 겨울에 일어난 그 이야기가 내 마음 속에 다시 떠올랐다. 멤피스는 여름이었다. 아버지였다면 다 불살라 버릴 ‘찜통더위’이라고 했을 때라, 아버지 이야기는 한층 생경할 것 같았다. 실제 느낌이 그랬던 게 아니라 어린 시절 길어 올린 옛 감정이, 여전히 그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 감정이 돌아오는 것이 그랬다. 근면성실과 실용성에대한 그의 굳은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현실을 오롯이 평가하지 못했다는 걱정, 형용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를 향해 보호의 감정이었다. 우리는 집을 공유하고, 삶을 공유했지만 차원 하나가 우리 사이에 가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어메리카에, 디킨즈의 런던이나 고골의 모스크바 같은 곳에 자리 잡고 살았다. 아버지는 우리가, 그의 아들들이, 없이 살아갈까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에 우리와는 불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테디 커닉 이야기를 경야에 이야기할까 생각했지만 취지가 잘 맞을지 확신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가 대중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고, 작별을 고하는 방식으로도 애매하였다. 그래도 이 이야기 자체가 내가 한마디 하려고 짜내는 다른 이야기들의 기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염치없게도, 아버지를 무방비로 내버려두고서 조용히 앉아서 사제 말버릇 평소 클리쉐들을 들었다.
믹은 장례식을 위해 뉴욕에서 엄청 큰, 미어터지는, 옆면이 말랑한 무늬 천 여행 가방을 끙끙 대며 날아왔다. 비행 전에 그는 로우어 이스트사이드로 다급히 달려가, 피에로기(만두)와 보르시치 상자들과, 청어, 마늘 딜 절임, 서양고추냉이, 크라우트 단지들, 신선한 그리고 훈제한 키엘바사 꾸리-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소시지지만 지난 몇 년간 제한된 식단 때문에 드실 수가 없었다-를 샀다. 믹은 장례식 후에 식사거리를 내놓아야 하리란 것을 알았다. 그는 비쉬뉘프카(Wiśniówka)-체리 브랜디-병과 150 프루프짜리 데메라라 럼 한 병을 쑤셔 넣고, 그런 뒤 라과르디어 공항에서 멤피스 편에 여행 가방을 부쳤다. 비쉬뉘프카와 럼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깨져 하나 같이 줄줄거리며 도착했다.
그 럼은 믹의 개인적인 헌사였다. 그는 41번가의 어느 스트립 클럽에 기도를 일했었고, 그 댄서 하나와 살림을 차렸다. 믹에게 산테리아를 소개해준 빼어난 미모의 푸에르토리코 여자였다. 그는 종교 입문 신도가 되었고 산테로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까라꼴레스-아무도 못 만지게 하는 조개로 엮은 목걸이-를 차고 있었고 심원한 비밀 상징들이 새겨진 두꺼운 검정 초를 갖고 와 마치 우리가 뒷마당에 아버지를 묻은 것처럼 아버지의 토마토 텃밭 앞에 세웠다. 이는 죽은 자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을 쉽게 해달라고, 오야, 돌개바람과 묘지의 수호신에게 바쳐진 제물이었다. 오야의 싱크리트즘(제설 혼합주의) 한 형태가, 어머니의 의구심을 덜어주기 위해 해준 설명에 따르면, 몬트세라트의 성모였다. 촛불 외에 그는 럼 한 잔을 두었다. 오야, 여자 오리샤들 중에 가장 감푼 오리샤라서 제주가 독해야 좋아했다. 덥덥하고 벌레들이 웅웅대는 멤피스의 어둠 속에서 귤색 촛불 불꽃이 무시무시하게 토마토 그물망으로 넘실넘실 나부꼈는데 보다 못해 어머니가 나와서 이를 정원 호스 분사 한방에 흠씬 적셔 꺼버렸다.
오야가 요구하지 않은 럼은 믹과 내가 밤중에 아버지의 황금색 크라이슬러를 바비큐 고깃집들과 시골 술집사이를 몰고 다니며 죽였다. 막판은 당구장에서 끝냈다. 아버지는 솜씨 좋은 당구선수였다. 믹이나 나나 그런 유전자는 물려받지 못했다. 아마 우리의 서투른 당구 솜씨가 비슷해서이겠지만 사람들은 계속 우리가 쌍둥이냐고 물었다. 아니요, 우리는 그냥 형제지간이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장례식 후에 우리는 멤피스 바비큐와 로우어이스트사이드 폴란드 소시지를 아버지의 살아계신 형제 한명과 세 자매에게 식사로 대접했다. 다들 시카고에서 먼 길을 왔다. 우리는 짧은 기도를 하고 아버지를 추념하며 소리 없는 건배로 비쉬뉘프카를 들이켰다.
나는 올가 고모, 아버지의 막내 여동생 옆에 앉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네 아버지가 우리 모두를 견뎌나가게 보살폈지.” 고모가 말했다. “어느 해는,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며 지내는데, 오라비가 어떻게 손을 써서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무를 한 그루 들고 나타났지. 오라비 말로는 우리 가족이 나무 없이 지날 수는 없다는 거야. 좋은 오라비였지. 좋은 사람이었어.”
“그 일은 한 번도 하신 적 없는데,” 내가 말했다.
고모가 눈을 손수건으로 두드렸다. “오라비가 말하지 않은 거 많다.”
이후로 문득문득 들던 일이지만 이때 처음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가 너무나도 아는 게 없는 과거에 관해 질문에, 아버지가 나로서는 유일한 연결고리였던 그런 과거에 대답해주러 거기 더 이상 계시지 않는다는 화들짝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가 어떻게 나무를 마련해 들고 왔는지 세부사항을 물어볼 수 있었으면 매복습격처럼 강렬하게 나를 덮쳤다. 아마 찰스 디킨스라도 자랑스러워할 또 다른 성탄절 이야기가 되었을 것을.
작문 속에, 카밀 에스트라다가 찰스 디킨스가 워쉬테노오에 서 있는 보았다고 말하던 때 나 역시 그를, 티토 귀자르가 말타고 지나는 모습 구경하는 군중들 속에서 익숙한 그 얼굴을 보았다. 카밀이라면 아마도 티토 귀자르가 실제로 기적의 성처녀 뒤에서 리틀 빌리지를 통과하는 가두행진에 등장할 수 있다면, 그럼 찰스 디킨스는 왜 아니 되느냐? 논박을 벌였을 것이다. 종마, 솜브레오, 등 뒤로 걸친 기타까지 다 갖추고, 멕시코 카우보이 스타의 등장 정도는 오래된 영국 작가의 등장에 비하면 아주 조금 덜 특기할 만한 사건이리라. 평소 지친 심각한 눈 색깔에 맞춘 푸른 크라바트를 매고 풀 먹인 옷깃을 하고 있는 남자가 디킨즈였다. 그의 적갈색 머리카락은 얇아지고 있었고, 흘러내리는 수염은 철도 선로 옆에 사는 떠돌이 일꾼들에게 보이는 그런 종류의 수염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우리 가족이 하던 게임, 작가들 카드에 그림이 올라 있었다. 디킨스는 카드 한 벌을 세익스피어, 월터 스코트 경,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 워싱턴 어빙, 롱펠로우, 테니슨, 루이자 메리 앨코트, 트웨인, 포우, 호손에 나눠 쓰고 있었다. 잠자리 시간에 어머니는 그런 작가들 작품을 믹과 나에게 읽어주시곤 하였다.
“나부대기 없기다.” 어머니가 주의를 주었다. “이제 책 읽을 시간이야.”
믹과 내게 신성불가침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이게 가장 흡사할 것이다.
딕킨스 카드에는, 그의 닮음 꼴 아래, 책 네 권이 올라있었다. 피크위크 페이퍼즈, 데이비드 코퍼필드,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가 송가. 그들 중에 엄마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어 주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송가를 드라마화한 78 분당회전수 낭독 레코드를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는 셜록 홈즈에도 등장하는 배질 래스본이 출현했다. 아버지는 이를 맥스웰 거리에 짭짤한 흥정으로 입수했었다.
카밀은 디킨스 소설의 권위를 빌어 그녀가 말하고자 하던 랠피의 진짜 이야기, 크리스마스이브에 죽어가는 소년의 가망 없이 처량한 사실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을 이야기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어느 정도 단계에 그녀는 째깐한 팀이 끝에 가서 죽는다면 누가 크리스마스송가를 재차 읽겠는가, 자문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재탄생, 부활이 필요했다. 1년이 단 하나 기적도 없이 지났다. 교구민들은 청색소년을 위해 그렇게 오래 기도를 하다 보니 이제 습관이 되다시피 했어도, 그들은 그에게 바치던 기도를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에게 기도로 농구팀 이기게 나 좀 도와달라고 간청을 했던 한번 부끄러운 한 차례 내게 떠오른 생각처럼, 그의 첫 번째 영성체까지 보게 해달라던 랠피의 소원도 허락이 안 났는데, 왜 랠피가 다른 이들을 위한 탄원에 왜 영향력을 행사하겠는가? 그들에게도 떠올랐을 것이다. 천천히, 하지만 설마 그럴까 예상보다는 더 빨리, 그는 잊힐 것이다.
카밀은 리틀 빌리지 거리에 남은 랠피의 영혼에 겹쳐놓기 위해서는 유행타지 않는 디킨스 이야기의 힘을 불러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녀가 디킨스로부터 빌린 이미지들은 디에고 리베라 같은 비젼이 도시재개발이 해주지 않은 것들을 떠받쳐 주기라도 하듯이, 무너지고 있는 벽에 벽화를 칠하는 지역 스프레이통 예술가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디킨스 이야기에는 카밀이 염원했던 영속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그녀의 헌사는 때로 꼬꾸라진 짝패를 기리며 지워지지 않은 푸른 눈물 모양으로 한 쪽 눈가에 문신해 넣는 청소년 갱단의 헌사와 다르지 않았다. 토니 비자로가 그의 동생, 피넛츠가 죽은 뒤에 그랬던 것처럼.
느낌에 관한 거지, 카밀이 어느 오후 우리가 그리스도의 짝친구였을 때 내게 했던 말이다.
그녀는 침묵으로 모양새를 갖추는 헌사에 그치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정확성은 충족시키지 못하고 모자라겠지만 느낌은 아니었다. 아모르가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카밀 에스트라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성탄절 휴가 후에 8학년 그 해, 날씨가 어떠하더라고 꼭대기까지 단추를 채운 푸른 색 카디건 아래, 카밀이 가짜 패드를 차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루시 자매는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카밀에게 학교 유니폼의 일부가 아니라고, 수업 중에는 스웨터를 입지 말라고 요구했다. 카밀은 8학년에 교복 규칙은 엄밀히 강제되지 않는다고 정정하여 의견을 피력했고, 그건 그렇더라도 자신은 춥다고 했다. 그래서 루시 자매는 라디에이터 옆으로 책상을 옮기라고 제안했다. 카밀은 얌전하게 고맙다고 말한 뒤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거라며, 언젠가 미래에 그녀는 스웨터를 집에 두고 올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카밀은 여전히 푸른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아침 기도 후에, 루시 자매가 카밀이 집에 스웨터를 두고 오겠다 약속하지 않았느냐 상기시키고 이를 옷장에-지금 당장-걸어두라고 요청했다. 카밀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차분하게, 말없이 반항적으로. 루시 자매는 그런 행동거지는 학급 졸업대표로서는 생각하기도 힘든 일이라고 평했다. 학급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전에는 카밀과 어느 누구라도 수녀 사이 대적의 기미조차 없었다.
“네 스웨터를 지금 벗으라고 했다.” 카밀을 향해 통로로 한 발자국 내려오며 수녀가 말했다.
카밀이 나직이 스페인어로 대답했다.
“방금 너 뭐라고 그랬어?” 루시 자매가 따져 물었다. 카밀이 막 욕설을 퍼부었을 지도 모른다는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능성에 기가 막혀 수녀는 가던 길을 우뚝 멈췄다.
나 역시, 카밀이 욕을 했나 궁금했다. 하지만 나중에 앤절이 카밀이 한 말은 할머니가 사용하던 걸 들은 적 있던 속담이라고 말해주었다. “El hábito no hace al monje.” 습관이 수도승을 만들지 않는다.
카밀은 그 단어들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거의 진력이 난 얼굴로, 그녀는 스웨터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지만, 루시 자매가 그녀의 행동을 멈췄다.
“카밀, 너하고 개인적으로 말을 나눠야겠다. 교장실에 가서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거라.”
이번에 카밀은 즉시 말을 따랐다. 그녀가 일어서서 말없이 교실을 나가는 동안, 반쯤 단추를 푼 스웨터에 마릴린 먼로라 할 만한 앞가슴이 언뜻하고 비쳤다. 그녀에게 영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카밀이 숨기고 있는 것이 가짜 패드가 아니라면? 생각하던 기억이 난다.
“BB 지즈붐바아!” 노키가 경례를 하고 카밀의 입술이 미소를 봐줘도 무방하게 당겨졌다.
이후로 우리는, 교장실 대신에, 카밀은 우리 작은 학교 도서관으로 갔음을 알게 되었다. 안젤리카 자매라는 노년의 수녀가 책을 통솔을 하던 곳이다. 카밀은 그녀의 오래된 삽화 소설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도서관 카드로 대출을 하고 떠나서 다시는 반납하지 않았다. 걔를 본 게 그게 마지막이었지만 걔 생각한 마지막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고등학교 2학년에 이르자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이야기들에 매혹되던 초기 심취는 공상과학의 중독으로 진화하였다. 나는 학교에서 오가는 버스에서, 때로는 밤이 깊도록 늦게까지, 책을 읽었고 그리고 개즈 힐 도서관에서 공상과학 새로운 마약이 들어왔나 매 토요일마다 들렀다. 여기는 또한 아버지 동네 도서관이기도 했다. 때로 나는 아버지가 내 나이였을 때 거기 가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는 어렸을 적에, 책장에 놓인 모든 하디 보이즈Hardy Boys미스터리물은 다 읽었는데 앤드류 카네기의 전기를 읽은 뒤로, 그는 소설책 읽은 일은 비실용적이라고 몽상가들이 시간 허비하는 방도라고, 깨달았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공상과학 구획에 모든 책은 다 읽어주마 결심했다.
진눈깨비 내리는, 회색 오후에 개즈 힐 창문가 책상에 앉아, 레이 브래드베리의 삽화가 든 남자를 읽고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우연히 마주쳤다. 아주 먼 행성으로 가는 지구 여행객들이 막 거기 그리스도의 출현을 놓친다는 내용이었다. 선장은 그를 찾아낼 때까지 그 남자를 쫓아가는 탐색 여정을 지속하리라 맹세한다. “나는 다른 세상으로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가 말한다. “그리고 다른 세상 그리고 또 다른. 그를 다음 행성에서 반나절 차이로 놓치겠지, 어쩌면 그리고 세 번 째 행성에서 하루 사분의 일 상간으로, 그리고 다음은 두 시간, 그리고 다음에는 한 시간, 그 다음에는 일분. 하지만 그 뒤에, 언젠가는 그를 따라 잡을 거야!”
발굽달린 켄타우루스인들은 나오지 않았지만 세상에서 세상으로 그리스도를 따라다닌다는 발상은 카밀의 이야기가 연상되는 부분이 많아 그녀가 이를 훔쳤을까 궁금증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은, 7학년에 벌써 그녀의 상상력이 브래드베리의 상상력에 맞먹은 건가. 나는 우리 둘이 서서 지우개 털며 카밀이 자신은 이야기로, 그녀가 썼는지 아니면 다만 썼다고 상상만 하는지 나로서는 알지 못할 이야기들로 속죄를 한다고 속내를 털어놓던 오후가 떠올랐다. 그녀는 내 꿈속에서 난 비밀을, 내가 아직 꾸지도 않은 꿈속의 비밀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니 나로서는 그녀가 무엇을 쫓고 있는지는 사뭇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느낌에 관한 거지,” 카밀은 고집스레 말했다.
나는 그녀가 위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씩 덜 꾸긴 하지만 반복해서 찾아드는 꿈이 있다. 나는 처음 이 꿈을 아버지가 아프고 난 뒤에 꾸었다. 꿈속에 나는 붉은 썰매를 끌고 있다. 그런데 성탄나무가 탑재된 건 아니다. 내가 견인하는 건 자동차 배터리이었다. 우리는 실제 어느 겨울에 아버지 플리머스가 공장 주차장에서 죽자 그런 적 있는데 그때 그대로다. 견인차 오라 불러서 점프로 배터리 살리는 데 돈을 쓰느니, 그는 아틀라스 배터리를 빗장을 풀고 직장 동료 차를 얻어 타고 집에 왔다. 그는 배터리를 주유소에 충전하도록 두었고, 저녁 식사 후에 우리는 주유소에 썰매를 끌고 걸어갔다. 기름떼 멍키가-아버지가 정비공을 부르는 말처럼- 자신은 이 배터리가 충전을 유지할 수 있으리란 보장을 할 수 없노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영하의 날씨에 가장 안전한 방법은 새로운 배터리를 사는 일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예 그걸로 얼마나 우려먹으려 드느냐는 질문은 하지도 않고 무시했다.
낡은 썰매는 아버지가 배터리를 그 위에 올리자 삐걱거렸다. 아버지는 이게 기울어져 배터리의 산을 쏟아버리지 않도록 아주 조심을 해야 한다며 주의를 주었고 썰매 중심에 배터리를 놓으라고 말했다. 이게 내 힘으로는 움쩍도 하려고 들지 않았다.
“너 이거 들어 올리는 연습해라, 그럼 찰스 아틀라스가 될 거다.” 아버지가 웃었다. “아무도 네 얼굴에 모래 안 찰 테니.” 그런 뒤 아버지는 배터리 다시 자리를 잡고 우리는 공장으로 가는 긴 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추위의 통금으로 거리는 텅 비었다. 아마 잠자리 들 시간도 가까워졌으리라. 아버지가 그렇게 늦게 밖에 나를 데리고 나간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무언가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듯이 그런 식으로 일은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아파트 건물들 구획들과 공장 구획의 경계였던 록웰을 건넜다. 록웰을 지나자, 나무 한 그루도 없어 산업 강도로 가로등이 푸르스름한 불빛을 발하는데 이 모습에 한 몇 도는 더 온도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여름에도 갈라지고, 벌어진 보도들은 지엽적인 지진이 이런 수 마일의 트럭 화물적재장, 물품창고들, 버려진 공장들의 따라 일어난 것처럼, 위험천만이었다. 눈이 겨울 내내 삽질은 없이 쌓여 올라갔다. 우리는 날려 쌓인 눈을 두르고 더러운 얼음 둔덕을 오르면서 차례를 바꿔가며 한 명은 끌고 한 명은 배터리 균형을 잡아 고정을 하고 썰매를 끌었다. 속으로는 나는 반복적으로 아슬아슬하게 뒤집기를 하려는 저 썰매가 뒤집히더라도 크게 아쉬울 것 같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배터리 산과 눈 사이의 반응을 보고 싶었으니까. 바람이 골수까지 파고들었고, 고무 덧장화를 씌운 내 발과 토끼털을 두른 장갑은 빠져나가도록 저릿하게 아팠다. 얼굴은 마스크처럼 올려 쓰고 있는 털목도리에 벌겋게 까이고 갈라졌다. 나는 차에 닿았는데 배터리가 죽었을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럼 엔진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배터리를 주유소까지 긴 거리를 다시 날라야만 하리라. 우리가 걸으면서 한 말은 한 마디도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말 할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아버지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때는 아니었다.
꿈속에서 나는 썰매를 혼자 끌고 있고, 따라오는 아버지 없이 그 수고가 갈수록 무의미해보였다. 무릎 깊이 눈에, 둔덕이 된 얼음으로 진로를 잡으며, 나는 실은 짐이 뒤집히기 않았나 확인하러 흘깃 돌아보고, 찡그린 가로등 속에서 이게 추위로 퍼렇게 나이 많은 아이로 줄어든, 배터리 무게로 압축된, 내 아버지임을 깨닫는다. 이를 내가 끌고 있다.
왜 초라한 특정 대상들이-자전거, 스웨터, 썰매가 기억 혹은 꿈으로 인양이 되어 어린 시절의 상징이 되는지 누군들 알겠는가? 어린 시절은, 건망증으로 확장해가는 대체 우주, 상황보다는 기억이 창조의 재료가 되는 곳이다.
세인트 로먼학교에서 매일 수업 끝나면, 학급들은 상급반 먼저 순서대로 내보냈고, 그래서 체스터는 랠피의 학급을 풀어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는 교회 옆 모퉁이에서 랠피를 기다리곤 했다. 비가 오고 있으면 이미 우산을 펴고 들고 있었다. 체스터는 학교에서 우산으로는 계집애처럼 유난하던 유일한 소년이었다. 적어도 우산은 검정 우산이었다. 그럼, 그와 동생 랠피는, 워쉬테노오 아래 비밀스러운 대화에 정신이 팔려 걸어서 같이 집으로 갔다.
한번은 랠피가 죽은 뒤 봄에, 나는 방과 후 구류에서 일찍 풀려났다. 4월 오후가 뇌우의 개기일식으로 완전 껌껌했기 때문이다. 복도는 텅 비었고, 모든 학급은 이미 집으로 달아났다. 바깥에 나는 반 블록 떨어져 그 구석에서 우산을 펼쳐들고 기다리는 체스터를 발견했다. 그는 분명 더 어린아이들이 줄줄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머물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거기 그 아이들도 다 간 뒤에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체스터를 학교에서 매일 봐도, 랠피가 죽은 뒤로 진짜로는 그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학급 단위로 조의를 표했지만 물론 할 말이 없기는 해도, 내편에서 따로 무언가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데 체스터에게 내내 어렴풋이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아주 심하게 비가 내리고 있어서 역사책을 내 머리 위에 쓰자니 비가 후두둑 북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걸어가며 그를 지나칠 때까지 체스터가 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마 빗속에서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리라 생각했으리라. 혹 눈물을 감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은 걸 보면, 그 자신도 이를 깨닫지 못했거나.
“너 홀딱 젖겠다,” 그가 말하고 내게 우산을 조금 들어 내밀었다. 우산 나눠쓰자는 뜻이었다. “나는 괜찮아,” 내가 말했다. “나는 책이 있어. 어쨌든 고맙다야.”
“그래, 알았어.” 그가 말하고서 내게 양손 엄지를 들어올렸다. 아마 그가 랠피에게 가르쳤으리라.
나도 답례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아무 이유도 없이 나는 걸어가면서 내가 한번은 랠피에게 죽음이 그를 그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꾸기라도 한 것처럼 기도했던 일에 용서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에 얼마나 많은 다른 이들이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몰래 울고 있는 때에 기도하는 척 하였을까-그 자신들조차 모르게? 아니, 헛된 눈물의 대용품으로 기도를 했던가? 아니 어쩌면, 그들이 울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그들이 잊었거나 잊을 것을 위해 계속해서 울어야하기 때문에 기도를 하거나. 한 통탄할 일이 다른 비탄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리고 감정이 표현되기를 고집하기에 오직 비밀에 싸인 기도라고 해도 기도하고. 어쩌면 더 나은 보호자가 될 수도 있었을 형제를 위한 기도. 좀 더 다정하게 사랑을 했을 수도 있을 아버지를 위한 기도. 아이들이 하듯이 마치 소원을 빌듯이, 뜨거운 눈물이 사납게, 차가운 가슴에 줄을 우르는 것처럼 기도하는 기도. 모든 신의 청색소년들을 위한 기도를.
'그외(뻘짓) > Stuart Dybe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뭘 원하냐고? 2 (0) | 2023.04.23 |
---|---|
뭔 볼일이냐 1 (0) | 2023.04.23 |
Blue boy 2 (0) | 2023.04.23 |
Blue boy 1 (0) | 2023.04.23 |
Live from dreamsville (0) | 2023.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