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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짓, 헛짓/Bridgeshead Revisited

브라이져드 재방문 02

by 어정버정 2023. 5. 7.

2012-6-3

아무도 그런 희롱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반응이 전무하자 그 때문에 대령은 더욱 불타올랐나 보았다. ‘.’ 그가 말쑥한 차림의 A 중대 출신에게 돌아서며 말을 했다. ‘가서 가위 들고 와. 그리고 저 젊은 장교 머리를 제대로 잘라.’

명령이십니까, 대령님?’

자네 지휘관의 바람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아는 한 최상급 명령이다.’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어색한 분위기가 쌀쌀하게 흘렸다. 후퍼가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그의 머리 뒤에 몇 번 싹둑싹둑 가위질이 있었다. 그 작전의 시작에 나는 대기실을 떠났다. 그리고 나중에 그의 환영인사에 대해 후퍼에게 사과를 했다. ‘이 연대에서 흔히 일어나던 그런 일은 아니었어.’ 내가 말했다.

아닙니다. 악감정은 없습니다. 그 정도 놀림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었다.

후퍼는 군대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아니, 우주를 관찰할 때 감싸고 있는 안개 같은, 일반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환상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군대에 강요로, 병역연기를 얻기 위해 힘닿는 데까지 온갖 미약한 노력을 펼친 끝에 마지못해 왔었다.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홍역과 같은 거라며 수용하였다. 후퍼는 낭만(몽상)은 꿈꾸지 않았다. 그는 어릴 적에 루퍼트의 말에 올라타지 않았고 크산투스 강변 야영장 모닥불 가에 앉아 있지 않았다. 우리의 학교들이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아이시절과 다 큰 사내시절에 소개를 시켜주던 금욕적인붉은 거죽의 막간극들 같은 시를 제외하고는 내 눈이 모두 메말라버린 나이에 이른 때 후퍼는 자주 눈물을 흘렸지만, 세인트 크리스핀의 날 헨리의 연설)에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테르모필레의 비문을 두고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선생들이 그에게 가르친 역사 속에는 전투가 거의 포함되지 않았지만 대신 인간적인 법f률 제정과 근래의 산업적인 변화에 대해서 무척 상세하게 들어 있었다. 갈리폴리, 퀘벡, 배넉번, 론세스바예즈, 마라톤 이런 전투들이나 아서가 쓰러진 서부지역의 전투, 그리고 시들고 무법 상태에 있는 지금의 나조차도, 백여 개 그런 전투의 이름이 트럼펫 음표에 따라 가로놓인 세월을 질러 소년시절처럼 그 기억이 아주 선명하고 강렬하게, 불가항력적으로 오롯이 떠오르는데 후퍼에게는 그저 헛된 울림이었다.

그는 좀처럼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 자신은 사람들이 가장 단순한 책임에도 확신하고 맡길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이긴 했지만 그는 효율에는 신복(臣僕)적인 존경을 품었고, 그의 대단치 않은 상업적 경험에 기대어 그는 가끔씩 군대의 방식을 두고 보수와 공급으로, 그리고 인시 man-hours’를 사용하여 논평을 하곤 하였다. ‘저들은 사업에서는 저래선 살아날 수 없어요.’

그는 내가 조바심으로 깨어있는 동안에도 푹 잤다.

우리가 함께 지낸 몇 주 동안에 후퍼는 내게는 젊은 영국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청춘은 미래에 무엇을 요구하고 세계는 청춘에게 무슨 의무가 있는가를 공표하는 대중적인 발언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런 일반적인 성명을 후퍼로 바꿔 여전히 이 발언들이 타당한지 확인을 하곤 하였다. 그래서 기상나팔 전 어두운 시간에 나는 가끔 후퍼 집회’, ‘후퍼 호스텔’, ‘국제 후퍼 주식회사’, ‘후퍼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는 모든 이런 합금들의 엄정한 척도였다.

어쨌든 지금껏 그가 바뀐 한해서지만 처음 OCTU(사관후보생훈련대)에서 도착했을 때보다 이제는 덜 군인다웠다. 오늘 아침, 완전무장까지 하고 서니 인간 꼴로 거의 보이지가 않았다. 그는 질질 끄는 댄스 스텝 같은 자세로 차려 자세를 취하고 그의 앞이마에 모직장갑을 낀 손바닥을 펼쳤다.

난 후퍼와 잠깐 말을 하겠다. 하사관……, 도대체 자네는 어딨었나? 내가 전열을 점검하라고 했잖은가?’

제가 늦었습니까? 죄송함다. 급하게 제 장비를 갖추느라.’

그런 일하라고 당번병이 있지.’

그렇죠, 엄밀히 말하면 있어야겠지요. 하지만 어떤지 아시잖습니까. 당번병도 제 할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놈들 눈 밖에 나면 다른 방법으로 못살게 굽니다.’

잔말 말고, 가서 전열을 점검해. 지금.’

그럅셔.’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그럅셔라고 말하지 마.’

죄송합니다.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심코 튀어나왔습니다.’

후퍼가 떠나자 선임하사관이 돌아왔다.

부대장이 막 언덕길을 올라왔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그를 만나러 밖으로 갔다.

돼지 털처럼 까칠하고 짧은 그의 콧수염에 물방울들이 맺혀있었다.

그래, 여기는 청산이 끝났나?’

, 그런 것 같습니다. 부대장님.’

같습니다? 자네가 확실히 알아야지.’

그의 눈이 깨진 창문에 쏠렸다. ‘저건 막사 손상에 들어갔나.’

아직 아닙니다, 부대장님.’

아직 아닙니다? 아직 아니면 언제 될지 알아서. 만약 안 봤으면 어쩌려고.’

그는 내가 편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지르는 고함의 대부분은 소심함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더 정이 더 가는 건 아니었다.

그는 막사를 돌아 철사울타리 쪽으로 나를 데려갔다. 우리 구역과 수송소대 구역을 나누고 있는 그 울타리를 펄쩍 뛰어넘어 우리는 풀이 무성한 배수로와 한때 농장 땅의 경계선이었던 두둑으로 향했다. 여기서 그는 지팡이로 마치 트뤼플 찾는 돼지처럼 들쑤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는 이등병의 위계(order)의 감각에는 소중하였을 쓰레기 무더기 중의 하나를 뒤집어 드러내었다. 빗자루 머리, 난로 뚜껑, 녹슬어 구멍이 난 양동이, 빵 한 덩이가 소리쟁이와 쐐기풀 아래, 담배 곽과 빈 깡통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것 좀 봐 부대장이 말했다. ‘우리 뒤에 올 연대에 좋은 인상은 다 주겠군.’

형편없군요.’ 내가 말했다.

이건 수치야. 막사 떠나기 전에 다 소각되는지 잘 살피라고.’

잘 알겠습니다, 부대장님. 선임하사관, 가서 수송 소대에 이 일을 넘기고 브라운 대위에게 부대장님께서 이 도랑을 치우라고 하셨다고 전해.’

나는 대령이 이런 퇴짜를 참아낼까 궁금하였다. 대령은 받아들였다. 그는 도랑에 있는 분뇨를 찌르며 잠깐 주춤주춤 섰다가 획 돌아서서 성큼성큼 멀어졌다.

그러지 마시지 그랬어요.’ 선임하사관이 말했다. 그는 내가 중대에 합류한 뒤 내게 안내자와 버팀목이었던 사람이었다. ‘정말 그러지 마시지.’

저건 우리 쓰레기가 아닙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어떤지 아시잖습니까? 상관 눈 밖에 나면 다른 방법으로 못살게 굽니다.’

 

우리가 정신병원을 지나 행군하자, 두세 명의 나이 많은 입소자들이 철책 뒤에서 점잖게 횡설수설을 하고 입 모양으로 벙긋대고 있었다.

힘내, 친구들, 언젠가 볼 거야.’ ‘우리 여기 오래지 않아.’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웃음 잃지 마.’ -라고 그 사람들이 소리를 쳤다.

나는 선두 소대의 머리에서 후퍼와 행군을 했다.

있잖습니까,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아시는 거 있습니까?’

몰라.’

이번에는 진짜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괜한 야단일까요?’

그래.’

사람들이 다 그럴 거라고 말을 해요. 전 진짜 뭐라고 생각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전투를 결코 개시하지 않으면 이런 절차니 훈련이니 모두 아주 어리석어 보여요.’

나라면 걱정을 안 할 텐데.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많이 겪을 거야.’

, 전 많이는 원치 않습니다. 그냥 제가 거기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한물 간 객차로 된 기차가 측선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R.T.O(철도수송지휘관)가 우리를 맞고 있었고, 작업반이 트럭에서 수하물 운반 칸으로 마지막 잡낭들을 부리고 있었다. 30분에 우리는 출발준비를 마쳤고 1시간 후에 우리는 출발했다.

내 휘하 소대장 세 명과 나는 우리끼리 따로 객실이 있었다. 그들은 샌드위치와 초콜릿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잠을 잤다. 그들 중 아무도 책이 없었다. 처음 3시간인가 4시간 동안 그들은 마을의 이름에 주의를 기울이고 아주 잦은 일이었지만, 역 사이에서 멈춰 설 때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것도 나중에는 흥미를 잃었다. 정오에 그리고 석양 때 다시 좀 미지근한 코코아를 운반 용기에서 우리 머그로 국자로 퍼주었다. 기차는 남쪽의 평평하고, 단조로운 철도 간선의 경치를 가로질러 천천히 움직였다.

그날의 최고 사건은 지휘관의 명령 그룹 order group’이었다. 우리는 잡역병의 소환에 따라 그의 객차에 모여들었다. 들어서니 그와 부관이 그들의 철모를 쓰고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말한 첫 번째 말은 이것은 명령 그룹이다. 나는 올바른 복장 착용에 주의를 권고한다. 우리가 기차에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우리를 다시 돌려보낼 거라 생각을 했지만 그는 착석.’이라고 말했다.

이전 막사는 수치스러운 상태로 남았다. 장교들이 그들의 의무에 충실하지 못한 증거를 내가 가는 곳곳마다 발견하였다. 다 떠난 뒤 막사의 상태는 연대 장교들의 테스트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시험이다. 부대와 그 소대장들의 명성이 달려있는 바로 그런 문제이다. 그리고,’ 그가 실제 이 말을 했던가? 아니면 그의 목소리와 눈에서 분개의 단어들을 찾고 있는 건가? 나는 그가 말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전문적인 명성이 몇몇 임시 장교들의 태만으로 위태롭게 할 생각은 결코 없다.’

우리는 우리의 공책과 연필을 쥐고 앉아 우리의 다음 책무의 세부사항을 적을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다. 좀 더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가 깊은 인상을 심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감지하였을 것이다. 아마 그도 알았는지 심술 사나운 학교 선생같이 내가 요구하는 전부는 충실한 협력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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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퍼는 낭만(몽상)은 꿈꾸지 않았다그는 어릴 적에 루퍼트의 말에 올라타지 않았고 크산투스 강변 야영장 모닥불 가에 앉아 있지 않았다(루퍼트 왕자찰스 왕의 조카로 영국대내란 때 왕당파 기사크산투스 강은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의 강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학교들이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아이시절과 다 큰 사내시절에 소개를 시켜주던 금욕적인붉은 거죽의 막간극들 같은 시를 제외하고는 내 눈이 모두 메말라버린 나이에 이른 때 후퍼는 자주 눈물을 흘렸지만,  세인트 크리스핀의 날 헨리의 연설(세익스피어 헨리 5)에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테르모필레의 비문(페르시아 군을 맞아 그리스 300명 스파르타군이 전사한 테르모필레 전투)을 두고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선생들이 그에게 가르친 역사 속에는 전투가 거의 포함되지 않았지만 대신 인간적인 법류의 제정과 근래의 산업적인 변화에 대해서 무척 상세하게 들어 있었다. 갈리폴리(1915, 1차 세계대전 중 터키의 갈리폴리 반도에 있었던 전쟁)발라카바(1854년 크림 전쟁 중 발라카바 전투가 있던 곳), 퀘벡(1756-63년 사이 7년 전쟁 중레파토(1571년 카톨릭 동맹과 오토만 제국간의 해양전투), 배넉번(1314난 스코틀랜드 스털링 근교의 전투), 론세스바예즈(778피레네산맥사를마뉴대제가 패가 롤란드가 전사한 전투), 마라톤(490년 BC, 아테네와 페르시아 침략군사이의 전투가 있던 곳이런 전투들이나 아서가 쓰러진 서부지역의 전투(아서 왕이 사망한 전설상의 캄란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