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7-30
아버지의 반격은 며칠 뒤에 뒤따랐다.
그는 나를 찾아서 ‘조킨스가 여전히 여기 있니?’라고 물었다.
‘아니요, 아버지. 물론 아녜요. 그는 저녁 먹으러 여기 온 거예요.’
‘오, 나는 그가 우리집에 머물렀으면 했는데. 아주 다재다능한 젊은 친구야. 근데 너는 집에 저녁을 먹을 거냐?’
‘예.’
‘난 작은 디너 파티를 열 참이다. 네가 집에서 보내는 단조로운 저녁에 조금 다양성을 줄까하고. 아벨 부인이 아주 바쁘겠다고 생각하지? 아니. 하지만 우리 손님들은 까다로운 사람들이 아니야. 커스버트 경과 레이디 오엄-헤릭이 아마 중심이라고 할 수 있지. 그 뒤에는 약간의 음악회도 생각 중이야. 나는 너를 위해 몇몇 젊은 사람도 초대에 포함했다.’
아버지 계획에 대한 불길한 예감은 실제로 닥치자 예상을 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의식하지 못한 채 “갤러리”라고 부르던 손님들이 방으로 모여들자 이들은 나의 불편을 위해 세심하게 고른 사람들임이 명백해졌다. “젊은 사람들”이란 첼로 배우는 학생인 글로리아 오엄-헤릭 양, 대영박물관에 다닌다는 머리 벗겨진 젊은 그녀의 약혼자, 한 언어만 사용하는 뮌헨의 출판업자였다. 나는 아버지가 그들과 서 있으면서 도자기들 케이스 뒤에서 나를 보며 코를 킁킁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날 밤은 그는 전장의 기사 휘장처럼 작은 붉은 장미를 단춧구멍에 꽂고 있었다.
저녁은 길었다. 그리고 음식은 손님들처럼 세심한 조롱의 마음으로 선택되었다. 필리파 고모의 선택이 아니라 그가 아래층에서 식사를 하던 나이였던 때보다 훨씬 이전 시기을 토대로 재건한 음식들이었다. 요리들은 모양이 장식적이었고 색깔은 빨강과 흰색 사이를 규칙적으로 오갔다. 그들이나 와인은 똑같이 맛이 없었다. 만찬 후에 아버지는 독일 출판업자를 피아노로 이끌었고 그가 연주를 하는 동안 거실을 떠나 커스버트 오엄-헤릭 경에게 전시실에 있던 에트루리아(BC7-3세기경 중앙 이탈리아의 문명)황소를 보여주었다.
섬뜩한 저녁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사람들이 흩어졌을 때가 겨우 열한 시에서 몇 분 지나지 않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혼자서 보리차를 따라서 먹으면서 말했다. ‘난 진짜 따분한 친구를 가지고 있구나. 알겠지만 너의 존재라는 박차가 없었다면 저 사람들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일지도 않았겠지. 난 최근에는 사람대접하는 일을 아주 등한히 해왔었지. 지금은 네가 이렇게 오랫동안 방문을 하고 있으니 오늘 같은 저녁을 많이 가질 것이다. 너 글로리아 오엄-헤릭 양이 좋더냐?’
‘아니요.’
‘아냐? 반감을 가지는 게 그 여자 작은 수염 때문이냐, 아니면 엄청 큰 발? 그녀는 즐겁게 지낸 것 같으냐?’
‘아니요.’
‘내 인상도 그랬다. 나도 우리 손님들이 이 날을 아주 즐거운 저녁의 하나로 쳐줄지 의문이구나. 그 젊은 외국인 끔찍하게 연주를 하던데. 내가 그를 어디서 만났더라? 그리고 콘스탄샤아 스메스위크 양은 또 어디서 만났던고? 하지만 환대의 의무는 잘 지켰어. 네가 여기 있는 한 지루하지는 않을 게야.’
동족상잔의 갈등은 그 다음 2주 동안 계속 되었다. 하지만 내가 더 고통을 받았다. 아버지는 의지할 만한 비축물이 더 많았으며 술책의 구역이 더 넓었다. 한편 나는 고지대와 바다사이에 내 교두보에서 꼼짝을 못하였다. 그는 결코 그의 전쟁의 목표를 선포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날까지 그것들이 순수하게 처벌이었는지 아닌지 모른다. 혹은 숨은 그의 마음 어디 구석에 진짜로 나를, 필리파 고모를 보디게라(이탈리아의 마을)로 몰아내고 내 사촌을 다윈으로 쫓아냈듯이, 나라 밖으로 쫓아내겠다는 지정학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가장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가 실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전쟁에 대한 순수한 애정 때문에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바스찬에게서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아버지가 집에서 점심을 드시느라 계시던 어느 날 내게 배달되어 온 아주 눈에 띄는 물건이었다. 그가 궁금한 눈빛으로 보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읽기 위해서 자리를 피했다. 편지는 육중한 빅토리아 말기 애도편지(mouring paper)형태여서 검정 화관이 들어있고 검정으로 테가 둘려져 있는 편지지와 편지봉투에 적혀 있었다. 나는 급하게 읽어 내려갔다.
Brideshead 캐슬
윌트셔
나는 날짜가 언제인지 궁금했다.
친애하는 찰스에게.
나는 여닫이 뚜껑 책상에서 이 종이를 박스 째 발견했어. 그래서 나는 나의 잃어버린 순수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너에게 이 편지를 써야만 했어. 그건 한 번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지. 의사는 처음부터 체념을 했었어.
곧 나는 죄의 궁전에서 아빠와 머물기 위해 베니스로 떠나. 너도 가면 좋겠다고 너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난 조용히 혼자 있는 적이 없어. 가족 중에 누군가는 꼭 교대로 나타나 짐가방을 챙기고 다시 떠나네. 하지만 하얀 래스베리가 익었어.
확실하진 않지만 나는 알로이어스를 베니스로 데리고 가지 않을까 생각 중이야. 나는 걔가 진저리나는 이탈리아 곰들을 수없이 만나 나쁜 버릇이나 배우는 건 원치 않아.
Love or what you will
S.
나는 예전의 편지들이 어땠는지 안다. 나는 그런 편지를 라벤나에서 받았었다. 나는 실망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뻣뻣한 종이를 둘로 찢어버리고 쓰레기통에 떨어뜨린 뒤 더러운 정원 너머 베이즈워터의 어지러운 뒷면에 뒤섞여 있는 하수관과 비상계단과 튀어나온 작은 온실을 분개에 차 바라보면서 나는 마음의 눈으로 테임의 기웃거리고 있는 촛불 사이를 제멋대로 자라 난 잎 사이로 응시하던 앤서니 블랑세의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속살거리는 차량들 너머로 그의 또렷한 목소리를 들었다……‘넌 세바스찬이 조금 재미없다고 해서 그를 비난해선 안 돼.……그가 하는 말을 들으면 나는 어떤 면에서는 속이 메스꺼운 “방울거품”이 떠올라.……가슴에 있는 종양처럼……지겨워…….’
그 일이 있은 뒤 며칠 동안 나는 내가 세바스찬을 증오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뒤 어느 일요일 오후에 그에게서 전보가 왔다. 전보는 어둔 그림자를 쫓아내기는 했지만 그 자체로 더 어둡고 새로운 그림자를 더했다.
아버지는 나가셨는데 돌아오셔서 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불안에 휩싸인 걸 발견하셨다. 그는 현관복도에 파나마 모자를 그대로 머리에 쓰고 나를 향해 방긋 웃었다.
‘넌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상상도 못 할 거다. 나는 동물원에 갔었다. 아주 기분 좋은 하루였어. 동물들도 햇볕을 상당히 즐기는 거 같더구나.’
‘아버지, 저 바로 떠나야 해요.’
‘그러냐?’
‘아주 친한 친구 한 명이, 그가 끔찍한 사고를 당했어요. 저는 그 사람한테 바로 가봐야 해요. 헤이터가 제 짐을 싸고 있어요. 한 시간 반 후에 가는 기차가 있어서.’
나는 그에게 전보를 보여주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심각한 부상. 지체 없이 올 것. 세바스찬.’
‘그래.’ 아버지가 말했다. ‘너 아주 속상해 보이는구나. 이 메시지를 읽고 나니 사고가 네가 생각하는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 그랬다면 환자 자신이 서명을 하기가 거의 어려웠을 테니까. 그래도, 물론 환자가 완전히 의식은 있지만 눈이 멀었거나 등이 부러져 마비가 되었을 수도 있지. 근데 정확하게 네가 왜 꼭 필요하다는 거냐? 너는 아무 의학적 지식도 없잖으냐. 그렇다고 네가 성품신사를 받은 것도 아니고. 혹시 유산이라도 바라는 거냐?’
‘말씀드렸잖아요. 아주 친한 친구라고요.’
‘그런데, 오엄-헤릭은 나하고 아주 친한 친구이지만 이렇게 훈훈한 여름 오후에 그의 임종자리에 막무가내로 달려가진 않아. 레이디 오엄-헤릭이 나를 반길지도 의심스럽네. 하지만 너는 그런 의문들은 없어 보인다. 난 네가 그리울 거야, 아들아, 하지만 날 위한다고 서둘러 돌아오진 말거라.’
8월 일요일 저녁의 패딩턴 역은 지붕의 불투명 유리를 통해 태양이 흘러들어오고 있었고, 가판대는 문이 닫히고, 얼마 없는 승객들이 그들 짐꾼 옆에서 서두르지 않고 거닐고 있어 나보다 덜 불안해하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의 진정을 얻었을 것이다. 기차 객실은 거의 텅 비었다. 나는 내 짐가방을 삼등칸의 구석에 넣고 식당칸의 자리에 앉았다. ‘첫 저녁은 리딩을 지나 그러니까 7시 이후에 나옵니다. 지금 무엇, 주문하시겠습니까?’ 나는 진과 베르무트를 주문했다. 역을 빠져 나갈 때 쯤 음료가 나왔다. 나이프와 포크가 잘랑거리면서 하나씩 차려졌다. 환한 풍경이 창가를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매끄럽게 진행되는 일들에 신경 쓸 경황이 없었다. 대신 공포가 내 생각 속에 효모처럼 자라 표면으로 끓어올라 엄청난 거품으로. 재앙의 이미지로 부글거렸다. 선틀을 짚고 있는데 부주의하게 장전된 총을 잡고 있었다거나, 말이 뒷다리로 서는 바람에 굴러떨어진다거나, 그늘진 풀장 속에 잠겨 있던 막대기나, 조용한 날 아침에 갑작스레 느릅나무 가지가 떨어진다거나, 사각지대의 차, 모든 문명화된 삶의 위협요소 목록들이 떠올라 나를 쫓아다녔다. 나는 어둠 속에서 웅얼거리고 있는 살인광이 기다란 납 파이프를 휘두르는 모습까지 그려보았다. 옥수수밭과 빽빽한 깊은 삼림이 빠르게 지나가고 황금빛 저녁이 점차 깊어졌으며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단조롭게 ‘넌 너무 늦게 왔어. 넌 너무 늦게 왔어. 그는 죽었어. 그는 죽었어. 그는 죽었어.’ 반복되어 귀에 들렸다.
나는 저녁을 먹고 지방노선으로 기차를 갈아탔다. 그리고 황혼녘에 나의 목적지인 멜스테드 카베리에 도착하였다.
‘Brideshead라구요, 손님? 레이디 줄리아가 마당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나
줄리아는 무개차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나는 바로 그녀를 알아보았다. 못 알아보는 게 더 이상했다.
‘라이더 씨죠? 얼른 타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세바스찬의 목소리였고 말하는 방식도 딱 그였다.
‘그는 어떤가요?’
‘세바스찬요? 그는 괜찮아요. 저녁 드셨나요? 그래요. 고약한 식사였을 거 같은데. 집에 그런 게 좀 더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세바스찬하고 나만 있어서, 우리는 당신을 기다려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세바스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가 말 않던가요? 당신이 알면 아마 안 올 거라고 생각했던가 보네요. 발목에 아주 작아서 이름도 없는 뼈에 금이 갔어요. 의사들이 어제 X-레이를 찍어보더니 한 달 동안 가만있으라고 했어요. 그에게 엄청 지루한 일이 될 거예요. 모든 계획이 틀어져버렸죠. 어찌나 야단법석을 피우던지……모든 사람들이 다 가벼렸으니. 나더러 같이 남아달라고 무진 떼를 썼죠. 그가 얼마나 미칠 듯이 애처롭게 보일 수 있는지 잘 아실 거예요. 저도 거의 항복을 하고서 “분명 오빠가 연락할 만한 사람이 있을 거야.”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가 모든 사람들이 멀리 있거나 바쁘대요. 안 그대로 아무도 안 올 거라고. 하지만 결국에 당신한테 접촉해보겠노라 동의를 했고 그리고 당신이 그를 저버리면 내가 머물겠노라고 약속을 했죠. 그러니 당신이 얼마나 저한테 점수를 많이 땄는지 아시겠지요. 이 말도 꼭 해야겠어요. 알려주자마자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오시다니 정말 숭고한 분이세요.’ 하지만 그녀가 이 말을 하는 동안에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내가 아주 쉬운 남자라는 아주 약간 경멸의 기운을 들었다, 아니 들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어요?’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크로켓을 하다가요. 제 분을 못 이겨서 고리에 걸려 넘어졌어요. 아주 명예로운 상처는 아니지요.’
그녀는 세바스찬을 아주 많이 닮았다. 몰려드는 어둠 속에서 그녀 옆에 앉아서 나는 익숙하고 낯설다는 이중 착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도수 강한 렌즈로 들여다보며 어떤 남자가 아득히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을 관찰하며 그의 얼굴이며 옷을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살피고 손만 내밀면 그에게 닿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그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없다는데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보다가 그런 뒤 맨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갑자기 그 사람은 그가 사람일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머나먼 한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알았지만 그녀는 나를 몰랐다. 그녀의 어두운 머리카락은 세바스찬보다 약간 더 길었고 세바스찬처럼 앞이마에서 뒤로 넘겨져 있었다. 어스레한 길 위에서 보이는 그녀의 눈은 딱 그였다. 하지만 립스틱을 바른, 좀 더 큰 입은 세상에 덜 우호적이었다. 그녀는 손목에 작은 장식물이 달린 뱅글을 차고 귀에는 작은 금귀고리를 하였다. 그녀의 밝은 코트 아래 일이 인치 꽃무늬 실크 셔츠가 드러났고 치마는 그 시대에 비하면 짧았고 그리고 차의 제어장치 쪽으로 죽 뻗은 다리는 그 시대 유행에 맞게 막대기처럼 가늘었다. 그녀의 성별은 우리 사이의 공간을 메우고 있는 친숙함고 낯선 느낌 사이에서 뚜렷한 차이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특히 여성으로 느껴졌다. 이전에는 여성으로 느낀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전 저녁 이 시간에 운전하는 일이 겁나요.’ 그녀가 말했다. ‘차를 몰 만한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거 같아서. 세바스찬하고 전 사실상 여기 야영을 나온 셈이에요. 당신이 호화로운 파티를 기대하며 오지 않기를 바라요.’ 그녀는 몸을 앞으로 숙여 로커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었다.
‘전 됐습니다.’
‘저 대신 담뱃불 좀 붙여주세요.’
내 생애에서 이런 일을 내게 부탁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내 입술에서 담배를 빼어 그녀의 입에 물려주면서 나는 교미를 위한 마른 박쥐의 까악소리, 나 말고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
2012-8-1
‘고마워요. 당신 전에 여기 왔었죠. 유모가 알려줬어요. 유모하고 전 다과 시간까지 머물지 않다니 아주 기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세바스찬이 그랬어요.’
‘당신은 많은 부분에서 세바스찬 마음대로 하게 두는군요. 그러면 안 돼요. 그에게 아주 나쁜 일이에요.’
우리는 진입로의 모퉁이를 이제 돌았다. 색깔은 숲속에서 이미 죽었고 하늘고 집은 그리자유(grisaille, 회색 혹은 단색으로 그린 화법) 화법으로 그린 것 같았다. 열려 있는 문들만 가운데서 황금색 네모를 그리고 있었다. 사람 한 명이 내 짐을 내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다 왔어요.’
그녀는 중앙 계단으로 나를 안내했고 현관 홀로 들어서서, 대리석 탁자에 코트를 집어던지고, 그녀에게 인사를 하러 다가온 개를 쓰다듬느라 몸을 구부렸다. ‘세바스찬은 혼자서 저녁을 시작하고도 남았을 사람이에요.’
그 순간 세바스찬은 더 멀리 있던 기둥 사이에서 혼자서 휠체어를 굴리며 나타났다. 그는 파자마에 드레싱 가운 차림이었고 한 발은 두툼하게 붕대를 감아 놓았다.
‘자, 여기 오빠 동무 데려왔어.’ 그녀가 말했다. 다시 아주 감지하기 어려운 경멸의 기미가 들어 있었다.
‘난 네가 죽어가는 줄 알았다.’ 그제야 내가 도착한 이후에 대단한 비극을 짐작하던 내 예측이 사취당했다는 데에 안도의 감정이 아니라 주로는 신경질이 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그런 줄 알았어. 통증이 사람 잡던데. 줄리아, 네가 만약에 부탁을 하면 윌콕스가 오늘밤에 우리에게 샴페인을 내어 줄 거 같아?’
‘나는 샴페인 싫어해. 그리고 라이더 씨는 저녁을 먹었어.’
‘라이더씨? 라이더씨? 찰스는 때를 가리지 않고 샴페인을 마셔. 이렇게 칭칭 엄청 감아놓은 내 발을 보면서 어찌 된 게 내가 통풍을 가지고 있고 그래도 샴페인을 애타게 찾을 거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네.’
우리는 그들이 ‘그림을 그린 거실’이라고 부르는 방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방은 널찍한 팔각형의 방으로 나머지 집에 비하면 후대의 디자인이었다. 벽은 둥그런 메다이욘(Medallion, 금속이나 유리, 벽면에 큰 메달 모양으로 동그랗게 조각하여 만든 장식)으로 꾸몄고 둥근 지붕을 가로질러 단정한 폼페이식 인물들이 목가적으로 떼를 지어 서 있었다. 그들과 인도수자목과 오르몰루(ormolu 금박 대용으로 쓰이는 구리・아연의 합금) 가구, 양탄자, 매달려 있는 청동 가지달린 촛대, 거울, 스콘스(돌출형 촛대)가 모두 하나의 구도였으며, 한 명의 걸출한 장인의 손으로 디자인 되었다. ‘우리는 우리만 있으면 보통 여기서 먹어.’ 세바스찬이 말했다. ‘아주 아늑하지.’
그들이 저녁을 먹는 동안에 나는 복숭아를 먹으며 아버지와 벌인 전쟁에 대해 그들에게 이야기 했다.
‘아버님이 완전 귀여우시네요.’ 줄리아가 말했다. ‘이제 전 그만 두 분을 떠나야 되겠네요.’
‘어디 가는데?’
‘아기 방에. 유모한테 핼머 게임을 마지막으로 한 판 하기로 약속했거든.’ 그녀는 세바스찬 정수리에 키스를 했다. 나는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라이더씨. 그리고 잘 계세요. 내일은 아마 못 만날 거예요. 일찍 떠날 거니까. 나를 병상에서 구출해주시다니 고맙기 한이 없어요.’
‘내 동생이 오늘따라 아주 거만하네.’ 그녀가 가버리자 세바스찬이 말했다.
‘동생이 날 좋아하는 것 같이 않아.’ 내가 말했다.
‘쟨 다른 사람도 아주 좋아한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데. 나는 그녀를 사랑해. 쟨 아주 나를 닮았어.’
‘그래? 그녀가?’
‘내 말은 외모 면에서 그리고 말하는 방식에서. 나는 아마 나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포트 와인을 다 마시자 나는 세바스찬의 휠체어 의자 옆에서 기둥이 늘어선 복도를 지나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에 죽 앉아 있던 여기서 이후 거의 매일 밤 한 달 간을 지냈다. 도서관은 호수들이 내려다보이는 쪽에 놓여 있었다. 창문은 별과 강한 향기를 품은 바깥으로, 쪽빛과 은빛, 달빛이 비치는 계곡의 풍광을 향해 열려 있었고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우리는 우리끼리만 천국 같은 시간을 지낼 거야.’ 세바스찬이 말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면도를 하면서, 나는 욕실 창문으로 줄리아가 차 뒤에 짐을 싣고 차를 몰고 너른 앞뜰을 벗어나 언덕의 마루사이로,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해방과 평화의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몇 년 후 알게 되는, 불안의 하룻밤이 지난 후에 공보해제의 사이렌이 울리던 때 알게 되던 그때 느낌이 이러하였다.
[4]
젊음의 나른함이란, 얼마나 유일무이하고 전형적이던지! 얼마나 재빨리, 어떻게도 되돌리지 못하게 잃어버리는가! 열정, 아낌없는 애정, 환상, 절망, 젊음의 모든 속성들은 젊음의 나른함, 이거 하나 빼고 전부가 우리 삶과 더불어 왔다가 간다. 다시 또 다시 점점 원숙해가는 세월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자극 아래, 마침내 뒤로 남겨졌다고 생각하는 것들, 행동으로 이어지는 진짜 욕동, 새로워진 힘과 새롭게 전념을 하는 목적들을 경험한다. 다시 또 다시 새로운 진실들이 드러나 그 빛으로 이전 우리가 알던 모든 지식은 재조립이 된다. 이런 일들은 삶 자체의 일부이다. 하지만 나른함, 지치지 않던 힘줄의 완화, 은둔적이며 자애적인 마음, 태양은 그대로 하늘에 걸려 있고 땅은 우리의 맥박 속으로 고동친다고 믿는 그 무기력은 오직 젊음에만 속해있고 젊음과 함께 죽는다. 아마 고성소(古聖所, limbo, 죽은 자 중 천국 지옥, 연옥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머무는 곳)의 대저택에서 영웅들은 견신(見神 beatific vision)에 대한 손실의 보상으로 대신 즐길 것이다. 아마도 견신 그 자체가 이런 하찮은 경험과 멀지만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내 자신이 Brideshead 에 지내는 나른한 시간들 동안에 천국에 아주 가깝다고 믿었다.
‘이 집은 왜 “성castle”이라고 불려?’
‘사람들이 옮기기 전에 성이 하나 있었거든.’
‘그게 무슨 말인데?’
‘그냥 말 그대로야. 우리는 1 마일 거리 아래에, 마을 옆에 성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 뒤 이니고 존즈 시절에 조상들이 계곡에 호감을 보여서 성을 무너뜨리고 돌들을 이 위로 실어 날라 새로운 집을 지었지. 난 그들의 결정이 기뻐. 안 그러니?’
‘이게 내 거라면 나는 절대로 다른 곳에서 살지 않을 거야.’
‘하지만, 찰스. 이건 내 게 아냐. 아주 잠시만 내 거지, 보통은 노략질하는 짐승들로 가득해. 항상 지금처럼 있을 수 있다면, 항상 여름이고, 항상 홀로, 과일은 항상 무르익고, 알로이어스가 기분이 좋다면…….’
그래서 나는 그 여름 우리 둘이로 홀로 마법에 걸린 궁전을 어슬렁거리던 그때의 세바스찬을 기억하는 일을 좋아한다. 휠체어를 탄 세바스찬은 바퀴를 굴려 채마밭 둘레로 관목을 네모지게 깎은 소로를 내려가 알프스 딸기와 붉은 빛의 무화과를 찾아 다녔고, 연이은 온실을 혼자서 굴려 다니며 향기에서 향기로, 기후에서 기후로 무스카트 포도를 잘랐으며 우리 단춧구멍에 꽂을 난을 골랐다. 세바스찬은 팬터마임으로 걷기 어렵다고 절룩거리며 오래된 유아방으로 들어가 올이 다 풀린, 꽃이 가득한 카펫에 우리 주위로 빈 장난감 찬장을 두고 내 옆에 앉았고 호킨스 유모는 흐뭇한 얼굴로 구석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너는 저 쪽 만큼 나쁜 아이로구나. 너희 둘 다 한 쌍이 아이들이야. 대학에서 너희들을 그렇게 가르치든?’ 웃었다. 주랑의 콜로네이드(colonnade) 햇볕 드는 자리에 누워 있으면 나는 그 옆에 딱딱한 의자에 앉아 시험 삼아 분수를 그렸다.
‘저 둥근 지붕은 이니고 존즈(17세기 건축가 및 무대 디자이너,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신을 영국 건축에 도입하였다.) 거니? 후대 작품처럼 보인다.’
‘아이고, 찰스야. 꼭 관광객처럼 좀 굴지 마. 아름다운데 언제 세워졌는지가 왜 문제가 돼?’
‘난 그런 게 꼭 알고 싶더라.’
‘저런, 난 그……끔찍한 미스터 콜린즈를 다 치료한 줄 알았는데.’
그런 담장 안에서 머무는 일은 미학적인 교육이었다. 소언(19세기 초 신고전주의 건축가) 스타일의 도서관에서 중국풍의 응접실까지, 금박으로 눈부시게 꾸민 탑과 까불거리는 귤, 색칠한 종이와 치펀테일 뇌문세공, 폼페이식 거실에서 복도 현관에 걸린 거대한 테피스트리까지, 처음 디자인 된 이백오십 년 전 그대로 변하지 않은 채 서 있는 방에서 방으로 돌아다녔고 매시간 기둥으로 그늘이 진 테라스에서 밖을 보며 앉아 있었다.
테라스는 건축 계획의 최종 완성이었다. 테라스는 호수 위의 육중한 바위 성벽위에 서 있었다. 그래서 복도 계단에서 보면 난간 옆에 서있기 때문에 조약돌을 떨어뜨리면 바로 아래 발치 아래에서 그 첫 번째 호수에 떨어질 것처럼 호수 쪽으로 돌출되어 보였다. 테라스는 양 쪽으로 감싸 안은 열주로 늘어서 있었다. 파빌리온 너머로 석회의 작은 숲이 무성한 숲으로 된 언덕빼기로 이러졌다. 테라스의 일부는 포장이 깔리고 일부는 화단으로 꾸며지고 낮은 사각형 조경교목이 아라베스크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더 큰 네모 교목은 조밀한 생울타리로 자랐고, 넓은 타원을 이루며 움푹움푹 들어가 조각상들이 점재되어 있으며 그 중앙에 우뚝한 광활한 공간에 분수가 솟아 있었다. 분수는 남부 이탈리아의 광장에서 발견할 거 같은 분수였는데 실제로 세바스찬 선조 누군가가 거기서 백 년 전에 발견하여 사들이고 운반하여 낯선 공간 속에 하지만 팔 벌려 반기는 풍토 속에 다시 세워졌다.
세바스찬은 나보고 그걸 그려 보라고 하였다. 분수는 아마추어에게는 만만찮은 대상이었다. 타원형 물받이에 중심에 정중하게 받침 바위가 떠있고, 자라나온 바위 위로, 돌로 된, 전형적인 열대 초목과 야생 영국 양치식물이 자연스럽게 잎을 뻗고 있었고 그들 사이로 모조 샘물에서 솟아오른 십여 개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으며 그들 주위로 자랑스럽게 환상적인 열대 동물들, 낙타, 기린이 뛰어놀고 패기만만한 사자가 온통 물을 내뿜고 있었다. 바위 위에는 페디먼드 (그리스 식 건물 위 삼각형 부분) 높이까지, 붉은 사암으로 된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서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 가끔씩 그 물체가 나를 훨씬 벗어난다는 이유로 제거를 하거나 신중하게 생략을 하고 몇 가지 멋진 잔재주를 부려 제법 그럴 듯하게 피라네시(Piranesi 18세기 이탈리아 건축가 및 에칭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의 흉내를 내었다. ‘이거 너희 어머니께 드릴까?’ 내가 물었다.
“왜? 넌 엄말 모르잖아.‘
‘공손하게 굴어야지. 그분 집에 머물고 있는데.’
‘유모에게 줘.’ 세바스찬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상당히 닮았다는 평을 하며 그림을 서랍장 꼭대기 수집품 사이에 놓았다. 그녀는 분수를 칭찬하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자신은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는 말도 하였다.
나야말로 호킨스와 거의 같은 위치에 있었다. (1945) 나에게 그 아름다움은 신천지였다.(1960)
어린 학생이었을 때부터 나는 인근 교구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놋쇠를 문지르고 세례반을 사진 찍었으면서 나는 건물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품어왔다 내 식견은 하지만 우리 세대의 특징처럼 러스킨(19세기 영국 예술 비평가)의 청교도주의에서 로저 프라이(20세기 초 비평가)의 청교도주의로 변하며, 너무 쉽게 도약을 하긴 했지만, 나의 정서의 중심은 편협하고 중세적이었다.
여기서 나는 바로크 양식으로 개종하였다. 높고 오만한 돔 아래, 정간(井間)으로 장식한 천장 아래 여기서, 아치와 부서진 페디먼트를 지나 기둥 뒤 그늘 너머로 몇 시간이고 분수 앞에 앉아 그림자를 살피고, 잔잔히 남은 메아리를 따라가고, 대담함과 혁신이 무리지어 노니는 축제를 몽땅 즐겼다. 나는 마치 돌 사이로 솟구쳐 오르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이 정말 생명을 주는 샘물처럼 내 속에서 내 모든 신경계가 새롭게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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