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허튼짓, 헛짓/Bridgeshead Revisited

Brideshead revisited 8

by 어정버정 2023. 5. 7.

2012-7-28 

 

난 아침을 먹기 위해 빈 브로드 거리를 걸어 내려갔다. 일요일에 자주 발리올 대학 건너편의 다방(teashop)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공기는 주변 첨탑에서 울려나오는 종소리로 가득 찼다. 탁 트인 공간에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는 태양은 밤의 공포들을 내쫓고 있었다. 다방은 도서관처럼 조용하였다. 발리올과 트리니티 대학에서 온, 침실 슬리퍼를 신은 몇몇 남자들이 홀로 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일요일자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스크램블드 에그와 젊은 시절 잠들지 못하는 밤을 지내면 따라오는 그런 열의를 갖고 쓰디 쓴 마말레이드를 먹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자리에 앉았다. 한편 발리올과 트리니티 학생들은 한 명 한 명 값을 치르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느릿느릿 길을 건너 각자의 대학으로 떠났다. 거의 열한 시가 다 되어 나는 일어섰다. 걸어가는 동안에는 나는 전조 명종(change-ringing)이 끝나고 마을 전체에 곧 예배가 시작될 거라는 경고하는 한 가지 차임벨 소리를 들었다.

교회에 가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그 날 아침에 집밖에 나와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학부생과 졸업생과 그들의 아내들과 자영업자들이 서두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긋하게 어슬렁 걷지도 않는 누가 봐도 교회 가는 영국 사람의 보속으로 걸으며 검정 새끼 양 가죽과 하얀 셀룰로이드로 장정된, 여섯 개의 서로 상반되는 종파의 전례론집을 감싸고 세인트 바나바스, 세인트 콜롬바, 세인트 얼로이어스, 세인트 메리, 푸지 하우스, 블랙프라이어스, 그리고 어느 구석에 붙었는지 하늘만 아는 곳을 향해 갔다. 복원이 된 노르만 양식, 부활된 고딕 양식, 졸렬한 베니스와 아테네의 모방한 성소로, 모두 여름의 햇볕 속에서 그들 종족의 사원으로 가고 있었다. 신앙심 없는 네 명이 홀로 그들의 반대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발리올의 출입구에서 나온 4 명의 인도인은 금방 세탁한 하얀 플란넬과 말쑥하게 다린 바지를 입고, 흰 눈 같은 터번을 머리에 쓰고, 통통한 갈색 손에는 밝은 색 쿠션, 피크닉 바구니와 버나스 쇼의 불쾌한 희곡(the plays unpleasant, 쇼의 세 개의 연극을 모은 작품집)을 들고 강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콘마켓(브로드 거리에서 왼쪽을 꺾어 연결되는 옥스포드의 상점가 거리, 크라이스트 처지 칼리지가 있는 세인트 알데이츠 거리와 죽 앞으로 연결된다.)에는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클레어던 호텔의 계단에 서서 그들의 운전수와 도로지도를 쥐고 상의를 하고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골든 크로스의 숭엄한 홍예문을 통해 나는 같은 대학의 학부생 그룹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거기서 아침을 먹고 이제는 파이프를 물고 덩굴식물이 매달린 정원 뜰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보이 스카웃단이 역시 교회 방향으로, 선명한 유색 리본과 뱃지를 달고 비군사적인 대열을 이루며 성큼성큼 잰걸음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네거리에서 나는 분홍색 가운과 황금색 사슬 목걸이를 하고 있는 시장과 시운영단을 만났다. 이들은 관장(官杖) 운반인을 앞세우고 따르는 궁금해 하는 시선들은 없이 시티 처치에서 있을 설교에 줄을 지어 가고 있었다.

세인트 알데이츠에서 나는 풀 먹인 깃과 기이한 모자를 쓰고 톰 게이츠와 대성당으로 향하고 있는 올망졸망 합창단 소년의 행렬을 지나쳤다. 그렇게 나는 경건함의 세계를 가로질러 세바스찬으로 향하는 길을 헤쳐 나갔다.

그는 나가고 없었다. 나는 세바스찬의 필기용 테이블에 어지럽게 놓인 편지들을 읽었다. 특별하게 비밀을 드러내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벽난로 선반에 놓여 있는 초대 카드를 세심하게 살폈다. 새로 더해 진 카드는 없었다. 그런 뒤 나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여우가 된 부인(Lady into Fox : 1922년 데이비드 가넷의 소설, 아내가 여우가 된 뒤에도 사랑을 이어나가는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을 읽었다.

나는 올드 팰러스에 거행된 미사에 다녀왔어.’ 그가 말했다. ‘나는 이번 학기에 한 번도 거기 안 갔어. 그래서 벨 예하께서 지난주에 두 번이나 날 저녁에 초대하셨지. 그게 무슨 뜻인지 나도 잘 알아. 엄마가 그분에게 편지를 쓰셨을 거야. 그래서 나는 그 분이 아니 볼 수 없는 앞자리에 쾅 앉아 있었어. 그리고 끝에는 성모송을 완전히 고래고래 소리쳤어. 그래서 끝났어. 앙투안하고 저녁은 어땠어? 너는 무슨 말을 했는데?’

글쎄. 말은 그가 거의 다 했어. 있잖아, 너는 이튼에서 그를 알고 있었어?’

그는 내 첫 학기 다닐 때 잘렸어. 나는 거기서 본 거 기억해. 그는 항상 눈에 띠는 인물이었어.’

너하고 같이 교회에 다녔니?’

그럴 리가 있나. ?’

그가 네 가족과 만난 적이 있어?’

찰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이상하게 구는 거냐. 아니야. 안 그랬을 거야.’

베니스에서 어머니도 안 뵈었고?’

엄마가 그런 비슷한 말씀 하신 것 같은데. 뭔지 까먹었다. 포례리 가문의 이탈리아 사촌들 몇몇하고 머물고 있다고 했던 거 같고, 안토니가 호텔에 가족들하고 같이 나타났었나. 그리고 포례레 가가 주최한 무슨 파티가 있었는데 그들은 초대를 받지 못했지. 내가 그가 내 친구라 말씀드리자 엄마가 그 일에 관한 무슨 말을 했던 건 알아. 왜 그가 포례레 파티에 가고 싶어 했는지는 이유를 모르겠어. 그 집 공주님은 자신의 영국 혈통이 아주 자랑스러워서 다른 이야기는 전혀 안하거든. 어쨌든 앙투완에 반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대부분은 그랬다고 알고 있는데. 그들이 곤란하다고 생각한 대상은 그의 어머니였어.’

그리고 벵센의 공작부인은 누구야?’

양귀비?’

스테파니.’

그건 앙투완에게 물어야지. 그녀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건 그니까.’

정말 그랬어?’

무언가 있긴 있었어. 무언지 까먹었지만. 그가 그녀하고 한번은 마이애미에서 엘리베이터에 같이 갇혔나 봐. 그리고 늙은 공작이 한바탕 소란을 피웠나 보더라고.’

엄청난 열정이 아니라?’

큰일 났네. 아냐! 왜 그렇게 관심을 가져?’ (1945)

굳이 대라고 하면, 칸느에서는 그게 거의 의무였나 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1966)

난 그냥 어젯밤에 안소니가 한 말 중에 얼마나 진실이 들어있는지 알아내고 싶었어.’

나라면 한 마디도 믿지 않을 거야. 그게 안소니의 강력한 매력이잖아.’

넌 그게 매력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내 생각에 그건 사악한 짓이야. 그가 어제 저녁 내내 너에게서 떼어놓으려고 애썼던 거 알아, 그리고 거의 성공할 뻔 했던 것도?’

그가 그랬어? 어리석네. 알로이어스는 절대 그런 일에 찬성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요 거만한 늙은 곰아.’

그리고 그 뒤에 보이 멀캐스터가 방으로 들어왔다.(1966)

 

 

[3]

 

나는 계획도 없고 돈도 없어 긴 방학을 지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학기 마지막의 경비를 대기 위해 오메가 병풍을 콜린즈에게 10 파운드에 팔았고 그 중에 이제는 4 파운드가 남았다. 내 마지막 수표는 내 계좌에서 몇 실링을 넘어 초과인출이 되었고 나는 아버지의 허가 없이는 더 이상 인출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다음 용돈 날은 9월에 가서야 돌아왔다. 나는 그래서 암울한 전망과 마주쳐 그 문제를 마음속으로 곱씹어보며 지난 몇 주간의 방탕에 회한과 그렇게 멀지 않은 감정을 느꼈다.

나는 기숙사 제비용을 지불하고 손에 백 파운드가 넘는 돈을 가지고 학기를 시작했었다. 모든 것이 가버렸다. 내가 외상을 진 곳에는 1 페니도 지불하지 못했다. 거기에 어떤 이유도 없었다. 달리 이룰 수 없는 커다란 즐거움도 없었다. 물수제비뜨기로 다 사라져버렸다. 세바스찬은 나를 너는 꼭 마권업자처럼 돈을 쓰는구나.’라고 놀리곤 했다. 세바스찬은 자주 낭비로 나를 책망을 하지만 그 모든 일은 그와 함께 시작하고 그로 벌어진 일이었다. 세바스찬 그 자신은 끊임없이, 막연하게 재정적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모두 변호사들이 맡고 있어.’ 그가 무력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횡령을 많이 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 어떻든 난 한 번도 넉넉하게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아. 물론, 엄마는 내가 요구하면 무엇이든 주시겠지만.’

그럼 적당하게 용돈을 달라고 해보지 그래.’

, 엄마는 모든 걸 선물로 주길 좋아해. 아주 다정한 분이야.’ 그가 말했다. 그분에 대해 그리고 있던 그림에 한 줄이 더 추가되었다.

이제 세바스찬은 따라오라고 내가 초대되지 못한 그의 다른 삶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대신, 쓸쓸하게, 서운한 마음에 가득 차 남겨졌다.

삶의 나중에, 반성하지 않고 탕진한 긴 여름 나날을 돌이켜 생각하며 우리 젊은 시절의 도덕적인 분위기를 부인하는 일은 얼마나 옹졸한가. 목회자의 환락인 드레스덴 도자기 인형처럼! 우리의 지혜는 우리가 모아들인 합이라고 흔히 생각을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경우 시간과 함께 점점 줄어드는 마지막 유산의 동전이다.(1945) 아직 새파란 남성성에 관한 이야기 중에 유아시기의 도덕에 대한 향수병, 후회와 수정의 결의안들, 룰렛 테이블에서의 제로처럼, 대강 계산할 수 있는 규칙성을 가지고 찾아드는 검은 시간의 다짐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솔직함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지내는 첫날 오후 방과 방 사이를 오가며, 판유리를 통해 돌아가며 정원과 거리를 내다보며 격렬한 자책감에 휩싸여 보냈다.

아버지가 집에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의 서재는 침범할 수 없는 구역이어서 저녁 식사 바로 직전에야 겨우 나타나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는 그 당시 오십 대 후반이었지만 괴벽 때문에 본 나이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여 그를 본 사람들은 70대로 여기기도 하였고 말하는 걸 들은 사람들은 거의 팔십으로 추측했다. 그는 일부러 질질 끄는 고관대작의 발소리를 내며, 환영한다는 부끄러운 미소를 띠고 내게 다가왔다. 그가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 하긴 다른 곳에서 저녁 먹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프로그로 좌우 여밈을 한 벨벳 스모킹 슈트(준예장의 옷으로 사교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며 담배를 피우며 입을 수 있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프랑스에서 말하는 턱시도를 슈트화시킨 것, 또는 일반적으로 야간용의 드레시한 슈트)를 입었다. 아주 오래 전에는 최신 유행이었지만 곧 다시 유행이 되겠지만 그 당시에는 의도적인 고문체였다.

애야, 사람들이 아무도 네가 여기 있단 이야기를 안 했단다. 여행이 아주 힘들진 않았느냐? 차를 내어 주든? 잘 지내냐? 난 얼마 전에 조금 대담한 결정을 내려서 소너샤인즈에서 5세기테라코타 황소를 구입했었다. 그걸 조사하고 있느라 네 도착을 잊어버렸어. 객차가 가득 찼더냐? 구석 자리에 앉았고?’ (그는 혼자서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여행 듣는 일은 고독한 그에게 항상 흥분이었다.) ‘헤이터가 너에게 저녁 신문 가져다 줬어? 새로운 소식은 물론 없어, 그냥 수많은 허튼소리들뿐이지.’

저녁이 준비되었다고 알려왔다. 아버지는 아주 오래된 습관으로 식탁에 책을 가지고 갔는데 내가 있음을 기억하고 몰래 책을 그의 의자 아래 떨어뜨렸다. ‘뭐 마시고 싶으냐? 헤이터, 찰스가 마실 만한 게 무엇이 있지?’

위스키가 조금 있습니다.’

위스키가 있다. 넌 아마 무언가 다른 걸 좋아하겠지. 다른 걸로 무엇이 있나?’

집에 그 외 다른 것은 없습니다. 주인님.’

그 외 다른 것은 없다고. 네가 헤이터에게 네가 마시고 싶은 걸 말해야겠다. 그럼 그가 사갖고 오게. 나는 지금은 와인이라곤 보관을 안 하고 있어. 내가 손을 안 대고 아무도 날 보러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여기 있는 동안에 넌 네 좋을 대로 마셔야겠지. 너 얼마 동안 있을 거니?’

정해진 건 없어요. 아버지.’

아주 긴 방학이지.’ 그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내 시절에 우리는 독서 파티라고 하던 데를 가곤 했지. 그건 항상 산악지대에서 열렸었지. ? ?’ 그가 불현 듯 성질을 내며 되풀이했다. ‘알프스 풍광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서?’

전 얼마동안 예술 학교에, 실제 모델 수업에 참가할까 생각해 봤어요.’

얘야, 거긴 모두 문 닫은 거 모르는구나. 학생들은 바비손이나 그런 곳에 가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려. 내 시절에는 스케치 클럽이라고 부르던 기관들이 있었는데. 남녀가 섞여서’ (코를 훌쩍이고.) ‘자전거.’ (훌쩍임) ‘머리가 희끗희끗한 니커보커들, 네덜란드 우산 그리고 자유연애, 대중적인 생각이 그랬어.’ (훌쩍임) ‘그런 말도 안 되는 수많은 허튼소리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너도 한 번 시도해 보렴.’

휴가 문제의 하나가 돈이에요, 아버지.’ ‘, 나는 네 나이 때에 그런 일에는 걱정을 안했지.’ ‘아시겠지만요, 저 돈이 조금 달렸어요.’ ‘그랬니?’ 아버지는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대답을 했다. ‘사실 전 다음 두 달을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막막해요.’

허어, 난 조언을 구하기엔 아주 형편없는 사람인데. 네가 아주 고통스럽게 부르는 그 달리는 상황을 겪은 적이 없어서. 다른 말로 뭐라고 하니? 돈에 쪼들려서? 쪽박을 차서? 가난에 시달려서? 재정적으로 곤란해서? 완전 거덜 나서?’ (코를 훌쩍이고) ‘파멸하여서? 파산하여 거리에 나앉아? 그러니까 네가 거리에 나앉았다고 치고 그대로 두자꾸나. 너희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지. “분수에 맞게 살아라. 하지만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된다면 나에게 오너라. 유대인에게는 가지 말고.” 그것도 완전 허튼소리야. 한번 해 봐. 선금 약속어음만 제공하는 저민 거리에 있는 신사들을 찾아가 봐. 얘야, 그들은 금화 한 닢 안 줄 거다.’

그러면 무얼 하면 좋을까요?’

네 사촌 멜치어는 그의 투자에 현명하지 못한 짓을 하고서 거리에 나앉게 되어버렸지. 그는 호주로 갔다.’ 나는 아버지가 롬바르디아 양식의 성무일도서 낱장 사이에 2 세기경의 파피루스 2장을 발견하던 때 이후로 그렇게 신이 난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헤이터, 내가 책을 떨어뜨렸어.’

그의 발아래에서 다시 책을 주워주자 식탁 중앙 장식대에 기대어 세웠다

 

2012-7-29 

남은 저녁 식사시간 내내 웃느라 코를 훌쩍거리는 때 말고는 조용하였다. 그가 읽고 있던 작품 때문에 유발된 웃음은 아닐 것이다.

, 우리는 식탁을 떠나 정원이 보이는 거실에 앉았다. 그리고 거기서 분명 그는 그의 마음 속에서 나를 쫓아냈다. 그의 생각은 아주 멀리, 그가 마음 편히 움직이고 수백 년이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모든 인물 모습이 훼손이 되고 인물상의 친구들의 이름은 변질된 단어로 읽고, 상당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어버린 그런 머나먼 시대 속에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주 불편했을 자세로 앉아 있었다. 수직의 안락의자에 비딱하게 책을 높게 빛 쪽으로 비스듬하게 들고 가끔씩 시계 줄에서 황금 연필통을 꺼내고 가장자리에 글을 기입하였다. 창은 여름밤을 향해 열려 있었다.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 멀리 베이스워터 로드에서 차량들이 웅얼거리는 소리, 아버지가 규칙적으로 넘기는 책장소리만 났다. 나는 가난을 호소하는 중인데 여송연을 태우는 일은 불손하다고 생각에 꾹 참았다가 이제는 간절한 생각에 나는 내 방으로 가서 하나 가지고 왔다. 아버지는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여송연의 구멍을 뚫고(여송연은 구멍을 뚫거나 끝을 자르거나 쐐기 모양 금을 내어 피운다고 함) 불을 붙이고 새로 자신을 회복하고 말을 시작했다. ‘아버지. 진짜로 이번 방학 내내 아버지하고 머물길 원하는 건 아니시겠지요?’

?’

저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집에 있으면 지겹지 않으시겠냐고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런 감정을 내보이진 않을 테니 걱정 말거라.’ 온화하게 말을 하고서는 아버지는 다시 책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이 지났다. 마침내 모든 방에 있는 다양한 무늬의 시계들이 일제히 음악을 연주하듯 열한 시를 쳤다. 아버지는 책을 덮고 안경을 치웠다.

언제든지 넌 아주 환영한단다. 얘야.’ 그가 말했다. ‘네가 편한 대로 마음껏 머물렴.’ 문가에서 그는 멈춰 몸을 돌렸다. ‘네 사촌 멜치어는 호주로 가는 여행길에 평선원으로 일했다.’ (코 훌쩍임) ‘근데, 궁금한 게 평선원이 뭐하는 거냐?’

 

후덥지근한 그 다음 주중에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더욱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낮 동안에는 아버지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는 서재에서 계속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고 난간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헤이터, 택시 좀 불러.’ 그러면 그는 밖으로 나가곤 하였다. 때로는 반시간이 못 될 때도 있고 하루 종일인 경우도 있었다. 그는 심부름 내용을 설명을 하지 않았다. 종종 나는 이상한 시간에 변변찮은 유아식 간식, 러스크(유아용 비스킷), 우유 잔, 바나나 등등을 담고서 그에게 올라가는 트레이를 보았다. 우리가 복도나 계단에서 마주치면 그는 멀거니 쳐다보고는 아하 혹은 아주 훈훈하지.’ 혹은 훌륭해, 훌륭해.’라고 말하곤 했지만 저녁이 되어 정원이 보이는 거실에 벨벳 스모킹 슈트를 입고 오면 그는 항상 내게 딱딱하게 인사를 했다.

저녁 식탁은 우리의 전쟁터였다.

두 번째 저녁에 나는 내 책을 들고 식당에 갔다. 그의 온화하고 의아한 눈이 갑자기 또렷해지며 책에 고정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현관복도를 지나갈 때 그는 몰래 그 자신의 책을 사이드테이블에 두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그는 하소연하듯이 말했다. ‘네가 나한테 말을 붙여도 된다. 찰스야. 난 아주 지치는 하루를 보냈어. 약간의 대화를 고대를 하고 있었지.’

그러세요. 아버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요?’

기운 좀 북돋아주렴. 내 기분전환이 될 만한 이야기.’ 안달을 내고. ‘새 연극에 대해 전부 말해주려무나.’

하지만 전 아무 극장도 안 갔는데요.’

넌 가야지, 넌 그래야하고 말고. 젊은 사람이 온 저녁을 매일같이 집에서 지내는 건 옳지 않아.’

그래요, 아버지, 말씀드렸다시피 전 극장 갈만한 여윳돈이 많지 않아서요.’

얘야, 돈이 이런 식으로 네 주인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되지. 아니, 네 나이에 네 사촌 멜치어는 뮤지컬 작품의 부분소유자였지. 그건 얼마 안 되는 그의 행복한 벤처투자 중의 하나였어. 너는 네 교육의 일환으로 연극 구경을 가야한다. 저명한 사람의 생애를 읽다보면 그들 거진 반이 갤러리(극장 최상층 관람석)에서 드라마로 처음 사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다. 그와 같은 즐거움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진짜 비평가와 추종가를 만나는 데가 거기라더라. “신과 함께 앉아있는 거라고 하더구나. 그 비용이 문제겠냐. 그리고 네가 거리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에 거리의 악사를 가외로 즐겨 보아도 된단다. 우리는 하룻밤에 신들과 함께 자리하게 될 거다. 아델 부인 요리가 어떠냐?’

변함없네요.’ 좀 맛이 없어요(1944)’

그건 내 동생 필리파의 영향을 받은 요리다. 동생은 아벨 부인에게 열 개의 메뉴를 주었지. 그리고 메뉴는 하나도 변한 게 없지. 내가 혼자 있으면 나는 내가 뭘 먹는지 신경 안 쓴다만 네가 여기 있으니까 우리는 변화를 주어야겠지. 뭐가 좋겠느냐? 뭐가 제철이지? 너 랍스터 좋아하니? 헤이터, 아벨 부인에게 내일 밤에는 랍스터를 내놓으라고 전하게.’

그날 저녁은 흰색, 아무 맛없는 수프, 분홍색 소스를 끼얹은 너무 구운 가지미 살, 으깬 감자 두둑에 기대 놓은 어린양고기 커틀렛, 무슨 스폰지 케이크 같은 데 올려놓은 젤리에 넣어 푹 고은 배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이렇게 길게 저녁을 먹는 건 순전히 네 고모 필리파를 존중해서이다. 동생은 세 코스 가 중산층다운 저녁이라고 규정을 했지. “한번 하인들이 제멋대로 하게 되면, 곧 고기 한 조각으로 밤마다 저녁을 들게 될 거에요.”라고 하더구나. 이보다 더 좋은 것 없을 것 같다. 사실 아벨 부인이 저녁에 쉬는 날이면 내가 클럽에 갈 때 내가 하는 일이 정확하게 그래. 하지만 너의 고모는 집에 있을 때 나는 수프와 세 코스 요리를 먹어야 된다고 정했지. 어떤 밤에는 생선, 고기, 세이버리(savoury:후식 삼아 먹는 짭짤한 요리), 다른 날은 고기, 스위트(단맛의 디저트), 세이버리가 나오지. 수많은 순열이 가능해.

어떻게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을 정교한 형태로 배열할 수 있는지 놀랍지 않으냐. 네 고모는 그런 재능을 지녔어.

동생하고 나하고 한때 밤마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는 게 기이하게 느껴지는구나. 지금 너하고 내가 하듯이 말이다. 이제 보니 그녀는 내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벌였네. 그녀는 읽고 있던 책 이야기를 하곤 했어. 나에게 가정을 만들어주겠다고 속으로 결심하고 있었지. 그녀는 나 혼자 두면 우스꽝스러운 길로 들어설 거라고 생각했어. 아마 우스운 길로 들어섰을 수도 있어. 그랬니?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 나는 종국에 동생을 내쫓았지.’

이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놓치기 힘든 위협의 낌새가 들어있었다.

내가 지금 아버지 집에서 그렇게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는 데는 크게 필리파 고모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고모는 틀림없이 그가 말한 대로 우리에게 가정을 꾸려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서 아버지와 나하고 살기 위해 왔다. 난 그 당시에는 밤마다 식탁에서 있었던 격전을 전혀 몰랐다. 고모는 내 동무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였다.

1년 동안 그랬다. 첫 번째 변화는 고모가 팔려고 생각했던 서리(Surrey, 잉글랜드 남동부의 주)에 있던 집을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거기에 살면서 오직 며칠간만 쇼핑이나 여흥을 위해 런던에 올라왔다. 여름에 우리는 바닷가에 같이 가 하숙집에서 지냈다. 그런 뒤 내가 학교에 있던 마지막 해에 그녀는 영국을 떠났다. ‘내가 종국에 동생을 내쫓았지.’라고 조롱과 그 친절한 아주머니에 대한 승리감을 안고 아버지는 말했다. 내가 그 말을 나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들었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

식당을 떠나자 아버지가 헤이터, 아벨 부인에게 내가 내일 준비하라고 주문한 랍스터 아직 말 안했지?’라고 물었다.

안 했습니다.’

그러지 말게.’

잘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우리가 정원이 보이는 거실에 있는 우리 의자에 도달하자 그가 말했다. ‘헤이터가 롭스터를 언급한 일에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하군. 아니라고 생각이 들지만. 내가 농담하는 거라고 생각한 거 같은데, 안 그러냐?’

다음 날, 우연히, 무기가 내 손에 들어왔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알던 사람을 만났다. 나와 동년배로 조킨스라는 이름의 친구였다. 나는 조킨스을 그렇게 좋아한 적은 없었다. 한번은 고모 필리파의 시절에 그는 티 시간에 온 적이 있었고 고모는 마음속으로 아마 매력적인지 모르겠으나 첫눈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조금 심한 판정을 내렸다. 나는 열렬하게 그와 인사를 나누고 저녁 먹으러 오라고 초대했다. 그가 왔다. 그에게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헤이터에게서 미리 손님이 있을 거라고 미리 귀띔을 받았나 보았다. 평소 벨벳 슈트 대신에 연미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옷은 검정 조끼가 딸리고, 아주 높은 옷깃에, 아주 좁은 흰색 타이로 된 그의 야회복이었다. 이 옷을 마치 궁중상을 당한 것처럼 멜랑콜리하게 입고 있었는데 그의 아주 젊을 적에도 가장을 했지만 스타일이 연민을 자아낸다고 알아내고서는 여전히 그러고 있었다. 그는 디너 자켓(꼬리가 없는 약식 연회복)을 소유해 본 적이 없었다.

안녕하신가, 어서 오게.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으이.’

아녜요, 그렇게 멀지 않았어요.’ 조킨스가 말했다. 그는 서섹스 스퀘어(하이드 파크 위쪽 웨스터민스터 구에 있는 지역)가 살고 있었다.

과학이 거리를 격멸시켜 버렸지.’라고 어리둥절한 말씀을 다시 뱉었다. ‘여기는 업무 관계로 왔는가?’

저기, 전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걸 말씀하신 거라면.’

난 사업을 하던 사촌이 있었어. 넌 그 사람을 아마 모를 거야. 너희들 이전 시대니까. 바로 며칠 전날 밤에 그 사람에 대해 찰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어. 자꾸 생각이 나네. 그는,’ 그는 내뱉을 말의 기이함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농사꾼이 되었어.’

조킨스가 소심하게 키득댔다. 아버지는 나무라는 시선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불운을 자네 즐거움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가? 혹 아니면 내가 사용한 단어가 익숙하지가 않아서였나. 자네는 아마 그가 폭삭 주저앉았다고 하겠지.’

아버지는 사태를 잘 해쳐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혼자서 작은 공상을 만들었는지 조킨스를 미국인으로 여기는 것 같았고 그날 저녁 내도록 우아하고, 일방적인 실내 게임을 그와 벌이며, 대화하던 중에 독특한 영국식 용어가 나오면 모두 설명을 덧붙이고, 파운드를 달러로 환산을 하고 정중하게 그에게 물론, 당신네 기준으로 보면…….’ ‘이런 일은 모두 아주 편협해 보일 거야.’ ‘네가 익숙한 광활한 공간에서는…… 같은 문구로 존중을 보였다. 그래서 내 손님은 그의 신원에 무언가 잘못 알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지만 해명을 기회는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채 계속되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다시 또 다시 그는 이런 형태의 발언이 정교한 농담이라는 아주 간단한 표시를 읽을 수 있을까 하며 아버지의 눈을 살피고 또 살폈다. 하지만 대신 순한 인자함의 시선과 마주하고선 완전히 당황만 하였다.

나도 한번은 아버지가 안 됐어. 런던에 살다보면 너희 나라 국가적인 게임(national game, 미국을 대표하는 게임이란 뜻, 야구를 말한다)이 몹시 그리울 거 아닌가.’라고 하자 아버지가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국가적인 게임요?’ 조킨스가 말했다.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더니 거기서 마침내, 문제를 명확하게 할 기회라는 냄새를 맡았다.

아버지는 그를 흘낏 보고 다시 나를 보았다. 그의 표정이 친절에서 적의로 바뀌었다가, 다시 한 번 조킨스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친절로 돌아갔다. 표정이 풀하우스에 대고 포 카드(이기는 패라는군요)를 내미는 노름꾼의 얼굴이었다. ‘너의 국가적인 게임.’ 그가 온화하게 말했다. ‘크리켓말이다.’ 그리고 그는 걷잡을 없을 정도로 코를 킁킁거리고 전신을 온통 벌벌 떨다가 그의 눈을 냅킨으로 닦았다. ‘분명 시티(런던의 발상지, 런던 심장부를 일컫는 말)에서 일하다 보면 크리켓 운동장에서 보낼 시간이 상당히 많이 축소가 되겠지?’

식당 문 앞에서 그는 우리를 떠나며 작별을 고했다. ‘좋은 밤 보내거라, 조킨스. 난 네가 다음번에 헤링 연못을 지나는 일 있으면 다시 우리를 방문하기를 바란다.’

놀래라, 저 양반 말뜻이 뭐냐? 네 아버지는 내가 무슨 미국인인 줄 거의 알고 계시는 거 같더라.’

가끔씩 괴상하셔.’

진짜 계속 날더러 웨스터민스터 성당을 방문하라고 하시는 또 뭔지. 무언가 기묘해.’

그래, 나도 설명을 못 하겠다.’

나는 거의 그 분이 날 놀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 조킨스가 당황스러운 어조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