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chapter 8
나는 총동맹파업(General Strike, 혹은 제네스트 광산노동자의 처우개선과 임금인상을 연대해 벌인 1926년 영국의 총파업) 동안에 1926년 봄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파업은 파리에서 중심화제였다. 예전 친구들이 쩔쩔매는 모습에 기뻐 날뛰는 프랑스 사람들은 해협을 건너 온 우리들의 뿌연 관념을 그들 자신의 정확한 용어들로 뒤바꾸어놓고, 혁명이니 내란을 예언을 했다. 매일 저녁 키오스크(잡지 등을 파는 가판대)에서는 파멸의 문구들을 전시를 하였고, 카페에서는 지인들이 반은 조롱으로 ‘허이, 친구. 집이 아니라 여기 나와 있는 게 낫지, 안 그런가?’ 인사를 받다가 급기야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몇몇 친구들은 우리나라가 위험에 처했으며 심각하게 우리의 의무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아마 가명이라고 생각되는 장 드 브라삭 라 모떼라는 벨기에 미래파 예술가(20-30년대 이탈리아, 러시아 미래파에서 따와 과거를 거부하고 속도, 기술 그리고 폭력적인 변화를 열렬하게 포용하는 예술적, 문학적, 정치적인 운동)와 합류하였고 어디서든 낮은 계급에 대항해 일어나는 어떤 전투라도 무기를 드는 게 우리의 권리를 주장했다.
우리는 한껏 고무되어, 남자들끼리, 우리 앞에 역사가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도버를 같이 건넜다. 최근에 아주 자주 반복이 되는, 그것도 거의 달라지는 것 없이, 유럽전역에서 일어나던 역사여서 좌우간 나는 내 마음 속에 우체국에 나부끼는 붉은 국기, 뒤집힌 전자, 술 취한 하사관들, 열린 감옥과 풀려난 범죄 패거리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 도착하지 않는 수도를 떠난 열차 등등 여러 요소가 합성이 된 혁명의 명확한 그림이 형성이 되어 있었다. 육년 혹은 칠년 동안 사람들이 신문을 통해 읽고 영화를 통해 보고, 카페 테이블에서 듣고 또 듣다보니 이제는 플랜더스의 진흙밭(일차 세계대전 북부 프랑스와 벨기에 전투지역)의 이나 메소포타미아(1차 세계 대전 영국군과 오스만투르크 군이 싸우던 지역)의 파리들처럼 간접적으로나마 각자의 경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런 뒤 우리는 하선을 하였고 관습으로 물든 오래된 일상들, 시간을 지키는 임항열차(항구까지 승객을 실어 나르는 열차), 빅토리아 역의 플랫폼에 줄지어 섰다가 일등칸 객차로 모여드는 포터들, 기다랗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택시들을 만났다.
‘여기서 헤어지자.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지켜보자. 다시 만나서 저녁을 먹으며 의견을 나눠보자.’ 서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는 마음속으로 이미 아무 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우리의 존재가 필요할 만한 일은 없었다.
‘애야.’ 우연히 계단에서 만난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너를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나다니 아주 기쁘구나.’ (나는 15개월간 해외에 있었다.) ‘너 정말 곤란한 시간에 왔구나. 이틀 후면 다시 또 다른 파업이 있을 거라던데. 정말 허튼 짓들이지. 그러면 네가 언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몰라.’
나는 내가 포기하고 돌아온 저녁을 떠올렸다. 세느 강둑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받으며 거기 있던 친구들과 저녁을 보냈겠지. 왜냐면 나는 그 당시에 오테이유에 있던 갸르쇼녜르(독신자용 스튜디오, garçonnière)을 나눠 쓰고 있던 해방이 된 미국인 소녀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오지 말걸.
우리는 그날 밤에 카페 로얄(레전트 거리의 상류층과 명사를 위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거기 일들은 약간이지만 좀 더 전투장 같았다. 카페는 ‘병역’을 위해 내려온 대학생들로 가득하였다. 캠브리지에서 온 한 그룹은 그날 오후 트랜스포트 하우스(Transport House, 운수노동조합의 사령부였다가 지금 노동당 당사)의 심부름을 하겠다고 서명을 했던 그룹이었고 그들 탁자는 (시위대를 막는) 임시경찰관에 등록한 다른 그룹의 탁자와 등을 지고 있었다. 가끔씩 이쪽 혹은 저쪽 무리들이 도발적으로 어깨 너머로 소리를 질러댔지만, 이렇게 등을 맞대고 있으니 심각한 충돌로 번지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일이 터져도 서로에게 큰 잔으로 라거 맥주를 돌리는 것으로 끝났다.
‘호르티(미클로시 호르티, 1919년 헝가리 사회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 벨라 쿤이 지배를 했다가 1920년 반혁명군 호르티에 의해 전복이 되고 호르티가 섭정을 한다.)가 진군해 들어왔을 때 네가 부다페스트에 있어봐야 하는데.’ 장이 말했다. ‘그게 정치세계지.’
그날 밤에 레전트 파크에서 새롭게 영국에 도착한 ‘블랙 버즈, Black Birds(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1926년 런던 스테이지에 공연되어 성공을 거둔 시사풍자극, 상류사회 사람들과 어울렸으며 이들을 위한 파티가 종종 열렸다고 한다.)’를 위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 중 한 명이 초청을 받았고 그래서 저쪽에 우리 모두 갔다. 브릭스탑(파리의 흑인 여성 가수가 주인이었던 나이트클럽)와 뤼 블로메에 있는 발 네그르(댄스홀)에 자주 드나들던 우리에게는 딱히 구경거리라고 할 건 없었다. 나는 거의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데 절대 착각할 수 없는 목소리, 이제는 아주 먼 과거로 생각되는 곳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냐. 그들은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이 아니야. 멀캐스터, 휘둥그레 눈뜨고 쳐다보다니. 그 사람들은 예술가야. 이 친구야. 존경받아마지않는 아주 훌륭한 예술가.’
앤서니 블랑셰와 보이 멀캐스터가 와인이 세워져 있던 탁자 가까이 있었다.
‘아이고 고마워라. 우리가 아는 사람이 여기 있네.’ 그들에게 다가가자 멀캐스터가 말했다. ‘어떤 여자가 날 데려왔는데. 어디 있는지 통 보이질 않아.’
‘그 여자는 자넬 따돌린 거야. 이유가 뭔지 알아? 네가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얼빠진 모습이니까 그렇지. 멀캐스터. 이건 네가 다니는 그런 파티가 전혀 아냐. 넌 여기 오지 말아야 했어. 너는 그쪽 뭐냐, 올드 헌드렛스나 벨그래이브 스퀘어 있는 울적한 무도장으로 도망갔어야지.’
‘금방 한 군데서 나오던 참이야.’ 멀캐스터가 말했다. ‘올드 헌드렛스에 가기엔 너무 일러. 조금만 있을 거야. 흥도 돋울 겸.’
‘내가 너한테 침을 뱉는다.’ 앤서니가 말했다. ‘나하고 말 좀 하자, 찰스야.’
우리는 병과 술잔을 챙기고 다른 방에 빈 모퉁이로 갔다. 우리 방 아래는 ‘블랙 버즈’의 오케스트라 단원 다섯이 발뒤꿈치에 대고 쪼그리고 앉아 주사위를 던졌다.
‘저 사람.’ 앤서니가 말했다. ‘좀 얼굴이 희멀건 사람이 저번 날 아침에 아놀드 프릭하이머 씨 대가리를 우유병으로 박살을 냈지.’
거의 즉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세바스찬에 관한 대화를 시작했다.
‘어쩌냐. 세바스찬은 아주 술고래야. 네가 작년에 그를 저버렸을 때 마르세이유에 있던 나하고 살러 왔더라고. 그리고 내가 참을 수 있는 한 그만큼 있었어. 홀짝, 홀짝, 홀짝 하루 종일 무슨 미망인처럼 홀짝 마셔댔지. 그것도 아주 교활하게. 항상 자그마한 물건들이 없어지대. 내가 좀 좋아하는 물건들이 말이야. 한번은 그날 아침에 레슬리와 로버츠(런던의 유명한 맞춤 양복점)에서 도착한 슈츠 두 벌을 잃어버렸어. 물론 나는 그게 세바스찬 짓이란 걸 몰랐지. 조금 괴상한 놈들이, 내 작은 아파트 안팎으로 얼쩡거려. 내가 괴상한 놈들 취향이란 거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 거다. 어쨌든, 결국에는 있잖아. 우리는 세바스찬이 드, 드, 들락날락거리던 전당포를 찾았어. 그 당시 티켓을 안 지니고 있더라고. 티켓을 파는 시장도 비스트로(작은 식당)에 있더군.
‘찰스야, 네 눈에서 청교도적인, 못마땅해 하는 시선 다 보이거든. 마치 내가 그 아이를 잘못 이끌기라도 한 것 같네. 마치 서커스에 나온 작은 말처럼, 항상 잘못 이, 이, 인도되었다는 인상을 풍기는 게 세바스찬의 덜 사랑스러운 특질 중에 하나지. 하지만 참말이지 난 내가 할 거 다 했다. 나는 세바스찬에게 “왜 마시냐? 어디에 취하고 싶다면, 훨씬 더 맛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 거듭, 거듭 말을 했지. 나는 그를 단연코 최고랄 만한 사람에게 데려갔어. 너도 나만큼 잘 알 거야. 나다 알로포프하고 장 뤽스모르하고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이 몇 년 동안 그에게 신세를 졌지. 그는 항상 레지나 바에 있었는데 그런데 세바스찬이 그에게 부도수표를 준 게 문제로 터졌어. 가, 가, 가짜 수표였다네. 엄청스럽게 아주 위협적인 남자들이 플랫에 들이닥치고, 불량배들 말이야. 그리고 세바스찬은 말도 안 되는 말을 그때 하고 있고, 아주 불쾌한 일들만 벌어졌지.’
보이 멀캐스터가 두리번거리며 우리에게 와서 청하지도 않았는데 내 옆에 앉았다.
‘저기는 술이 떨어져간다.’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 병을 알아서 들고 마시고는 비워버렸다. ‘좀 전에 저기 내가 눈에 둔 모든 곳에 영혼(사람)이 없어. 죄다 검은 녀석들이야.’
앤서니는 그를 무시하고 계속 말을 했다. ‘그래서 그일 후에 우리는 마르세이유를 떠나 탕헤르에 갔어. 그리고 거기서, 있잖아. 세바스차는 새로운 친구와 어울리기 시작했어. 그를 어떻게 묘사를 하나? 그는 『경고의 그림자(1922년 독일 표현주의 무성영화)』에 나오는 하인처럼 생겼어. 프랑스 외인부대(북아프리카 주둔)에 복무했던 아주 돌대가리 독일인이었어. 엄지발가락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군을 나왔대. 아직 상처가 낫지도 않았지. 세바스찬이 쫄쫄 굶으면서 캐즈바(북 아프리카 성의 일반명)에 있는 집들 중 하나로 끌어들이려고 조르고 있는 걸 발견했지. 그를 데리고 와서 우리하고 머물렀어. 그러고 나는 돌아왔지. 여기 그리운 영국으로. 그리운 영국으로.’ 그는 우리 발밑에서 노름을 하고 있던 니그로(1960년대 이후 비하의 표현이 되었습니다.)들을 넉넉한 몸짓으로/요란한 손짓으로 그러안으며 말을 되풀이했다. 멀캐스터를 우두커니 그의 뒤를 치어다보았다. 파자마(통넓은 바지)를 입은 파티의 여주인이 자신을 소개하며 서 있었다.
‘당신들을 전에 본 적이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들 청한 적은 없는데. 대체 이 흰둥이 부랑아들은 누구야? 내가 집이라도 잘못 들어온 모양이네.’
‘국가 비상사태의 시간이군.’ 멀캐스터가 말했다. ‘ 무슨 일이든 벌어지겠는데.’
‘파티는 재미가 좋으신가? 플로렌스 밀스(블랙 버즈로 유명한 가수)가 노래를 부를 거라고 생각해?’ 그녀가 불안, 불안한 얼굴로 묻고는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지.’라고 앤서니에게 덧붙였다.
‘자주 봤죠. 하지만 오늘은 오라고 청한 적 없었어요.’
‘안 됐네. 아마 당신을 안 좋아하는 모양이군. 나는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편인데.’
‘어떻게 생각하냐?’ 멀캐스터가 안주인이 우리를 떠나가자 물었다. ‘화재 경보를 울리면 아주 재치 있는 처사겠지?’
‘그럼, 보이, 얼른 달려가서 전화해.’
‘흥을 돋울 수도 있잖아, 내 말은.’
‘바로 그렇지.’
그래서 멀캐스터는 전화를 찾아서 우리를 떠났다.
‘내 생각에 세바스찬하고 절룩거리는 그 녀석은 프랑스령 모로코로 간 것 같아.’ 앤서니가 말을 이었다. ‘내가 그들을 떠났을 때 그들은 탕헤르 경찰들하고 문제가 있었거든. 후작부인은 내가 런던에 온 이후로 결정적으로 성가신 사람이 되어서는 계속 나를 통해 그들과 연락을 하려고 하더군. 그 불쌍한 여인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았을까! 사람 사는 데는 그래도 정의란 게 있긴 있나 봐.’
곧 미스 밀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들이, 크랩 놀이꾼(두개의 주사위로 하는 놀이)을 제외하고 건넛방으로 몰려들었다.
‘저기 우리 편 여자가 있네.’ 멀캐스터가 말했다. ‘저기 너머 흑인 친구하고 있는 사람. 저 여자가 우릴 여기로 데려왔어.’
‘지금은 너를 잊어버린 것 같은데.’
‘그래. 나도 안 왔더라면 한다. 우리 다른 데로 가자.’ 우리가 떠나는 길에 소방차 두 개가 와서 멈춰 섰다. 그리고 헬멧을 쓴 다수의 사람들이 위층의 인파에 합류했다.
‘저 친구말야, 블랑세.’ 멀캐스터가 말했다. ‘좋은 녀석 아냐. 내가 한번을 그를 머큐리에 집어넣었지.’
우리는 나이트클럽을 얼마간 순회를 했다. 2년 사이에 멀캐스터는 그런 장소에 이름을 알리고 사랑도 받겠다는 그의 단순한 야망에 도달한 것 같았다. 마지막에 들른 나이트클럽에서 그와 나는 애국심이 커다란 불꽃으로 불타올랐다.
‘너하고 나하고.’ 그가 말했다. ‘전쟁에서 싸우기에는 너무 젊었어. 다른 녀석들은 싸우고 수만 명이 죽었어. 우리는 아냐. 그들에게 보여줄 거야. 우리도 싸울 수 있다는 걸 죽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자고.’
‘내가 여기 바다를 건너 온 이유가 그거야.’ 내가 말했다. ‘필요한 시간에 부응해 달려왔어.’
‘호주인처럼.’
‘불쌍하게 죽은 호주인들처럼.’
‘너는 어디 들었냐?’
‘아직 아무 데도. 전쟁 준비가 안 돼서.’
‘들만 한 데가 딱 하나 있지. 빌 메도우 쇼 방위대. 모두 좋은 녀석들이야. 브랫에 붙박여 있어.’
‘거기 가입할게.’
‘너 브랫 클럽 기억하지?’
‘아니, 거기 역시 가입하지.’
‘좋아. 죽어간 녀석들처럼 아주 좋은 사람들이야.’
그래서 나는 빌 메도우 쇼에 가입했다. (1926년, 총파업 때 수많은 중, 상류층 사람들이 기관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자원하였으며 이십이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임시 순경에 등록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특별기동수사대로, 런던의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배달되는 음식을 보호하는 일을 했다. 먼저 나는 방위대에 등록이 되었으며 충성 선서를 하고 헬멧과 경찰봉을 지급받았다. 그런 후 브랫 클럽에 배치되었고 수많은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경우가 있으면 특별히 소환이 되는 위원회에 선출이 되었다. 한주 동안 우리는 브랫에 앉아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고 하루에 3번씩 우유 유개화물차 호송하는 선두의 대형화물차를 탔다. 우리는 비웃음을 사고 때로는 가축분뇨 팔매질도 받았지만 딱 한 번만 전투에 개입하였다.
우리가 점심을 먹고 둥그렇게 앉아있던 날 빌 메도우가 전화기를 끊고 고양된 얼굴로 돌아왔다.
‘이봐들.’ 그가 말했다. ‘코머셜 로드에 제법 대단한 전투가 있어.’
우리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도착하였고 가로등 기둥 사이에 강철로 된 밧줄이 늘여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트럭 하나가 뒤집혀지고 혼자서 인도에 있던 한 경찰관이 대여섯 명 젊은이들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있었다. 이런 소란의 양쪽 가로 약간만 거리를 둔 채 두 반대 무리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차를 하던 우리 가까이에 두 번째 경찰관이 인도에 멍한 얼굴로,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손가락 사이로 피를 흘리며 앉아있었다. 두세 명 동료들이 안되었다는 듯 옆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밧줄 다른 쪽으로 적대적인 젊은 부두 노동자들이 원기왕성하게 서 있었다. 우리는 사기 충전하여 돌진을 하였고 경찰관을 구해냈다. 그리고 막 적의 주력부대에 덤벼드는데 다른 길로 거의 동시에 오고 있던 지역 성직자와 지방 의원과 충돌을 하였다. 그들은 설득을 위해 오던 길이었다. 그들이 우리의 유일한 희생자들이었다. 단지 거기로 내려와 하필 ‘조심해. 짭새야.’라고 외친 때문이었다. 경찰을 잔뜩 실은 대형차가 우리 뒤에 다가왔다.
군중은 흩어지고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중재자를 뽑고 (심하게 다친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남은 사람), 문제가 있나 골목 곳곳을 순찰을 돌았지만 발견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브랫으로 돌았다. 다음날 총파업은 철회가 되었고 전국 방방곡곡이, 탄전만 제외하고 정상으로 돌아갔다. 흉포한 전설로 잔뜩 떠안고 있던 한 괴물이 한 시간 동안 밖으로 나왔다가, 위험의 냄새만 풍기다가 자신의 굴로 다시 살금살금 기어간 것만 같았다. 파리를 떠날 가치가 없었는데.
다른 중대에 합류했던 장은 캠든 타운에 있는 나이 많은 미망인이 떨어뜨린 양치식물 화분에 머리를 맞아 일주일간 병원에 있었다.
줄리아가 내가 영국에 있다는 사실을 안 게 빌 메도우 분대의 회원을 통해서였다.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나를 몹시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었다.
‘어머니가 아주 아프셔.’ 그녀가 말했다.
나는 평화가 돌아온 첫날 아침에 마치메인 하우스에 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나가고 있던 애드리언 포손 경을 현관복도에서 지나쳤다. 반다나 손수건(목이나 머리에 두르는 화려한 수건)을 얼굴께에 대고 손으로 모자와 지팡이를 찾아 더듬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도서관으로 안내되어 들어갔고 곧바로 줄리아가 나와 합석했다. 그녀는 다정하고 점잖게 손을 흔들었다. 익숙치 않은 모습이었다. 방의 어둠 속에서 그녀는 유령처럼 보였다.
‘이렇게 와주시다니 고마워요. 엄마가 계속 당신을 찾으시는데 당장 당신을 만나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방금 애드리언 포손에게’작별‘을 고하셔서 피곤하세요.’
‘작별?’
‘예. 죽어가고 계세요. 한 주나 두 주 사실 수도 있고 언제든지 가실 수도 있어요. 아주 몸이 약하세요. 가서 간호사에게 물어볼게요.’
죽음의 정적이 이미 집안 곳곳에 내려앉았다. 마치메인 하우스 도서관에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여하한 다른 집들에 있는 그런 불친절한 방이었다. 빅토리아식 오크 서가는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핸서드(Hansard, 의회기록집) 책들과 백과사전들이 들어있었다.마호가니 테이블은 위원회모임 마련을 해둔 것처럼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장소는 대중적인 그리고 흔치않은 두 가지 분위기를 다 가지고 있었다. 바깥으로는 앞마당, 철책이 놓여있는, 조용한 막다른 골목이었다.
곧 줄리아가 되돌아왔다.
‘안 되겠어요. 뵙지를 못 할 거 같네요. 주무시고 계세요. 그렇게 몇 시간이고 누워 계시기도 해요. 엄마가 바라시는 게 뭔지 제가 말씀드릴 수 있어요. 다른 곳으로 가죠. 전 이 방이 아주 싫어요.’
우리는 복도를 가로질러 작은 응접실로 가 각자 난롯가 양편에 앉았다. 오찬 모임이 벌어지던 곳이었다. 줄리아는 진홍색과 황금색 벽의 색을 반사가 되어 그런지 수척함이 덜해 보였다.
‘먼저, 제가 알기로는 엄마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아주 불쾌하게 대했던 일을 정말 미안하다고 말씀하고 싶으셨어요. 자주 그 이야기를 꺼내셨죠. 지금은 당신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아세요.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 일은 즉시 마음에서 지워버리세요. 하지만 그런 일에 엄마는 절대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런 일은 엄마가 거의 하지 않는 일이기도하고요.’
‘제가 완전히 이해했다고 꼭 말씀 전해 주세요.’
‘다른 일은, 물론, 추측하셨겠지요. 세바스찬 일예요. 엄마가 보길 원하세요.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어요, 가능 할까요?’
‘세바스찬이 아주 심각한 상태에(술에 잔뜩 취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우리도 그건 들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주소지로 전보를 보냈지만 대답이 없었어요. 아직 오빠가 엄마를 볼 시간이 남아 있을 수도 있어요. 당신이 영국에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번 데리러 가실 수 있겠어요? 부탁이 얼토당토않겠지만 전 세바스찬이 알고 나면 그러기를 바랄 거라고 생각해요.’
‘한번 해보죠.’
‘달리 부탁드릴 사람이 없어요. 렉스는 너무 바빠서.’
‘예, 저도 그 사람이 가스 공사 체계화하는 일하고 있다는 신문 읽었어요.’
‘아, 그래요.’ 줄리아가 예전처럼 특유의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그는 스트라이크로 엄청난 영예를 얻었죠.’
그런 후 우리는 얼마간 브랫 분대의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Brideshead가 자신은 그 원인의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어떤 공익의 봉사활동에는 참여하기를 거부했다고 내게 말했다. 코델리아는 런던에 있었다. 밤새 엄마를 자지 않고 지켜보느라 지금은 자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건축학적 그림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이 모든 대화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처음 만난 몇 분만에 다 끝났다. 나는 열시까지 머물다가 그 뒤에 떠났다.
에어 프랑스는 카사블랑카까지 사업 유사한 운행을 하고 있었다.(실제 에어 프랑스는 1933년에 설립되었지만, 소규모 상업성 항공여행사는 있었다고 한다.) 거기서 나는 페즈(모로코 북부 도시)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새벽에 출발하여 저녁에 신도시에 들어섰다.나는 호텔에서 영국 영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저녁에 그와 구도시의 벽으로 된 매혹적인 그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는 친절하고 그리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드디어 누군가가 와서 젊은 플라이트씨를 돌본다는 게 기쁩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여기 우리 쪽에는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이곳은 송금으로 놀고먹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거든요. 프랑스인들은 그를 전혀 이해를 못해요. 그 사람들은 무역에 종사하고 있지 않으면 다 스파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대감마님처럼 살고 있는 건 아녜요. 여기서 일들은 쉽지 않습니다. 이 집에서 30마일도 안 떨어진 곳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요. 생각도 못하시겠지요. 우리는 바로 저번 주에 압둘 크림 군대에 자원을 하겠다고 자전거를 타고 온 몇몇 어리석은 젊은이들을 맞이했었죠.
‘그리고 무어인들은 교활한 작자들이에요. 그들은 술 마시는 일을 찬성하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 젊은 친구는, 아실 지도 모르겠는데 하루 술값으로 대부분 돈을 씁니다. 그는 무엇 하러 여기에 오려고 했을까요? 라바트(모로코 수도)나 탕헤르에는 그를 위한 공간이 널렸습니다. 관광객 비위를 잘 맞춰주니까요. 그는 원주민 마을에 집을 하나 얻었습니다. 말려보려고 했는데 예술부서에 있는 프랑스사람한테서 기필코 샀죠. 그 사람이 무슨 해를 미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불안 요소에요. 그에게 붙어먹고 사는 끔찍한 친구가 하나 있어요. 외인부대를 나온 독일인이에요. 다른 사람들 말이 철저하게 못되어 처먹은 작자라는군요. 그러면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죠.
‘그러니까, 전 플라이트를 좋아합니다. 그를 자주 보지는 않아요. 집에 욕조를 수리할 때까지 여기에 목욕을 하러오곤 했어요. 그는 항상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어요. 제 아내도 무척 그를 마음에 들어 했지요. 그에게 필요한 건 직업이에요.
나는 내 심부름을 설명했다.
‘아마 지금은 집에 있을 겁니다. 구 도시에서 저녁에 갈 만한 데가 없는지는 누가 알겠습니까만. 좋으시다면 길 안내하라고 문지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저녁을 먹은 뒤 손에 랜턴을 든 영사의 문지기를 앞세우고 나는 출발을 했다. 모로코는 나에게 새롭고 낯선 나라였다. 그날 종일 차를 타고 오면서, 수 마일을 지나 매끈한 전략 도로를 따라, 포도원과 군사 주둔지 그리고 새로운 하얀 거주지들, 벌써 수확해 드넓게 탁 트인 들판에 높게 서있는 이른 곡식 단들, 그리고 주된 프랑스 상품들을-두보네(아페르디페 상표), 미쉐린, 마가셍 뒤 루브르(백화점)선전하는 길거리 광고판을 지나며 이들 모두가 최첨단의 교외지역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별 아래, 벽으로 둘러진 도시는 거리는 완만하고 계단은 먼지가 끼고 벽은 창문 없이 양쪽에 솟아 머리 위로 닫혔다가 다시 별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곳에서는 먼지가 반질하게 깔린 돌 사이로 두껍게 내려앉은 위로 사람들이 조용히 흰옷을 두르고 부드러운 슬리퍼나 뒤꿈치가 딱딱한 맨발로 지나다녔다. 그곳에서는 공기에 정향과 향료 그리고 나무 연기가 풍겼다. 이제야 세바스찬이 무엇에 끌려 여기에 왔고 그를 그렇게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영사의 문지기는 오만하게 그의 랜턴을 흔들고 긴 지팡이를 탕탕 치며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때때로 열린 문으로 황금빛 등불 속에서 놋화로 둘레로 무리지어 조용히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주 더러운 사람들.’ 문지기는 경멸에 차 어깨 너머로 말을 했다. ‘교육도 없이. 프랑스사람들은 더러운 그대로 둡니다. 영국 사람들 비슷하지 않아요. 우리 국민들은 항상 아주 영국 사람들 비슷해요.’
그는 수단 경찰 출신이기 때문에 그의 문화의 이런 고대 중심지를 뉴질랜드 사람들이 로마를 그렇게 볼 법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드디어 우리는 많은 징이 박힌 마지막 문에 도달했다. 그리고 문지기는 문을 지팡이로 쳤다.
‘영국 귀족 나리 댁입니다.’ 그가 말했다.
등불과 어두운 얼굴이 쇠창살에 나타났다. 영사 문지기가 아주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빗장이 열리고 우리는 중앙에 우물이 있고 머리위로 가꾸어 놓은 포도나무가 있는 작은 마당으로 들어섰다.
‘저는 여기서 기다립니다.’ 문지기가 말했다. ‘당신은 이 원주민 친구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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