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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뻘짓)/the recognitions, 인식

인식 p48-53

by 어정버정 2024. 6. 24.

지금은, 날이 채 가기도 전에 와이어트는 다시 돌아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의 침묵 속 정오의 식사를 마친 후, 메이 고모는 음란한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그를 방으로 보냈던 것이다.

- 노래를 해요? 그웬이 물었다.

- 아이가 그걸 흥얼거렸지

- 흥얼거려요? 어떻게

그는 단어들을 익히 알고 있었어. 술집 노래인데 거기, 그 지저분한 노인네에게서 배웠어.

마을 목수는 딸의 양육을 처제와 말 없는 사촌 메리에게 맡겼다. 그는 장밋빛 발그레하고 단정치 못한 인물이었고, 그의 말을 빌면 비행기를 밀다 보니 한쪽 어깨가 처졌으며, 하루 일과가 끝나는, 보통 아침 11시쯤이면 늘 디포 선술집에서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 자신의 모친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심심풀이 소임을 뺏겼다. 어머니가 집이 너무 답답하게 압박을 하면 마을 중심부의 화강암 남북전쟁 기념비 발치에 가서, 날씨에 상관없이 담요 아래 다리를 꼬고 주저앉아 있으면 찾아서 다시 모셔오는 일이 주된 일과였다. 지금까지 마을 목수의 한 가지 업적이라고 할만 한 일은 아비로서 카밀라의 낳은 일이었다. 최근 연달은 사건으로 말하자면, 정신적, 경제적 책임을 지겠다고 딸을 떠맡은 사내가, 제 아내를 이방인과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땅에 효력정지로 남겨두고 온 일은, 그는 상당히 어리벙벙, 혼란스러웠다. 그가 조금 어렵사리 이해한 바로는 죽은 아내 동생, 처제와 과묵한 사촌의 반대, 두 사람 모두 시신을 돌려받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에게 집을 멀리 떠나있을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어주었다. 그가 조문을 받았고 장례 술 제안을 받아 마시던 데가, 디포 선술집이었고, 이러한 관심(recognition)이 다 떨어져 나가자, 그는 술동무들에게 툭하면 알려지지 않은 사람과 장소에 대해 친숙하게 이야기해대는 버릇에 빠져들었고 몇몇 사람들이 그가 책을 읽는가 의심쩍어 했다. 모호하긴 했어도, 애도 시간은 그의 성질에 맞지 않아 오래 가지 못했고, 다시는 디포 선술집에서, 어떤 이유로든, 딸의 이름을 언급하였는지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직계 가족들 사이에서는 피가 3천 마일 바닷물보다 더 진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추문이 일지 모른다는 전망에 그위언 혈통이 처리할 수 없을 지도 모를 어떤 분열 활동도 아예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심술궂은 얇은 입술의 침묵 속에 희미해졌다. 지브롤터에서 온 조롱거리 동반자가 발견되자 다윈주의적 의심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흔들리는 몇몇 영혼이 있어, 그들은 이 세상이나 다음 세상에서 그를 용서할 생각이 없음을 서로에게 큰소리치며 장담하긴 했지만.

늦봄에 그위언 목사는 제일 회중교회 설교단으로 돌아왔다. 교인들의 아버지가 제 아버지 존경하듯 아버지 목사를 심히 존경하였기에 교인들은 존경도 물려받아 그를 존경했다. 2세기 전에 인디언들의 신화를 자신의 신화로 바꾸려던 존 H. 그위언 목사에 불만을 품은 인디언들에게 학살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이름 뒤로는 여러 세대에 걸친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 회중의 대부분은 그들 선조들 중에서, 다른 인간에 대한 감상적인 애착이 의무를 방해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던, 청교도 사회의 중추적 기둥을 가려내었다. 마녀를 살려두면 번잡할지니, 이는 로마 교황의 신과 마찬가지로 칼빈, 루터, 웨슬리의 하나님에게 불경한 일이었고, 반세기 동안 400명을 화형한 툴루즈 근방의 신성한 종교재판 기록을 능가하겠다고 작정한 것처럼, 이 엄한 조력자들은 신대륙의 공기를 같은 방식으로 깨끗하게 유지했으며, 현재의 후손 사이에 등장했더라면 교도소에 갇혔을 공산이 컸겠지만 지혜롭 죽음으로 유배되었다. 그들은 제 할 일은 다 했고, 죄책감은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나머지는 그들이 알 바 아니었다.

이 회중은 목사가, 그들이 칭하는 것처럼, 고난 중에도 꿋꿋하게 버텨내어 존경했고(물론 목사의 섭리가 임한 운명을 시기하는 사악한 소수의 인간이 있긴했다), 스페인 사건/염문의 자세한 내막을 알지는 못했다. 그들의 목사가 친숙한 혈통의 소유자이고,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며, 이제 잠시 세속의 재난에서 돌아와 말과 모범으로 그들을 흔들림 없이, 그리스도인의 불굴의 강건함으로, 이끌고 있다는 정도만 알면 그만이었다.

그의 설교는 활기찬 방향으로 항로를 잡았다. 외로움에 그위언은 다시 공부에 달라붙었다. 카밀라를 잃고 나자 그는 그녀를 알기 전 시절로 돌아가, 주니족과 모하비족, 평원 인디언과 콰키우틀족 사이에서 살았다. 그의 대륙에서 멀리 벗어나, 보르네오에서 아삼까지 밤늦은 시간까지 어둠의 관례들에 참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의 책상 위에 쌓여 그리고 서재 주변으로 널리 퍼져, 에우리피데스(그리스 비극시인)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카르투지오 수도회 데니스, 플루타르크, 로마의 클레멘트 주교, 외경 신약성서, 오세르바토레 로마노 신문 몇 부, 조기 매장 방지 협회에서 온 track 등이 놓여 있었다. De Contemptu Mundi(세상의 경멸에 관하여), Historia di tutte I'Heresie(모든 이단의 역사), 그리스도와 어둠의 세력, De Locis Infestis(해충이 들끓는 장소들에 관해), Libellus de Terrificationibus Nocturnisque Tumultibus(야간 폭동의 공포에 관한 책) 말레이 마술, Religions des Peuples Non-civiíisés(문명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종교), Le Culte de Dionysos en Attique아티카 디오니소스 숭배), Philosophumena(주석/refutation of all Heresies), Lexikon der Mythologie(신화 사전), 제임스 프레이저 경 황금가지 (제목에 왕의 아들의 희생 장으로 열어둔) 어느 한 권 위에, ‘마리아의 영광이 열려 놓여 있고, 거기, 마리아 없이는 신비주의가 없다-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 음모를 꾸미는 주목나무들, 독 열매가 창문을 지키고 있는 뒤에서 그의 위로 지나는 밤마다 빌라도 행적, 콥트 설화, 피스티스 소피아(Pistis Sophia, 신실한 지혜), 어린 예수가 놀이 친구들을 염소로 만들었다는 도마의 설명을 넘겨보았다. 그러나 제자리에서 가장 자주 꺼내 드는 책은 Obras Completas de S Juan de la Cruz(십자가의 성 요한 작품 전집)이었고, 상당히 큰 책이어서, ‘영혼의 어두운 밤를 무자비하게 잘라낸 구멍에 슈냅스 한 병을 담아둘 수 있었다.

 

그는 심지어 성찬식을 거행할 때 온건한 장로들이 규정했던 포도쥬스 대신 포도주를 재도입하였고, 어느 화창한 날 아침 그의 양 떼를 더 이상 물을 마시지 말고 그대 위장을 위해서나 자주 병약해지는 그대들 몸을 위해 조금 포도주를 이용하라,” 분발 선동했다. 이 말에 메이 고모의 속이 뒤집혔다. 사도 바울을 두고 논쟁을 벌일 처지는 못되었지만, 바로 이런 순간들이 닥치면 그가 타르수스 유태인 사울, 성 에드먼드 같은 코에, 유대인들의 저명한 무절제 과음의 악벽을 지닌 이 인물을 넘지 못하지 않았나 의심했다. 가장 어두운 아프리카로 들어간 약탈들을 제외하고는 북위 60도선 이남으로 한 번도 진출한 적이 없는 그녀의 자선 그리고 그녀 사회단체들 관용과 달리, 그위온은 자비를 베풀 만한 대상에 대해서 자신의 목소리 닿는 범위 이상으로 손을 뻗지 않아 모두를 괴롭혔다. 자넷이라고, 한쪽으로 머리를 선명하고 확정적인 백치 경사도로 기울여, 잡아당기는 버릇의 틱이 있는 소녀는, 모계 쪽으로 청교도적 도덕성 일탈(뉴욕에서 온 수술용 벨트 판매원로 신세 망쳐서)의 전형인데, 어느 날 밤 성가대 연습 끝난 뒤 오르간 뒤에서 교회 잡역부와 서로 농지거리로 지분거리고 간질이다가 발견되었다. 자넷은 어머니가 사망한 지 몇 분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메이 고모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이를 싹수 노란 나쁜 징조로 여겼다. 오르간 뒤의 사건으로 증명이 되고 나니, 메이 고모는 차꼬와 칼이 한물 가서,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 우리 모두 그런 만족을 빼앗긴 건 참 부끄러운 일이죠, 그위언도 동의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 무슨 뜻이냐? - 우리도 저지를 있다고 익히 아는 행실로 다른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을 보는 그런 대단한 만족감요. - 하지만 나는- 우리 자신의 악을 이렇게 외현화外現化하는 것보다 더 마음 흡족한 일이 있을까요? 우리 자신의 사악한 상상력에 대한 속죄로 겪는 또 다른 고통. - 그만해! 메이 이모가 소리 질렀다. -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 - 그런 유혹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녀의 범죄를 판단할 수 있습니까? 그는 조용히 물었다. - 너는. 너는 이단자처럼 말하고 있어, 말이 나와버렸다, 너의 교회와 네, 그래 네 가족과도 동떨어진 이단으로.! 그리고 그녀는 방을 떠났다.

다음 주일 설교 내용은 산상수훈(7:1)에서 따온 것이었고, 자넷은 그윈 목사 집안에서 부엌일을 하는 식모가 되었다.

그런 공동체에서 자라면 거의 육성되지 않을 직관적인 천성을 지닌, 몇몇 사람들은 그의 자선이 모두를 조롱하려는 유머 감각을 능청스레 숨기는 가면이라고 의심했다. 마을 목수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일요일 아침이면 교회의 어두운 구석에 정기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찰 멜빵까지 하고 셔츠 차림인데, 평소 하고 다니듯이 다 드러내던 속옷의 윗 단추를 가릴 정도이니 꽤나 정중한 차림새라고 할 수 있었다.

목사관은 비막이 판자를 두른 집이었고 그 안은 어두운 벽지와 웨인스코팅으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아래층 창문은 대부분 바깥의 나무들로 인해 어두웠다. 주인이 짐을 풀자 그 집의 성격이 바뀌었고, 집은 처음으로 어두움과 동조한 자신을 깨달았다. 서재로 이어지는 복도에 있던 와츠의 갤러해드 경 초상화는 양쪽 끝에 거울이 달린 작은 십자가로 대체되었다. 울새, 개똥지빠귀, 큰어치 박제(먼 사촌이 앉힌 것들인데, 그는 탈출구로 박제술을 알아내었고 마지막으로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자연사 박물관, 그가 직접 속을 채운 박제된 벌새들로 가득 찬 방에서 너무 마신 술로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보금자리를 훼손된 스페인의 성자 올라야 석상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빈 나무 사이에 몰래 숨은 겸손한 엘크 사슴 그림은 아버지 브뢰겔의 복제 그림으로 대체되었고, 사막에서 광기를 드러낸 성 안토니의 그림이 걸린 데는 바래지 않은 정사각형이 생겨 나무 그림(오래 전에 흙으로 돌아간 처녀 친척이 그린 그림인데, 지금은 메이 고모가 구해내었다)으로 가려두었다.

식당의 창문 아래에 커다란 낮은 테이블이 나타났다. 그것은 이 초기 수집품 중 횡재로, 아주 귀중해 값을 매길 수 없는 물건이지만, 그위언은 비밀리에 그것을 제의하며 못내 아쉬워하던 늙은 이탈리아 할아비에게 의심 없이 지불한 돈으로 가격이 매겨진 셈이었다. 이 탁자 상판은 중세의 일곱 가지 대죄를 묘사한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해외로 반출하기 위해, 이탈리아 세관에서 이게 위조라 확증을 하는 약간의 꾀를 부려 속이는 짓이 필요했지만) 진품으로, 중세 탐닉의 일곱 가지 죄를 묘사를 하고 있었다. (주웅-(meddy-evil)라고 목사는 불경스러운 눈빛을 빛내며, 발음했다) 상판을 덮은 유리 아래에서 그리스도는 불구가 된 한 손을 높이 들고 서 있었고, 그 아래에는 전례규범으로, Cave, Cave, D' videt(조심하라, 조심하라, 그가 보시나니)

- 가톨릭! 메이 고모가 말했다. 배척이 물씬하다. 그녀는 가톨릭이니, 혹은 스페인산이니, 십자가의 팔에 달린 거울에 관한 허영을 두고도 말을 더했다. 그위언 목사는 그 물품의 용도를 설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리라 생각했다.

딱봐도 이교도의 원숭이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는 마차 헛간에서 살도록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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