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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뻘짓)/the recognitions, 인식

인식 p101-106

by 어정버정 2024. 7. 7.

사자처럼, 대형 문들을 빠져나와 서커스 아레나로, 자동차들이 굉음을 내며 모가도르 거리 입구에서 오페라(교차로) 뒤 공터로 달렸다. 그 주변에는 모조품 로마제국이 티베르 강 유역에 파스티셰 기법(모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벽지로 쓰기 딱 좋은 점잖은 프랑스 시골을 가로질러 둑길을 내고 댐을 쌓은 큰 야망 없는 센 강을, 토스카나의 아펜니노 계곡에서 사비네 산맥을 휘돌아 로마를 가로질러 흐른 뒤 두 팔 벌려 바다에 닿는 티베르의 진로의 대응물로 여긴다면. 그럼에도 그들은 가진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나폴레옹 가문은 아주 열심히 애를 썼다. 첫 번째 인물은 자신의 머리를 빗었고, 아내와 형제들도, 줄리어스 시저와 그의 가족이 그들 머리카락을 빗듯이, 머리를 빗었다. L. 다비드 (브루투스, 안드로마체, 호라티우스의 그림을 그리고 나서)는 나폴레옹 그림을 하는 한 최선을 다해 줄리어스 시저처럼 그렸고, 조세핀도 가장 근사하게 최선(대관식)을 다하여 의심의 여지없이 그녀의 모습을 선보였다. 모두가 앞다투어 결집해, 아치, , 페디먼트를 세우고 로마인들이 그리스에서 이미 베낀 것들을 베꼈다. 제국의 가구, 촛대, 머리모양. 그들 너머 어딘가에 콘스탄티누스 로마의 비전을, 11개의 포럼, 10개의 바실리카, 18개의 수로, 37개의 도시 성문, 2개의 아레나, 2개의 서커스, 37개의 개선문, 5개의 오벨리스크, 상아와 금으로 만든 신상이 있는 423개의 신전을 걸어놓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제 경쟁자는 없었다. 교황 우르바노 8세가 콜로세움을 공공 채석장으로 선언한 이후로는 없었다.

미술품 수집 활기가 로마에서 시작된 것처럼, 결국 파리에서 시작되었고, 시칠리아 출신의 교활한 마자린 추기경이 믿기 힘든 크기의 컬렉션에 도달하게 되었다. 쇠락하여 추방을 당하면서 그의 예술을 두고 ‘Que j'ai tant aimé’(내가 아주 사랑했던 것들), 프랑스인답게 덧붙여, ‘qui m'ont tant couté’(내가 아주 많은 것을 치르는구나) 웅얼거렸다. 로마의 감정가가 청동을 냄새로 다섯 가지 녹청을 구별할 수 있었다면, 프랑스인의 민감한 감성은 일구는 대로 발달하다시피 했다. 로마 감정가의 비위를 맞추려고, 흑요석으로 사파이어를, 값싼 착색 벽옥으로 사르도닉스(불은줄무늬마노)를 위조했다면, 프랑스의 재능은 능수능란했다. “Un client desire des Corots? L'article manque sur le marché? Fabri-quons-en. 고객이 코로 작품을 원해? 시장에 그런 물건이 모자라? 어디 조금 만들어볼까.” (그러다보니 어느새 코로의 그림 2,500점 중 7,800점이 미국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도 그들은 예술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아니 예술의 가치를 아는 것의 가치를 알았다. 쿨랑스가 마담 드 세비네에게 말했듯이, -그림은 금괴입니다.

파리, 운 좋은 도시! 지금까지 그 길에서 불어난 3분의 일이 20세기에 접어들었고, 파리는 여전히 자신의 평가의 말 그대로 파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성가시게 졸라대는 대상이었다. 아마 바다 건너에서 울려 퍼지는 (여전히 땅 너비에 안녕하냐 애송이야!” 인사말이 울려 퍼지는 땅에서) 친족의 오마주, 경의에 충분히 자격이 있거나, 아마 오천만 명의 프랑스인이 틀릴 리가 없을 수도. 그 중 4백만 명은 성병에 병구완 중이었고, 여성들 사이에서는 매독으로 그해 약 4만 건의 유산이 발생했다. “파리”: 공상을 자극하는 그 별명(도시의 본명 루테티아), 예술의 영역에서 마법을 피워 올려, 그 별명 자체가 음네사레트(BC 4세기 아테네 유명 고급창부)의 별명, “프린이 한때 사랑과 동의어였듯이, 예술과 동의어가 되었다. 물론 파리가 의인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따라 예술 작품과의 합법적인 관계를 끊은 지 오래였고, 바로 예술을 위해 사는 수행 측신들을 늘렸다. 이들 중 한 명은 불과 2, 3년 전 재판을 받았는데,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한 바르비종 농부의 전형적인 습작품은 몇백 프랑에 불과했지만 밀레의 서명은 만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합리적인 주장을 하였고, 이 기망은 프랑스인이 아니라 무엇이든 팔 수 있는영국인과 미국인을 상대로, 이곳 모든 것이 물건으로 팔리는 프랑스에서 속여먹은 것이라는 탁월한 변호를 했다.

나폴레옹 1(벤돔 광장의 "앙 세자르" 기둥 꼭대기에서 서 있던)의 눈 아래에서 제3공화국은 언쟁을 벌였다. 그들만의 추잡한 보헤미아를 세운 후, 마지노 선 건너 굶주린 이웃에게 원본(체코)을 넘겨주는 데 아무 반대도 없었고, 독일 특사가 파리에서 총살당하는 날(1938)까지 베르사유 조약을 이 이웃은 조각조각 폐기하느라 바쁘게 보냈는데, 몇 주 후 평화 조약(1938.12)이 조인이 되지만 유혈 사태의 재연 준비에 들어갔으니, 이미 이런 유혈에 멸절이 된 어느 인간이, “II y a tant de saints, ils forment un t.el rempart autour de Paris, que les zeppelins ne passeront jamais./파리에는 수많은 성인들이 방어 보루를 쳐서 제펠린 비행선들은 절대 통과하지 못한다-는 믿음의 표현을 양산했었다. 잔뜩 기다리던 파리는 중상모략과 협박에 시달리던 프린이 그랬던 것처럼 재판관들의 자비를 바라며 가운을 찢고 가슴을 드러내었다.

한 골목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사냥을 하던 개가 무의식적으로 늘어뜨린 오른쪽 앞다리에 무한한 우아함을 뽐냈다. 그 외 8월의 토요일 밤에는 다른 일은 거의 없었다. 성 바르톨로메오의 날은 따뜻했다. 파리 여름의 열기가 접전을 벌이는 날, 파리 고양이들이 파리의 창턱이나 높은 난간에서 잠을 자다가 떨어져서 라바보(세수대)의 유리 지붕으로 뛰어내리는 때였다. 도시의 중심은 텅 비어 있었다. 플라스 드 오페라 광장에서 한 관광버스가 출발했다. 갤러리 라파예트 앞에서 트럭 한 대와 시트로엥 한 대가 박살이 났다. 퐁 도투유에서는 한 남자의 시신이 자전거에 묶여 센 강 밖으로 끌려 나왔다. 고정 세간들 중에서, 커다란 야외 욕실을 연상시키는 타일과 대리석으로 된, 몽트루주의 공동묘지에서 한 홀아비가 죽은 아내의 연인과 사자의 무덤에 꽃을 놓을 권리를 두고 다투었다. 부르스 광장 앞에서는 청각 장애 축구팀이 정신없이 시끄러운 침묵 속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퐁네프 광장에서는 한 프랑스인이 코를 후비고 앉아있었다. 그러더니 그는 여자 친구에게 팔을 두르고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코를 후벼 팠다. 파리의 일요일이었고 매우 조용했다.

와이어트는 예술 출판물인 디 플라이쉬플라우트(Die Fleischflaute 살점 플루트라는 뜻)을 천천히, 그리고 어렵게 읽었다. 그의 쇼는 끝났다. 그림은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그는 라 마쿨레에서 크레메르의 글을 읽은 후 잡지를 바로 냅다 던져버렸다-‘Archaïque, dur comme la pierre, derive sans cœur, sans sympathie, sans vie, enfin, un esprit de la mort sans 1'espoir de la Resurrection(구태의연한, 돌처럼 딱딱하고, 모방적이다. 마음도 없이, 공감도 없이, 생명력도 없이, 마침내, 부활의 희망이 없는 죽음의 정신)’ 그러나 이 순간 그 실패의 세부 사항은 싹 잊혔고, 플라이쉬플라우트 잡지에서 그가 해독해낸 내용으로는, 독일에서 한스 멤링의 원본 그림이 막 발견되었다는 점에, 상황 자체가 영 심상찮게 돌아갔다. 조야한 덧칠마무리는 전체 장면을 내부로 변형시켰는데, 이는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가 한때 유디트의 쟁반 위에 놓인 과일 쟁반으로 변형되었던 것(‘그림을 덜 불쾌하게 만들기 위해)과 같은 목적이었다. 이 그림은 고문대에서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인물로 판명이 되었고, 고문대를 침대로 덧칠을 하여, 그의 가죽을 벗기는 데 참여한 사람들은 이제 침대에 누워있는 병자를 보살피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플라이쉬플라우트에 따르면 열린 창문을 통해 보이는 단편적인 풍경에 어느 전문가의 관심이 동해, 뮌헨의 알테 피나코텍 미술관으로 옮겨 깨끗이 닦아내고 나자, 팽팽한 고통 속에 당겨지고 있는 인물은 3세기 기독교 박해자 발레리안으로 확인되었고, 그를 포로로 잡은 페르시아 사포의 붉은 망토가 고문대 앞 전경에 던져져 있었으며 그 뒤로 비탄력적인 힘에 가늘어진 몸, 끝장난 압제자의 얼굴에 비통과 무관심이, 실명으로 비어 있 작은 눈은 있었다. 전문가들이 인정하길, 아마 이 작품은 헤라르트 다비드의 작품일 수도 있지만, 멤링크의 작품 가능성이 더 다분하고, 이걸 보고 다비드가 불의한 재판관 가죽 벗기기을 그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독일 화가들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고, 특히나 멤링크는 플랑드르 미술의 미약한 시작을 완벽한 정점으로 끌어올렸고, 판 에이크 형제들, 보우츠, 반 데어 바이덴의 작은 재능을 독일 천재의 걸작들로 구체화하였다고 칭송했다.

노트르담 성 바르톨로메오의 날, 카트린 드 메디치가 이 날 이단자(위그노) 5만 명을 학살한 것을 기려 그레고리 13세가 주조한 기념 메달로 잘 반영된 날, 음악이 대성당에 울려 퍼졌다가 잦아들었고, 파리의 사전조율된 공연 효과 전통에 따라 빛이 갑자기 충만하게 쏟아졌다가 사라지고, 함께 그들은 부풀었다가 사그라들었다. 예배가 끝날 무렵 오르간이 그 자리를 소리로 가득 채우자 수많은 회중의 본체는 여러 얼굴을 돌려 오르간 고미다락을 뒤돌아서 올려다 보았고 오르간 다락방에서 보면 이들은 그렇게 거대한 십자가를 형성했다. 그러자 십자가는 붕괴가 되었고, 그 파편들은 도시 전반으로 흩어져 다시 만족의 우리에서 안식을 찾았다.

파리는 우뚝 솟은 에펠탑의 그림자 아래서 끈적끈적하게 끓어올랐다. 황제의 후궁의 침대처럼 파리가 누워 있는 분지에는 칼날 하나, 바느질 한 땀 흐트러짐이 없었다. “얼굴도 곱고 매력 넘치기도 하지만 키가 작고 창백한 편인, 실제로 완전히 혈색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약간 누렇게 뜬황후 테오도르처럼 파리는 색 스펙트럼의 낮은 영역에서 자신의 매력을 분명히 드러냈다. 곰 먹이던 조련사 아버지를 둔 테오도라는 성취는 없었지만 조롱에 대한 재주로 무대에 올랐고, 천재성은 없었지만 서방질과 음모로 무대에 섰다. 황후로서 그녀는 승리했다. 어떤 원로도, 어떤 사제도, 어떤 군인도 항의하지 않았고, 저속한 자들은 그녀의 노예로 불러달라 아우성을 쳤다. 침실에서 욕실까지, 아침 식사에서 휴식까지. 그녀는 왕의 존엄으로 잔뜩 치장했다. 절대 내가 이 보라색을 싫어하지 않게 하소서 아니면 사람들이 나를 여왕이라고 칭하는 일 멈추는 그 날보다 더 오래 살지는 않기를. 그녀는 암으로 사망했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에펠탑의 그림자가 파리 몸을 가로질러 라틴 지구로 기울었다. 파리는 준비를 하고, 수천 개의 요강들과 관들로 치장을 하였다. 젊고, 스스로 절망적으로 젊다는 것을 알았고, 거울을 잊고, 쉽게 갈라지는 목소리, 파리는 다른 곳에서 현실에 푹 잠겨 결혼한 남자들의 김빠지는 기억들 속에서 가타부타 없이 축 늘어져, 젊음과 협상한 이 정부와 맞바꿔 그들이 교환했던 성숙함에 망연자실해 했다. 다시 방문한다면, 그들은 파리에 지금 젊음을 북돋을 수 있으며, 중년으로 유지해온 불평 해대지 않은 정면 허울들로 굴종하지 않고 네온사인에 얼굴 붉히고 몹시 고통스러원 철공예와 크롬강, 암적인 인테리어들로 점점이 표시를 할 수도 있었다.

코마르텡 거리의 한 바에서 한 소녀가 미국인에게 말했다. Vous m'emmenez? Moi, je suis cochonne, la plus cochonne de Paris. Vous voulez le toucher? ici? Donnez moi un billet. oui un billet, pour le toucher icidiscrètement.(나를 데려가시겠어요? 나는, ---만--- 싶어요? 여기? 한 장 주세요, 그래요 한 장짜리로. 만--거든여기조심해서.

침대에 누워있는 한 소녀가 말했다. -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 1 퍼센트 정도만 우리는 알아요. 우리는 지옥에 아주 크게 대가를 치르는 일에 천국이 얼마나 적게 값을 치르는지 몰라요.

누군가 하지만 당신은 여기 아주 오래 있었어요. 호텔 방에서 세면대에 소변을 보며 대륙의 사브와페어(수완)를 뽐내고 있던 한 미국인에게 말했다. 그가 말했다. - 나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는데, 아시다시피 그녀는 엔비레망(주변환경)에 묶여 있어. 누군가 말했다. - 난 그 사람 잘 알지는 못해요. 그는 흑인 교파 쪽 사람이라서요. 왼쪽 강둑에서 누군가가 막 아내를 두고 떠나며 기타를 집어 들었다. 집에서 침대에서였다. - 매일 밤 기타를 아내의 목욕 가운으로 차려 입혀요. 그가 말했다. 다른 누군가는 오리를 이용하자고 했다. 그 머리를 서랍에 넣고 결정적인 순간에 머리가 끼여 서랍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한 젊은 신사가 그 시간에 일곱 번째로 친구들 구두를 닦아주고 있었다. 그는 술에 취했다. 더러운 아랍 아이들은 바구니 위쪽에서 땅콩을, 아래쪽에서 해시시를 팔았다. 그들은 미국처럼 가장 아름다운 언어도 아니고 프랑스처럼 유일한 언어로도 치부되지 않는 땅에서 왔지만 주눅 들지 않고 능숙한 프랑스어를 깔딱거리는 후두음으로 말했다. 그 식탁의 누군가가 말했다.- 이 녀석은 약발이 전혀 안 드는데, 하지만 하늘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게 느껴지지 않아? 물론 나는 예술을 사랑하니까 파리에 있는 거죠, 한 여자가 말했다. 그 소녀와 함께 있던 청년이 말했다. - 저 몽 푸(Je mon foo/엿먹어라) 불어로 그래. - 푸타, 푸타, 푸타(창부들), 상어 가죽 양복을 입은 남자가 투덜거렸다. 누군가가 말했다. - 손에 잔뜩 들어서, 주머니에서 성냥 좀 꺼내 줄래요?여기, 제 바지 주머니요. 누군가가 말했다, - 여기가 마음에 들어? 누구 다른 사람이 말했다 - 아침에 그녀는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커피를 갈고 있는 동안 나는 그것을 그녀의 팔 아래에 두었지. 불투명한 갈색 외알 안경을 쓴 남자가 말했다 그즈즈즈즈즈즛그리고 의자에서 떨어졌다. 누군가 캐러더스와 그의 말에 관해 농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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