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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 없는 짓/살아남은 이미지

the surviving image 5-9

by 어정버정 2024. 8. 22.

책은 종종 죽은 자에게 헌정된다. 빙켈만은 미술사를 고대 미술에 맨처음 헌정하였다. 이유는 그가 보기에 고대 미술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책을 시간에 바쳤는데, 그의 눈에 역사가란 지나간 것들의 영역을, 즉 이미 세상 떠난 것들의 영역을 걷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 책의 다른 쪽 끝에는, 고대 예술을 짚어가며 회상하고-심리적 의미에서-이야기 형식으로 재구성된 수백 페이지 후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회복할 수 없는 상실감과 끔찍한 의심의 감정을 꼭 붙들고 있는 일종의 우울함을 감지한다. 방금 말한 역사가 노린 대상이 이 느낌이나 상실 자체가 우리를 오도했을 수도 있는 머릿속 비현실적 환상의 결과가 단순히 아닌 것인가?

 

그 몰락을 관조하면서 [나는] 고국의 역사를 서술할 때, 자신의 눈으로 목격했던 고국 파괴를 넌지시 언급해야만 하는 역사가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눈이 닿는 한 예술 작품의 운명을 탐구하는 것을 자제할 수 없었다. 마치 대양 기슭에 서 있는 처녀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 없이 떠나는 연인을 눈으로 쫒고, 먼 돛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das Bild des Geliebten)을 본다고 상상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랑하는 처녀처럼 우리도 말하자면, 소망의 대상들에서 남은 그림자(Schattenriss . . . unserer Wiinsche/우리 바램의-실루엣들)처럼 희미한 윤곽 외에 남은 것이 없지만 바로 그 불분명함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더욱 간절한 갈망을 일깨우고, 원본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었다면 원본(Urbi/der) 자체를 탐구할 때보다 더 세심하게 원본의 사본(Kopien)을 연구하게 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영혼(Gespenster)과의 대담을 원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영혼이 보인다고 믿는 사람들(wo nichts ist)과 매우 흡사하다.

 

만만찮은 한 장의 페이지 - 그 아름다움과 시적인 면모가 만만치 않다. 그리고 급진적인 페이지이다. 미술사가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면, 그것은 쓰러진 대상을, 사라지고 멀리 묻혀버린 대상을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정의된다. 고대 예술,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예술은 이에 따라 최초의 근대 역사가에게 범주적 부재로 빛을 발한다. 적어도 빙켈만이 생각하기에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예술에 대해 '살아있는' 역사를 만들어낸 적이 없다. 역사는 역사의 대상이 죽은 대상으로 간주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필요성을 드러내며 시작된다. 따라서 그러한 역사는 애도의 작업(고대 예술의 역사는 고대 예술에 대한 애도의 작업이다)이자 잃어버린 것에 대한 희망없는 환기로 느껴질 것이다. 이 점을 다시 한 번 직접적으로 강조해 보자. 빙켈만이 말하는 유령은 결코 여전히 활동 중인 힘으로 '소집'되거나 '간구'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단순히 과거의 힘으로 떠올릴 것이다. 아무 것도 존재하거나 실재하지 아니 한(nichts ist) '에 상응할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착시 현상, 애도하는 살아낸 시간에 해당할 뿐이다. 그들의 존재(그것이 단지 환영일지라도), 생존 또는 귀환은 그냥 단순하게 눈에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 역사가는 이렇게 된다. 누군가 과거를 떠올리면 과거의 확실한 상실에 슬퍼진다. 그는 더 이상 유령을 믿지 않는다 (, 19세기 접어들어 그는 더 이상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비관주의자이며, 쇠퇴나 퇴폐를 의미하는 운터강(Untergang몰락)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린다. 사실, 그가 추구하는 기획 전체가 <위대함과 쇠퇴>의 시간적 도식에 따라 계획, 정리된 것처럼 보인다. 의심할 여지 없이 빙켈만의 기획은 18세기의 특징인 "역사적 비관주의"의 맥락을 배경으로 이뤄졌으리라. 우리는 또한 미학적 영역에서 빙켈만의 아이디어는 "예술의 퇴락"에 대한 수많은 향수 어린 글들과 고대 걸작의 성공적인 파괴와 관련된 혁명적 반달리즘/기물파손에도 영감을 주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위대함과 쇠퇴>의 시간적 모델은 매우 강력하여 브록하우스 <레알-엔클리포파디>에서 예를 들어 미술사는 순수 예술의 기원, 발전, 위엄, 퇴락의 설명이다내용으로 보다시피, 오랫동안 미술사의 정의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빙켈만이 한 말과 전혀 다르지 않다: “미술사는 예술의 기원(Ursprung), 발전(바흐스툼Wachstum), 변화(베란더룽Verdnderung), 몰락(Fall)을 보여주기 위한 분야이다.

이 개요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두 가지 유형의 이론적 모델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첫 번째는 자연적 모델, 더 정확하게는 생물학적 모델이다. 빙켈만의 문장에서 바흐스툼이라는 단어는 식물이건 동물이건 성장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베란더룽이라는 단어는 돌연변이/변형이라는 개념에 내포된 지극히 활력적인 함축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빙켈만이 미술사라는 의미는 자연사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그가 플리니우스의 자연사를 읽은 것은 다들 알지만, 버퐁의 자연사도 읽었고, J. G. 크루거의 생리학 논문과 알렌의 의학 매뉴얼도 마찬가지로 읽었다. 그리고 176312월의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언젠가는 예술 연구에서 자연 연구로 옮겨가기를 원했다. 이 모든 것에서 빙켈만은 계몽주의 인식론의 전형적인 분류 문제뿐 아니라 진보와 쇠퇴, 탄생과 퇴락, 생명과 죽음의 양극 사이에 재건된 명백히 생물학적인 시간적 도식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관 지은 역사 과학의 개념을 도출했다.

이 이론적 배경 구성의 다른 부분은 더 잘 알려진, 이상적 모델, 더 구체적으로는 형이상학적 모델이다. 따라서 이론 대상의 '범주적 부재'와 아주 잘 부합하는 모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솔론이 했던 말을 옮겨적은 유명한 말, to ti en einai/το τι ην ειναι를 생각해 보라. 이 말은 언명하고자 하는 진리에, 아니 더 적합하게는 ‘quiddity/본질, 물성物性의 대상 주변에 우선하는 죽음이 전제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고대 예술의 소멸이 바로 그 궁극적인 물성을 말할 수 있는 역사적 담론의 토대를 마련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빙켈만이 생각하는 예술의 역사는 기술하고, 분류하고, 연대 추정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 콰트르메르 드 퀸시는 분석에서 통합으로단순히 거슬러 올라가는 움직임을 보여준 반면에, 빙켈만 직접 철학적 관점에서 자신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예술의 역사(die Geschichte der Kunst)는 예술의 본질(das Wesen der Kunst)을 뚜렷이 명시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가 집필에 착수했던 『고대 미술사』는 단순한 시대의 연대기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한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다. 나는 역사(Geschichte)라는 용어를 그리스어에서 갖고 있던 의미보다 더 확장된 의미로 사용하며, 하나의 체계(Lehrgebdude)를 제시하려는 것이나의 의도이다… 보다 협의의 예술의 역사 (die Geschichte der Kunst)는 외부 정황에 관한 한에서는 [예술 발전의 역사]이지만 다만 그리스와 로마인에 관하여서만 …그렇긴 해도 주요 대상은 “예술의 본질”(das Wesen der Kunst)이다.

 

윗글을 읽다 보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빙켈만이 품고 있던 예술의 역사성이 역사가 규준의 내부 또는 변두리에서 영역을 두루 찾아다니는 타협에서 벗어난다는 말이 정확히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보통 말하는 그런 역사 담론에 지나치게 많은 신망을 부여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가 자신의 영역을 떠남으로써, ‘자연적인철학적 중립성에 반하여 옥죔으로써, 요컨대 순수하고 단순한 관찰에 따른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인겸손을 저버림으로써만 규준적이 된다는 가정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규범이 서술/설명 자체, 심지어 역사가가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느 현상이든 그 가장 단순한 설명이나 언급에도 내재되어 있음을 보지 못한 결과이다. 역사적 서술은 언제나 그 대상의 '본질'에 관한 이론적 규범으로 선행되고 좌우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미술사는 서술에 '적합한 대상'을 결정하는 미적 규범에 좌우되며, 이들 아름다운 대상들 그들의 결합이 결국 예술의 본질과 같은 것을 구성한다.

따라서 빙켈만은 자신의 역사에 대해 철학적, 교리적 의미에서 쓰이는 '체계'(Lehrgebaude)로 중요한 지위를 주장한 것이 옳았다. 그의 진취적인 기획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몽테스키외, 비코, 기번 또는 콘딜락의 기획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이러한 윈켈만식 역사의 지위는 18세기에 분명히 공인받았다. 헤르더는 빙켈만이 확실히 보편과 관련한 분석, 아름다움의 본질에 관련한 분석하는 유사-플라톤적 방대한 사업으로서 이 웅장하고 진실하며 영원한 체계(LeArgebaude)를 제안했다고 썼다. 역사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상가로서 헤르더는 곧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했다: “이것이 역사의 목표인가? 예술사의 목표인가? 다른 형태의 역사는 가능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플리니우스나, 파우사니우스나 그리고, 필로스트라테스의 역사학 수집품을 넘어서서, 이론적으로 정립된 예술사의 필요성을 선뜻 인식했다. 이를 빙켈만에 부합해, '역사학 체계'라고 불렀다.

이상이라는 단어는 본질, 여기서는 예술의 본질이 하나의 <모델>임을 암시한다. 고전적 아름다움의 범주적 책무 요청에 따라 도달해야 할모델이지만, 그런 식으로 도달할 수 없는모델로 제시된다. 빙켈만이 '예술의 본질'[“Von dem Wesentlichen der Kunst”]에 충당한 장은 사실 그리스 조각상의 이상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로 명심하고 생각하기 위해 우리 마음이 취해야 할 우회로로 대신 다루고 있다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은 다만 후반부에 대한 도입부이기 때문에, 이러한 예비 논평의 언급 후에 예술의 본질 자체로 넘어갈 것이다… 실제로 나는 올림픽 경기장에 등장한 나 자신을 상상한다. 거기에서 젊고 남자다운 영웅들의 수많은 동상과 두 마리의 말이 끄는 그리고 네 마리 끄는 청동제 전차들,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승리자들의 인물상과 다른 예술의 경이로움이 무수히 보인다. 실로 그런 상상에 깊이 빠져 나 자신을 그런 선수들에게 비유를 하는 몽상에 몇 번이고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엘리스(Elis) 올림픽 경기의 주최지로 날아가는 이 상상의 비행이 단순한 시적 공상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진정한 고찰로 여겨지길 바란다. 그리고 이 허구는 마치 [고대] 작가들이 언급했던 모든 조각상과 이미지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내가 곧잘 상상해야 하듯이 일종의 현실성을 띠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상은 빙켈만의 표현대로 사물에 대한 진정한 고찰을 통해 포착되고 인식된다. 하지만 실제 사물의 고찰이 아니다. 실제 사물은 사라졌고 후대의 복제본으로 대체되었다. 남은 것은 전부 이상이 존재하는 시간 밖 그 지점을 찾아 헤매는 정신의 중재이다. 그리고 한편 이러한 중재 중 가장 필수적인 부분-텍스트 재구성과 이상적 복원-이 바로 미술사라고 불릴 것이다. 이데아를 위해 지탱한 장고의 세월로 이해되는 미술사, 화신의 서사로 제시되고, “아름다운 자연”, “장려한 모양새”, 여성의 신체 윤곽에서 보이는 정신적 원형”, 우아한 자락 등등, ‘예술의 규범과 관련하여 위대한 그리고 쇠락의 순간들의 서사로 제시된다. 고대 미술사는 분명히 10년 전 그리스 작품의 모방에 관한 반추에서 제시된 미학에 대한 지속적인 매력들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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