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는 이 모든 것을 매우 갑작스레 불쑥 압축된 방식으로 주장했다. 우리가 지금 다루는 이 가설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들은 지금 이 자리에서 천명해야 했다. 바르부르크와 함께 예술에 대한 생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은 결정적인 전환을 맞이했다는 점. 그리고 그 이후 우리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이미지 앞에[devant l'image] 또는 시간 앞에[devant le temps] 서거나’ 대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살아남는 이미지]에 앞서 (디디-위베르망은) 예술과 그 역사에 대한 방법론과 인식론에서 주제를 탐구한 두 권의 다른 저서, 이미지 앞에[devant l'image] 그리고 시간 앞에[devant le temps]를 출간했다. 그래도 역시, 미술사는 당연히 사람들 예상했던 것처럼, 체계적인 토대의 재정립이라는 의미에서 그와 함께 “시작”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를 기점으로 미술사는 그악스레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즉 ‘미술사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워지는데’, 이는 -발터 벤야민의 교훈을 떠올린다면- 곧 기원에 가까워진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바르부르크의 미술사는 절대적인 시작, 백지 상태와는 정반대이다. 그것은 지식 분야의 강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과 같으며, 그 너머로 일의 흐름이 굴절되는 말썽을 일으키는 지점으로, 실제로 엄청나게 변화한다.
얼마나 심오하게 바뀌었는지는 오늘날에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다른 곳에서 나는 이 지식 분야의 역사와 현재 상태에 양측 면에서, 이 정도 규모의 변화를 인식하는 일이 저해가 되었던 특정한 긴장들을 특징지어 보려고 시도한 적 있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지속적인 인상을 덧붙여 보겠다. ‘바르부르크는 우리의 강박이다[hantise].’ 그는 뇌리를 떠나지 않고 쫓아다닌다. 그는 미술사에 있어서 우리가 사는 집에 넋을 달랠 수 없는 유령-악령-처럼 달라붙어 있는 존재다. 그런 강박은 대체 무엇인가? 강박이란 항상 돌아오고, 모든 것에 살아남고, 간격을 두고 다시 나타나고, 원래의 상황에 대한 진실을 표현하는 무언가 혹은 그런 인물이다. 그것은 무언가 혹은 누군가 잊을 수 없지만,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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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부르크, 우리의 유령: 우리 안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 그가 사망한 1929년, 에르빈 파노프스키와 에른스트 카시러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쓴 부고 기사에는 정말 중요한 원형들이었기에 대단한 존경을 담았다. 그는 중요성이 상당한 학문인 도상학(Iconology)의 창시자로 인정받았지만, 그의 업적은 곧 훨씬 더 명확하고 뚜렷하며 훨씬 더 체계적이고 고무적인 파노프스키의 업적에 가려졌다. 그 이후로 바르부르크는 마치 입에 담기 민망한 조상, 도상학의 유령 같은 아버지처럼 예술의 역사를 헤매고 있으며- 누구 하나 그의 작품에서 정확하게 무엇을 언급해서는 안 되는지 무엇을 부인해야 하는지 말하는 이도 없다.
왜 유령 같다는 건가? 우선 그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1930년 조르지오 파스콸리는 바르부르크의 부고 기사에서 이 역사가는 살아 생전에 함부르크의 유명한 바르부르크 문화학술 도서관, “이미 자신이 만든 기관 뒤에서 사라졌으며”, 위협적인 나찌의 등장으로 촉발된 망명에 뒤따라, 런던에서 살아남고 부활할 수 있었다고 썼다. 바르부르크가 누구인지, 바르부르크가 어떤 인물인지 알리기 위해, 에른스트 곰브리히는-게르트루트 빙이 처음 구상한 책을 집필하는 임무가 그에게 떨어져-“지적인 전기”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바르부르크의 삶과 성격의 특정 심리적 측면을 고의적으로 자기-질책을 하곤 했다. 이 결정에는 다소 실체가 없는 전작 모음이라는 고심의 ‘공력’이 수반되었고, 모인 전작 속 파토스적 관점, 실로 병적인 관점이, 연구 대상과 관련된 관점만큼이나 관심 쏟고 그렇게 쏟아붓게 된 견해로 따져봐도, 필수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에드거 윈드는 이 새침하고 얌전한 재조립, 이 물로 희석된 버전을 세차게 비판했다. 윈드는 한 인간을 그의 파토스, 즉 그의 공감 능력과 병리 현상에서 분리해서는 안 된다, 니체를 그의 광기와 분리해서는 안 되며 바르부르크가 거의 5년 동안 정신병원 벽 뒤에 갇히는 일로 이어지는 자아 상실과도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대칭적인 위험은 존재한다. 고딕 소설에 어울리는 운명에 대한 값싼 매혹에 한 눈이 팔려 작품을 소홀히 할 위험이 도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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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유령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시간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까? 그의 어휘는 독일 낭만주의와 칼라일, 실증주의와 니체 철학에서 번갈아 가며 끌어온 것들이다. 그는 역사적 세부 사항에 대한 꼼꼼한 관심과 불분명한 예언자적 직관의 영감을 번갈아 내보인다. 바르부르크 자신은 자신의 스타일을 “장어국”(Aalsuppenstil)과 같다고 묘사했다. 이런 언급에 단서를 얻어, 구불거리는 뱀 무리들, 파충류의 몸체들, 라쿠엔의 위험스러운 선회와-라쿠엔은, 바르부르크가, 그가 연구한 인디언들이 입에 넣은 뱀들과(그림 37) 마찬가지로 평생동안 집착했다-머리도 꼬리도 없는, 충분히 발달하지 않는 덩어리 사이 어딘가, 항상 '스스로 자르는 것' 말하자면 시작과 끝을 스스로 정의하는 일에 완강히 저항하는 사고방식을 상상해 보자.
또한 바르부르크의 어휘 자체가 망령의 지위를 이미 점지받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도 주목해 보자. 곰브리치는 이 어휘의 가장 중요한 단어들, 예를 들어 ‘bewegtes Leben, Pathosformel, Nachleben/파란만장한 생애, 비애 공식, 사후 생존'이 여간해서 영어로 적절히 자리매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독일 망명자들에게 큰 빚을 진 전후 앵글로색슨 미술사는 의도적으로 독일 철학적 언어의 사용을 포기했다고 하는 것이 더 엄밀한 말이리라. 특정 언어학적 및 철학적 전통의 달랠 길 없는 유령이 된 바르부르크는 이렇게 이중적이며 포착하기 힘든 시간을 떠돈다. 한편으로 그는 “학문의 진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과거로부터 우리에게 말을 건다. 특히나, ’나클레벤‘이라는 용어, '생존', 즉 바르부르크의 전체 진취적 업적에 중차대한 개념이 완전히 무시되었고, 혹시라도 이 용어가 인용되었다 하더라도 심각한 인식론적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한편으로 바르부르크의 작품은 예언적 텍스트로, 더 정확하게는 미래에 우리에게 다가올 지식의 예언으로 읽을 수 있다. 1964년 로버트 클라인은 바르부르크과 관련하여 “(그는) 다른 많은 학문과는 달리 존재하지만 이름은 없는 학문을 창조했다.”고 썼다. 이런 공들인 표현을 이어받아, 조르지오 아감벤은 이러한 전작으로 구상된 “과학”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수준까지 드러내었는데, 합리성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이미지에 대한 이러한 사고방식의 상당한 야망과 파괴적인 성격을 가리킨다. 바르부르크는 자신에 대해 존재하기 위해서 보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끈질기게 버티기라고 할 수 있겠다)위해” 창조되었다고 평했다. 진짜 나클레벤Nachleben이라는 단어의 느낌이 그러하다. ‘사후’ 또는 ‘이후 살아가기’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바로 결코 살아남는 것을 멈추지 않는 과거로부터 난 존재이다. 어느 순간, 우리의 기억 속으로 돌아올 때는, 니체가 말한 때가 안 맞는, 시대착오적인 긴박함에 홀려, 급박하게 다가온다.
오늘날 바르부르크는 그 존재가 미술사적으로 시급한 생존자이다. 그는 우리의 악령, 우리 학문의 유령으로, 그의 (우리의) 과거와 그의 (우리의) 미래에 대해 동시에 우리에게 말한다. 과거와 관련해서는 특히 독일에서 몇 년 전부터 바르부르크의 전작에 진행되고 있는 문헌학적 연구를 누릴 수 있으리라. 미래와 관련해서는 일이 확연히 까다롭게 돌아간다. 이제야 ‘자극제’로서 바르부르크의 활동의 가치가 인정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의 업적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학자들이 '바르부르크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유산에 의문이 제기된 일 만이 아니라, 현재 소위 이런 '방법'에 대한 언급이 넘쳐나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바르부르크는 모든 사람이 그를 가장 다양한 이론적 접근법의 수호천사로 언급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의 유령성을 배가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는 망탈리떼mentalités 역사, 예술 사회사, 미시사의 수호천사, 해석학의 수호천사, 이른바 반형식주의의 수호천사, 복고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수호천사, 신미술사의 수호천사, 심지어 페미니스트 비평의 주요 동맹자, 등등 온갖 수호천사로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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