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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이미지
형태의 생존과 시간의 불순함들
예술은 죽는다, 예술은 다시 태어난다: 예술은 다시 시작한다
(바사리VASARI에서 빙켈만WINCKELMANN까지)
누군가 예술사, 혹은 그런 이름으로 통용되는 담론인, Kunstgeschichte 진짜로 어느 하루 태어났는가 물을 수도 있으리라. 최소한, 그러니까 “출생일”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혹은 연대순의 어느 특정한 지점으로 확인되는 어느 한 점, 혹은 2개의 기회들로, 아주 갑자기는 절대 태어나지 않지 않았다. 77년 그리고 대 플리니의 자연사에 보낸 헌정 서한 뒤로 거기 그리스 역사기록학 전체 역사가 위치해 있다. 비슷하게 1550년 바사리의 평전에 헌신 뒤로, 이의 잔재들이, 플로렌스 같은 도시의 우오미니 일루스트리uomimi illustri를 위해 쓰인 전체 연대기들과 칭송문들의 전통이 위치한다.
대담하게 아래 사항을 주장하자면, 역사적 담론은 결코 “태어나지” 않는다. 이는 항상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살펴보면, 예술 역사는-그런 이름으로 가는 지식분야는-매번 새로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매번, 탐구의 대상 자체가 이미 죽은 것으로 느껴지고…재탄생을 겪는는 것처럼 보인다. 바사리가 고대 예술은 죽었다는 소견에 입각해 그의 전체 역사적 그리고 미학적 기획을 확립했던 16세기에 일어났던 일도 정확하게 이랬다. 바사리는 그의 책의 프로에미오proemio(머릿말)에서 보라시타 델 템포voracita del tempo(시간의 탐욕)에 대해 기술하고, 그런 뒤 중세를 망각의 과정에 진짜 유죄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널리 아다시피, 피해자는 “구사일생”하였고, 기적적으로 구원받았다. 혹은 리나시타rinascita(부흥) 장기간 운동으로 죽음으로부터 대속을 받았고, 대체적 개요로, 지오토로 시작하여 미켈란젤로로 극적인 막을 내리던 이 부흥에서, 이런 회상 혹은 부활의 과정에서 위대한 천재로 인정을 받았다. 이 지점부터 시작하여-애도의 상태에서 자체 신흥한 이 르네상스로부터 시작하여-무언가 예술의 역사라고 자칭하는 일이 발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세기 이후에, 전체 일이 (물론 상당히 본질적인 차이를 두고) 다시 시작한다. ‘인본주의’ 르네상스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신고전주의’ 복원이라는 맥락에서 빙켈만은 미술사를 발명한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역사’라는 단어 뜻을 지닌 미술사를 의미한다. 이 경우에 미술사는 계몽주의 시대에서 등장하고, 곧 헤겔 철학을 필두로 거대 체계들의 시대가 되고 “실증”과학의 시대가 된다. 실증철학에서 미셀 푸코는 유사성과 연속성이라는 두 개의 부수적인 인식론적 원칙들이 작용한다고 본다. 이는 말하자면, 현상은 상동관계들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해가 되고, 상동관계는 또 다시, ‘유사성에서 유사성으로 진행하는 고정된 연속의 형태’로 해석된다. 푸코가 불행하게도 논의하지 않은 빙켈만은 문화와 미의 영역에서 역사-이제 진품으로, 이미 ‘과학적’인 역사의 시대에서 예술에 관한 사고 내부의 인식론적 변화를 대변하는 인물로 보일 지도 모른다. 여기 숙고하고 있는 역사는 플리니우스나 바사리 형태의 단순한 연대기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이미 ‘현대적’이고 이미 ‘과학적’이다. 이는 좀 더 근본적인 목표를 삼는데, 콰트르메르 드 퀸시가 빙켈만의 찬사 속에, 올바르게 ‘시간의 해석’이라고 칭했다.
학자 빙켈만은 이 학문에 관찰의 진정한 정신을 가져온 첫 번째 인물이다. 그는 Antiquity고대그리스로마를 감히 분해하려고 든, 시대들을, 사람들, 학파들을, 스타일과 스타일의 미묘한 차이를 분석하려고 한 첫 번째 인물이다. 그는 길을 닦고 이 미답의 땅에 지표들을 제시한 첫 번째 인물이다. 그는 다양한 시기들을 분류하고, 기념비들의 역사를 포함하였고, 서로 기념비들을 비교하였으며, 근거 확실한 특징들이며, 비판의 원칙들 그리고 산더미 같은 오류들을 정정하여, 산더미 같은 진실의 발견할 채비를 한 방법을 발견하였던 첫 번째 사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분석에서 합성으로 전환하여, 그는 다만 한 무더기 잔해들이었던 것들로부터 하나의 몸을 창조하는데 성공했다.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지상과 지하에 “무더기 잔해 더미”가 계속 흩어지는 동안, 1764년 빙켈만은 콰트레메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전체 분산에서 “하나의 몸을 창조”하는 책, <고대 예술사>라는 대단한 책을 출판했다. 몸; 대상들의 유기적 결합, 이들의 해부학과 생리학은 예술적 스타일의 결합과 생물학적 기능 작용의 법칙, 즉 진화의 법칙까지 마찬가지로 이른다. 또한 “몸”은 지식의 집합체, 원칙들의 오르가논, 사실상 “신조/doctrine의 몸”이다. 빙켈만은 따라서 처음으로, 고고학자들의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역사적 체계성” 같은 것을 구성하여 미술사를 고안해 내었다. 미술사학자는 더 이상 대상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콰트르메르의 서술처럼, 미술사학자는 분석하고 분해하고 자신의 관찰력과 비판력을 발휘할 것이다. 분류하고, 모으고, 비교하고, 모든 유사점에 연속의 법칙을 부여할 “신뢰할 수 있는 특성을 발견”하기 위해, “분석에서 종합으로 전환”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역사가 '몸'의 형태를, 체계적인 지식의 영역, 진정한 '시간의 분석'의 형태를 취하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논객들은 이러한 상설詳說의 방법론적, 심지어 교조적인 측면을 익히 알고 있다. 빙켈만은 미술사를 그가 발견한 것들로 통해서라기보다 그가 구성한 것들을 통해 정립하였다. 『그리스 작품의 모방에 관한 생각』의 '미학 비평가'인 빙켈만을 『고대 미술사』의 '역사가'인 빙켈만이 단순히 계승하였다고 여기는 일은 어딘가 부족하다. 왜냐면 계몽주의의 '미학적 위기'가 기본적인 고고학적 자료를 수집하는 그의 방식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상의 주해들을 읽다 보면 한편으로는 역사의 창조자이어야 할 사람이, 다른 한편으로는 미학적 교조의 열렬한 옹호자 역할을 하는 모순적인 모습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론적 불편함 또한 확연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모순을 단순히 “오직 겉모양”만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구조적/구성요소적이라고 해야 하리라. 알렉스 포츠가 입증했듯이, 『고대미술사』는 이런 역설 속에 역사적 위치가 누누이 되풀이되는, '영원한' 가설들로 구성되고, 그리하여 이 역설 속에 그 가설들이 결국 자신의 역사화에 의해 전복되는, 일련의 역설을 통해서만 시각예술에 대한 현대적 지식의 관점을 정립한다. 이러한 모순은 현재 여기 진행 중인 역사적 모험정신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과 거리가 멀다-이는 역사의 존재는 자신의 연구 대상들로부터만 추정을 도출한다는 생각에서, 실증주의자나 순진한 역사가만이 할 수 있을 순진한 생각이다. 오히려 이러한 모순은 말 그대로 (역사적) 모험정신의 토대이다.
이 역설의 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빙켈만의 작업 내에서 다양한 “이해의 수준들”로 분리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불충분하다. 아니 실제로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너무 달라서 결국에는 한쪽 말단은 미학적 교조, 시간-무관한 기준이 되고 다른 말단은 역사적 관행, “시간 분석”이 되는, 심각히 모순적인 양극성을 형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리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결국 '미술사' 표현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난처한 지경에 빠진다. 최소한 그 표현의 심각한 문제점을 쉽게 감지할 수 있으리라. 즉, 예술의 역사를 기록하려면 예술의 어떤 개념을 내포해야 할까? 그리고 예술 작품에 이를 적용하려면 어떤 역사 개념을 내포해야 할까? 이 문제는 모든 것이 서로 맞물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다. 말하지면, 한 요소와 관련하여 한 가지 자세를 취하면 다른 모든 요소에 대해서도 필히 그에 따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역사에 대한 철학이 없이-그저 즉흥적이며 진짜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서- 그리고 특정 시간적 모델에 대한 선택이 없는 예술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꼭 같이 예술에 대한 철학이 없고 특정 심미적 모델에 대한 선택이 없는 예술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빙켈만에서는 이 두 가지 모델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이로 아마 『고대미술사』 프롤로그의 마지막에 동의어 중복으로 독자들에게 미스터리로 보일 수 있는 성격의 중언부언, “이 예술의 역사는 예술과 시간에 대한 헌신이다”라는 헌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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