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잘데기 없는 짓/살아남은 이미지

살아남은 이미지 p26~31

by 어정버정 2024. 9. 8.

나흐레븐, 또는 시간의 인류학: 타일러와 함께한 바르부르크

 

다른 시간의 이름은 생존”(나흐레븐)이다. 우리는 핵심 표현, 바르부르크의 진취적 전반 기획을 관통하는 신비한 좌우명, 나흐레븐 더 안티커Nachleben der Antike(고대의 생존)를 알고 있다. 이것이 근본적인 난제이다. 이를 위해 바르부르크가 포함된 다양한 지형에서 발생한 퇴적과 단층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기록 보관소와 도서관에 모든 자료를 수집하며 모아들였다. 이런 근본적인 난제로 또한 바르부르크가 짧은 시간 머물며, 아메리칸 인디언 경험의 지형 위에서 직접 직면하려고 했다. 따라서 바르부르크가 고대와 현대 서구 세계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끈기있게 정교하게 발전시킨 문화 과학의 맥락에서 생존의 개념을 살펴보기 전에, 바르부르크의 호피족 나라 여행 중 대체된특정한 지형 위에서 아직 실험적인 단계로 이런 어려운 문제 사안이 부상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인류학의 이론적, 체험적 기능-지식의 영역을 탈영토화하고 차이를 대상들에 재도입하고, 시대착오를 역사로 재도입하는 역량-은 이로써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바르부르크가 평생 외고 다니며 연구한 '생존/존속'은 원래 앵글로색슨 인류학의 개념이었다. 1911, 바르부르크의 절친한 친구이자 여러 면에서 그의 난제에 관심을 공유했던 율리우스 폰 슐로저가 밀랍을 이용한 조형작 연습들의 '생존survival'에 흥미가 동했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자신의 모국어 어휘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나흐레븐’, 혹은 포트레븐혹은 우버레븐’Nachleben, Fortleben잔존 Uberleben생존이 아니라 영어로 생존survival’이라고 썼고 역시 바르부르크도 여러 차례 이를 사용했다. 이것은 인용, 차용, 실로 개념적 전위의 중요한 조짐이다. 슐로서가 인용한 내용, 그리고 그 이전에 바르부르크가 이미 차용한 아니, 전위/대체한 개념은 다름 아닌 위대한 영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B. 타일러의 생존이다. 1895년 바르부르크가 갑자기 유럽을 떠나 뉴멕시코로 떠났을 때, 그는 프리츠 색슬이 믿었던 것처럼 원형을 향한 여행이 아니라 생존을 향한 여행을 떠난 것이었고, 그의 이론적 판단 참조 기준은 색슬이 쓴 것처럼 제임스 G. 프레이저가 아니라 에드워드 B. 타일러였다. 적어도 내가 알아낸 바로는, 바르부르크에 대한 논평자들은 이 인류학적 원천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이들은 차이점만 고려해 넣었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타일러가 촉구한 문화의 과학은 주로 이탈리아 예술에 관심을 가진 부르크하르트의 제자의 눈에 전혀 차지를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문화의 과학1871년 런던에서 출간된 원시문화(1871)라는 책 초장에서 옹립이 되었는데, 아주 큰 영향을 미쳐, 19세기 말에는 인류학을 타일러 씨의 과학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물론 이 경우처럼 한 작품의 명성이 엄청나다고 해도 이론적 원천으로서 지위를 보증하기에 충분하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바르부르크의 문화과학(Kulturwissenschaft)과 타일러의 문화과학 사이에 존재하는 접점은 역사와 인류학 사이 구체적인 연결 고리의 확립에 놓여 있다.

사실 이들 각각은 어떤 종류의 역사든 요구되는 진화 모델과 인류학으로 종종 기인하는 시간적 차원의 부재 사이의 사실상 끝이 나지 않는 반목-레비-스트라우스가 한 세기가 지나서도 여전히 비판하는 부분이다-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바르부르크는 미술사 분야를 인류학으로 활짝 개방했는데, 이는 그 속에서 새로운 연구 대상을 발견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시간을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열어주기위해서이기도 했다. 타일러, 그 나름대로, 엄격하게 대칭적인 작업을 수행하고자 했다. 그는 '문화 과학'의 근본적인 문제는 '(문화) 발달'의 문제이며, 이 발달은 자연과학의 모델에 따라 공식으로 만들 수도 있을 진화 법칙으로 축소될 수 없으며, 인류학자는 그 역사, 그리고 똑같이, 고고학을 확립하지 않고는 '문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확고한 주장으로 시작했다:

 

“[문화 전반의] 지적 움직임의 일반 법칙을 간파하려고 노력하는 일로, 오히려 치열한 현대적 관심이 없는 고대 유물들 사이에서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이득을 얻는다.”

 

바르부르크라면 분명 현재로서는 관심이 결여된 대상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방법론적 원칙은 전혀 거부하지 않았으리라. 문화에서 의미/방향을 만드는 것은 종종 그 문화의 증상이고, 생각하지 않은 측면 혹은, 시대착오이다. 지금 우리는 이미 생존들의 유령 시간이라 부를 수 있는 시대에 있다. 타일러는 원시문화초장에 이를 이론의 차원에서 소개하며, ‘문화의 발전에 대한 두 가지 경쟁 이론, '진보론''퇴행론'을 변증법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이들 둘은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그 속에서 진화를 지향하는 움직임과 진화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교차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종의 시간적 매듭이 형성될 것이다. 이러한 교차점의 공간에는 곧 두 가지 모순된 시간적 상태를 미분하여, 생존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실제로 타일러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려는 시도에서 이 개념에 대부분의 노력을 여기에 쏟았다.

 

***

 

**

그러나 그는 이미 다른 맥락에서, 그리고 다른 종류의 시간적 경험의 한가운데서, 마치 저절로 튀어나온 듯이, 대체/전위 중에, 즉 멕시코를 여행하는 동안에 이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18563월부터 6월까지 타일러는 말을 타고 멕시코 전역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관찰하고 수천 개의 메모를 남겼다. 1861년에 그는 여행 일지, 그 자신의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를 출간했는데, 여기에는 차례차례로 그리고 그도 놀란 듯이 모기와 해적, 악어와 선교사 아버지, 노예 무역과 아즈텍의 흔적, 바로크 양식의 교회와 인디언 의상, 지진과 총기 사용, 식탁 매너와 계산 방법, 박물관 물건과 길거리 싸움 등등, 하나하나 등장한다. 아나후악Anahuac은 저자의 끊임없는 놀라움을 목격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책이다. 즉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단 하나의 경험이 이런 시대착오적인 매듭‘, 이런 과거와 현재의 멜랑주(잡혼, 혼합)을 아우를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내보인다. 이와같이 멕시코 성주간 축제 기간 동안 그는 반은 기독교, 반은 이교도인 여러 이질적인 기념제를 목격했다. 그리고 그란데의 원주민 시장에서 그는 콜럼버스 이전의 사본에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숫자 체계를 발견했다. 또 다른 예는 멕시코 바케로(목동)들이 착용하는 박차에 고대 희생용 칼의 장식이 공존하는 것이었다. (그림 4, 5).

이 모든 것에 직면한 타일러는 문화의 극도의 다양성과 현기증 나는 복잡성(인류학자 프레이저를 검토하는 데도 느껴진다)을 발견했지만, 그는 또한 더 압도적인 것(이는 프레이저를 살펴보는 일에서 전혀 감지할 수 없다)도 발견했는데, 바로 어느 특정 문화가 지금 진행 중인 표면, 즉 현재에 시간의 현기증 나는 유희를 목격한 것이다. 이 현기증은 무엇보다도 현재가 여러 다양한 과거들로 짜인 그물이라는 강력하고 센세이셔널한 느낌에서-이것은 그 자체로 명백한 것이지만, 그 방법론적 결과는 덜 그렇다-그대로 느껴진다. 그런 이유로 타일러는 인류학자는 각각의 관찰마다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보는 것들의 수평적복잡성은 무엇보다도 시간의 수직적또는 언어학 용어를 사용하자면 시간의 패러다임적 복잡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보, 퇴화, 생존, 회복, 수정은 모두 복잡한 문명의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는 결합의 방식이다. 우리 일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만 흘깃 봐도 우리가 어디까지가 문명의 원조이고, 어디까지가 지난 오랜 세월의 결과의 전달자이자 수정자에 불과한지를 곱씹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시간대만 아는 사람이라면 살고 있는 방을 둘러보며 여기서 무얼 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여기에는 아시리아의 “인동덩굴”이 있고, 저기에는 앙주 공국의 백합 문장, 그리스식 테두리의 처마돌림띠가 천장을 빙둘러 감싸고, 루이 14세와 그 부모 르네상스 스타일이 그 사이에 거울을 공유하고 있다. 변형되고, 바뀌고, 훼손되어, 그런 예술의 요소에 여전히 그 역사를 그 위에 선명하게 새기고 있으며, 아직 그보다 역사가 한층 더 넘어 멀리 읽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게 식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기에 역사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쓰잘데기 없는 짓 > 살아남은 이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남은 이미지 p20-23  (0) 2024.09.01
살아남은 이미지 p16~20  (0) 2024.08.31
살아남은 이미지 p13~16  (1) 2024.08.27
살아남은 이미지 9-13  (0) 2024.08.24
the surviving image 5-9  (0) 2024.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