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중 거부를 통해 부르크하르트는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의 “제3의 길”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바르부르크는 나중에 부르크하르트가 했던 이런 기본적인 선택을 채택했다. (사실은 무엇보다 먼저 사실이 제기하는 기본적인 질문때문에 중요하니까) 사실을 넘어서는 문헌학자가 되고 (기본적인 질문은 무엇보다 먼저 역사에서 독특한 작품들에 적용될 가치가 있으니까) 체계를 넘어서는 철학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제3의 길', 목적론이나 절대 비관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문화의 역사적 '존재'(다세인, 레븐)를, 말하자면 그 복잡성을 인정하는 일이 요구된다. 부르크하르트는 진정한 역사는 '연대기' 자체만큼이나 '사전 형성된 이론들'에서 파생된 ‘개념’에 의해서도 왜곡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왜냐면 그에게 역사란 “다측면적이고, 우연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기본적인 무능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해주는 지적인 노력이라고 생각했다(unsere Unfahigkeit des Verstandnisses fir das Bunte, Zufallige).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부르크하르트는 '선'도 '악'도, '시작'(모든 것이 유래하는 기원-원천)도 '끝'(모든 역사가 향하는 방향)도 필요 없는 이상한 시대의 변증법을 확립했다. “생명"의 복잡성, 불순함을 표현하는 데는 그런 것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뿌리줄기로, 반복으로, 증상으로 이뤄져 있다. 애국적 역사나 인종적 역사와 더불어, 지역적 역사는 그 관심 대상이 아니다. 그러한 역사에는 밀접한 관계와 차이를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보편적 역사도 그 대상이 아니다. 부르크하르트는 이 모든 뿌리줄기들의 '체계'에 대한 보편적 공식을 찾으려는 시도를 미리 포기했기 때문이다.
기원에 대한 가설을 세우는 일로 거추장스럽게 위축된 역사철학자들은 그 결과 미래에 대해서도 계측을 해야 한다. 우리는 하지만, 시작에 대한 이론은 건너뛸 수 있으니, 아무도 우리에게 종말론적인 이론을 요구하지 않으리라[…]토양과 기후의 영향과 같은 의문들은[…]역사 철학자들에게는 입문격인 의문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으며, 우리의 관심 범위를 상당히 벗어난다. 모든 우주론, 인종 이론, 고대 대륙의 지리학 등등에도 거의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다른 모든 지식의 연구는 기원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다. 결국, 우리가 나중에 국가의 경우에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우리가 과거에서 형성하는 그림은 우리 마음속 순수한 구성물 혹은 단순히 자신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또는 인종과 인종 사이에서 도출된 결론은 거의 가치가 없다. 우리가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원은 어쨌든 상당히 늦은 단계들이다.… 더 접근하기 쉬운 지역 역사의 특징은, 부분적으로는 착시 현상에서, 우리 자신의 훨씬 간절한 이해의 열의에서 비롯되며, 이는 큰 맹목이 동반될 수 있다.
지역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면서 부르크하르트는 변화와 안정 사이의 관계도 놓치지 않았다. 그에게 역사의 ‘생명’은 개별적이고 맥락적인 사건들의 공간적 유희일 뿐만 아니라, 시간의 유희, 변화하는 것과 변화에 저항하는 것의 변증법이기도 하다. 부르크하르트에게 역사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서로 변화하고 계승하는 것들에 대한 서사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는 안정적 힘(Stadiles/상수)에 미치는 움직이는 요소들(Bewegtes/변수)의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상호적인 영향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의 “생명”은 형태학의 영역에 해당하며, 그러한 변증법적인 또는 “상호 영향력”의 가시적인 결정체를 “형태”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형태의 유희이다.
[...] 왜냐하면 시간은 영적 생명(das geistige Leben)의 덮개를 덮고 형태(die Formen)를 끊임없이 길게 끌고 다니기 때문에, 역사가의 임무는 동일한, 사물의 두 측면을 떼어내어, 그런 점에서 영적인 발현은, 첫째로, 어떤 영역에서 인식되든 간에, 우연으로, 지나가는 순간으로, 우리가 가늠할 능력 너머 광대한 전체의 일부를 형성하는 일시적인 경과의 순간들로 등장하는 것들 아래, 역사적인 측면(eine geschichtliche Seite)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로 모든 사건에는 불멸의 모습을 띠게 되는 영적인 측면(eine geistige Seite)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넋은 변화를 알지만 필멸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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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esprit”이라는 단어를 두고보면, 철학자가 아니라 부르크하르트는 역사가이자 인류학자로서, 이 넋으로 ‘문화’의 영역을 겨냥했다. 따라서 바르부르크가 “정신-사학자”의 지위를 주장하기 전부터 부르크하르트는 이미 형태학이란 관점에서, 혹은 문화의 '정신적 형태'에 대한 미학의 관점에서 ‘쿨투르게슈트’를 생각했다. 그는 이게 모든 역사 프로젝트에서 중심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지만, 이는 “낭만적-공상적” 방식(nicht etwa romantisch-phantastisch)에서는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놀라운 번데기의 변태 과정”(als einen wundersamen Prozess von Verpuppungen)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보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부르크하르트가 자신의 노트를 이러한 시각적 기호표기체계로 가득 채워 나갔다.(그림 8) 그는 한 시대의 문화는 문헌 자료와 역사 속 사건에서 감지할 수 있지만 똑같이 그림, 건축적 장식, 의복의 세부, 사람들이 꾸밈새를 바꾼 풍경, 의전적 상상력, 가장 주변적인 인물, 예를 들어 그로테스크에서도 아주 잘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부르크하르트의 ‘역사 미학화’는 인식론적 나약함이나 아마추어 예술 애호가적 기벽, 또는 엄격한 의미의 역사가로서 학제적인 변덕스러움 때문이라고 잘못 알려져 왔다. 그러나 부르크하르트는 잔뜩 취해 앞뒤 몽땅 잊어버리도록 두는 그런 술꾼처럼 역사를 미학화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변화와 안정 사이, 기쉬스트Geschichte/역사와 티푸스Typus/유형 사이의 시간적 경첩이 형식적 경첩이며, “번데기의 변태 과정”과 같은 작용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그저-그 자체로 중요한 가르침으로-인식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역사를 ‘미학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부르크하르트에게 쿨투르Kultur(문화)는 헤겔에게 어느 면에서 ‘역사의 이성’과 같은 그런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문화의 역사 없이는 역사가 불가능하며, 이미지의 인류학적, 형태학적 공명에 열려 있는 예술사 없이는 문화의 역사도 있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부르크하르트가 초석을 다지고 남긴 과제이며, 바르부르크와 뵐플린이 각자의 방식으로 완수하지는 못하더라도, 이어받아 확장하고자 하던 과제이다.
부르크하르트는 필수적인 이러한 형태론 정립이 역사가의 임무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으며, 언젠가는 괴테부터 이를테면, 카를로 긴츠부르크에 이르기까지 이 대단히 중요한 형태론적 풍경의 도면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부르크하르트 식의 이론적 어휘의 뚜렷한 시각적 성격도 이로 설명된다. 이는 칸트의 선험과 헤겔의 '사변'에 대한 격렬한 거부, 움츠려 발을 물리는 후퇴를 선보이고, 대칭적으로 역사가의 ‘볼’ 권리와 '관조'(Anschauung), 심지어 '상상'(Phantasie)을 누릴 권리를 주장한다. 부르크하르트에게 역사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타블로’(Bild)처럼 구성된다: “이미지, 타블로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Bilder, Tableaux, das ist's what ich méchte)라는 말을 일찍이 1844년에 썼다. 바르부르크가 『므네모신 아틀라스』를 이루는 판지들 모음으로 실천에 옮기기 전에도 자신만의 특유의 방식으로 삼았다. 하고많은 가능한 예들 중에서도 ‘그리자이여-회색조’ 색으로 선택한 것 자체가 특정 역사적 순간(예를 들어 만테냐의 시간)이라는 현재가 고고학적 거리, 고고학적 시대착오성, 고대의 인물들의 유령 같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자신의 임무를 확고히 하는 시간의 형태를 표현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간과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시간의 형태”라는 ‘형태론’ 없이는 어떤 역사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 수반된 추론은 필수적인 명료한 설명 없이는 불완전할 것이다. 즉 힘의 ‘역동성’ 또는 분석 없이는 ‘형태’의 ‘형태론’ 혹은 분석도 있을 수 없다. 이를 생략하는 일은 형태론이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처럼, 아무 소득 없는 유형론으로 축소시키는 일이다. 실제로는 형태는, 우스꽝스럽든 숭고하든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 즉 힘의 놀이의 희생자 또는 타락한 요소[les chutes]인데, 형태가 한 시대/시간들의 반영이라고 가정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부르크하르트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생명’의 세 번째 특징이다. ‘유형'(Typus)과 ’발달‘(Entwicklung)의 역동성은 역사의 ’주요 문제'(Hauptproblem)를 구성한다. 문제의 이 현상은 긴박하게 진동하는 현상이며 엄청난 복잡성을 발생한다:
“이 주요 현상(die Wirkung des Hauptphanomens)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역사적 생명/삶(das geschichtliche Leben) 그와 더불어 역사적 복잡한 다양성, 그 변장, 그 자유와 구속이다. 어떤 떄는 대중의 얼굴을, 어떤 때는 개인을 면모를 띠고, 때로는 낙관적으로, 때로는 비관적인 기분이 요동을 치고, 국가, 종교, 문명을 세우고 파괴하고, 때로는 스스로 어두운 수수께끼가 되어 생각보다는 상상에서 태어난 무의미한 감정으로 움직이며, 때로는 생각으로만 동반하거나 아니면 오래 후에 성취될 것에 대한 고립된 예감에 다시 가득 차기도 한다.
따라서 “역사적 생명”(geschichtliches Leben)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시간을 “동력”(Krafte, Machte) 또는 “힘”(Potenzen)의 놀이로 이해하려는 것이며, 부르크하르트는 이로부터 “모든 종류의 생명의 형태”(Lebensformen)가 유래한다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 그는 “다양한 힘(Potenzen)이 나란히 또는 차례로 나타나는 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설명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했다. 그러나 임무수행이 매우 어려운데, 왜냐하면 힘[영향력]은 걸핏하면 눈을 피해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너무 폭력적이고 편재할 때는 관찰하기 어렵고, 너무 잠재적('영향력' 같이)이고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관찰하기 어렵다. 힘이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드러난 힘과 잠재적 힘-는 단순히 일화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성을 바라는 우리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결과, 두 가지 갈래를 낳는다.
첫 번째는 ‘시간의 변증법’을 산출한다. 우리가 증상의 개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다. 부르크하르트를 읽으면, 우리는 이 변증법이 ‘잠복기’(Latenzen)와 ‘위기’(Krisen) 사이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논쟁의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실 잠복기의 놀음/영향 없이 역사적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우리가 잠재력(Jatente Krafte)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에 대해 무지하다, 그리고 갑자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신적 전염을 미리 내다볼 수가 없다.” 이러한 역사적, 집단적 조건은 “인간에게는 어느 한 쪽이 나머지를 완전 제외하고 활동하는 경우는 없으며, 비록 일부 요소가 약하고 무의식적인 방식으로(im Unbewussten) 기능할지라도 전체가 항상 작용하고 있다”는 심리적, 개인적 대응물이 존재한다.
이제 모든 잠복기는 사건의 표면을 향해 알아서 헤쳐나갈 길을 찾는다. 부르크하르트에게 ‘위기’(Krise)라는 용어는 시간이 가진 자신의 힘을 발산하는 특히 효과적인 방법-‘콘트레탕contretemps’(박이 고르지 않은, 장애)를 통해 또는 증상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가리킨다. 『세계사에 대한 성찰』에서 적어도 두 장은 전적으로 이런 의문을 파고든다. 그리고 책의 다른 장 모두 조금씩, 고정된 형태와 그것을 흔들어대는 힘, 또는 우세한 힘과 그것의 실패를 초래하는 형태 사이의 분석하기 어려운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관찰에 어느 정도는 관심 두고 할애한다: “역사에서 하락세는 항상 내적 퇴보, 생명의 감소로 준비를 갖춘다. 그런 뒤에야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전체를 종결시킬 수 있다… 뭐든 어느 특정 원인으로 터져 나오는 위기는 다른 많은 원인들로 촉발된 폭풍우같은 전반적 고조로 힘을 받는다. 그래도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누구도 최종적으로 어느 힘이 우세를 점할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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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르크하르트에게 역사의 실천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연속되는 사실의 분석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의 무의식과 같은 것들을, 모든 지연과 재앙까지 분석하는 일과 맞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보기에, 바르부르크는 이러한 방법론적 결정의 결과들을 그의 이미지의 역사에 끌어들인 것 같다. 그러므로 역사는 시간의 증상 또는 심지어 시간의 병리라고 할 수 있는데, 비극의 요소가 어디에나 눈에 선하다고 해서, 단순한 도덕적 비관주의로 축소하는 것은 잘못이다. 부르크하르트는 무엇보다도 형태학적이고 역동적인 측면에서 시간의 '재앙', 실제 '질병'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역사가는 각각의 힘] 국가, 종교, 문화를 [분석해야 하며], 먼저 이들의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상호 작용, 특히 [문화라는] 하나의 변수가 [국가와 종교] 두 상수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어야 한다. 그런 역사의 전체 과정의 가속화된 움직임, 위기와 혁명 이론, 그런 뒤 또한다른 모든 움직임의 갑작스러운 흡수, 나머지 모든 생명의 일반적인 소요, 파열과 반작용, 한 마디로, 폭풍 이론(Surmlehre)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동요와 혼란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한 지점, 즉 사물의 영원한 중심인 인간, 현재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고통, 노력, 행위를 하는 인간에서 출발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연구는 어떤 의미에서 병리학적인(pathologisch)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여전히 시간의 변증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까? 그렇다. 이 용어를 해결보다는 긴장으로 가득 찬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선형적이며 특정 방향을 지향하기보다는 포위되고, 침체된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그렇다. “안정된 힘"(Stabiles)과 ”이동하는 요소“(Bewegtes)의 변증법은 역사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파장의 비판을 불러들였는데, 이로 부르크하르트가 여기서 ‘위기’, ‘혁명’, ‘파열,’ ‘반응’, ‘임시적 흡수’, ‘소요’, ‘작은 격동’이라고 하던…무한히 늘릴 수 있는 목록들의 시간 모델을 복잡하게 하고, 증식시키고, 심지어 방향을 잃게 하는 일만 가중되었다. ‘무의식’(Unbewusstes)이나 병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여기서 작동하는 변증법이 시간의 불순함과 시대착오성을 보여줄 뿐임을 확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역사에 대한 형태적이고 역동적인 접근법의 두 번째 교훈, 즉 시간이 증상을 해방시키고 이와 더불어 유령이 행동하게 된다는 두 번째 결과로 간주될 수 있다. 부르크하르트에게 시간은 이미 집착의 시간, 혼종화, 시대착오의 시간이며, 이런 점에서 곧장 바르부르크의 “생존” 개념을 예견한다.
따라서 부르크하르트는 서구 문화를 “모든 시대, 모든 민족, 모든 문명의 전통이 가득 스며든” 무한한 영향력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명확한 한계는 없다”고 말하며, 어떤 문화든 “유기적 조직체”는 다만 “영원한 “점진적 산물”이자 “대조와 친밀성의 영향”으로 특징지어지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결론은 “역사에서 모든 것은 마치 위대한 영적 사건들의 수태과정(Befruchtung)이 필수 요소인 것처럼 완전히 서출이(Bastardtum) 된다”는 것이다.
이제 이 불순물은 공시적共時的인 것만이 아니라 시간 자체와 리듬, 그리고 그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부르크하르트는 역사를 “인류의 연령단계”로 분리하기 위해 시기들을 사용하는 데 의존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변형”과, 따라서 “불완전성”을 전제로 하는 “연이은 화신의 무한한 숫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석하기 어려운, “파괴”와 “생존”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무언가의 혼합물과 똑같아진다. 여기서 부르크하르트가 특히나, 후대의 바르부르크가 중세와 르네상스를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을 거부한 것처럼, 야만과 문명을 분리하는 위계적 역사로 시대화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는 모습이 가장 나흘레벤의 개념에 근접해 있다.
우리는 초기 국가 형성으로 역사에 대한 설명을 시작할 수 없지만 야만에서 문명으로의 전환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서 또한 개념이 너무 모호하다… 최종 분석에서 이 단어를 쓰느냐 마느냐는 기분에 휘둘린다. 나는 새를 새장에 가두는 것은 미개한 만행이라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인류의 유아기부터 석화된 형태로 가장 진보된 문명에서 아마 성스러운 또는 정치적 이유로, 개별 인간 희생물 같은 형태로 살아남은 이들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무수한 요소들 또한 아마도 일부 잊힌 사람들에게서 인류에게 물려받은 획득물로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lebt auch unbewusst weiter). 민족과 개인에게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문화의 흔적(unbewusstes Aufsummieren von Kulturresultaten)은 항상 고려해서 포함하여야 한다. 이러한 성장과 쇠퇴(Wachsen und Vergehen)는 더 높고 불가해한 생명의 법칙(höhere, unergründliche Lebensgesetze)을 따른다.
같은 페이지에서 부르크하르트는 “존속”과 이미 나온 “생존”을 의미하는 Weiterleben,바이터레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나흘레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이 '생존'을 통해 시간을 긴장감으로 가득 찬 불순한 게임, 잠재된 힘과 바르부르크와 함께, 이미지의 '생명/삶'(Leben)이라고 할 수 있는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힘들 사이의 논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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