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양한 석유 회사들 사내 출판물 임원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헬싱키에 가야 했다. 사실이지 정말 마지못해 가는 길이었다. 11월 말이었고 핀란드 수도의 일기 예보는 다소 암울했지만 시벨리우스 음악에 대한 흠모와 완전 잊혀진 노벨문학상 수상자 프란스 에밀 실란푀에의 잊을 수 없는 몇 페이지 작품에 대한 감탄은 핀란드 방문에 흥미를 돋우기에 넉넉했다. 또한 안개가 끼지 않는 날에는 에스트뇌스 반도의 맨 끄트머리에서 금빛 돔형 교회와 멋진 건물들로 이뤄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눈부신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것들이 내가 경험한 겨울과는 생판 다른 끔찍한 겨울을 마주할 충분한 이유거리가 되었다. 실제로 영하 40도의 헬싱키는 범접할 수 없는 투명한 수정 속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 건물의 벽돌 하나하나, 대리석 눈 아래 묻힌 공원 철책들 모서리 하나하나, 공공 기념비들의 디테일 하나하나가 예리하게, 부담스러울 지경으로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도시의 거리를 나다니는 일은 치명적으로 위험한 위업이었지만, 마음 들쑤시는 미학적 보상의 과업이기도 했다. 컨퍼런스 동료들에게 항구 동쪽 끝에 있는 바닷가 둔치 산책로까지 내처 가서 표트르 대제의 수도를 보겠다는 뜻을 비치자, 동료들은 나를 생존 가능성이라곤 전혀 없는 바보인양 바라보았다. 의무적인 저녁 식사 중 한 번은 얼토당토 터무니없는 나의 계획으로 야기된 어느 정도 경계가 없지는 않은 핀란드 동료가 예의로라도 내게 직면해야 할 위험에 대해 공손히 경고했다. ‘바람이 불면 그 길에 있는 모든 것이 얼음 덩어리로 변하고, 어떤 외투도, 아무리 무겁고, 아무리 추위를 잘 막는대도 당신을 보호할 수 없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나는 바람 잔 날, 잠깐 빛이라도 찬란한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는 아주 드문 날 중 하나라면, 북쪽의 베네치아를 먼 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은 내 꿈이 실현될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가능하기는 하다고 동의했지만, 날씨가 바뀐다 싶으면 즉시 호텔로 나를 데려갈 차량이 준비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한 해의 이런 시기에는 그런 날씨가 불과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회사의 핀란드 측 대표단들이 차를 제공하는 일을 떠맡았고 내게 해가 날 성싶은 때를 미리 알려주기로 했다.
기회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이틀 후 전화가 와서 다음 날, 우리 회사 기상학자들이 세 시간 가량 구름 한 점 없이 햇볕 창창한 날씨가 보장하여, 차가 나를 데리러 올 것이라고 했다. 다음 날 차가 철두철미 시간 맞춰 호텔 입구에 들어섰다. 우리는 도시의 일부를 빙 두르고 부두가 위치한 외곽으로 이어지는 대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운전기사는 핀란드어만 구사할 수 있었고, 내 쪽에서 얼마 안 되는 몇 마디 스웨덴어로는 그와 소통은 요원했다. 그리고 나는 칼레발라 서사시에서 나온 이 전투마차 몰이꾼에게 할 말이 많지 않았다. 가는 길이 더 길 줄 알았는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자 펼쳐진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 공기의 투명도는 완벽했다. 부두의 크레인 하나하나, 해안을 따라 난 부들 하나하나, 잔잔한 만의 물속을 따라 비현실적인 침묵 속에서 움직이는 선박 하나하나 아주 순수한 존재감을 선보여 나로서는 세상이 막 시작된 것처럼 느껴졌다. 표트르 로마노프가 전형적인 독재자의 과대한 망상과 이반 대제의 교활한 아들로서 야비한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건설한 도시도 똑같이 정밀한 모습으로 배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얀 건물, 어슴프레 빛나는 교회의 둥근지붕, 핏빛 화강암 부두들, 운하를 가로지르는 상쾌한 이탈리아식 다리가 믿을 수 없이 가까워 보여, 내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해군성 건물 정면 위로 휘날리는 거대한 붉은 깃발을 보자 현실로 되돌아오긴 했지만 그 순간에는 속절없는 완벽한 비율과 반투명하고 이 세상 같지 않은 분위기로 감탄만 터져나오는 주변 광경에 어리석은 장난질일랑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아스팔트 산책로를 둘러싸고 있는 화강암 난간 가장자리에 앉아 발은 강철 거울 빛 물 밖으로 늘어뜨리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기적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가 우리가 관련된 이 이야기에서 특출하게 중요한 등장인물인 부정기 화물증기선을 내가 처음 본 때였다. 부랑선이란 대형 선사에는 전혀 연계되지 않은 낮은 톤수 화물선을 가리키는 용어로, 가끔씩 잡히는 운송화물을 찾아 항구와 항구 사이를 항해하다 선적되면 세계 어디든 날라준다. 그들은 가난한 밥법이로 버티며, 배의 위태로운 상태로 예상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 다 낡은 선체를 끌고 다닌다.
부정기 증기선이 부상당한 거대한 도마뱀처럼 천천히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화려한 경이를 배경으로 낡은 옆면에 물 접하는 데까지 온통 녹과 찌끼로 더러운 자국이 덕지덕지 때가 낀 배가 그 장면을 파고들었다. 선장이 있는 함교와 승무원과 가끔 있는 승객이 머무는 갑판에 가로놓인 선실들은 흰색으로 칠한 지 오래되어 이제 더께와 기름, 오줌으로 뒤덮여 형용할 수 없는 색깔, 비참한 색깔을, 돌이킬 수 없는 퇴폐의, 절망적이고 끊임없는 혹사의 색을 한꺼풀 덮고 있었다. 있을 법하지 않는 요상한 화물선은 기계의 고통에 찬 헐떡임과 어느 순간이든 영원히 침묵할 수 있는 위협을 해대는 불규칙한 리듬의 구동봉에 맞춰 물속을 미끄러져 나갔다. 배는 이제껏 내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던 고요하고 꿈결 같은 광경의 전면을 차지했고, 당혹한 나의 놀라움은 도무지 정의하기 어려운 무언가로 바뀌었다. 이 바다 쓰레기 같은 유목민은 지구상의 우리 운명에 대한 일종의 증언을 하고 있었다. 풀비스 에리스(pulvis eris 진토가 되리라), 이 세련된 금속빛 바다 뒤로 마지막 짜르들의 수도가 드리운 금색과 흰색 비전을 두고 더욱 절실하게 웅변적으로 드러났다. 핀란드 해안 쪽 건물과 선창의 매끈한 윤곽이 내 옆에서 솟아올랐다. 그 순간 나는 부정기 증기선이 마치 불운한 형제처럼, 인간의 방관과 탐욕의 희생양처럼, 전 세계 바다에서 그 불행의 음산한 항적을 따라 계속 추적하겠다는 완고한 결의로 대응하고 있는 듯하여, 배에 따뜻한 연대의 감정이 뭉클 피어올랐다. 나는 그 배가 만 안쪽으로, 요리조리 힘겹게 움직일 필요 없이, 아마 가능한 한 적은 비용으로 정박할 수 있는 조용한 부두를 찾아,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선미에는 온두라스 국기가 걸려 있었다. 배이름 마지막 글자들은 파도로 거의 지워져…cion 시온이 간신히 보였다. 조롱 마냥 아이러니하게도 이 낡은 화물선의 이름은 아마도 알시온(평온함)인가 보았다. 훼손된 글자 아래에서 조금 어렵사리 푸에르토 코르테스, 등록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 관련한 내 경험이 미천하고 얽히고설킨 야비한 해상 상업 네트워크는 도통 몰라 북유럽 사이에서 가장 등한히 된 조화로운 파노라마 한가운데 카리브해에서 온 비참한 화물선의 출현으로 빚어진 대조를 두고 나는 무의미한 추측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온두라스 배로 말미암아 나는 내 세상으로, 나의 가장 근본적인 기억의 중심으로 돌아갔고, 에스트뇌스 반도 끝 거기와는 아예 아무 상관도 없었다. 다행히도 레밍쾨이넨을 닮은 전차 마부가 다가와 하늘을 가리켰다. 임박한 기온 변화가 알리는 납빛 무거운 구름들이 아찔하게 빠른 속도로 모여들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자, 내 동료들은 내가 그토록 자주 언급하고 너무나도 목을 빼며 간절해 하던 경험에 대해 질문했다. 나는 몇 마디 상투적이고 걱정 덜어주는 말을 해주고 곤경을 벗었다. 부정기 증기선으로 스칸디나비아와 발트해의 현재와 너무도 이질적인 현실에 침참해 들어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할 말이 거의 없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허튼짓, 헛짓 > 부정기화물선의 마지막 기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정기화물선의 마지막 기항 p321-328 (0) | 2024.10.21 |
---|---|
부정기화물선 p315~321 (0) | 2024.10.16 |
부정기화물선의 마지막 기항 309-315 (0) | 2024.10.12 |
부정기 화물선의 마지막 귀향 p302-8 (0) | 2024.10.08 |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 (0) | 2024.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