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를 방문하고 니코야 만에서 소풍을 다녀온 지 몇 달 후, 파나마시티에서 나는 카예 교수회에서 내 시에 대해 강연해 달라고 초청을 받아 푸에르토리코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는 새벽에 출발했다. 공중에서 30분 지낸 후에 “환기 시스템의 사소한 오작동을 점검하기 위해” 비행기는 타고파나마 시티로 돌아와야 했다. 사실 엔진 하나가 고장 났고 다른 하나는 너무 무리를 받아 몹시 덜커덩거리던 가련한 737이 한시라도 더 이상 지탱할 수 있으리라는 가망이 없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길게 두 시간 동안 정비사들이, 걸신들린 개미처럼 앞서 말한 터빈에서 부품을 빼냈다가 다시 끼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확성기를 통해 사소한 오작동이 정상화되었으며 (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의심이 가는 이런 식의 언어를 즉석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지 항상 궁금하다) 이제 탑승해도 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비행기는 아무 사고 없이 이륙했다. 한 시간 반 후, 기장이 곧 쿠바 섬 상공을 비행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는 순간, 비행기가 한번 크게 요동쳐 승객들은 다들 창백한 침묵에 휩싸였고 그 사이로 자신들의 공포를 감추기 위해 통로를 오르내리던 승무원들의 다소 일관성 없는 설명만 들렸다. “왼쪽 엔진의 기계적 고장으로 인해 자메이카 킹스턴에 착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전벨트를 매고 좌석을 똑바로 세운 후 앞쪽 선반을 수직으로 세워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곧 하강을 시작합니다.” 말하는 침착한 기장의 목소리를 모든 승객이 좋은 신호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읽던 책을 덮고 킹스턴 만 경치를 즐길 준비를 했다. 전형적인 카리브해 한갓진 은신처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비행기가 항구 주변을 돌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기어오르는 울창한 초목에 감탄했다. 강한 녹색 초목에, 일부 장소들은 거의 검은색에 가까웠고, 어떤 곳에는 보드라운 대나무 새순과 격식 차려 곧게 뻗은 양치식물들로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공항에는 두 대의 비행기가 이륙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착륙 허가를 기다리며 계속 선회해야 했다. 기장은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엔진을 최대한 낮게 몰고 가며 활주로 초입에 착륙할 준비하며 하강하고 있었다. 나는 정중앙에 침몰한 군함이 있는 만을 정신없이 빠져 감탄을 하였다. 늘 착륙하자마자 잊어버리기 때문에 계속 그 군함이 어디 국적인지, 어떻게 난파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부두를 선회하며 지나던 길 하나에 나는 전혀 헷갈릴 일 없는 그 부정기화물선을, 이제 가장 끈질긴 기억 중에서 상위 부분을 차고앉은 그 배를 보았다. 배는 배곯고 피곤한 하룻밤 지나 문간에 누워 있는 개처럼 거기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이전처럼 눈높이에서 본 게 아니라, 공중에서도 틀림없노라 화물선을 식별해 내다니, 내가 그 화물선을 얼마나 줄줄이 꿰고 있었던가, 새삼스러웠다. 배가 우현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것 같았는데, 다시 빙 돌고 와 보니 부두의 크레인들이 화물을 싣고 있는 게 보였다. 여전히 화물창 한쪽으로만 쌓여 있었던 모양인지, 그런 이유로 기우뚱 배가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는 킹스턴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마이애미행 항공편은 모두 그날 아침에 떠났기 때문에 우리 남은 선택이란 737 엔진이 수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주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조용한 시내 호텔로 안내 받아갔고, 바는 키가 작고 백발이 성성한 흑인 남성이 능숙하게 꾸리고 있었는데, 그는 알고 봤더니 누구나 통조림 주스, 럼, 얼음 그리고 뺄 수 없는 라스키노 체리만 있다면 만든다고 생각하는 음료, 플랜터스 펀치를 만드는 데 진정한 전문가였다. 우리 호텔의 바텐더는 신성불가침한 고전적 제조법에 따라 파인애플 주스를 직접 짜고 럼과 얼음을 정전처럼 정확한 비율로 사용했다. 점심 열두 시였다. 네 번째 플랜터즈 펀치를 마실 즈음 점심을 먹는 일은 진중한 결과를 불러들이는 큰 실수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술 마시는 리듬을 늦추어, 해가 질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야 했다. 왜냐면 그 배를 방문해보자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오래되고 소중한 친구가 킹스턴에 자리잡고 있는 줄을 알면서도 그와 만남을 꺼리는 일처럼 예우상 방문과 연대의 원칙에 심각한 위배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같이 여행하는 동석자들 몇몇은 도시 카바레를 야밤에 둘러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 놓인 아주 지저분한 경험들을 미리 귀띔하는 일은 삼갔다. 나로서는 낮잠으로 재충전하여 상쾌한 기분으로 밤마실을 나가는 대신에 항구로 가서 손상당한 친구를 방문하고 호텔로 돌아와 바텐더와 함께 내가 탐구해 들어가기 시작한 뭔가 다른 가능성을 시도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바텐더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도 가볍고 흠잡을 데 없는 참치 샌드위치를 내놓았고, 식사 때에 맞춰 제공하는, 그날 저녁 술 마실 공간도 남겨두는 음식이었다. 햇볕이 참을 만해지자 니는 택시를 타고 항구로 향했다. 공중에서 화물선이 정박해 있는 부두의 위치를 미리 알아두었다. 큰 어려움 없이 도착했지만 입구 문이 잠겨 있었다. 성질 고약하고 거만한 한 잠보(zambo, 흑인과 인디언 혈통)가 우리는 들어올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창고들은 잠겨 있었고 부두에는 지금 움직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부정기 증기화물선에 대해 물었고, 배는 짐을 다 싣고 닻을 올리던 참이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내가 절친한 사람에게 실망을 안긴 기분이었다. 5파운드 지폐와 선장에게 긴급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조금 복잡한 설명에 경비원의 악의가 누그러졌고, 나를 들여보내 주며, 그는 30분 후면 문이 잠길 것이라고, 자신이 자리를 떠나면 부두는 밤새 잠겨 있을 것이고, 아무도 문을 열어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나는 배를 대었다고 생각되는 지점을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에, 닻은 이미 다 걸어올리고, 화물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푼타레나스에서 보았던 똑같은 선원들이, 여전히 면도를 하지 않은 채 얼룩진 티셔츠와 조각을 덧댄 버뮤다 반바지를 입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서, 저 멀리, 외부라기보다 내부를 심란하게, 육지에 남겨두고 떠나는 기만적이고 덧없이 일시적인 기억에 어떤 자그마한 향수의 흔적도 떨쳐내기 위해 이 뱃사람들은 정신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배는 등록지를 바꾸고 않았고, 온두라스 국기는 선미에 크게 열의는 내보이지 않고 걸려 있었고, 고물에는 ‘…CION’이라는 글자는 아득한 신비를 계속 내보이고 있었다. 자메이카에서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없었나 보았다. 선체가 수면 위로 눈에 띄게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항구의 어두운 물결을 눈에 띄게 힘겹게 헤쳐나가는 스크루 일부가 보였다. 전보다 훨씬 뭉클하게 웅변적인 모습으로, 이 대양을 섬기는 이 늙다리 하인의 쇠락한 상태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배는 다시 수만 번째 베르길리우스의 기오르기카(Georgica, 농경시) 나오는 라티움 황소처럼 체념한 채 험난한 모험을 떠나는 중이었다. 그 정도로 낡고, 두들겨 맞고, 복종적으로 보였다. 옹졸한 무관심투성이 사람들의 사업에 순종하며, 퇴락과 망각 외에는 아무런 보상도 없는 이런 희생이 더 고귀해 보였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 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고, 내 자신의 일부가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받았다. 사이렌이 울려 부두를 떠날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경비원이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얼마나 자신에게 큰 수고를 끼쳤는지 알리려고 허벅지에 연신 열쇠 꾸러미를 두드리고 있었다. 5파운드의 효과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나는 바에 돌아왔다. 전문 가이드의 따뜻한 환영을 받고 여러 섬에서 난 럼으로 가능한 조합들로 된 길을 안내받자, 밤에 꾸는 꿈과 깨어 있을 때 꾸는 꿈의 어두운 미로를 동행하던 친구이자 공범을 배신했다는 고통스러운 인상이 견디기 쉬워졌다. 첫 번째 동행 짝들이 킹스턴에서 밤 경험에 환멸을 느끼며 돌아오자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항구가 한때 칼립소와 뜨거운 럼주였던 시절이 어땠는지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당연히 그런 노력을 들일 가치도 없었다. 단테는 우리가 비참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고 했다.
트램프 증기화물선과의 마지막 만남을 이야기할 일만 남았다. 나는 그 증기선을 마지막으로 보게 될 줄은 언감생심 전혀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분명해 보였던 점은 이런 만남이 계속되었다면 그 상황은 신화의 뒤를 쫓는 징조들을 띠었을 것이고, 악마의 소용돌이 조짐을 띠어, 헬라스의 신들이 불변의 설계를 침범하는 이들을 벌하는 엄청난 저주로 끝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그런 식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인간들이 우리에게 부과한 보잘 것 없는 할당량의 복수를 간신히 달성한다. 하찮은 일이다. 우리의 미천한 지옥 같은 삶은 더는 고상한 시의 소재로 쓸모가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만나는 마지막 시간인 줄 모르긴 했어도, 게임을 앞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예감이 스몄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 선을 그어 쩨쩨하게 축소된 영역 내에 있지 않았다.
10여 년 전에, 오리노코 강 하구에 들른 적 있었다. 트리니다드에서 하고 있던 프로판 가스 취급에 관한 교육 과정에 등록했는데, 그곳에서 휘발성 연료의 위험성과 온갖 크기의 기름 드럼통으로 빚어내는 안틸레스 음악의 경이로움에 대해 배웠다. 밤새도록 그리고 하루의 상당 부분, 그 리듬에 최면에 들어, 밀려들었다가 떨어지는 파도들 속에서, 일 년 내내 섬을 지배하는 온순한 화톳불 더위에 도움을 받아, 우리는 잠으로 빠져들었다. 회사 예인선을 타고, 아직도 기억 생생한 어느 주말, 복잡한 삼각주를 경험하러 나갔다. 거기 오리노코 강이 여러 물길로 흩어져 온순해 보이지만 불길한 놀라움으로 가득한 위험한 대서양으로 들어갔다. 새 떼의 끊기지 않던 노랫소리 그리고 너무나도 다양한 색깔과 크기에 하루 종일 우리가 놀라고 또 놀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밤이 되면 원시 열대림의 짙은 어둠 속에서도 귀가 먹을 듯한 새들 울음소리와 지속되는 움직임은 끝날 줄을 몰랐다.
나는 이번에는 오리노코의 풍부한 유역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 간 합동 임무의 일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6명으로 된 대표단이었고 나는 도무지 없는 효율성으로 비서 임무를 수행했다. 나는 오로지 삼각주로 돌아가려는 방편으로 이런 관료적 행사에 참여하기로 동의했고, 그 기억은 향수로 물든, 여전히 그 자연의 경이로움을 선사하며, 여전히 내게 원래 그대로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산호세 데 아마쿠로에 있는 군부대 방갈로에 머물렀다. 우리는 에어컨을 포함한 모든 편의시설의 혜택을 누렸으며, 에어컨 덕분에 나는 특별한 안락감을 느꼈고 미지의 환각제의 효과와 쉽게 혼동할 수 있는 정신적 각성 상태와 예민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에어컨 플러그를 뽑고, 일견 의례 같이 장엄한 튤 망사의 파빌리온 분위기를 연출하는 모기장으로 두른 침대에 누워, 무덥게 감겨들어, 울컷 치솟는 거의 유전적인 열기에 함께 실려 오는 향기와 더불어 밤을 맞아들이는 즐거움과 비견할 만한 일은 드물다. 우리는 며칠 동안 아마쿠로 강에서 복잡한 삼각주를 탐험하며 보냈다. 아주 철저하지는 않은, 피상적인 탐험들이었다. 이렇게 화려한 미로에 익으려면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우리는 쿠리아포 섬과 산 펠릭스까지 갔다. 그곳에는 플라스틱, 정크 푸드, 밀수품, 격렬한 음악 등 우리 문명의 가증스러운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호세 데 아마쿠로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위촉된 보고서 초안을 작성의 준비 작업하는데 일주일 넘는 시간을 썼다. 나에게 그 일은 삼각주의 열반에 빠져드는 유익한 일을 의미했다. 우리는 시우다드 볼리바르까지 강을 거슬러 배를 타고 가, 책상물림 전문가들이 이른 묵직한 결론의 초안 원본을 제출해야 했고, 이들 미심쩍은 재능의 인물들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이 쏟아낸 말의 홍수는 그런 다음 장관급 기록 보관소에 보관했다가 결국 비슷한 재능을 가진 다른 전문가들이 발굴되고 이 사람들은 다시 한번 마음 편히 월급을 받고 경력 추구라고 하는 우충충한 개가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있는 어리석은 순환을 시작하리라. 나는 슬슬 열이 솟구치기 시작하고, 기지의 의무실에서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구실로 수도로 가는 여행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직의와 짧은 대화로 모든 일을 깔끔히 해결 보았고, 나는 자유로이 삼각주에 대해 바싹하나, 무뚝뚝하고 날카로운 눈매의 인디언이 모는 선외 모터가 달린 카누를 타고 아마쿠로 강을 탐험했다. 언젠가는 그 여행의 이야기를, 비록 그 시간의 흔적들이, 신이 주신 선물이 단명하는 잡지와 못지않게 다 잊혀지는 시집에 흩어놓은 시들 속에 대부분 들어있긴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려줄 작정이다. 내 동료들은 돌아와서 의심스러운 나의 회복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리우데자네이루 조약의 사소한 삽입 조항과 몬테비데오 회의의 난해한 결론들을 논의하는 데 몰두하며 바빴다. 분명히 어리석음은 지각에도 지장을 주고 아마쿠로 삼각주에서 발견되는 것들처럼, 그런 시각, 후각, 청각의 기적을 가리나 보았다.
베네수엘라 해군 함정이 우리를 트리니다드로 데려다줄 예정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 비행기를 타고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어느 날 새벽, 우리는 우리를 태우러 오던 해안 경비 쾌속정 사이렌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반쯤 잠에 취해, 아직도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듯한 뜨거운 커피를 들고, 배에 올랐다. 퍼붓듯이 비가 쏟아졌다. 쾌속정이 홋줄을 풀어 올리고 출발을 알리며 다시 사이렌이 울렸다. 바로 그때 이에 대답이라도 하듯, 들릴 듯 말 듯한 신음소리, 거의 동물 울음 같은 소리를 들었다. “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대로 바로 출항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래톱이며 조류 때문에 쓸려 든 나무둥치들로 수로가 아주 좁습니다.” 한 장교가 민간인을 상대로 말을 할 때 어울리는 무관심한 어투로 설명했다. 며칠 전, 뭔가 부정기화물선이 근처에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막연한 불안감, 삼각주를 떠나는 것에 대한 먹먹한 우울함, 거기에서 즐겼던 경이에 미리 스미는 향수. 그리고 그 화물선이었다. “알시온ALCION”, 내가 배의 고충 많은 유랑을 심상에 올리며 점점 더 입에 붙은 이름. 물론 당연히 배의 상태가 카리브해 지역이나 그 인접한 구역을 떠날 수 없겠구나 싶었다. 배는 시우다드 볼리바로 가고 있었다. “목재를 실어 나르고 있을 겁니다.” 배가 우리 옆을 지나가자 장교가 이 까마득한 시대의 망가진 유물을 향해 못마땅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결 구동봉 덜커덩거리는 소리도 그대로도 가련하게 흔들거리는 단 하나 연통도 그대로였다. 갑판에 승무원들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함교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민첩하고 능숙한 동작으로 조종간을 조작하고 있었다. 함교 창문에는 지난 긴 세월의 때가 쌓여 천정 전기조명의 희미한 불빛과 어느 한 기계가 짧게 번뜩이는 빛을 제외하고는 내부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니코야에서 만난 반쯤 벗은 미녀의 논평을 그대로 따라하는 듯한 장교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는지 도통 모르겠네. 비가 와서, 해류의 힘이 엄청 센 데다가 모래톱이 삽시간에 금방 형성되고 있습니다. 까딱 한번 잘못 요동하면 배가 부서지겠어요. 이렇게 망가진 폐물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의 말은 위대하나 완패당한 사람들의 조용하고 당당한 위엄을 띠고 헬싱키 항구에 처음 들어오던 모습을 보았던 화물선에 내가 응원하던 익명의 깊은 도당적 동지애에 상처를 입혔다. 갓 풀 먹인 흠 없는 제복에 꽁꽁 싸인 멋쟁이 장교가 이 고색창연 존귀한 부정기화물선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알시온, 모든 바다의 족장이자 태풍과 폭풍우의 정복자, 전 세계의 언어로 모험 가득한 길 잃은 항구에서 계류삭을 대어달라고 통사정하던 화물선의 보람없고, 은밀한 업적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은 천천히, 그리고 꽤나 기울어 우리를 지나쳤고-문제는 분명 화물이 아니라 구조물이 견디기에는 너무 큰 압력에 체념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잠복한 열병이나 더 이상 위장할 수 없는 극강의 약점처럼 배 길이 전체가 약간씩 떨렸다. “속도가 절반으로 떨어지면 엔진이 스크루의 리듬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장교는 방금 내가 자문하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설명했다. 다시 뱃머리는 망신살을 드러냈고 동일한 깃발이 난파 후 살아남은 누더기처럼 걸려 있었다. 마침내 그 이름이 완전히 칠이 되어 있었다. 진짜로 그 이름은 알시온이었다. 사실이지, 그런 추측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던 셈이다. 읽을 정도로 남아있던 글자 위치로 유추하면 앞에 한 글자만 맞아들기 때문이었다.
쾌속선은 전속력으로 수로에 진입했고, 기민하고 효율적인 스크루의 힘 아래 트리니다드로 향했다. 그 엄청난 속도와 가벼운 기동성에는 뭔가 건방지다는,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오만함이 묻어났다. 당연히 나는 아무 말도 않았다. 사람들이 이런 것들에 무얼 알겠는가? 특히나 정부 부처에서 나온 이런 반들반들한 공무원들이란, 단조로운 리셉션들로, 무의미한 대사관 오찬들로, 무능한데다 서투르기까지 한 복잡한 의전으로 지친 이들은 전혀 아니다. 나는 점심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잠시 잠을 청하기 위해 내 선실로 내려갔다. 가슴에 묵직한 느낌, 이름도 뚜렷한 원인도 없는 불안감, 구체적으로 집을 수 없는 일종의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삼각주의 구불구불한 물길로 들어가던 알시온 호의 모습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듯이 충실하게 잠을 자는 동안에 내 곁에 머물렀다. 그게 뭔지는 해독하고 싶지 않았다. 점심 식사 종에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시간도, 여기가 어디인지 헷갈렸다. 잠깐 미지근하고 약간 탁한 샤워기 물줄기 아래서 여행 동료들과 꼭 나눠야만 하는 미진했던 생각을 그럭저럭 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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