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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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서술자는, 하늘에 걸터앉아, 몇 마일 높은 곳에서 지도를 내려다본다. 그 지도에 잉크로 아로새겨진 대양은 뚜렷하게 순수하기 그지없는 팔레트의 해류 속에서 대륙 블록들을 둘러싼다. 이어지는 프레임에 점차 눈이 더욱 단단히 조여들어, 개략적인 특징들이 확고해진다. 황량해도 멋진 강철회색 만년 빙원들, 국경의 테를 두른다. 해변들은 구름의 소용돌이 아래 바다 쪽으로 잘린다. 물길들은 지식의 한계 너머에 이를 때까지 눈을 가늘게 뜬 꼼꼼한 사람들을 위하느라 여기저기 세부양식들로 점을 찍으며, 멀리 뻗어나간다. -가끔 해양 괴물들, 바람을 부느라 입을 오므린 얼굴, 두텁게 내려앉아 펼쳐진 드넓은 중간바다 덩어리, 이 종이 입구 바깥에 숙련된 청중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지도 모르지만, 이들 페이지에 걸친 사닥다리로 건너는 네모난 유리창의 창문들에 얼굴들을 누르고. 아주 촘촘히 다닥다닥 붙은 유리병들의 소함대가 되어 단 하나 옮겨 부어놓은 도움의 메시지로, 만 피트 위에서만 오직 읽을 수 있는 메시지로 변한다.
하지만 버림받는 이런 병에 담아놓은 탄원의 함대는 오직 변덕스럽게 깐죽대는 깜빡이, 삽화가 펜촉 끝에 감긴 비죽이, 파멸의 깊은 표층 위로 퍼진 녹갈색 카페트 안 보일락말락 엷은 색조 변화일 뿐이다. 낭떠러지에 걸터앉은 성들이, 이런 확대배율에 이르기도 전에 보인다. 수도원들이 기슭을 따라 미약하나마 신실하게 곰보자국을 남긴다. 성벽을 두른 항구들, 극소해도 석공의 솜씨로 복잡하다. 쟁기질한 밭들과 왕좌 주위로 카페트 자투리들처럼 쌓인 봉지(封地)들, 아직은 예외적이라, 지속되는 나무숲과 야생의 자연 속에 작은 쉼표이다.
이야기를 전하는 눈은 좀 더 오래, 상공에 머무른다. 어느 측량사의 어림짐작은 이런 성벽 요새를 이룬 언덕들이 허용하는 전망보다 더 넓다. 그런 뒤 그 새의 눈 조감도를 단념하고, 죄로 가파른 세상의 표면으로 자신을 낮춘 은세공을 한, 비둘기 성합처럼 아래로 아늑하게 자리 잡는다. 나무판들은 지상의 접선, 순례자의 시야를 띤다. 초점은 아래 도로로 여행객들로 바글거리는 길들로 종교 달력에 구상 가능한 모든 이유들에 하나씩 떨어진다.
여기, 땅바닥 수준에서, 믿음은 요컨대 그 해를 진군해 지난다. 각자 별개 프레임이 새로운 성인의 날, 대규모 이주의 또 다른 동기가 된다. 색깔들이 흩뿌려진 정사각형들의 퀼트를 질러, 수색자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탈탈 털며 뒤지고, 암리스타(인도 북부 도시), 룸비니, 혹은 아요댜를 못살게 군다. 그들은 로마에 있는 베드로 성인의 뼈를 추앙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떠난다. 그들은 아부 산을 힘겹게 오르고, 캔터베리로 이동한다. 그들은 4개의 성산을 다섯 개 왕좌들, 일곱 개 성스러운 강들을 그려본다. 그들은 부다 가야, 루르드, 아시시, 사르나스, 토리노, 고아, 투르, 난카나, 과달루페, 쿠신나가라, 파티마, 마르부르크, 파라스나스와 지르나르의 언덕들을 포위하듯 두른다. 세상 그림들은 밀려드는 하지, 모든 신자들이 대리인을 통해서라도 적어도 한번은 해야 하는 메카 순례이다.
조건부의, 경건한, 정죄의, 추도의, 헌신적인, 구원적인, 원호를 휩쓸며 움직이는 동기들은 이들 걷는 사람들의 장대 휘두는 전회만큼이나 폭넓다. 만화 인물들, 암적색과 짙은 암록색, 모든 은총의 근원을 향하는, 모든 정치의 샘, 역사의 탄생지로 가는 여정. 순회는 느리지만 다급하다. 애초에 이런 도해의 안내서가 요구될 만큼 필사적이다. 마치, 그림들이 우악스럽게, 오직 수천 마일을 발로 걸어가야 틀어진 일들이 바로잡힐 것처럼 우긴다.
목판으로 된 장은 아주 조금 더 신성한, 아주 조금 더 가까이, 다만 그들이 괴잡한 사혈의 휴식처를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넓게 트인 지역으로 이런 행렬이 따라붙는다. 먹과 수채물감은 그들의 신성한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지상에서 사들인 구매물을 기꺼이 희생하는 간청자들의 줄로 뱀처럼 구불거린다. 그리고 거기, 그 장 아래, 그들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데보다 훨씬 멀리, 목표의 영광이 있다. 절, 지하사원, 전쟁터, 제국의 가장 이른 대학들, 입문 허가를 받을 수도 있는 방랑하는 학교들이.
엷은 색 인쇄물은 프레임 바로 위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거미처럼 가늘고 긴 글자들의 모양들은 그저 움직임의 욕망, 영혼의 지하수면 아래 잠자리에 든 충동에 대해 말한다. “순례”는 하고 자막이 시작한다, “일생을 가시화하는, 며칠 상간에 재생을 하는 여로이다.” 이런 단어들 아래, 여행객들의 띠가 저 멀리 풍경 끝까지 도중에 놓인 익숙한, 솔깃한 집 옆으로 바싹 지나간다. 그 바로 다음 그림은 창틀 자체, 물러가는 사람 띠의 광경이 안에서 그려진다. 집에 머무는 시선이 이를 뒤쫓아 합류하도록 부추기며. 어딘가로 가라. 저녁 먹으러 돌아오지 않은들 무슨 문제인가? 길을 따라 이어지는 시련과 추위, 추행, 약탈은 진홍색과 금색을 적신 펜의 필치로 눅어지기만 한다. 이야기는 당신에게 이번 왕복여행만 걸어 맨다. 점차 위로 높아져 산으로 이어지는 이번 하나 무대로 꾸민 오아시스 세트, 태아가 바다 건너 처음 펼치는 모험을 재생하는 이번 한 번의 기회만.
“단 하나 희망은, 남몰래 간직할 비밀에 지나지 않더라도, 깨어나는 모든 것의 심장부를 찌른다.” 아이의 보물 상자 앨범치고는 화려한 꾸밈새의 해설소리, 하지만 선겁고 놀라운 뒤따르는 도판이 지문의 오명을 벗긴다. 어디 누가 이런 서두 쪼가리들을 읽기라도 하나? 증거는 모두 시각자료이다. 기다려라, 계속 따라 걷다보면 도달한다. 넌지시 비친 그 장소는 다음 산비탈 굽이 바로 너머다. 이는 당신의 생애 내에 나타날 것이다, 다시 반 페이지 조금 더 가서.
프레스코에 영감을 받은 프리즈(frieze벽의 띠 장식), 가혹해도 관능적으로, 축소 모형으로 전체 여행일정표를 재생 필요성을 말해준다. 부풀어 오른 직사각형들이 눈부시게, 전면 전시로, 멋진 경쟁자들을 보여주고, 메카 자체, 그리고, 선별된 펼침 그림을 가로질러 정면으로, 예루살렘, 신성한 세풀커(성묘)를 보여준다. 각 이야기 목판화는 궁극적인 끝, 지상 내 신의 도시 축적모델에 더욱 가까이 추구자를 옮겨놓는다. 아득히 먼 거리에서, 그저 모여든 집회, 지평선에 불안한 사교(Crosshatch)로만 보인다. 여전히 몇 마일 떨어져 평야에, 탑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러다 성벽이 보인다. 그런 뒤, 기필코 마침내, 매머드 성문이 등장하고 열린다. 사이클론식 표면 위로 온 곳에 조각해 넣은 기념축하 바위 계시, 오래된 약속들-상세하고 정교하게-로 번뜩인다.
입은 옷이 이제 선명해진다. 그 스타일, 시간과 장소. 위대한 믿음의 공위기간(空位, interregnum), 대부분 세상이 이런 거주지는 쓸모가 다 되었다고 알고 있는 때이다. 지구는 타락하였다. 부식이 되어 다만 옛날 원본으로 곧 복구될 것이다. 그 대령(大靈oversoul)은 느린 순환 고리를, 마지막 것들에 이를 때까지 조여드는 올가미를 통해 이주한다. 위기 문화들, 화물 숭배들, 토착주의 운동들, 메시아주의들, 이런 길이 흩뿌려진 표면 위 모든 이들이 이를 정거장이라고 이름 붙이고 다음 세대, 다음 이미지, 다음 프레임으로 가는 길 위에 불가해한 우회로라 칭하고, 현재를 견뎌낸다.
축복받은 순교자들의 성지들로 가는 통행로들은, 쇠약해지는 교역 노선들은 이제 위험과 구원으로 꽉 찼다. 공포와 욕구의 에메랄드 빛 혼합은 소용돌이 꼴의 지평선에 빛으로 밝힌다. 펜과 색깔은 감히 지형학의 종착역, 재촉해대는 끝손질의 모양을 도착이 분명 가까웠다는, 방랑의 끝 날이 곧 눈에 보이리라는 종려가지를 든 순례자(palmer)의 희망을 부채질하는 일 외에는 짐작도 하지 못한다.
여행 가이드는-기름 부은 이(구세주), 마디 혹은 열두 번째 이맘, 대승불교 대속물, 나나부쉬-그의 많은 복귀를 준비하라고 보여준다. 행렬이 지나는 각 마을마다 옛날 질서를 냄새로 맡아 찾아낸다.
노붐(novum, 새로운 것)이 깨부수고 드러날 예정이다. 기이한, 구상화된 윤곽선들, 기적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지상의 파괴로부터 일어날 준비를 한다. “4번째 왕국이여 오라…” 슈퍼타이틀(오페라 상연 등 무대 위의 자막) 예견한다. “제3세대여 오라…” 혁명이, 복귀가, 해방이여 오라, 전복, 변혁이여 오라… 대중적인 성지 참배객들이 문명화된 모든 천연두 지점마다 구호품을 위해 멈추며 이들 황토 언덕들을 건너 넘실거린다. 갑자기, 증류소들이 모든 것을 드러낸다. 위장한, 사사로운 군사작전, 또 다른 이름 하의 이런 지하드(성전)이 예언이 된 모든 지점들의 상징, 세상 끝의 도시를 향해 모여든다.
채색한 영웅전설이 눈의 첫 유람을 되짚어간다. 이들 호화로운 시편 페이지들을 훑어보는 일은 거의 다른 쪽에서 목판들을 꿰뚫어 보는 일, 이불 아래 밤에 다시 읽고 있는 젊은이를 놀라게 하는 일과 같다. 네모에서 네모로 이어지는 화살표들은 연재만화의 원래 주인이 이야기의 끝에 이르기 위해 손전등으로 정신없이 달린 길 아래로 판석 그림을 표시한다. 그 길은 칠백년 된 고대의 운명으로 돌아가는 지름길이다.
소년시대로 돌아가, 중세 서양이 금방 돌무더기로 차오르는 방어용 해자 안에 앉아 있던 순간으로 돌아가서. 기독교 세상은 천이백 년 동안 임박한 종말의 기대로 좀이 쑤셔 못견뎌했다. 바로 이 순간, 어느 때보다 더 확실히 기다린다. 신의 선율이 마침꼴로 몰려온다.
일련의 목판들이 요약 인정을 한다, “사실 이전의 시계에 목을 빼던 사람들은 모조리 틀렸다.” 많은 이들이 낡은 천국과 지상이 기름 부음을 받은 자(구세주)처럼 타 없어지길 기대한다. 적그리스도 실베스터 II, 999년 12월 31일 자정 미사에 선언한다. 혜성들이 미리 밝게 빛났노라.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의 종소리에, 대륙 너머 사람들이 기대감으로 땅에 납작 엎드린다. 집행 유예의 허탈 속에, 서두른 계산들이 은혜의 또 다른 삼십 년을 꺼내든다. 그리고 그 연장 역시 기한이 다하자, 앞날을 보는 자들이 새로운 만기일을 정한다.
알고 보니 숫자들이 유연하다. 예측하기 위해 지어진 밑그림 대종말을 향해 표류를 폐기하느니 달력을 폐기한다. “1000년도가 아니다!” 한 그노시스파 계산가가 그의 차가운 돌벽 암자에서 로마네스크 기독교식 코믹스처럼 낡은 연설 풍선 속 그의 입에서 나온 깜짝 놀라운 정정을 선포한다. “여기 지상에서 폐하의 천년 치세!” 그런 뒤 두 프레임, 그들이 그 수도승의 마음의 눈에서 나옴을 보여주기 위해 부채꼴로 덧대어, 교회지하무덤들이 열리고, 순교자들이 마침내 완벽해진 새 세상의 정치 조직 속에서 왕을 섬기기 위해 부활하였다.
드넓게 이제야 단언하노라, 캡션과 이미지로 온 땅에 두루 유포하노니, 마지막 황제, 희롱조의 왕들의 궁극적인 후임자가 곧 다중(다중)을 모으고 천국의 메트로폴리스의 사바의 징표를 무력으로 회복하기 위해 중간바다를 건너 기다란 뱃길을 만들 것이라고. 거기 사람들이 재림을 위한 길을 준비할 것이라. 순례자들이 성지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그들 머리 위 공기를 항의의 울음으로 채우며, 돌아온다. 도움을 바라는 풍선-요청이 우르바누스 2세 교황, 프랑스 남부 발코니석에 서서, 그 무작위 대파괴를 단 하나, 신성화된, 전투적인 순례로 바꾸라고 그 군중들에게 촉구하는 교황 입에서 나오자, 그의 “데우스 볼트(Deus volt)”는 100만배로 확대된다. 모든 계급들과 사회적 신분들이 불타오른다. 유럽은 그 자체로 오랫동안 예견되어 왔던 새로운 세대로 개시, 진수를 한다.
하지만 성지의 함락은 마지막 전투를 초래하지 못한다. 무슬림과 유대인은 예상대로 예루살렘의 새로운 거주민들의 길을 내기 위해 살육 당한다. 주권국들은 레반트 가죽 지도 위에 정렬한다. 다이아몬드들로 순례자 장군들이 그들끼리 안타키아는 누군가에게, 트리폴리 해안은 또 다른 이에게. 아크레와 베이루트는 세 번째 인물에게, 나눠준 도시들을 표기한 지도이다. 새로운 질서체계가 성립되자마자 장이, 장기(Zangi), 누레딘, 살라딘 그들만의 신성한 포위 작전을 발동한다.
서양은, 외국물 접촉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종말론적으로 충만하게 신실한 또 다른 물결을 세상의 논쟁 속으로 일으킨다. 프랑스와 독일, 보헤미아의 대공들, 슈바벤, 폴란드, 비잔티움이 십자가 아래 무장병력에 가담한다. 공존할 수 없는 국가주의자들의 군대들이 근동으로 쏟아진다. 하지만 동맹국간의 경쟁적인 천년 왕국 기대들은 치명적인 결과 이어진다. 2차 십자군은 인디고와 블랙으로 바림하는 참사 속에 수행된, 무분별한 다마스커스 공격으로 끝을 맺는다.
지상의 천국 도시, 한동안 열세 살 문둥이가 지배를 하던 도시는 종파적인 다툼질로 산산조각이 나, 경각에 서서 비틀거린다. 십자군 운동 군대들은 다시 그래도 아마게돈을 향해 운집하고, 다시 한 번 말살된다. 예루살렘은 다시 함락되고 신이 그의 천상횡단 관료국가를 설립할 기회를 얻기도 전에 잃어버린다. 역사의 끝은 또 다시 몇 페이지 뒤로 연기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판싸움의 세 번째 부름이 메아리친다. 카톨릭 연맹을 가로질러 너무 세련되고 지적이라 이를 백년 전 처음 들었던 때처럼 들리지가 않는다. 영국의 사자 왕이 시칠리아, 플랑드르, 데인과 더불어 계약 서명을 한다. 그들은 뛰어드는 출발점으로 키프러스를 손에 쥔다.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분노에 찬 칠십 노인, 독일인들을 대륙을 건너 빛나는 승리f를 향해 이끌지만, 다만-난해하게도 먹물칠 역설로-개울을 건너다 익사한다.
종교정신의 열정은 봉지에 대한 계산적인 시합으로 격이 떨어진다. 성전은 정치적인 약삭빠름으로 무너져 대체되고, 구변 좋은 이들 4차 군사작전으로 끌려든다. 예수살렘을 수복하겠다는 목표 삼았던 국제적인 맹타는 베네치아 막후 영향력 행사로 굴절되고, 신앙심 없는 성채의 포위작전들이 아니라 기독교도 콘스탄티노플의 잔혹한 약탈로 끝이 난다. 십자가의 병사들은 두 교회를 영원히 찢어 갈라놓는데 성공한다.
그들은 비잔티움을 산산조각내고 분할을 한다.-아름답게 책략적인 그리고 전술적인 견해에서 가둬놓고-그렇게 오래 다가드는 동방에 대항하는 첫 방어성을 형성하고 있는 보석 같은 도시를, 이를 다시는 회복하지 않을 상처처럼 다룬다.
---------방랑하는 영혼 작전, 리처드 파워스(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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