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은 여기서 예의 끝없는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자메이카에서의 이별을 떠올리는 일이 그에게 분명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 일화에 대한 그의 언급 아주 간결하여 나로서는 글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중 한 구절이, 힘겨운 설명과 여러 차례 반복하던 세부사항들 중에, 스쳐간 구절이 그의 감정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 배, 한쪽으로 기울어, 당신이 킹스턴에 정박해 있을 때 보았던 거의 다 부서진 잔해가 초상화처럼 선장의 심경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둘 다 가망은 아예 없었다. 남은 시간이 다 되었고, 와인과 장미의 시절은 그들 둘 다 끝이 났다. 와르다는 킹스턴 공항에서 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는 런던으로 날아갈 예정이었고, 그리고 그곳에서 베이루트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탈 것이었다.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고 시빌(여자 예언자)처럼 똑바로 그를 바라보며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헤시페에 제가 소식을 남겨 놓을 게요. 내 내면의 삶을 정리할 시간을 주세요, 그리고 다시 만나요,”였다. 존은 화물선으로 돌아왔다. 그의 기운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동시에 상당한 냉정함으로 그리고 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베리아인으로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의 계획 중에 뉴올리언스 조선소에서, 비록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화물선을 수리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다음 라 과이라에 들러 시우다드 볼리바르로 향하는 석유 탐사 장비를 싣고, 그곳에서 목재를 싣고 헤시피로 항해할 예정이었다. 뉴올리언스 조선소에서 받은 진단 결과는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선체 골조와 화물창의 전반적인 수리는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비쌌고, 어쨌든 엔지니어들도 배의 나머지 부분 상태를 고려하면 작업해도 배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었다. 외벽 도색 비용만도 알시온의 액면가보다 더 많이 들 었다. 최근 조정한 엔진으로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정비사들은 정확히 얼마나 더 오래갈지는 특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존은 선체 측면과 화물창 벽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화물 용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했다. 그 결과, 라 과이라에 도착했을 때 부두에 그의 도착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던 화물 일부만 실을 수 있었다.
예인선은 늪지대를 뒤로하고 항구에 닿기 전 마지막 강 구간에 들었다. 이 구간은 식민지 시대부터 카리브해 연안 여러 도시 간의 교통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준설, 관리되었다. 이 도시들은 강의 굽이에서 시작하여 빌라 콜로니알에서 끝나는 운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17세기와 18세기 해적들의 침입에 맞서 용감하게 저항했던 전통을 간직한 곳이었다. 광활한 습지를 통과하는 여정은 압도적으로 단조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는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고 해야 하리라. 존 이투리 선장의 이야기가 내 관심을 온통 사로잡고 있었고, 우리는 갑판에서 대화를 나누며 밤을 보내는지라, 낮 온종일은 거의 에어컨이 완비된 선실에서 잠을 잤다. 그 인공적인 시원함은 영안실을 연상시키지만 그 지역에서는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안락함을 주는 방이었다. 강의 마지막 여정 길은 양쪽 강둑을 따라 길게 돌과 석조 벽이 있어, 마치 벨기에와 네덜란드처럼 나라의 사방으로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어느 운하에 들어가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틀 더 항해해 가야 했다. 마지막 이틀 전날 저녁 이투리는 밤에 깨어 있던 우리 관습을 이어 가자고 제안했다. 그의 이야기가, 나는 깨닫지 못한 채 그 일부를 목격했던 끝에 다가가고 있었다. 우리는 9시에 갑판으로 올라갔다. 자메이카 요리사가 얼음 조각을 띄워 시원하게 유지한 보드카 암브 페라가 섞인 큰 단지를 들고 왔다. 존은 무덤덤하고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몸을 사리고, 어려움이 드러났는데, 이야기가 끝나가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신은 오리노코 강 하구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제가 아는 가장 혹독한 기후 지역에 버금가는 지옥 같은 미궁이죠. 설상가상으로, 당시 그 지역은 상당 부분 방치되어, 우려스러운 수준으로 방책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전혀 가본 적이 없었지만, 알제리 조타수와 갑판장은 그곳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갑판장은 아루바 섬사람으로 상류로 몇 번 시우다드 볼리바르까지 향해를 했고, 거기로 우리가 기계 화물을 싣고 향하던 참이었죠. 그는 항해도에 세밀히 짚어놓은 난관들에 대해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일은 우기에 갑자기 홍수로 범람하는 일뿐’이라고 그가 주장했죠. ‘그때는 물살에 엄청난 토사 더미와 뿌리, 나무줄기가 쏟아져 내려 몇 분 안에 수로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우다드 볼리바르의 항구 무선 라디오를 보통 이런 홍수가 이는 일에 경보를 내보냅니다. 우리는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그때 제가 걱정하기 시작한 때입니다. 이 나라에서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까요. 사실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걱정해도 소용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산호세 데 아마쿠로 근방에 다가갔을 때는 이미 밤이었고, 저는 이른 새벽 날이 밝으면 삼각주로 들어가려고 작은 만에 정박하였습니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습니다. 조종사는 우리를 안심시키며, 이것이 반드시 내륙도 비가 와서 불어난 물이 오리노코 강 지류들로 흘러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새벽 5시, 우리는 해도에 따르면 가장 항해하기 쉬운 삼각주 지류에 들어섰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안소아테기 지역을 통과하였습니다. 억수 같은 폭우가 뒤따랐습니다. 우리는 라디오를 항구 방송국에 연결했는데, 실제로 항구 방송국에서는 해당 지역의 기상 상황을 정기적으로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8시 30분, 첫 번째 홍수를 공시했지만 삼각주로 진입하는 선박에는 위험이 없다고 했습니다. 불어난 물이 광활한 맹그로브 습지로 흘러드는 지류 중 하나를 따라 방향을 틀었기 때문입니다. 몇 분 후, 방송국 방송이 나가버렸습니다. 지평선 위, 우리가 도시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던 지점에 적란운이 큼지막하게 평소처럼 모루 모양으로 자라고 있었고, 그 위에서 번개가 거의 끊기지 않고 번쩍였습니다. 우리는 부표로 드문드문 표시된 좁은 수로를 따라 천천히 이동했습니다. 갑자기 배가 진동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가 점점 정도가 심해지더니, 마침내 선체의 금속판이 귀가 먹을 듯한 소음을 내며 덜컹거렸습니다. 조타수는 범람하는 홍수라고 단언했지만, 물의 흐름으로 보아 진흙 퇴적물이 같이 떠내려가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갑판장은 그만큼 자신이 없었고, 선원들에게 몇 가지 이런저런 예방조치를 취하고 구명보트를 준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갑자기 배가 바닥의 무언가에 부딪히면서 급격하게 회전했고, 결국 물길과 직각을 이루어, 배의 측면을 가로질러 그대로 물살의 힘을 받았습니다. 저는 배를 돌려 바로 세우려고 엔진을 최대 출력으로 가동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거의 성공할 뻔했지만, 무언가가 아주 심하게 부딪혀 기운 채, 프로펠러가 물밖 허공에서 헛돌아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엔진을 멈추고 모두에게 갑판으로 나갔습니다. 배는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습니다. 배는 가운데가 갈라졌고 시시각각 불어가는 진흙과 초목의 거대한 퇴적층에 좌초했습니다. 두 구명보트 중 하나는 배 아래에 박살이 났습니다. 우리는 하나 남은 다른 구명보트로 간신히 다닥다닥 붙어 탔고, 급류에 우리는 진흙과 비의 회오리 속으로 떠돌았습니다. 다행히 알시온 호와 충돌했던 바로 그 진흙이 물살과 같이 막아주었습니다. 800미터쯤 지나자 구명보트를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부정기 증기선은, 사정없는 물살의 강타에 심하게 흔들려, 우리 눈앞에서 산산이 조각이 났습니다. 마치 선사 시대의 짐승이 어디에나 도사린 게걸스러운 갈기갈기 찢겨 끝장나는 광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그렇게 갈라진 배의 두 부분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휩쓸려 강가를 향해 가더니, 그리고, 해안 근처 부드러운 강바닥에 가해지는 물의 압력으로 형성된 수로 사이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그날 저녁 6시에 쿠리아포에 도착했습니다. 당국은 우리를 군 기지에 배속하고 내게 카라카스의 손해사정사와 연락하여 선원 송환 절차를 시작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과… 제 꿈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그 부정기증기선의 종말입니다.”
나는 잠시 침묵하며, 이투리가 내가 알시온호와 선장의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을 목격했다고 했던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심지어 배가 침몰하기 몇 시간 전에, 베네수엘라 해안경비대 소형쾌속정에 탑승하여 화물선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바다로 나가던 그때도, 나는 그 배를 목격했던 것이다. 그날 밤은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아직 하룻밤이 더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모든 일이 어떻게 돌아갔을지는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성적이고 예민한 그의 바스크인 영혼을 괴롭히는 악령을 쫓아낼 기회로 삼기 위해, 나는 그에게 내일 밤 이야기의 결말을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야기는 끝이 없어요. 내게 일어난 일도 내가 끝날 때 끝이 날 겁니다. 그러면 누가 알아요, 어쩌면 다른 사람들 속에서도 계속 살아갈지도 모르지요. 내일 더 이야기를 나눠보죠. 당신은 참을성 있게 제 말을 들어주었어요. 우리 각자는 이 지상에서제 몫의 지옥을 짊어지고 살아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당신의 귀한 관심에 깊이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산 후안 데 루스에서 교사로 일하셨던 할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던 말처럼.” 그가 내 앞을 지나 자신의 선실로 내려가자, 그의 얼굴에 드리운 축 처져 음울한 그림자로 그의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그의 머리를 비추는 보름달 빛이 머리카락을 하얗게 물들이는 듯했고, 갑작스럽게 나이가 들어 보이던 모습이 한층 처량해 보였다.
다음 날 밤, 작은 갑판에 다시 모였을 때, 지평선에 번져 반사된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마치 움직이지 않는 불이 그 장면에 마치 예상치 못한 드라마로 가득 채우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투리는 서두 없이 곧장 말을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일이 마치 불타는 잉걸불 위를 걷는 것처럼, 그는 서둘러 끝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자기 연민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어조나 표현방식은 피했다. 물론 여기에는 조금의 자부심도 비치지 않았다. 그는 18세기 프랑스인들이 아름답게 표현했듯이, “마음의 고풍스러움”을 지니고, 소박하고 겸허하게 말을 풀어나갔다.
“손해사정들이 카라카스에 저를 불러 약속을 잡고 알시온호의 보험 약관을 검토하고 선원과 승무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했습니다. 그곳에서 와르다와 바슈르에게 각각 전보로 난파 사고를 알렸습니다. 이런 전언들의 답장을 기다리며 상당한 시간 할애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들의 침묵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헤시페로 갈까 하는 생각은 강박으로 바뀌어 한시도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더욱 급박하고 필수불가결한 양상을 띠었습니다. 와르다가 미래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제가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킹스턴에서의 작별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함께 할 때 그녀에게 하지 못했던 모든 말들이 차곡차곡 머릿속에 쌓였습니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고 거의 불필요해 보였습니다. 우리의 몸짓, 애정 표현, 우리가 공유하는 호불호로 말은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이제 그런 것들이 다시 주도권을 잡고, 고집스럽게 독촉하며 들러붙었습니다. 그것들로 우리 사이에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방식을 통하여 오래된 인연을 연장할 수도 있는 연결고리였습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에서의 일을 마치고 저는 헤시페 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헤시페 아세요?” 나는 그곳에 두 번 가봤고, 포르투갈과 아프리카가 섞여, 기억에 오래 남던 도시였으며, 뭐라 형용할 수 없이 내게는 매력적인 도시였다고 대답했다. “처음 몇 번 브레멘에서 화학 물질을 운반하는 대형 선박을 타고 다니며, 그곳에 들렀을 때 저도 매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시의 아름다움, 매혹적인 다리, 광장, 건물들, 모든 것이 조금씩 낡아 곧 무너질 것 같아, 와르다의 메시지 오기만을 기다리며 보낸 나날들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들이 아니라 오히려 제 욕망과 불안으로 버티며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그곳에서 만날 거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약조에는 레바논으로 돌아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약간 주저하며 숨기는 기미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말과 몸짓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재구성해 가면서, 헤시페에서 만나자는 우리의 약속은 명백한 환상처럼, 킹스턴에서의 작별이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이라는 멜로드라마틱한 상황을 피하려고 그녀가 만들어 낸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이 모든 일을 두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디까지가 내 상상이, 단지 나 자신의 꿈을 제외하고 어떤 근거도 없이 꾸며낸 일인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나는 와르다가 묵을 가능성이 있는 호텔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바텐더와 리셉션 직원들에게 나는 괴짜가 되어갔고, 심지어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비쳤습니다. 그들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부정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미소에는 갈수록 확연한 연민 그리고 미치광이나 혹은 망령 난 인물에게 돋은 약간의 성가심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나는 도시를 증오하기 시작했고 모든 잘못을 도시 탓으로 돌렸습니다. 더위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고, 돈이 바닥나기 시작해서 절실히 직업이 필요했지만 다른 일자리를 찾을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현장에 대한 정밀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한 해가 넘도록 보험료가 전액 지급되지 않을 터였습니다.
“마침내 우체국에 제 앞으로 뭔가 왔다고 알려왔습니다. 제 친구가 보낸 긴 편지였습니다. 읽어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리지 않은 내용도 없긴 합니다만, 그냥 소리 내어 읽으면 그녀의 필체가 아주 유려하고 자연스러워서 마치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아서.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겁니다. 요약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녀는 레바논에 도착하고 사회와 가족에 금방 적응했다고 서술했습니다. 유럽에 대한 그리고 여러 그녀의 꿈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모든 이성과 일관성도 잃어버렸다. 남은 것이라고는 그녀와 저를 이어주었던 감정들이었다. 그 감정들은 온전히 남아있었지만, 이를 벗어나면, 무언가를 건설해 나갈 여지나 무언가를 바라는 기반이라고는 없었고, 그저 우리의 사랑을 억눌린 요구와 감춰진 죄책감과 좌절의 뒤엉킨 상태로 바꿔놓을 무의미한 경험밖에 없다고. 말하나 마나겠지만, 간단히 말해, 현실을 왜곡을 벗어나기 시작하고 우리 욕망을 피할 수 없는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때라는 겁니다. 그녀는 헤시페에 오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나를 만나고 싶지 않다. 난파된 부정기 증기선이 육지에 남아 동족의 법과 관습에 따르기 한 그녀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마치 압둘의 말이 사실인 된 듯이, 오해를 받으면, 자신은 몹시 슬프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배가 언제든 수명이 다할 지경이었다는 것을 자신도 인정한다. 그 배가 그만큼이나 오래 버티며, 가진 내구력을 훨씬 넘어 일을 하던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고. 그리고 저에 대한 염려와 와르다가 길게 나열한 미덕과 자질들을 칭송하는 말이 뒤따랐는데, 우리가 함께 보냈던 좋은 나날에 대한 기억, 다시는 이제 우리가 만날 수 없으리라 알고서 든 그리움에 그런 생각이 분명 과장으로 치우쳤겠지요. 저는 여자들의 마음을 많이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자들 지루하게 만드는 유형인가 봅니다. 그녀가 제게서 남다르게 본 모습이 아마도, 일종의 질서,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제가 둔 일종의 거리감이었을 겁니다. 이런 면모가 와르다가 유럽화하겠다는 환상을 떨쳐내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되었던 거죠. 저와 있으면서, 그녀는 인간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똑같다는 것을, 똑같은 옹졸한 열정과 추잡한 이익에 따라, 모든 층위에서 동일하게 덧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녀가 이런 확신이 견고하게 들었을 때, 본래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쉬이 예측 가능한 일이었으며, 우리 시대 여성에게 매우 드문 성숙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헤시페에서 수리를 위해 벨파스트로 몰고가는 유조선 선장 일을 맡았고, 그렇게 앤트워프에서 바슈르와 가비에로를 만나기 전의 내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와르다는 제 삶과 제 몸 더욱 비밀스러운 섬유조직을 가득 채웠기에, 그녀의 부재로 아무것도 채울 수 없는 허공이 남았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마치 로봇처럼 계속 살아가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저는 일이 그저 일어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우리를 현혹하기 위해 사람들이 종종 만들어내는 혼란 속에서 위안이나 기분전환을 찾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당신 보기에, 역시 제가 처음에 경고했듯이, 다소 진부하고 단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와르다를 아주 잠깐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녀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모든 것이 얼마나 의미가 달라지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녀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생각지도 못할 뭔가 형상이 있었습니다. 오직 당신이 직접 그녀를 알아야만 그녀와 함께할 수 있어 경험했던 놀라운 기쁨과 그녀를 잃는다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처럼 한 시간 넘게 침묵 지켰다. 그때 이투리가 의자에서 갑자기 일어서서 손을 내밀고는, 바스크인 특유의 그의 조심스러운 태도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을 대체하려는 듯 따뜻하고 긴 악수를 했다. “내일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주 일찍 부두에 나가 아덴으로 떠나는 벨기에 화물선에 승선해야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기뻤고, 헬싱키에서 처음 보셨던 불쌍한 부정기 증기선에 대한 당신의 공감으로 우리를 영원히 묶어주는 계기가 되어 기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나는 몇 마디 두서없는 말로 답했다. 너무 급작스럽게 닥친, 그의 작별 인사에 따른 감정적인 충격 때문에, 알시온 호와 선장에 대한 이야기의 다른 부분을 알게 된 일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미처 그에게 말하지 못했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막 동이 트고 있었다. 회사 차는 정오가 되어야 데리러 올 예정이었다. 내게 절실히 필요한 잠에 빠지기 전에, 어느 정도 나는 들었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했다. 인간은 거의 변하는 게 없다시피 하고, 있던 모습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존재라, 태초부터 오직 하나의 사랑 이야기만 존재했을 뿐이며, 끝없이 반복되면서도 그 지독하게 단순함이나 고칠 수 없는 슬픔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끝없이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깊은 잠에 빠졌고, 나로서는 무척 드문 특이한 일이지만,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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