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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 없는 짓/Dublinesque

Dublinesque 26-

by 어정버정 2023. 4. 14.
2019-2-09 
 
 
 

page 26

셀리아는 스파이더의 글씨체에 관해 그에게 묻는다. 깨알처럼 작아지는 글씨가 로베르트 발저를 떠올리지 않냐고 물어온 것이다. 그래, 사실 그랬다. 그렇게 보였다. 스파이더라는 이름에 대답을 하는 심약한 젊은 청년의 내성적이며, 미세하게 자잘한 서체는 그가 첫 번째 미치광이 수용시설에 들어가기 전에, 야콥 폰 군텐 저자의 서체가 소실과 퇴색에 대한 강박 때문에 점점 더 작아지고 작아지던 때를 생각나게 한다. 그런 뒤 셀리아는 런던의 침울하고 인심 박한 이스트엔드, 스파이더가 배회하던 그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점을 알아차렸는지 물어온다.

그는 셀리아가 영화가 시작된 뒤로 쉼 없이 질문을 하는 것을 알아차린다.

누가 당신한테 내가 여전히 바깥세상 일에 집중을 하고 알아차리는 걸 알아봐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던가?’ 하고 끝내 그녀에게 묻는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그에게 말하는 그의 버릇과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튀어나오는 그의 대답에 익숙하기라도 한 듯, 꼭 그의 질문과 관련되지 않은 말을 단호하게 뱉는다.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야.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아.’

리바는 머릿속으로 이 구절을 새긴다. 모든 것을 이런 식으로 적어둔다. 그는 이를 나중에 구절들을 모으는 컴퓨터에 계속 열어두는 워드 문서에 타자 쳐서 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야.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아. 이건 새로운데, 하고 그는 생각한다. 아니 아마 이런 일의 배후는 실제 그녀가 말하는 방식의 변모인지도 모른다. 불교신자는 저런 식으로 말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곧 스파이더가 엿듣고 있고 그의 대화를, 일견 그의 생각까지 염탐한다는 느낌이 그에게 든다. 그 자신이 혹시 스파이더는 아닌지? 그는 그 인물에 끌리는 자신을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마음 깊이 내심 스파이더가 되고 싶다. 어떤 면들은 그와 동질감이 든다. 그로서는 그냥 불쌍한 사람만이 아니라, 체제전복적인 지혜의 소지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출판사를 닫은 뒤에 아주 흥미롭게 여기고 있던 그런 종류의 지혜. 아마 그를 스파이더라고 생각하는 일은 과장일 것이다. 그의 삶이 알려지지 않는 작가의 작품으로 읽고 있다는 비난을 줄곧 받고 있지 않던가? 사람들이 그가 자신의 삶은 변칙적으로, 마치 문학적 텍스트라도 되는 듯이 읽고 있다고 말하던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는 스파이더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그런 뒤 여행 가방을 닫고 한동안 차갑고 인적 드문 거리를 걷는 것을 본다. 그는 그가 자신의 거실에 들어온 것처럼 행동하는 그를 지켜본다. 그는 런던의 후락한 이웃 지역이라도 되는 듯이 그 속을 움직여 다닌다. 스파이더는 정신병원에서 나왔고, 이론적으로 덜 혹독한, 그냥 아주 조금 덜 혹독한 호스피스 혹은 중간 갱생시설로 가던 도중이다. 공교롭게도 그가 젊은 시절 보내던 동네와 인근지간이다. 이는 그가 그의 어린시절을 치명적으로 복원하게 되는 직접적 빌미가 된다

 

page 28

스파이더를 보면 비록 아주 희미하긴 해도 조르쥬 페렉의 잠자는 남자가 떠오른다. 그가 좋아하는 책 명단에 든 책이다. 왜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삶에 혼란에 휩싸이고 어리둥절해 걸어다니고 있는 이 가련하고, 궁핍하고, 마음 허약한 인물, 스파이에게 그는 끌리는 걸까? 아마 스파이더에게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일부분 페렉의 인물에게도,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인 무언가가 있어서. 이는 그가 때로 스파이더 그리고 또 어떤 때는 잠자자는 남자와 동질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이러다 보니 1964년 안토니오니의 영화 적색 사막이 떠오른다. 여기서 모니카 비티가 헤매고 다니는 역할로, 아방트 레 레트르 스파이더의 여자 버전이다. 여자는 불가해한 산업화된 풍경 속에 길을 잃고 그 속의 괴괴하게 가라앉은 주변부는 그녀를 둘러싼 환경과 의사소통하는 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지속적인 실패, 이런 감정적인 붕괴, 겁에 질린 인물이 될 운명이라는 뜻이며, 그녀의 이해력을 완전히 벗어나는 현실에 대적할 수 없이, 빈 공간들을 돌아다니고, 추상적인 사막 속을 헤맨다.

 

지금까지 그가 본 바로는 스파이더 속 울적한 분위기는-특히나 피터 서스치스키의 촬영술에 힘입어, 우울한 마음 상태를 반영하여-적색 사막에서 그가 항상 감탄을 하던 스타일과 미약하나마 연결이 된 것 같다.

 

page 36

 

그는 (이 말에) 인쇄술 시대를 기리는 레퀴엠, 구텐베르그 은하계의 정점 중 하나를 기리는 장례식이라고 반복해서 들려줄 작정이었는데, 갑자기 율리시즈에서, 1904년 유월 16일 더블린에 블룸이 참석한 장례식이 불쑥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책 속의 여섯 번째 에피스드가 되살아났다. 오전 열한 시 블룸이 죽은 사람, 패디 디그넘과 작별을 고하러 묘지로 가는 일단의 사람들에 합류하게 되어, 마차에 사이먼 디덜러스, 마틴 커닝험, 존 파워와 함께 타고 시를 가로질러 프로스펙트 공동묘지로 간다. 블룸은 여전히 국외자이다. 블룸은, 그딴에 상당히 껄끄러운 마음으로 합류하던 참이다. 그들이 그를 신뢰하지 않는 줄을 인지하기 때문이고, 그들은 그의 프리메이슨적인 관행과 유대인색을 전해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디그넘은 그 자신의 과거와 아일랜드의 과거를 자랑으로 일삼는 애국적인 가톨릭교도이다. 게다가 그는 아주 사람이 좋아 죽자 사자 술을 퍼마셨다

 

page 40

 

오늘은 그는 이런 활동(인터넷 검색)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종국에 바르셀로나 출신 한 사내가 도쿄에 휴가차 폴 오스터 책을 들고 갔는데 실망스럽더라는 블로그에 공격적인 말을 남긴다. 이 블로거 개자식이네! 리바는 오스터 작품으로 오직 고독의 발명밖에 발간하지 않았고, 이 관광객이 까 내리는 작품은 브루클린 풍자극, 열린책들이지만, 그는 자신이 친구라고 여기는, 오스터가 이런 잘못된 대접을 받자 공공연한 모욕을 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블로거 욕하는 일을 마치자, 그는 훨씬 기분이 가뿐하다. 최근에 그는 아주 예민하게 굴었고 그는 오스터 책에 대한 이런 부당한 언사를 보아 넘겼더라면 이전보다 한층 더 우울해졌을 것이라는 생각할 정도로 아주 의욕이 최저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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